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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쭉빵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응답하라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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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29 SBS 스페셜 <생존의 조건 권역외상센터>
만능 스포츠맨일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던 일혁씨
사고는 그 짜릿함을 즐기던 순간 찾아왔습니다
지난 해 겨울
가족 여행 중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큰 부상을 당한겁니다
무엇보다 완전히 부서진 고관절이 문제였습니다
고관절 부위 혈관이 손상된다면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인데
일혁씨는 1차 병원에서도 2차 병원에서도
심지어 세번째 옮겨간 병원에서까지
마땅한 수술실과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를 당했습니다.
그나마 세번째 병원에 가서야
외상센터라는 곳이 있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응급실과 엠뷸런스 안을 전전하던 김일혁씨가
외상센터에 도착한건 10시간이나 지난 다음날 새벽
급히 수술은 받았지만
6개월 후 역시나 걱정했던 고관절에 괴사가 일어나
2차 수술까지 해야 했습니다
외상센터에 오기 전 세곳의 병원에서 각종 검사만 하며
허비했던 시간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합니다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힘들었던건
응급실에서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응급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응급실에서
그렇게 소외감을 느낄 줄은 몰랐습니다
외상센터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스스로가 후회되기까지 합니다
우리나라 종합병원 응급실의 평균 대기 시간은 약 7시간
특히 야간 시간대는 환자 쏠림 현상이 더욱 심각한데
중증 외상 환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날로부터 벌써 1년이나 지났지만
아버지는 아직 아들의 흔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조물락거리던 물건들은
주인을 잃어버린지 오랩니다
그리움이 큰만큼
추억의 순간조차 들춰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버리지도, 꺼내 보기도 힘든 기억.
허망하고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고 당시 아버지는 지척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 지호는 외할머니,누나와 함께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였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그때
후방 사각지대를 미처 보지 못한 대형 차량이
세 사람을 향해 그대로 후진을 한겁니다
비명 소리에 달려나가보니
지호와 할머니가 차량 밑에 깔려있는 상황
즉시 출동한 119에 의해 구조된 세 사람은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이 없었던 누나에 비해
할머니와 지호의 상태는 위급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지호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지호는 발목과 발가락 부상이 심각했는데
병원 내엔 소아 수술을 담당할 인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다른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한 의료진
3시간 동안 전국 14곳의 병원에 문의를 했지만
당장 소아 응급 수술을 할만한 의료진과 수술실이 있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사이
지호에게 심정지가 왔습니다
뒤늦게나마 경기 남부 외상센터에 가기로 결정됐지만
이번엔 긴급하게 요청한 헬기가 문제였습니다
결국 헬기 요청 두시간 만에
지호는 겨우 외상센터로 옮겨집니다
하지만 발가락 뿐만 아니라
고관절 내에서도 이미 많은 출혈이 진행됐던 지호는
이미 심정지와 심폐소생술을 반복하고 있던 상황
황급히 응급수술을 진행했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남매를 안고 환히 웃던 아빠는
이제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살아남아준 딸에게만은
두번 다시 이런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게 하리라 다짐합니다
병원에 빨리 가면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호를 위해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던 건
아빠나 병원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 당시 사건에 대한
응급의 남궁인의 글
1.
얼마 전 전주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2세 어린이와 할머니가 수술이 늦어져 결국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연을 꼼꼼히 되짚어 보니, 현재 시스템상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아이다.
아이는 전북대병원이 있는 전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견인차가 2살 아이의 허벅다리와 골반과 복부, 그리고 발목을 깔았다. 중증외상환자였다. 골반도 고정하고, 복부를 열어서 장기에서 뿜어나오는 피를 지혈하는 수술이 한시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했다. 더불어 발목에도 개방성 골절이 있어 미세접합 수술을 해서 닫아 주어야 했다. 전북대병원 응급실에서는 즉시 본원 수술이 가능한지부터 알아봤을 것이다. 시간은 오후 6시고, 응급수술만 가능하다. 시스템상 야간에 열 수 있는 수술방은 2개이지만, 현재 두 방 모두 수술이 진행 중이다.
본원 수술이 되지 않을 환자라면 무조건 한시라도 빨리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환자를 처음부터 더 종합적으로 케어할 수 있어 생존율이 오른다. 불가피한 상황이므로 가장 좋은 선택은 최대한 가까운 병원으로 가서 즉시 수술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스템은 일일이 전화를 해서 알아보는 거다. 그래서 담당의는 가깝고 외상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하나둘 전화를 건다.
원광대 병원이 거부하자, 이제 전원 문의는 한 개 도를 가로질러야 한다. 대전의 을지대, 충남대 병원이나 광주의 전남대 병원이다. 기본적으로 여기서 한 번 문제다. 전라북도의 중증외상환자는 전북대나 원광대 병원의 수술이 불가능하면 무조건 한 개 이상의 도경계를 넘어야 한다. 아무리 빨라도 길에서만 한 시간 반은 더 걸린다.
이제 전화를 받는 입장이 되어보자. "2세 중증외상" "발목 미세 수술" "생사의 기로"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까다로운 요청이다. 게다 외상센터로 지정이 되어 있어도, 당시 충분한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환자가 위험해지므로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도 하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전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되어 있다. 환자는 이미 시간이 지나 사망 확률이 높고, 2살이라 엄청 까다로운 수술을 해야하는 데다가 병원에 경제적으로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환자다. 전원을 받아줬을 경우 모든 사람의 고생문이 눈앞에 훤하다. 안 받을 이유는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고 가깝다. "응급수술중이라 수술방이 없다." "수술을 하고 나와도 중환자실이 없다." "발목을 미세접합할 의사가 없다." "미세수술 기계가 고장 나서 지금 수리 중이다." "우린 원래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다." "외과 학회라 수술할 사람이 없다." "노조 파업이다." "누구 휴가다." 사실 여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 중 하나만 대면 전화 거는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기사에 따르면 전북대병원은 이러한 전화를 전국에 14통을 걸고 전부 거부당한다. 기본적으로 전주에서 다친 외상 환자를 위해 전국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 받겠다고 하면 환자는 발목을 열고 골반이 접힌 채로 전국 어디라도 가야 하는 것인데, 그나마도 한 군데도 안 받아주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아이는 전주에 있는 응급실에 6시간 동안 있다가, 끝내 전북대에선 전원 문의에 실패하고, 결국 국립 중앙 의료원에서 연결해준 수원 소재 아주대 병원까지 헬기를 타고 간다. 이송할 헬기는 늦장을 부리고, 아주대 병원에 도착하니 자정이다. 결국 그때 환아는 수술방에 들어가고, 익일 새벽 4시 40분 사망한다.
이 시스템에서 아이가 살 수 있었다면 그건 운이 좋은 거다. 체감상으로 이런 환자를 전원 문의했을 때 흔쾌히 받아주는 병원은 손에 꼽는다. 항상 미세접합과 소아 복부 수술과 전신 외상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고 현재 수술방과 응급실 베드와 중환자실 베드가 넉넉히 갖춰진 병원이 있을까? 그런 병원은 모든 사람이 이미 몰려가 누워있어 무조건 저 위 조건중 하나가 안 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제로 몇 통만 전화를 걸어보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중증외상환자 치료시스템의 민낯이 정확히 이렇다.
결국 나는 여기서 또 시스템의 문제와 경제적인 논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들의 생각보다도 의료계의 논리는 경제적인 사항에 있어 훨씬 민감하다. 의사들은 많은 공부를 하고, 또 자신의 직업을 얻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 그 결과로 평생 의학에서 임할 세부 분야를 정하게 된다. 이 선택에 있어 우리는 인기과와 비인기과를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 전부 알고 있다. 그것이 결국 자신이 일을 하고, 일한 만큼의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냐는 여부에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 비보험이라 수가도 높고 생명과도 관련 없는 피부과, 성형외과는 인기과고, 보험이라 돈도 많이 안 되고 생명에도 직결되어 위험한 외상외과, 흉부외과는 비인기과다. 비단 의료분야가 아닌 모든 분야가 이런 논리로 작동되고, 의료계도 이런 논리로 돌아갈 뿐이다.
그렇다면 같은 외상 환자의 전원 문의를 해 보자. 특이 병력 없는 70세 고관절 골절이다. 실은 이 사람은 우리 병원에서 전원을 보낼 리도 없을뿐더러 전화하면 즉시 받아주고 구급차까지 와서 실어간다. 이 환자는 경제적으로 손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특이 병력 없는 외상성 디스크 환자나 단순 염좌로 입원 환자 등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꼭 중증외상환자가 아니더라도, 외상을 입은 중환자 하나 전원 보내기는 정말 힘겹다. 전화를 여기저기 돌려보고도 못 보낼때가 많다. 중환자실에 누워있으면 무조건 손해만 보는 환자이고, 그래서 이 시스템은 잘 안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자를 전원보내고 전원받는 과정에서 경제적 논리는 생각보다 아주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지방에서 일하는 것은 누구나 다 싫어한다. 자신의 직장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누군가 지방에 가서 일을 한다면, 그것은 득이 분명할 때다. 직업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거나, 경제적인 보탬이 수도권보다 더 되어야 한다. 의사들도 지방에 교수 자리가 나서 커리어가 쌓이거나, 아니면 페이가 높을 때만 지방으로 간다. 그래서 경제적 이유로 지방에는 백내장 수술하는 안과 의사나, 노인성 질환을 보는 내과 의사, 노인성 골절을 보는 정형외과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외상외과 의사가 지방에 간다고 해보자. 기본적으로 개업은 불가능하다. 취직해서 지방 큰 병원에 간다고 해도 외상 환자의 수가는 기본적으로 무조건 적자다. 환자를 보면 볼수록 손해만 본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일자리를 없애고 관련 분야와 관련된 시설도 다 없앤다. 어디 하나 있다손 치더라도 사회적으로 전혀 대접받지 못하고 페이도 넉넉치 않다. 당장 권역외상센터를 지정하자, 그 센터에선 외상외과 의사가 있으면 지원금을 얻으므로 채용 공고가 났고, 외과의사 입장에선 커리어가 쌓일 수 있으므로 그 수요만큼의 외과의사가 각 시도 중심병원에 몇 명이 더 고용되었을 뿐이다. 이 센터까지 마련해 놓고도, 여기서 다른 시도의 외상 환자까지 치열하게 받아야 할 이유는 그다지 많지 않다. 병원 재정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환자인데다가, 많은 사람의 손이 가고, 잘못되면 책임 뒤집어쓰고 해명하기 바쁜 환자다. 그래서 정부가 2012년부터 뒤늦게 외쳤던, '전국 어디서든 외상 환자를 살린다.' '외상 환자를 무조건 받아 살려라.' 이런 공염불은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논리가 해결되지 않아 소 귀에 경 읽기다.
2016년 8월 건강보험공단의 흑자는 20조가 넘었다. 그리고 건보공단 직원들은 최근 5년간 2200억의 성과금을 나눠먹기 했다. 이는 의료 행위 중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분야에서 수가를 쥐어 짜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시다시피, '외상'은 대표적으로 보험 적용이 되는 분야고, 또 많은 처치가 급박하게 이루어지므로 환수가 쉬운 분야다. 가뜩이나 수가 자체도 낮을뿐더러, 병원 입장에서는 적자로 골치 썩이는 분야다. 게다가 '소아외상'은 난이도도 어렵고, 보험 적용은 더 엄격하다. 이런 경제적인 논리 때문에 진짜 외상을 다루는 의료 분야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고, 체계도 말라버리고 있다. 경제적인 논리임을 파악한 정부는 외상센터 건립에 헛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결국 시스템의 근원은 놔둠으로써 문제를 계속 방치하는 꼴이다. 그 와중 우리나라에선 일 년에 삼만 명이 외상으로 꼬박꼬박 죽어가고 있다. 극단적으로 외상환자를 보는 병원과 외상을 보는 의사가 떼돈을 벌면 어떨까. 방금 고관절 골절처럼, 외상 환자를 서로 급박하게 데려가서 자기 병원 수술방에 한시라도 빨리 밀어 넣으려고 아우성이지 않을까? 그리고 지방 어디든 외상외과 의사가 넘쳐나 누군가 다치면 달려들어 살려내기만을 기다리고 있게 되지 않을까? 현실적이지는 않아도,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보고는 한다.
중증 외상 환자라는 단어는 발음하기에는 참 쉽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너무 끔찍한 단어다. 환자는 죽음 직전의 고통에 계속 발버둥 친다. 수술을 한다고 고통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서 수술한 이후라면, 이제는 나아질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으므로 고통도 견딜만하다. 여기서 어떠한 조치도, 희망도 없이 마냥 응급실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중증외상환자들은 가만히 보고 있기에도 너무나 딱하다. 수술에 재간이 없는 나라도 어떻게든 수술방에 들어가 고통을 덜어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외상 환자 시스템은 내가 적나라한 글을 써냈던 2013년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2016년에도 사람은 교통사고가 나면 죽는다. 이 생생한 증명을 나는 오늘도 한 기사에서 읽어낸다.
2.
2살 난 아이가 전주에서 중증외상을 입고 사망한 사건에 관해서 나는 며칠 전 적나라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글을 썼다. 그리고, 제법 이 문제에 대한 실상을 알리고 공론화의 장을 열었다고 생각했으며, 더 이상의 첨언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을 보니 도저히 한 개의 글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어서 쓴다.
이 글은 '2살 난 소아가 중증외상을 입고 시스템의 미비로 사망한 사건'에 대한 정책 입안자의 접근 방식에 관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정부나 정책 입안자는 현재 이 시스템을 전부 갖춰 놓은 장본인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강력한 통제를 기반으로 하므로, 전반적인 의사 수급의 형태를 만들어 놓은 것, 수가를 정해 놓은 것, 외상 센터의 기준을 확립하고 지원금의 규모를 정한 것, 그리고 전원 시스템을 만든 것은 전부 정책 입안자들이다.
이들이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2012년 이전, 외상 환자에 관한 대우나 시스템은 정말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보다도 더 주먹구구식 처치에, 투자라곤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었다. 당시 석해균 선장과 이국종 교수님의 일화가 화제가 되며,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처치가 국가적 어젠다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그때야 정책적으로 투자에 나선 것들도 그들이다. 늦은 일이기는 했지만, 여기까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는 각 권역별로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고, 여기에 지원금을 보태기로 결정한다. 센터 선정 기준을 정하고, 지정된 센터별로 80억에, 지원금이 매년 10억이 넘게 들어갔다. 전국적으로 2200억 가량을 투자했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어떤 기본적인 문제가 산재해 있었으며, 경제적인 논리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고, 현장의 실태는 어떠했는지는 저번 글에 언급했으므로 이 글에선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요는 투자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의 부재로 '2살 난 소아가 중증외상을 입고 시스템의 미비로 사망해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사건'에 대한 입안자들의 접근 방식이다. 아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지는 몰라도, 이 종합적인 문제의 책임은 전부 입안자들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 편이 훨씬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2012년 전부터 의료계 전반에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고, 2012년 이후에 외상 센터의 기준을 확립하고 투자한 것도 그들이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시스템 하에서만 일하고 있었다.
그들이 투자하고 실태를 점검했음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면,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에는 어떠한 문제가 산재해 있는지 파악하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향후 어떤 투자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 몇 번을 되풀이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정책 입안자가 응당 취해야 하는 태도다. 나는 그것이 상식이라고 본다. 하지만 언제나 입안자의 초점은 여기에 맞춰진다. '우리가 2200억을 투자했음에도 사망 환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우리가 언론에 뭇매를 맞고 있다. 기분이 나쁘다. 다시는 우리가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 접근 방식은 지겹도록 겪은 그들의 고착화된 습성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먼저 서둘러 한 일은 놀랍게도 환자를 먼저 받은 전북대병원의 권역외상센터 선정 취소를 논의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당시 전원을 받지 않은 전남대병원과 을지대병원의 권역외상센터 선정 취소까지도 더불어 고려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지함에서 시작된 갑질에 가까운 발상이다.
현장에 있는 실무자들을 지원금으로 압박하는 것은 입법자에게 매우 효율이 높은 방식이다. 강력한 통제 의료 안에서 당장 지원금을 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고, 그렇다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 이런 사건이 또 발생해서 입법자를 괴롭히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예를 들어 전북대병원의 선정을 취소하고 원광대로 옮겼다고 치자. 원광대는 선례를 보았기 때문에, 환자를 보았을 때 일 순위의 가치는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만들만한 사건만은 피하자'가 된다. 그렇다면 일견 현장은 조용해지지만, 전반적인 시스템의 개선은 부재한 채 분위기는 '당장 문제를 일으키지만 말자'는 쪽으로 흘러간다. 이러면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가? 이게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원해줬음에도 환자를 제대로 못 보는 나쁜 놈들'이라고 일갈하는 방식. 허나 이는 별다른 시스템의 개선 방안이나 고민 없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입법자들은 정확히 이런 방식을 답습한다. 문제의 근원은 돈을 투자하고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다. 이런 문제가 왜 일어났고, 지원금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어 얼마만큼의 개선 사항이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시스템의 미비로 아이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는가를 판단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편이 훨씬 더 종합적으로 전국의 중증외상 환자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전혀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고, 그 책임소재를 복기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아중증외상'에 대한 권역의료센터 선정 기준은 없었고, 전북대병원은 그 기준에 맞춰 일했을 뿐이다. 당장 전북대 병원의 선정을 취소하면, 자기들이 투자한 금액은 허공에 날리는 셈이며, 전라북도의 권역외상센터는 공석이 된다. 이는 자신들의 투자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며, 전라북도의 외상체계는 즉시 구멍 나고, 현장은 망가지고 퇴보하며 어김없이 다른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그 이상의 돈이 든다. 이를 분명 알고 있을 것임에도 입법자들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선정 취소'를 운운하는 것이었고, 보는 사람을 암담하게 만들고 있다.
2012년부터 구축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외상체계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발전 과정에서의 실수는 인정하고 그를 바탕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입법자가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어떠한 고뇌도 없이, '사망자를 앞에 둔 사람'도 아닌 '사망자를 보고받은 사람'이, 서류상으로 근시안적이고 책임 소재를 회피하는 대책을 내놓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환자가 죽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런 태도를 보며, 오늘도 우리가 갈 길은 참으로 멀고도 요원하다고 느낀다.
첫댓글 내가 이런 실태를 엮은 책을 본게 재작년이었고 그 책은 2012년 출반본이었는데 아무것도 변한게 없네
결국 저렇게 심하게 다치는 사람들은 전부 일반 서민이고 노동자라서 크게 변화가 없는건가 싶어서 씁쓸하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언제쯤 변할 수 있을까...
나의 일,내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서 더 무섭다.. 그냥 죽어가는걸 손놓고 볼 수밖에 없다니
답답하다..묻히지말고 제발 개선됬으면..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