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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백석의 시는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한 극심한 회의와 갈등을 보여준다. 이러한 회의와 갈등은 이 시기에 들어서서 더욱 가혹해진 식민지 수탈과 식민지 세력의 팽창 앞에서 망국민으로서 겪게 되는 무력감과 가책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30년대 이래 팽창 일로에 있던 일제의 세력은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는 시점에서 그 극에 달하며 그러한 팽창하는 세력 앞에서 민족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욱 더 불투명해지고 일제 말기에 가해진 민족말살정책은 우리 민족에게 무한한 굴욕과 모멸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한 좌절과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바 있는 <목구>는 이러한 식민지 말기의 민족말살정책 앞에서 한 시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역사 앞에서의 죄책감과 좌절, 슬픔을 노래한 것으로 그의 현실 인식의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시이다. 일제의 극심한 수탈로 인해 마을이 황폐화되고 민족적 삶이 해체되던 시기에 우리 민족 자체를 말살하고 일본 신민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은 집안으로 치면 집안의 제사가 끊기고 나라로 칠 때는 민족의 대가 끊기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목구>는 지금까지 온갖 시련과 외침을 견디어내고 꿋꿋이 대를 이어준 민족을 자신의 어리석음과 잘못으로 더 이상 이어나가지 못한다는 역사에 대한 죄책감과 가책을 한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에 비유하여 보여주고 있는 시로, 민족의 수난을 자신의 힘으로 감당해 보려는 한 시인의 좌절과 슬픔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 앞에서의 무력감과 가책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북방에서>에도 잘 나타난다.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금은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나의 태반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늘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내용출처 : http://nongae.gsnu.ac.kr/~jcyoo/reread/bukbang.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