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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87회>
신검이 명분이 없음을 이유로 능환의 혁명권유를 물리치는 사이 견훤은 박영규에게 병부의 확실한 통제를 명하고 금강에게 옥좌를 넘긴다. 파진찬 최승우는 백제의 국운이 다했음을 감지하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한편, 옥룡사의 경보는 백제의 다가올 변란을 예감하고 왕건은 귀부를 청해온 신라 경순왕의 뜻을 다시금 정중히 거절하는데... 견훤이 권력승계의 마지막 작업으로 능환과 능애의 삭탈관직과 신덕의 참형을 명하는 시각, 혁명을 승인하는 황후 박씨의 교지를 받아든 신검은 드디어 혁명에 동참할 것을 결심하는데...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견훤이 생각이 많다. 계속 등이 아픈 듯 움츠리고 찡그리면서 방안을 서성거린다.
견훤 (소리)이상한 일이다. 왜 이리 뭔가가 답답할꼬...? 두 아들놈은 먼 곳으로 보내버렸고... 이제 신검이는 보낼 것이고... 그리고 금강이가 옥좌에 앉으면 다 끝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이리 불안하고 답답할꼬....?
까닭모를 한숨을 쉬며 견훤은 그렇게 서성거린다. 그러다 또 생각한다.
견훤 (소리) 그래, 이게 이렇게 오래 끌 일이 아니야. 몸은 점점 더 병이 깊어가고 고려의 왕건 아우는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어.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 황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훤히 보고 있을 지도 몰라. 그렇다면 아니 되지. 서둘러야지. 헌데 파진찬은 서둘지 말자고 한다... 아주 천천히 하자고.. (사이) 천천히라니...? 촌각이 다급한데 천천히라니...? 신료들을 다독거리면서 달래라고....? 그러면 저들이 점점 더 기고만장해지지... 나아질 것이 뭐란 말인가? 그래, 파진찬의 말대로는 아니 된다. 헤치워야 한다. 모든 것을 다질 필요가 있다. 헤치워야 해.
견훤은 드디어 결심한 듯 소리쳐 내관을 부른다.
견훤 밖에 내관 있느냐...?
대전내관 (소리) 예, 폐하. (들어선다) 찾아계셨사옵니까, 폐하..?
견훤 그래. 병부에 전하여 군에 총사를 맡고 있는 장군 박영규와 태자 금강이를 당장 들라 이르라. 당장 말이다.
대전내관 예, 폐하.
대전내관이 나가고 견훤은 또 중얼거린다.
견훤 헤치워야 해. 아주 확실하게 해 주어야 해. 내가 이만할 때 아주 확실하게 정리를 해 주어야지.
그렇게 끄덕이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병부 외경
씬 동 병부 안
박영규와 금강이 마주해 있다.
박영규 태자마마,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경황없이 군부를 맡은 것 같사옵니다.
금강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매부..?
박영규 군의 생명은 명령계통이옵니다. 헌데 그것이 부자연스럽사옵니다. 지금까지 황도를 지켜온 군대는 신덕 장군의 군대였사옵니다. 중요부서 곳곳에 다 그의 부장들이 맡아 있사옵니다. 우리의 군대가 없다는 것이옵니다.
금강 그래도 총사는 매부이십니다. 군령권을 가진 분은 매부가 아니십니까? 황제폐하이신 아바마마께서 주신 군의 통수권입니다. 누가 명령을 아니 들을 수 있습니까? 명령을 아니 들으면 그건 곧 항명이고 반란입니다. 대역죄에 속하는 것입니다.
박영규 그렇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우리가 신뢰할 만한 조직이 없다는 것은 불안한 것이옵니다.
금강 폐하의 영이 내려지면 천하가 벌벌 떱니다.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매부.
박영규 예, 뭐 그렇기는 하지만...
금강 그나저나 왜 아직까지 아바마마께서는 신검 형님을 저대로 두고 보시는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형님께서 가셔야 황도가 그만큼 안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박영규 물론 그건 그렇사옵니다마는... 폐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소리 장군, 황궁에서 별감이 왔사옵니다.
박영규 무슨 일이냐..? 들어오라.
별감과 군사 하나가 함께 들어와 군례를 한다.
박영규 무슨 일이냐...?
별감 폐하의 영이시옵니다. 두 분께서는 즉시 입궁하랍시는 황명이옵니다.
박영규 입궁...? 당장 말이냐?
별감 예, 장군.
금강 폐하께오서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준비하시지요.
박영규 예, 태자마마. 무슨 일이실꼬...? 혹시 신검 태자마마의 일이 아닌가 모르겠사옵니다.
씬 신검의 처소 외경
씬 동 처소 안
능애와 능환이 신덕과 함께 신검을 보고 있다.
능애 이찬의 말씀을 들었사옵니다, 태자마마. 왜 모든 것을 거부하셨사옵니까?
신검 ........... (한숨만)
신덕 이곳에 오기 전에 들으니 대전에서 병부의 박영규 장군과 금강 태자마마를 들라 하셨다 하옵니다.
능환 허허허.. 그렇습니까?
신덕 예, 이찬어른. 뭔가가 일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능애 수순을 밟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미 두분 태자마마를 멀리 보내시고 저들에게 군권을 주었으니 당연히 다음은 신검 태자마마를 황도 밖으로 보내시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능환 그렇사옵니다, 태자마마.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하시오소서. 사안이 중하고 급하옵니다.
신검 ................ (역시 한숨만 쉰다)
신덕 군의 통수권이 박영규 장군에게 갔다 하나 실제로 예하부대를 움직이는 것은 소장이옵니다. 우리들의 충정을 받으시오소서, 태자마마. 시간이 없사옵니다.
신검 알고 있소이다. 모든 것이 급하고 불길하고 또 불안하오이다. 하지만 말이오... 아버님을 밀어내고 옥좌에 앉는 자식을 어느 백성들이 따르겠소이까?
신덕 누가 아버님을 밀어냈다는 것이옵니까? 병이 드시고 노환이 나신 분을 편안히 뫼시려 하는 일이옵니다. 그러니까 혁명이라고 하지 않사옵니까?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혁명 말이옵니다.
신검 아니오. 이것은 혁명이 아니오. 내 말하였지만 황위를 찬탈하는 일이오. 결코 남들은 혁명이라 하지 않을 것이오.
능환 태자마마, 혁명이 아닌 것을 혁명으로 만드는 것은 저희들과 태자마마의 몫이옵니다. 우리들의 영화를 위하여 태자마마를 옹립하려는 것이 아니옵니다.
신검 ...............?
능환 (계속) 이대로는 백제가 계속 지탱해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옵니다. 결국은 통일의 주도권을 고려에 빼앗길 것이고 나라는 망할 것이고 우리들의 이름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옵니다. 이 대 백제국의 이름도 말이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목숨을 걸고 태자마마를 뫼시려는 것이옵니다. 아시겠사옵니까? 대의를 위해서 말이옵니다.
신덕 군의 준비는 다 되어있사옵니다, 태자마마. 결심을 주시오소서. 혁명의 대업에 앞서시오소서.
신검 아니오... 나는 아직 대답할 수 없소이다. 이렇게 하려고 했던 일은 아니올시다. 결국은 혁명이라는 것이 무엇이오? 아버님을 배반하고 아우를 죽여야 하는 일이올시다. 물론 수없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울분을 삼킬 때도 있었소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도가 아니올시다. 정도가 아니에요...
그들 태자마마......
능애 사람이 살면서 어찌 바른 길만 갈 수가 있사옵니까? 더러는 휘어진 길도 있고 언덕도 있고, 또 가다가보면 똥도 밟고 옆 길로 돌아도 가는 것이 사람 사는 이치이옵니다. 허나 어디로 어떻게 가든 간에 그 목적지는 알아야 하옵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보았사옵니다. 허락하시오소서, 시간이 없사옵니다. 시간이 없사옵니다, 태자마마...
능환 하긴 그렇사옵니다. 그것만 있다면....... 명분이라.....명분이라.....
능환은 중얼거리고 .... 신검은 여전히 대답이 없다.
씬 황후전
상궁 이씨가 박씨에게 말을 전하고 있다.
이상궁 이찬과 능애장군, 신덕장군 같은 분들이 지금 신검 태자마마의 처소에 가 계신다 하옵니다.
박씨 뭔가 중요한 말들을 하고 있을 게야.
이상궁 불안하옵니다. 어쨌거나 폐하께서 한번 결심하신 일이옵니다. 곧 신검 태자마마께 어떤 영이 내리지 않겠사옵니까?
박씨 그렇겠지. 그러나 신검 태자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 뭔가 틀림없이 생각이 있을 게야. 그렇게 어리숙하지는 않아. 폐하께서 그걸 모르신다네. 신검 태자가 어떤 아드님이신지도 모르신다네. 절대로 어리숙할 사람이 아니야. 암.... 나는 그걸 알지...
씬 고비전
고비가 웃으면서 최상궁과 나인들을 보고 있다.
고비 호호호.... 그래, 이 전각은 그 동안 너무 좁았다. 머지 않아 우리 아드님이 황제가 되신다. 그리되면 황태후의 처소치고는 이곳이 너무 작지.
최상궁 그러하옵니다, 마마. 부리는 나인들 또한 이대로는 부족하옵니다. 하여 내명부에 보다 많은 상궁과 나인들을 달라고 청해 놓았사옵니다.
고비 잘하였네. 살림살이가 커지면 그만큼 사람들이 많아지는 법이지. 저쪽 끝 별궁에 우리 금강 태자의 처소가 있네. 그 옆에 전각이 마침 수리중이라 하니 그것을 고치거든 옮겨가도록 하세나.
최상궁 예, 마마. 하오나 황후마마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고비 허허 이런.. 황제의 어머니이고 태후가 될 사람이 누구의 허락을 별도로 받는다는 말이냐? 그냥 가면 되느니라.
최상궁 호호호.. 예, 마마...
고비 상전이 높아지면 그 아랫것들도 다 영화를 보는 법이니라. 최상궁도 곧 제조상궁이 될 것이야. 마음의 준비를 넉넉히 하고 있거라.
최상궁 예, 마마. 참으로 은혜가 백골난망이옵니다.
고비 그래... 다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호호호....
씬 대전 밖
대전 내관이 서있다. 견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견훤 (소리) 군대의 통제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씬 동 대전 안
견훤과 박영규, 금강이 함께 해 있다.
견훤 물론 황제가 특별히 내린 영이니 제대로 안될 턱이 없겠지... 뭐 애로사항은 없는가..?
박영규 예, 폐하. 하오나...
견훤 하오나 뭐......?
박영규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군권을 이양받았고 본래 예하 부대의 장수들 대부분이 신덕 장군의 수하인지라 완전히 장악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사옵니다.
견훤 뭐라, 신덕이가.....? 이런 못난 소리하고는..... 통수권자는 총사야. 군권을 장악하지 못한 총사라면 말이 되겠는가? 그래, 그 신덕장군이 본래 신검이 옆에 착 붙어 있었다는 것을 내 알고 있었어. 그 일은 그렇다면 내가 조치를 취해주지. 휘어잡아, 군대란 명령 하나면 다 통해야 되는 것이야, 신덕이라.....아무튼 강하게 밀어부쳐 봐. 명령을 내리고 훈련을 소집하고 군기를 강화하게.
박영규 예, 폐하.
금강 잘 될 것이옵니다. 저희들 위에 폐하께서 계시는데 누가 감히 영을 따르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암... 그건 그래. 오늘 내가 두 사람을 당장 들라 한 것은 아무래도 더 이상 눈치만 보고 있기는 어렵기 때문이야. (사이, 보다가) 내 이제 이야기 하마. 파진찬과는 여러 번 의논한 일인데.. 옥좌 말이다.
두 사람 ..............?
견훤 금강이 너에게 주려고 이미 네 형들을 멀리 보냈다. 알고 있느냐...?
금강 예, 아바마마.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견훤 이제 신검이를 보내고 나면 신료들에게 영을 내리고 새로운 양위 절차를 밟을 것이다.
금강 망극하옵니다.
견훤 그 때문에 군권을 너희에게 주었고 모든 만약의 사태를 염려하여 너의 형들을 외지로 보낸 것이다. 허나, 허나 말이다...
금강 말씀하시오소서.
견훤 형제간에 분란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네가 이 자리를 맡더라도 형제를 위해해서는 아니된다. 잘해줄 수 있겠느냐?
금강 ...............
견훤 왜 대답이 없느냐? 형들에게 잘해 줄 수 있겠느냐?
박영규 .............?
금강 예, 아바마마. 노력해 보겠사옵니다.
견훤 또 있다. 내가 너를 후계로 정한 것은 막내 자식이라 이뻐서가 아니다. 너는 장수의 기질이 있고 지휘력이 뛰어나다. 삼한 통일을 너를 통해 보고 싶기 때문에 결정을 한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금강 예, 아바마마. 이미 그러한 결심을 굳힌지 오래이옵니다. 꼭 보이겠사옵니다.
견훤 그래, 그래, 그래..... 나는 금강이 너 하나만을 위해 다 던지고 다 내걸었다. 너의 형들을 보냈고 신료들의 저항을 막았다. 파진찬까지도 멀어지고 있어...
금강 예, 아바마마.
견훤 그러나 결심을 했으니 행동은 빠를 수록 좋은 법이다. 이삼일 안에 신검이를 황도에서 떠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즉위를 반대하는 신료들을 역시 이 황도에서 떠나게 할 것이다. 알겠느냐..?
금강 예, 아바마마.
견훤 이보게, 사위..?
박영규 예, 페하.
견훤 신검이가 떠나는 대로 국가비상령을 선포 할 것이야. 그리고 신료들을 재정리해서 멀리 보낼 사람은 보내고 남을 사람은 남고 조정을 새로히 하게 될 것이야. 파진찬 최승우는 이 일에 흥미를 잃었어. 그러니 우리가 서두를 수밖에 없어. 정식으로 칙서를 쓰고 옥새를 찍어 군부에 내릴 것이니 그리 알고 사위는 군권을 동원하여 적극 도우라.
박영규 예, 폐하.
견훤 내 오늘 나의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하였어. 이제 이 나라의 옥좌는 너의 것이다, 금강아... 모든 일을 사려 깊게 행동하거라.
금강 예, 아바마마.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견훤 빨리 해야 한다. 조속히 모든 것을 마무리짓고 혁신적이고 새로운 국가를 열어야 한다. 두 사람은 이것을 명심하라. 삼일이다. 그 이후에 비상령을 선포하고 조정을 정비하고 금강이가 새로운 황제에 오를 것이다. 알겠는가?
금강 예, 폐하.
그렇게 끄덕이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능애의 집 외경 (밤)
씬 동 집 사랑
신덕, 영순, 상귀, 파달, 상애들이 모여있다. 모두 눈빛이 긴장되어 있다.
영순 참 답답한 일이올시다. 군대가 준비되었고 우리 신료들이 모두 힘을 실어주고 있소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토록 완강히 우리들의 청을 거절하신다는 말입니까?
신덕 그러게 말이올시다. 폐하께오서 장군 박영규와 금강 태자를 부르셨다는 것은 위기가 점차 사실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주저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지요.
상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신검 태자마마의 말씀도 일리가 있소이다. 문제는 명분입니다. 명분 말이올시다.
신덕 사실이올시다. 그 때문에 실은 두 원로분께서 지금 황궁으로 드셨소이다.
영순 황궁으로 말입니까?
신덕 그렇소이다. 황후마마께 아무래도 재가를 받으려는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명분을 얻자는 것이지요.
상귀 이미 다 드러난 일이고 폐하께오서 잘못하시고 계신 일입니다. 그걸 바로 잡겠다는 것인데 무슨 명분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파달 그렇사옵니다. 태자분들 중 맞지도 않는 서열에서 황제가 된다는 것도 그러하고 죄 없는 형제분들을 모두 밖으로 내치는 것도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신덕 여기 상귀, 파달 장군은 물론이거니와 황궁을 수비하고 있는 상애 장군도 다 이미 뜻을 모았습니다. 길은 달리 없습니다. 혁명입니다. 더는 못 기다립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상애 그러하옵니다. 시간이 없사옵니다.
영순 기다려 보십시다. 황후전으로 달려들 가셨으니 뭔가 방법이 나오겠지요.
신덕 어찌되었거나 혁명은 기정사실이 되었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은 우리가 대역죄로 죽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편과 적을 구분하는 일이올시다. 다른 사람들이야 다 그렇지만 파진찬은 어찌할 것이오이까?
영순 파진찬이라.......?
신덕 이 모든 일을 폐하와 함께 꾸민 일이옵니다. 예성강 전투 때에도 결코 신검 태자마마의 편은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일이 시작된다면 결국은 죽여야 할 것입니다.
영순 죽인다....? 죽인다...?
신덕 달리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폐하는 이미 병이 깊으시니 다른 곳으로 모신다 하여도 파진찬과 금강 태자마마는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 같소이다.
영순 그럴 것 같습니다. 두 사람만 사라지면 문제는 다 해결이 됩니다.
상귀 허면 장군 박영규는....?
영순 비록 군권은 마지못해 쥐고 있으나 폐하의 영 때문에 그리된 것이오. 다 죽인다면 그건 옳지 못하오. 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올시다.
씬 최승우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최승우가 홀로 차를 마시면서 자신이 쓴 글들을 보다가 하나씩 태우기 시작한다. 그 옆에서 집사가 앉아 보고 있다. 최승우가 신변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글들을 이리저리 태우고 그리고 족자도 보다가 두루 말아서 한쪽에 놓는다.
집사 나으리.. 평소에 쓰신 그 글들을 왜 다 없애시옵니까?
최승우 허허... 왜...?
집사 너무 아깝지 않사옵니까?
최승우 남은 것들에 미련이 많으면 편안하게 눈을 못 감는 법이라네.
집사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최승우 편안해지고 싶어서 그러네. 자, 이 족자는 자네가 선물로 갖게나.
집사 예....?
최승우 받아...
집사 아, 예... (얼떨결에 받아들고) 하온데 왜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정리하시옵니까? 마치 이사라도 가시는 분 같사옵니다.
최승우 이사라....? (하다가 껄껄 웃는다) 그래,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것도 이사는 이사지... 하하하하....... 그래, 이사준비를 한다네. 길지 않을 것이야. 이삼일 내에 아마 이사를 가게 될 것이야.
집사 어디로 말이옵니까?
최승우 어디로라...? 그 동네는 가옥에 번지수가 없어놓아서 말이야... 자, 이제 그만 나가보게.
집사 나으리....
최승우 아무 것도 더는 묻지 말게. 그저 짐이 많으면 버거워질 것 같아서 말이야.
여전히 집사는 눈이 둥그렇게 보고 있고 최승우는 쓴 글들과 서책을 화로에 불태우고 있다.
최승우 남기지 않고 가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것이라네. 먼길 갈때는 무거우면 낭패이지. 허허허....
계속 그러한 최승우의 모습에서....
씬 황후전
능애와 능환이 박씨와 마주해 있다.
박씨 우리 신검 태자가 명분을 달라고 했다는 말입니까?
능환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오래 생각하여 본 결과 황실의 어른은 폐하 다음으로 황후마마께서 계시옵니다. 폐하께오서는 이미 망령이 드시었으니 황후마마의 재가를 청하옵니다.
박씨 나의 재가를 청한다....?
능애 황후마마, 폐하께서는 사사로이는 이 사람의 형님이 되시옵니다. 황후마마께서는 형수님이시옵니다. 이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놓여버렸사옵니다. 신검 태자마마의 혁명을 요하옵니다.
박씨 허...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한다)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능애 나라를 위하여 신검 태자의 혁명을 지지한다는 교서를 주시오소서. 시간이 없사옵니다.
박씨 난들 폐하의 망령을 모르는 바 아니오. 그리고 뭔가 그대들이 일을 만들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소이다. 그대들의 말이 맞소. 황제는 심한 망령이시오. 혁명은 당연하오.
두 사람 망극하옵니다, 황후마마.
박씨 허면 교지를 당장 써주어야겠구려.
능환 예, 마마. 친필로 글을 써주시고 황후마마의 인을 찍어주시오소서.
박씨 잘못되면 어찌되는 것이오...?
능환 물론 황후마마도 신검 태자마마도 또한 신들도 다 죽게 될 것이옵니다.
박씨 고맙구려. 모두들 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일인데 내 어찌 교지 한장을 써주지 못하리오. 밖에 이상궁 있느냐...?
이상궁 (소리) 예, 마마. (들어와 서면)
박씨 지금 즉시 서지와 먹과 붓을 대령하라. 그리고 황후의 인을 가지고 오너라.
이상궁 예, 황후마마.
박씨 기꺼이 해 드리리다. 나라가 살고 태자가 사는 일입니다. 허락하고 말구요...
두 사람 망극하옵니다, 황후마마...
그런 박씨의 독한 표정에서...
씬 신검의 처소 방안
신검이 계속 한숨을 쉬며 허공을 보고 있다.
씬 대전
견훤이 탁자 앞에 앉아서 붓을 들고 있는 사관을 보고 있다. 옆에 대전내관이 벌벌 떨며 서있다.
견훤 사관 너는 상세히 받아 적으라.
사관 예, 폐하.
견훤 먼저 신검 태자는 이틀 후에 황도를 떠나 전국을 순행하며 민심을 살펴보게 할 것이다. (사이) 썼느냐...?
사관 예, 폐하.
견훤 지방을 다 순회하기까지는 삼년은 걸릴 것이다. 그 안에는 황도에 돌아오지 못한다. 쓰거라.. (사이) 썼느냐...?
사관 예, 폐하.
견훤 장군 박영규는 황제의 영을 받아 다음의 역신들을 잡아들이고 유배형에 처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이찬 능환을 삭탈관직하고 천리 밖 섬으로 위리 안치할 것이다.
사관이 손을 벌벌떨며 견훤을 본다. 대전내관의 눈이 묘하게 양쪽을 살피고 있다. 극도로 긴장한 표정이다.
견훤 어서 쓰거라.
사관 예, 폐하.
견훤 중신 영순을 역시 천리 밖으로 위리 안치할 것이며, 장군 능애를 또한 그리할 것이다. (사이) 무주와 강주에 내려가 있는 태자 양검과 용검의 도독직을 거둘 것이다. 그리고 역시 삼년 동안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썼느냐......?
사관 예, 폐하.
견훤 장군 신덕은 이틀 후 즉시 구금하여 군령을 위반한 죄로 참형하고 그 당여들을 모두 잡아 국문에 처하라. 써라...
사관 아, 예.. 폐하...
견훤 다 썼느냐...? 다 썼으면 그것을 밀봉하여 군부로 보낼 것이다. 황제의 옥새를 찍어 이틀 후에 아침이 되면 뜯어보고 즉시 시행할 것이며 천하에 반포토록 하라.
사관 예, 폐하.
견훤 자, 되었으면 그만 가 보거라.
사관 예, 폐하.
견훤 대전별감은 그리고 신검이 처소에 전하여 내일 중으로 대전으로 들라고 하여라.
대전내관 예, 폐하.
이들은 그렇게 바쁘게 대전을 벗어난다. 견훤은 중얼거린다.
견훤 이로써 잘 매듭을 지을 것이다.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매듭을 지을 것이야. 금강이다. 금강이의 시대를 열어주는 것이야. 그리고 왕건 아우와 싸우게 할 것이다. 삼한의 모든 것을 백제의 이름으로 다시 세우게 할 것이다. 암....
씬 고려 황궁 외경 (낮)
씬 동 편전
추언규, 왕규를 제외한 모든 신료들이 다 참석해 있다. 신라 사신이 무릎을 꿇고 조아리고 있다. 왕건이 국서를 보고 있다.
왕건 허허, 이런... 이보시오, 사신...?
사신 예, 폐하.
왕건 신라국에서 황제가 쓴 국서가 맞소이까?
사신 그러하옵니다, 폐하.
왕건 나라를 들어 바치겠다...? 이것이 사실이오...?
김행선 폐하, 이것은 신라의 시랑인 김봉휴라는 사람이 사신으로서 들고온 국서이옵니다. 어찌 거짓을 들고 오겠사옵니까?
사신 폐하, 이미 신라는 그 국운이 기울었사옵니다. 스스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어려운 나라를 어찌 국가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아국의 폐하께오서 스스로의 마음을 친필로써 담아 전하라 하시어 이렇게 왔사옵니다. 윤허하시오소서.
김행선 윤허하시오소서, 폐하. 이미 운영할 여력이 없어 바치겠다 하는 나라이옵니다.
복지겸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신라의 왕이 나라를 바치겠다는 것은 진심인 것 같사옵니다.
배현경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유금필 때가 이르렀사옵니다. 신라는 오랫동안 아국의 보호와 지원을 받아 지탱해온 나라이옵니다. 그 마지막 청을 어찌 외면하시옵니까?
박술희 윤허하시오소서, 폐하.
홍유 윤허하시오소서...
윤신달 윤허하시오소서....
모두들 윤허하시오소서.....
왕건은 생각이 많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며 도리질을 한다.
왕건 아니오. 물론 짐이 신라의 어려움을 잘 압니다. 그러나 나라를 들어바치겠다니요...? 아니될 말이올시다. 신라는 천년을 버텨온 나라요. 좀 더 참고 잘 운영해 보라고 하시오.
사신 폐하, 이미 신라는 그 숨줄이 다된지 오래되었사옵니다. 우리 황제폐하의 청을 가납하시오소서.
왕건 아니오. 그것은 도리가 아니오. 한 나라의 국가 사직에 관련된 일이오. 짐은 받을 수가 없소이다. 가서 그리 전하시오.
박술희 어이구... 이거야 원... 폐하, 아 나라를 들어바치겠다는데도 아니 받으시다니요...?
왕건 허허... 그만하지 못할까..? 우리의 이웃이 힘이 없이 나약할 때 그 약함을 틈타 나라를 받는 것은 천하에 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가서 그리 전하오. 열심히 나라를 살려 보라고 말이오.
사신 망극하옵니다, 폐하. 가서 그리 전해올리겠사옵니다. 폐하의 인자하심이 참으로 천하에 빛이 나옵니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우리는 이웃이오. 서로가 도와가며 잘 하십시다. 암요, 그래야지요.
끄덕이는 왕건의 표정에서 신료들은 그러나 모두들 못마땅한 모습들이다. 특히나 박술희의 그 분망같은 헛기침에서....
씬 황후전
오씨와 유씨가 마주해 있다. 상궁들이 서 있다.
유씨 황후마마, 신라의 사신이 나라를 들어바치겠다는 국서를 가지고 왔다고 하옵니다.
오씨 들어서 알고 있네. 하기사 신라는 오래 전부터 그 힘을 잃었네. 우리가 군사를 보내 지켜주고 황실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대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어찌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유씨 그러하옵니다, 마마. 하오나 폐하께오서 한결같이 사양하고 계신다 하옵니다.
오씨 허허허... 당연히 그러하실테지. 하늘이 보고 땅이 보고 천하의 만백성들이 보고 있네. 주겠다하여 덥석 받는다면 그야말로 인군의 도리가 아니시네. 어차피 신라는 오게 되어있어. 그저 몇 번 사양하시다가 모르는 척 받으시는 게지. 아니 그런가..?
유씨 역시 황후마마시옵니다. 과연 듣고보니 그런 것 같사옵니다.
오씨 이웃간에 일도 겸양과 사양이 있는 법인데, 하물며 나라의 일이겠는가? 좀 더 우리는 지켜볼 뿐이지. 문제는 백제가 될 것이야. 경보대사님을 만나러 두 신료가 먼길을 떠났다고 하는데... 그쪽이 어찌되어가는지 모르겠네 그려.
씬 바다
배 위에 왕규와 추언규가 타고 있다.
왕규 허허.. 이 배가 편하긴 편합니다 그려. 육로로 가면 족히 열흘길이 다 될 것인데 배로 가면 이틀이면 족하오이다.
추언규 그러게 말이올시다. 경보대사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참으로 덕이 높은 고승이라 들었소이다.
왕규 그렇습니다. 우리 폐하와 더불어 그 경보대사도 그 유명한 도선대사님의 제자시랍니다. 백제의 왕이 국사로 모신다 하니 그 명망을 알만하지요.
추언규 하지만 말이 백제의 국사이지 한번도 그 절 밖을 나가지 않으셨다 들었습니다마는...
왕규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가서 만나보십시다. 좋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예감입니다. 최응공에게 뭔가 할일이 있어서 백계산에 있는 것이라 하였다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 가서 들어보십시다.
끄덕이는 두 사람의 표정에서...
씬 백계산 옥룡사 외경
씬 동 방안
참선에 들어있는양 가부좌를 튼 채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있는 경보 곁에서 시자가 계속 말하고 있다.
시자 황실에 내분이 심각하다는 소문이 저자거리에 자자하옵니다.
경보 ........... (끄덕인다)
시자 백제의 황제는 등에 종기가 커져서 그 병이 깊어있고 형제들간에는 왕위계승 싸움이 치열하다 하옵니다. (사이) 결국 형제들 중 두 태자가 무주와 강주로 쫓겨갔다 하옵고, 곧 맏이인 신검 태자도 지방으로 갈 것이라 하옵니다.
경보 그래... 많은 것이 변하고 변하여 때가 오고 있음이다. 스승님의 말씀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구나.
시자 도선대사님의 예언 말씀이옵니까?
경보 그렇다.
시자 허면 앞으로 백제는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경보 큰 제방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개미구멍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가화만사성 치국평천하라 하였다.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찌 나라를 운영하겠느냐? 나무관세음보살....
시자 허면 백제가 결국은 잘못되는 것이옵니까? 도선비기에도 그리 나와있사옵니까?
경보 허허허... 네가 도선비기를 다 들먹거리느냐? 내가 그것을 보기까지는 무려 수십 년이 걸렸다. 도선비기는 자연의 이치를 설명한 글이다. 거기에 그렇게 나와 있느니라. 그만 나가보거라.
시자 예, 대사님.
시자가 나가면 경보가 혼자 중얼거린다.
경보 때가 오고 있음이다... 이제 때가 오고 있음이야... 평생 산문 밖에 모르는 이 늙은이에게도 이제 할 일이 생긴 모양이로구나. 나무관세음보살....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견훤이 서성이며 생각이 많다.
견훤 이제 취할 조치는 다 취했다. 하루가 갔고 또 하루가 남았다. 황도에는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질 것이다. 신료들은 귀양을 가고 장수들은 처형될 것이다. 그리고 새 제국이 시작될 것이야. (사이) 허허.. 파진찬 이 사람이 정말 아주 싸매고 들어앉은 모양이로구먼 그래... 처음에는 나를 보고 태자들을 죽이라 하더니만 이번에는 신료들을 달래라 하였어. 이 사람이 그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닌데... 역시 늙은 모양이야. 그래, 어쩌는 수 없지. 오늘 저녁에 신검이를 보고 내일 중으로 다 일을 끝낼 것이야. 암...
씬 신검의 처소
신검과 능환이 마주해 있다. 능애가 옆에서 보고 있다. 박씨가 내린 교지가 탁자에 놓여있다.
능환 태자마마, 보시오소서. 황후마마께서 내리신 교지이옵니다.
능애 황제폐하의 환후가 중하시어 국사를 더 이상 보시기 어려움으로 그 폐하를 요양케 하시고 신검 태자마마로 하여금 보위를 이어 국사를 주관하라 하시는 교지이옵니다.
신검 ...................
능애 보시오소서, 태자마마.
신검 보고 있소이다.
능환 태자마마께서 원하시는 명분이옵니다. 이나마 형식을 갖추었사옵니다. 지존의 자리는 하루도 비워둘 수 없는 법... 하루속히 환후가 중하신 폐하를 쉬게 하시고 막중 국사를 맡으시오소서. 이는 황후마마의 영이시옵니다.
신검 ..................
두 사람 교지를 받으시오소서.
신검 두 분이 가셔서 억지로 받은 교지가 아니겠습니까? 과연 이로써 신료들과 백성이 용납을 하겠습니까?
한참을 보다가 능환이 또 하나의 밀지를 꺼내어 탁자 위에 놓는다.
신검 그건 무엇이오..?
능환 이제 더 이상 백성들과 신료들의 눈치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사옵니다. 대전 내관이 극비리에 전해온 것이옵니다. 소생들은 천리 밖으로 유배를 보내고 신덕 장군과 그 당여들은 군부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참형에 처한다는 밀지이옵니다. 지금 사관들이 가지고 있는데 곧 태자마마를 부르신 이후, 군부로 보내져 행동으로 옮겨질 것이라 하옵니다.
능애 이제 때가 이르른 것이옵니다, 태자마마. 혁명을 선포하시오소서.
신검은 그래도 망설인다.
능환 곧 폐하께서 태자마마를 부르실 것이옵니다. 그 이후, 날이 밝으면 천하가 바뀔 것이옵니다. 속히 결단을 내리시오소서.
그래도 신검은 망설인다.
능환 내일이 되면 장수들은 목이 잘릴 것이고 신료들은 쫓겨날 것이며 태자마마 또한 쫓겨나실 것이옵니다. 그리고 금강 태자마마의 등극식이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씬 황후전
서성거리는 박씨. 이상궁이 계속해 눈치를 보고 있다.
박씨 지금 승주부인이 새로 수리한 별궁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였느냐?
이상궁 예, 황후마마. 이미 금강 태자마마께서 보위에 오르시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시고 스스로를 황태후라 부르신다 하옵니다.
박씨 허, 황태후라....? 이미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졌는데 황태후라...? 아직 그 날은 오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로구나. 딱한일이다. 딱한 일이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하긴 그 어리석은 것이 알기나 하겠느냐....?
씬 신검의 처소
그들이 계속해 서로를 보고 있다. 무서운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능환 대답하시오소서, 태자마마.
능애 이미 많은 장졸들이 그 준비를 마치고 태자마마의 영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황후마마께서도 교지를 내리셨사옵니다.
능환 무주와 강주에도 사람을 보내기로 하였사옵니다. 아마 지금쯤 신덕 장군이 여러 조치를 다 취했을 것이옵니다. 시간이 없사옵니다.
신검은 대답이 여전히 없다. 그때, 집사의 소리가 들려온다.
집사 (소리) 태자마마, 대전에서 내관이 왔사옵니다.
신검 .................?
집사 (소리) 지금 즉시 대전으로 들랍시는 황제폐하의 영이시옵니다.
능환 태자마마를 부르시옵니다. 폐하께서 마지막으로 움직이고 계시는 것이옵니다. 태자마마....
능애 태자마마....
씬 신덕의 처소
신덕과 영순, 상귀, 파달, 상애들이 모여있다.
신덕 지금 이찬어른과 능애 장군이 다시금 태자마마의 처소로 가셨소이다. 설득을 하고 계시는 중이올시다.
영순 대전내관이 폐하께서 사관에게 옥새를 찍어 내린 칙령을 훔쳐 전하였다 들었소이다.
신덕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를 죽이고 귀양보내라는 밀지였다 합니다.
상귀 그렇다면 오늘밤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달 그래야 하옵니다. 더 이상은 감추기도 어렵사옵니다. 이미 많은 군사들이 준비를 끝낸 상황이옵니다.
상애 이 사람이 황궁을 책임지고 있사옵니다. 영만 주시오소서, 장군. 오늘밤이옵니까, 내일이옵니까?
신덕 지켜보십시다. 만 하루가 남았소이다. 지금쯤 우리가 보낸 전령이 무주와 강주에 도착하고 있을 것입니다. 두 분 태자마마의 군대가 황도를 포위하고 우리가 황궁으로 들어간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모두들 끄덕인다. 그 위로 달리는 말발굽 소리....
씬 길 (밤)
두 필의 전령이 속도를 더해 달리고 있다. 그렇게 사라져가면...
씬 다시 신덕의 처소
신덕 우선 소장과 파달 장군, 상귀 장군이 군을 맡게 될 것이오. 상애 장군이 황궁 안에서 내응하게 될 것이오.
그들 예, 장군.
영순 어떻게 하든 이번에 이찬어른께서 신검 태자마마의 허락을 받아 오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죽여야 될 사람도 정확하게 가려 놓아야겠지요.
신덕 물론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파진찬은 폐하의 측근이니 어쩔수 없이 죽게 될 것이고 금강 태자와 그 당여들도 죽게 될 것이오. 폐하는 별처로 모시게 될 것입니다. 박영규 장군과 그 당여들 또한 연금하였다가 추후 결과를 볼 것입니다.
영순 승주 부인은 어찌하실 생각이시오?
신덕 죽여야 마땅하나 폐하께서 불편하심으로 함께 보내어 가두어 놓았으면 합니다.
영순 옳은 말씀이오. 상황이 너무 급박하니 일단 군대는 준비해 두도록 하시구려.
신덕 그리 하십시다.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박영규 장군이 있는 저 병부는 사실 빈집이나 다름없습니다. 일선의 군사들은 제 지휘를 받습니다.
그들의 그런 표정에서...
씬 병부 외경
씬 동 병부 안
박영규가 생각에 잠겨 있다.
박영규 (소리) 모든게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폐하께서는 무리수를 두고 계신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서 금강태자를 앉혀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부담이 큰 일이 아닌가? 군부의 장수들을 죽이고 신료들을 유배보내고... 가능할까...? 이미 모두가 똘똘 뭉쳐서 거대한 힘을 이루고 있는데.. 가능할까...?
씬 금강의 처소 밖
부장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씬 동 처소 안
금강과 고비가 마주해 있다. 고비는 여유가 많다.
고비 곧 이사를 한답니다, 태자. 후원 아늑한 곳에 전각 하나를 새로 수리하고 있답니다. 우리 태자가 황제가 되신다는데 그 어머니 되는 사람이 그만한 전각쯤은 소유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금강 예, 어마마마. 이제 그날이 다 되었사옵니다. 아바마마께서 직접 불러 말씀을 주신 일이고 조정에 모든 힘을 소자와 매부에게 실어주고 계시옵니다. 내일이 되면 폐하께오서 내리신 칙명이 천하를 울릴 것이옵니다.
고비 호호호호.. .그래야지요, 암요, 그래야지요. 하오면 보위에 오르신 이후 그 형님들을 어찌하실 것입니까?
금강 (한숨) 어쨌든 소자가 황제가 된 이후의 일입니다. 천하에 힘을 손에 쥐었는데 은혜를 베풀어야지요.
고비 은혜라니요...? 옥좌를 노리던 무리들입니다. 죽여야합니다. 죽여야합니다.... 살려두면 언젠가 큰 화근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옥좌에 오르는 즉시 모두 참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태자가 당하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죽여야 합니다.
씬 신검의 처소
신검이 생각에 잠겨 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앞에 앉아 있다.
능환 어둠이 내렸사옵니다, 태자마마. 이미 대전별감이 다녀간 지도 한참이 되었사옵니다. 어찌하시겠사옵니까?
능애 어찌하시겠사옵니까, 태자마마....?
능환 밤이 깊어가고 있사옵니다.
신검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뜬다) 그렇소이다. 밤은 깊어가고 폐하께서는 이 몸을 기다리고 계시고 날이 밝으면 수많은 목숨들이 구천을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나도 살아야겠소이다.
두 사람 태자마마..........?
신검 나도 살아있는 목숨이니 더 살고 싶소이다. 그대들의 청을 받겠소이다. 어마마마의 영을 따르겠소이다. 혁명을 하십시다. 혁명입니다. (절규하듯) 아바마마... 왜 이 자식을 불효로 만드시옵니까? 아바마마... 아바마마....
<187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