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회원인 천리안의 모 동호회 익명게시판에서 퍼온 글들 입니다...
무지 긴 글들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러 저러한 해석이 불필요하다는 주장과 그 의견에 반박하는 의견들이 계속된 것들입니다...
그래도 헉스님은 재미있어 하실듯 해서 갈무리 해서 올립니다... 흐흐...
[civil] JSA 그리고 말러 4번
1. 우선 jsa 부터..
요즘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600만돌파라나...
그러나 jsa는 그 시의적절한 인기몰이와는 별도로 작품 자체만으로는 별볼일 없는 작품이다.
왜냐고? 약간 장황한 얘기를 하자면...
서사문학(소설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등 전부)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3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스토리자체로 재미나 감동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스토리엔 구성 등의 요소도 포함된다.
두번째, 스토리와는 전혀 무관한 별개의 메세지가 숨어 있는 경우다. 즉 말하자면 숨어있는 메타언어가 있는 경우다.
셋째로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많은 얘술 장르 중에서 서사예술(혹은 서사문학)은 단계적으로 발견을 통해 새로운 감동의 형식을 추가해 오는데,
원시예술단계를 넘어 처음으로 스토리의 예술성이 추가되었다.
이는 이미 그리스로마시대의 신화에 이미 반영되어 있고, 근대까지 주된 감동의 소스였다고 본다.
그러나 근현대에 와서는 새롭게 숨어있는 메세지를 활용하는 것이 발견된다.
즉 메타언어가 주요한 감동의 소스로 활용되고 있다.
예를들자면, 그리스로마 신화나 중세까지의 영웅담이나 하는 것들, 혹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등의 영화들 이런 것들은 스토리 자체로 자신의 예술성을 찾는다.( 사소한 교훈 등은 메타언어에 속하지 않음. 그리고 신화해석은 작품 자체의 예술과 무관한 것임. )
그러나 오수정, 섬, 혹은 파이트클럽이라는 영화, 또는 오웰의 1984라는 소설,등등, 스토리와 전혀 무관하게 뭔가 말하고자하는 바나, 지적하고싶은 현실의 부조리가 고발되고 있는 것들. 이런 메타언어가 이제는 주요한 예술성확득의 수단이 되고 있고 이는 근현대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jsa 는 아무것도 아니다. 스토리자체도 별볼일 없고(매우 단순하다. 몰래 만나다가 이데올로기때메 결국 쏴죽였네..가 다다. 물론 우리에겐 큰 의미이지만 그건 작품 외적 요소이다.)
숨어있는 메타언어도 없다(통일, 민족화해 등이 있지 않냐 하겠지만 그것은 스토리와 무관한 메타언어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현실이 작품에 부여한 특권에 불과하다. )
즉 그 자체로는 별볼일 없는 작품에 불과하다. (결코 영화 폄하하고자 함이 아님)
마치 사막에 가서 3급수 물을 팔면서 생수의 10배 값을 받는것 같다고나 할까
그 영화가 지금 우리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크지만 결코 그 본체를 과대평가하지는 말자.
2. 말러 4번에 대해......
얼마전에 부천시향이 말러4번을 연주하면서 졸게에도 글이 많이 올라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일단 위에서 말한 맥락에서 연장하여,
음악이라는 장르의 예술은 그 본질상 가장 관념적인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언어와 무관한 형식을 쓰므로....
위에서 말한 감동의 소스들이 전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스토리 라인이니 또는 메타언어가 본질적으로 음악과는 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적' 혹은 '메타언어적' 으로 음악을 이해하려는 '몰상식한' 감상자들을 비판하고자 함이다.
말러4번에 대해, 아이들의 발랄함이 느껴지지만 반복되면서 특유의 암울함이 두드러 진다거나 마지막에 천국의 문이 열리는 장면이라는 둥 말러4번이 세상은 아름답지많은 않다는 걸 말한다느니 헨델과 그레텔의 마녀가 즈은 과자집이라느니 혹은 신학적 해석을 가한다느니 등등의 이해, 해석, 감상론을 나는 비난하고자 한다.
음악의 본질은 음의 고저, 화성, 강약, 멜로디 등등 지극히 언어와 무관한 오히려 자연적 질서에 근접하는, 지극히 관념적인 소스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기가 강해지면 거기에 격렬한 감정을 부여하고, 빠르기가 느리면 완화한 이미지를 부여하고, 자기가 듣기에 음이 불협이면 암울하다고 하나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이해인가!!!
지극히 주관적인 동일시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물며 더 나아가 1시간이 넘는 음과 화성의 집합체에 어찌 언어로 된 줄거리를 부여한단말인가
이는 지극히 인간위주의 어리석은 발상에 지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언어와 부관한 장르를 언어를 통해 이해하려는 우를 범했다.
어떤곳에선 불협인 화성이 어떤 곳에선 어울리는 화성이기도 하다.
어떤 곳에서는 이국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멜로디가
어떤 곳에서는 그냥 자신들의 전통적 가락에 불과하다.
공통의 룰을 적용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 음악의 영역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여기에 주관적인 언어적 의미를 부여하겠느냐.
음악은 단지 음악 그 자체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멜로디라인, 독특한 화성의 전개,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고 '듣기좋으며' '듣기 신기하며' '싫지 않은'
좀 거부감이 들 지언정 음악은 이렇게 그 자체로 그 형식 그대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 이외의 어떤 해석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 작가가 실제로 그런 언어적 내용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을수도 있다
(실제로 19세기이후 많이들 그렇게 한다.)
그건 어쩔수 없다해도 그의 머리에서 나와 작품이 된 이상
절대로 언어의 끼어들기는 금물이다.(구성의 짜임새가 주는 재미도 음악의 요소에 포함된다. 위에서 빼먹어서..)
그런데도 요새는 엉터리 해석을 하면서 기고하여 밥벌이 하는 자들도 많지..후훗..
이 물론 나의 견해이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만,
세상에는 엄연히 진실이 존재하고 있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예술의 감상이라 해도, 지나치게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나만 좋으면 되는거야..식의 감상 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진실이 뭔지 찾으려는 노력은 늘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토론을 통해서도...
civil님 질문 있습니다..
맨끝에 쓰신 '나만 좋으면 되는거야..'식은 안된다고 하셨는데, 그걸 civil님의 의견에 적용할 수 있는지, 안되면 왜 안되고 되면 어떻게 해당안되는지(빠져나간다든지 등)
좀 가르쳐주십시오.
[civil] re:civil님 질문있습니다...
님께서 하시는 말은, 그것 또한 civil 만의 방식이고 나만 좋으면 좋은 것이지라는 말을 벗어날 수 없지 않냐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점은, '좋다'라는 것은 반드시 판단의 기준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말인데, 저는 그 판단의 기준을 옳게 잡아야 한다,
진실과 동떨어진 기준과 방식으로 예술성의 판단이 이루어지면 별루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판단의 기준은 그 장르의 본질과 관련지어 밝힌다음에는,
그 속에서는 이제 자기가 좋으면 좋은 것이 맞겠지요..
위에서 판단의 기준을 판단의 대상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그러니까 제 말은,
사람마다 당연히 다른 취향이 있는 것이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예술의 장르도 본질적으로 자신의 영역이 있는 것이고
즉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랄까 존재형식이랄까 하는 것이 있는 것이고 그 속에선 당연히 다양한 이해나 취향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본질적으로 오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견해(!)
견해는 '나만 좋으면 좋은거지'라는 명제와는 다른 층의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좋다 라는 판단 자체에 대해 논하는 것이니까요.
즉 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가 발한 바는 분명히 '나만 좋으면 좋은 거지'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논의라는 점이지요.
다만, 그런 예술의 본질적 존재형깃이라는 저의 전제가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만이 남아있고
따라서 저는 '진실'을 찾는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은 사람의 취향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판단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음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시를 가져다 놓고서 감상을 하는데,
인쇄된 활자체가 참 이쁘다 라는 기준은 무의미하다는 말입니다.
시의 본질적 존재형식과 무관한 것을 기준으로 감상했기 때문입니다....
답이 되었는지...
서사예술론을 논하신 CIVIL님께..
진실을 찾는 것은 계속되어야 한다..토론을 통해서...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토를 달아봅니다.
서사문학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방법을 세부류로 나누셨죠.
1. 스토리 자체로 감동을 주는 부류
2. 스토리와 무관한 메세지로 감동을 주는 부류(메타언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셨더군요 ^^;)
3. 이도 저도 아닌 부류
이 분류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래서, Civil이라는 감상자는 A를 감상한 후 스토리 자체에서 감동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Tanstris라는 감상자는 A를 감상한 후, 작자의 놀라운 묘사력에 감동을 얻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전혀 감동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자에게 물어봤더니, 작자는 주인공의 영웅담을 근간으로 한 역사의식의 고양을 통해 감동을 주려고 했다고 합니다만, A작품을 읽은 사람들 중 그러한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작품 A는 어떤 부류에 속합니까?
Civil님의 분류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좀 심하게 말하자만 말장난도 안되는 어린애 소꿉장난 같은 분류에 불과합니다.
이런 식의 분류는 하지 마십시오.
두번째, 음악에 대해서..
음악에서 스토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라고 하셨는데.. Civil님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어떤 주장을 알려드리죠.(이건 제 주장은 아닙니다.)
------------------------------------------------
음악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태초에 인간이 어떠한 소리를 삼자에 들려주고자 한다면-소리를 지른다거나, 나무막대기로 돌을 두드린다거나-그것은 삼자에게 어떠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것이다
언어가 발달이 되면서 이러한 '소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자연히 그 비중이 줄어 들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소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꾸준히 시도되어지고 있다. 언어가 발달되면서 '시'라는 장르가 나오게 되었고, 고대 음유시인들은 운율에 맞추어 초기 형태의 하프를 함께 튕기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음악의 시작이라고 보여진다.
즉, 음악은 커뮤니케이션의 또다른 도구로써, 그리이스, 로마 시대 이전-이후부터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작곡자는 여전히 어떠한 멧시지를 음악이라는 도구에 실어 감상자에게 전달한다......(후략)
--------------------------------------------
(참고로 위 주장은 아래에 언급하게 될 표제음악론자들의 주장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라고 하는 것은 사(事)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주장이 옳다면 넓은 의미에서 음악도 서사예술에 포함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제 생각을 말씀드리도록 하죠.
오래전부터 음악계에서는 '절대음악 표제음악 논쟁'이라는 것이 있어왔습니다.
그 논쟁의 본질은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근거합니다.
civil님이 주장하신 내용은 다소 절대음악론자들의 주장과 비슷합니다만, 절대음악론자들의 주장이 결코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들의 음악에 멧시지와 스토리를 실어 왔고, 그러한 시도는 civil님께서 말씀하신 19세기 이후부터가 아니라 훨씬 더 오래전부터 그러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가사가 담긴 음악들이 멧시지와 스토리를 싣고 있는 서사예술의 부류에 속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고, 가사가 없는 음악들의 상당한 부분 역시 분명히 멧시지와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써 비발디의 '사계',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음악들의 특징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제목'이나 '표제'들을 달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제목을 달고 있지 않은 음악들 중에서도 분명히 멧시지와 스토리를 담고 있는 음악들도 있습니다.
베토벤 심포니 5번도 제목은 없지만(제목이 '운명'이 아니냐라고 되물어 보신다면 전 무지하게 화낼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멧시지와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다시 절대음악 표제음악 논쟁으로 돌아가서, 절대음악론자들의 주장과 civil님의 주장은 유사한 점이 많지만 분명히 다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절대음악론자들(브람스, 요아힘 등)의 주장은 음악의 본질은 음악 그 자체의 형식과 구조에 있으므로 앞으로 그렇게 나아가야한다는 것이지, 표제음악의 존재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Civil님 주장의 모순은 여기서 드러납니다. 음악의 본질은 이러이러한 것이니 스토리라든지 그런 것을 찾으면 안된다..라고 말씀을 하심으로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표제음악의 존재를 부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는 다시 19세기 이후에는 그런 의도로 쓰여진 음악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주장의 핵심이 뭡니까?
이러한 주장을 하실 때에는 조금 더 고민을 해보시고 글을 쓰시는 편이(사실 저도 글쓸 때 가끔씩은 깊은 생각을 하지않고 글을 쓸 때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자신의 체면을 덜 구기는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됩니다.
TANTRIS
[civil] tristan 님의 반박에 대한 답변
님의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의 주장이 정확히 전달되지 못한 듯 해서 답변을 올립니다.
우선 님이 말씀하신 그 a라는 작품에 대해서 보자면....
일단 누구는 스토리에서 감동받지만 누구는 안받았다,
등의 말을 하기 시작하면 사실 논의가 힘들어 지지요.
어차피 예술에 대해 서는 일반적인 원칙이 없기 때문에
다분히 공통의 전제를 달아야만 하지요...우리는 여기서
보통 혹은 일반적으로 감동을 준다고 동의되는' 이라는 정도밖에는 전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묘사라는 부분에서 감동을 받으면 안되는 것이냐 하셨는데....
묘사라는 것은 시, 신문기사, 그림 등 다른 영역에서도 많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론 서사예술에서 그런 요소가 '무의미하다'라는 건 아니죠
다만 서사예술만이 가지는,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고유한 속성은 제가 말한 스토리, 메타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내린 분류입니다.
a라는 작품이 일반적으로 스토리의 예술성이 인정되면서
(일반적이라는 말의 사용이 불가피하느 이해해 주시길)
그 외에 묘사의 뛰어남도 있을수 있는 건 당연하죠. 다만
서사예술을 그 감동의 소스로 분류하기에 묘사 보다는
고유한 속성들이 저에겐 더 적정한 기준으로 여겨진 겁니다.
a라는 작품이 '일반적으로' 혹은 '어떤이에게' 묘사의 뛰어남 말고 다른 건 없지만 그래도 참 감동적인 묘사라 한다면
저는 감히 그 작품은 서사예술로서 흠결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님의 태도는 어쩌면 예술의 고유한 존재형식도 평가의 부분에서 무시해도 된다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의 분류가 그리 유치뽄작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님이야 말로 자신만의 주관을 강요하고 있는 면이 강합니다.
근거를 좀 대 보세요.........
그리고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에 대해서 보자면,
님의 주장은 사실 아무 내용이 없습디다.
무턱대고 '메세지 전달하는 음악이 많은데 왜 무시하느냐'
인데 저는 음악이 본질적으로 메세지와 멀 수 밖에 없다는
근거를 대면서(언어로 환원되기 어려운 요소들을 들었습니다) 음악은 메세지와 본질적으로 먼 것이고 메세지를 담으려는 시도나 메세지를 읽으려는 시도는 무의미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님은 그냥 '메세지 담은 음악이 많다, 표제음악가들이 쭉 그렬려고 해왔는데 왜 무시하느냐' 라는 논리밖에 없군요.
저는 그런 시도들을 무의미하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세지 담을려고 애쓰지만 사실 그것이 전달될 수 없고 그것은 음악의 본질상 그렇다며 저 나름의 이유를 댔습니다.
저의 이유부분을 비판해서 저를 논파해 보십시오.
님의 글에는 그러한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저의 주장이 모순이라고 하면서, '무의미하다고 말하면서 이미 19세기부터 있어왔다'라는 것이 모순이라는데, 그게 어떻게 모순입니까.
그런 현상들이 있지만 사실 무의미한 것이니 그러지 말고
진실을 찾아가자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모순이 전혀 아니지요.
현상과 주장은 같은 차원의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다시한번 님의 답변을 듣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참 그리고 요즘은 왜 tristan 이라 안하고
tantris 라고 하시는지....
아마도 요즘의 님의 생각이 반영된 듯 하군요.
이만.
[civil] 참 그리고 가사달린 음악에 대해서(밑에서 빼먹어서)
그 때엔 그 가사와 음악을 함부로 연관짓지 마십시오
가사 따로, 음악 따로입니다. 물론 둘이 합쳐져서 승승효과를 주지만, 그 가사라는 부분이 음악의 본질에 끼어들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때 가사는 언어로 그냥 이해할 뿐이고
음악의 요소는 그대로 그냥 받아들 일 뿐입니다.
둘의 결합은 참으로 좋은 '아이디어'지요
하지만 전 음악부분마저 언어로 이해하지 말라는 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페라 같은 곳에서 특히 바그너가 많이 그러듯이 각 인물마다 고유한 테마의 음악들이 부여되어 있고 이를 뭐라하더나 무슨 모티브라 하는 것 같던데...
이처럼 둘을 적절히 잘 활용하는 건 당연히 그 예술성을 더 높혀줍니다.
제 말은 다만, 그 선율이나 화성 등에서 '직접' 어떤 언어를 끌어내는 것은 무리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특히 가사와 무관한 음악에서 더 중요한 지적이겠지요...
civil의 논쟁에 끼여들기 기
tantris님의 반박글과 그에 대한 재 반박 글을 먼저 읽었습니다.
civil의 원래 글은 한참을 찾았네요. --;; 재미있는 분이던데 ^^
civil더러 재수없다고 한 글도 있던데, 이유를 전혀 모르시더라구요..
머 재수없다고까지 할 것은 없습니다만, 님께서 지나치게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다는 생각은 좀 듭니다.. 이것저것 지식을 쌓는 데도 열심이고, 생각을 깊게 하려구 노력도 하는 듯 합니다만, 그 결과로 자신이 사고와 세계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jsa에 대한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다시 한번 직접 읽어 보심이 어떨까 싶네요.
님의 주장을 - 님께서 하신 것처럼 한마디로 확 줄이자면, 앞의 것은 서사문학은 스토리나 메타언어(이 단어는 썩 맘에 들지 않습니다만)로 감동을 주어야지 그게 아니면 3류다, 뒤의 것은 음악은 언어로 이해될 수 없으므로 음악을 언어로 해석하면 바보같은 짓이다.. 이 정도일 것 같네요.
머 오해라고 하실 지 모르겠지만 - tristan님의 이해도 저는 적절해 보였습니다마는 오해하고 하셨더군요 - 통상적인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앞의 것을 먼저 이야기합시다.
아니 함께 이야기해도 좋을 듯 합니다.
님께서는 문학과 예술이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를 너무 무시하는 듯 합니다. 말하자면, 문학이든 음악이든 사회에 발표되어서 타인에 의해 감상될 때에는 그것은 이미 커뮤니케이션이지요. 무언가를 던지고, 무언가를 받는..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작가의 의도와 절연된다는 것도 그러한 전제 하에서 가능한 말이구요.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작품에게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을 그 무엇을 통해 감동을 얻는냐는 것이 그 작품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은 정말 당황스런 분류이지요.
님께서 폄하하신(제가 보기에 그건 폄하였습니다) jsa 같은 경우에, 님은 특권이라고 하셨지만 감상하는 우리에게, 현실과 결부되어 주는 그 특별한 감동과 메세지는 결코 3류라고 할 수 없죠. 우리의 현실에서 만들어지고, 우리의 현실에서 감상되는 작품을 그거 빼면 시체다 하는 것이 비판입니까.
음악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본질적으로 음악과 언어를 동치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음악을 그저 '듣기 좋은 것' '편안한 것' 따위의 느낌만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음악을 들으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그림들, 이미지들.. 그런 것들은 다시 언어로 풀어질 수 밖에 없지요. 음악을 해석하면서 특정 해석을 절대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겠지만, 음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을 배제하자는
주장 역시 그 음악의 가치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게 아닐까요.
사실 반박문과 재반박문을 먼저 읽은 터라 상당히 그럴 듯한 주장이 펼쳐졌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님의 원래 주장은 다소 당황스런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제 글에서 긴장이 다소 풀린 듯 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제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님의 주장을 좀 더 정제헤서 세련되게 펼쳐주심이 어떨까요. 좀 더 긴장된 글로 토론하자구요.
[civil]re: civil논쟁에 끼어들기
하하 오느 통신 넘 자주하게 되네요...그래도 기쁩니다
제가 저의 논리가 지나치게 원칙론적이라는 것을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런걸 생각해 보죠. 예술이 사회에 주는 영향으 말하셨는데, (지금부터는 가치평가적인 말을 남발할렵니다. 예술을 말하자면 불가피하네요)
어떤 코메디는 무척 웃기고 재미있는데 다들 3류라고 하더라. 만화책 넘넘 잼있고 좋은데 예술이라고까지는 않더라.
핑클, 에쵸티는 팬드 진짜 많지만 보통 음악은 큰가치 인정못받는다(3류락 하고싶지만..조심스러워 지넹^^)
어떤 작품은 그 가치에 대해 범작이니 걸작이니 논쟁이 많더라.(에궁 자판이 이상해서 계속 오타...죄송)
북한의 인민선동적 작품을 우리는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등등....사회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도저히 우리는 예술에 대해 어떤 평가나 결론도 하기 힘들어 집니다.
사회적으로, 그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점에서 좋아하더라, 이러이런 거 감동적이라 하더라, 뭐 어떻더라 ...그리고 사실 실제로도 이럴 때에는 그 개개인의 가슴속에 '뭉클한 감동' 이라는 교감이 생긴것 전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예술성'이라는 데 대해 생각하자면...
우리는 정말 난감해 지는 것입니다...너무나 다양한 기호들이 있으니까요..
따라서 다소 지나치세 원칙론적이고 현실을 도외시하는 면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제가 세운 그러한 '원론적인' 평가도 의미있고, 어쩌면 좀더 논리적인 비평을 하자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르겠지요.
님들의 지적 많이 인정합니다. 다들 일리가 있습니다.
예술의 분야가 워낙에 막연한지라...
사실 지금까지의 미학이나 예술론이나 비평들도 엄정한 작업이었다기보단 특수 계층이나 어떤 개인적인 기준으로 너무나 주관적인 면에 치우친 것이 사실아닙니까.
이런 것이 제가 보기엔 원칙론을 너무 밀쳐버려서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현상학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 자체로!라는 것은 위에게 중요한 어떤 보편적 원칙을 보여줄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다양한 문화상품들 남들과 똑같이 즐기고, jsa봤을때는 마지막에 눈물도 찔끔 납디다. 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저는 저의 그런 다소 황당하기까지한 원칙론이 전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지적이 중요한 것이라 믿습니다.
팜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 자연히 어떤 이미지나 감정이 떠오른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저의 원칙론을 대어 말하자면( 좀 부담이 되네요..^^)
그것은 우리 인류가 수백년간 그런식의 이해방식에서 살아왔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들을 너무나 많이 접하면서 '사회화' 된 것이겠지요....
웃기는 비유일 지 몰라도 늑대소년은 그렇게 생각안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
앞에서 영화얘기 한 말이지만, 우리의 의식은 얼마나 조종당하기 쉬운 것입내까!
전 그걸 우리에게 주입된 어떤 방식이라고 감히 봅니다.
결코 본래부터 그런것은 아니었다는 거죠.
더 나아가서 오히려 '본질' 과 거리가 먼 오해일 수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저는 싸이코도 아니고 고집불통도 아니고,
다만 원칙론, 본질, 진실 따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이상주의자라고 해야되나...
하여튼요...
음 요즘 통신도 넘 많이 하게 되고 공부도 잘 안되고 (딴생각낫요^^) 그래도 익게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참 익게이쓰는 이유는요, 실명이 나타나는 게시판에서는,
행여라도 아는 사람끼리는 맘놓고 자유롭게 반박하기 어렵다는 게 큰 이유입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이 제가 쓴 글에 대해 그리 자유롭게 저를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저라도 어려울꺼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