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의 추억
"짜장면"은 누가 뭐래도 인천이 고향이다.
1833년 인천이 개항(開港) 되면서 "청국지계(淸國之界)"가 설정되고,
청인(淸人)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특히 중국 산동(山東)지방 노동자들이 인천으로 흘러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들은 인천에 살면서도 고향에서처럼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 야식(夜食)으로 즐겨먹곤 했다
그러던 중 1920년부터 인천항을 통한 무역이 성행하면서
중국무역상들을 대상으로 중국음식점들이 많이 생겨났다.
중국의 대중음식을 처음 대하게 된 조선인들은 "신기한 맛'과 "저렴한 가격"에 놀랬다고 한다.
이렇게 청인들의 "청요리(淸料理)"가 인기를 끌자 부두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기존의 "짜장면"에 야채와 고기를 넣어 입맛에 맞는 "짜장면"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나중에....춘장에 "캐러멜"을 섞어 달여서 고소하고 맛있는 "짜장면'이 탄생되었는데...
"짜장면"은 6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고급음식중 하나였다.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태어나자마자 서울로 올라온 우리 가족이 자리잡은 곳은 중구 남산동이다.
지금 숭의여고근처의 한옥이었다. 남산동에서만 거의 20년을 살았다.
60년대 초반 명동입구인 우리동네에는 중국집이 두군데 있었다. 로타리근처의 "동화루"와 "공화루"였다.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오장동의 함흥냉면집과 더불어 내어린시절의 추억이 시작된 곳들이다.
당시 오장동 함흥냉면집도 그야말로 오리지날이었는데....아버지 손에 이끌려 점심식사하러 갓던 그집은
입구에 방하나와 벽에 붙어있던 좁은 계단을 타고 겨우 올라가면 있던 이층의 작은 공부방이 전부였던
냉면집이었었다. 왠 냉면이야기....?
46세의 연세에 6남매중 막내를 본 아버지는 무척이나 기쁘셨던지...외출할 때마다 내손을 이끌고
다니셨다...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동네의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을 한그릇씩 먹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버지 안계실 때는 이번에는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외출하셨다. 역시나 돌아올 때는
다시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그릇...... 참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절대로 부모님 두분과 함께 중국집에 가서
식사를 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집 짜장면이 가족의 화제로 오른 적도 없었다.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켜 본 적도 없었다.
하여튼 나는 아버님과 어머님을 번갈아가며...짜장면은 싫컷 먹었다.
난생 처음 중학교 입학시험 일차에서 떨어지고 풀죽어 지내는 아들을 이끌고 어머니가 가셨던 곳도
중국집이었다. 거기서 탕수육과 한그릇의 짜장면을 입에 넣으면서 "분해서....울고...."
"맛잇어서....웃고..." 하던 곳.......
중학교시절 운동부에서 탈퇴하면서 야구방망이로 30대를 맞고 ...엉금엉금 기어서 친구들 어깨에 매달려
찾아간 곳도 학교근처의 중국집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전...친구들과 찾아간 낙원동 중국집 이층방은 바로...."빽알과...탕수육과...짜장면...과...
담배 한개피"로 마이가리 성인식을 하던 곳이었다.
친구넘들중에서는 중국집 방에서 첫키스를 경험한 넘들도 많았던 모양이던데....주변머리 없는 넘은
짜장면 먹은 기억밖에 없다.
고某 후배는 내가 짜장을 비비기도 전에 다먹더구먼.....그"건강"하며....그"먹는 복"하며.....
그야말로 "축복"이다. 짜장면 곱배기를 비벼서 젓가락으로 네등분을 한후....한입씩...
"짜장면"은 발음 비슷한 중국 베이징부근의 요리인 "차오장면"이나 "차오지앙미엔"과는 전혀 별개의 음식이다.
달군 냄비에 약간의 기름을 두른 후, 잘 갈아둔 돼지고기와 파, 생강, 양파, 마늘 다진 것을 넣고
볶다가 춘장과 술과 수프를 넣고 잘 개어서 춘장이 2배정도 묽어질 때까지 끓이고,
고명으로는 오이채, 달걀지단, 삶은 새우, 죽순채 볶은 것들을 넣는다.
그러나 솔직히 이렇게 기막힌 음식이 정확히 언제 누구의 손에서 처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처음 "짜장면"이라는 음식이름을 내걸고 팔기 시작한 것은 1905년에 개업한 "공화춘"이다.
일제시대 내내 고급 청요리로 이름을 날리던 중국음식점이었다. "공화춘"이 성공을 하자.....
화교유지들이 인근에 잇던 "대불호텔"을 사들여서는 북경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중화루"를 열었다.
이 "중화루'의 주방장이 북경에서 건너 온 一級 주방장 "周사부"로 국내최초의 중국 전통북경요리를
맛보기 위해 창아 온 전국의 미식가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중화루"의 마지막 요리사를 할아버지로 두었던 "손덕준"씨가 "자금성"에서 만들어 낸
"향토짜장면"은 솜씨가 가히 국보급 짜장이었다.
"향토짜장면"의 백미는 손덕준씨가 직접 만든 "춘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춘장을 1년간 숙성시킨 후 일반 시판용 춘장과 섞어, 자신만의 춘장을 만들어 냈는데...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던 모양이다.
또한 그는 일반 짜장면들은 재료를 거의 다지 듯 토막내어 지어넣는 바람에 면을 다 먹은 후에
소스나 재료가 그대로 남게 되는 불편이 있었는데..."향토 짜장면"은 재료를 채를 썰 듯하여
젓가락질이 아주 쉬워 그릇을 깨끗이 비우기가 아주 용이했다고 한다.
"짜장면"은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자장면"으로 표기되어 있고....한자로는 "작醬麵"으로 쓰는데...
"작"자는 "터질 작"자를 쓰며, "장(醬)"은 젓갈 장이다.
"터질 작"자는 "불에 튀긴다"는 뜻인데, 정확한 의미는 장맛이 입속에서 폭발하듯이
미각을 돋군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있다. "장(醬)"은 된장등의 발효식품류를 말한다.
"짜장면"을 국어대사전처럼 "자장면"으로 읽으면 정말 무슨 맛인지 모르게 되버리고 만다.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한 2분정도 지나야 그게 "짜장면"을 이야기하는구나하고 감이 들 정도다.
"짜장면"하고 강하게 앞에 액센트를 주어 불러야 그강렬한 맛이 입속에서 확 퍼지면서....
엔돌핀 효과를 한꺼번에 한 100배는 끌어올려준다.
한때 IMF때를 비롯해서 국민경제가 곤두박질할 때마다.....서민들 주머니 사정생각해서
스스로 가격이 2, 000원도 떨어지고....그래도 안되겟다싶으면....한그릇에 1, 000원도 받기도 했던
"짜장면"이다.....어느 음식도 이렇게 가격이 서민 주머니 사정에 따라 오르내렸던 음식이 있엇던가....?
아무리 달래기 어려운 아이들도 "짜장면 "한그릇이면 울음을 "뚝!"그친다.....0.5초나 걸리나....
어느 중국집 주방장을 겸하는 사장님은 한달에 두번 쉰다... 쉬는 날이면 "짜장면"재료 잔뜩 준비하고
시골 한적한 곳에 방치된 불우이웃들을 찾아 다니며 "짜장면"을 대접한다.
그한릇 한그릇 속에 맺혀있는 그분의 땀과 사랑의 깊이는 너무도 깊다. 있는 사람들 부끄럽게 하는
"짜장면"한그릇이다.
대한민국 최남단인 "마라도"에 가면 그작은 섬에 "짜장면"집이 6곳 있단다.
거기서도 또 원조가 있는 모양인데...."원조 마라도 해물짜장면집"이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아직 "마라도"도 못가보았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마라도의 "원조 짜장면"집을 한번 꼭 가보라고 한다. 왜 그곳이 원조인지를..그냥 "먹어보면 안다고 한다"
언제나 가보나....서울에 분점 안차리나 모르겠다.
역시 "짜장면"의 맛은 "춘장(春醬)"이 결정한다. 이"짜장면"용 춘장은 중국요리에 쓰이기는 하지만.....
정작 중국에 가면 없다고 한다.중국의 "장(醬)"이 한국에서 독창적으로 진화해서 돌연변이 된 것이다.
그러니 "한국"이 국적이 된 셈이다.
"춘장"은 밀가루와 소금으로 발효시키고, 삶은 대두(大豆)를 섞어서 만드는 중국식 된장인데....
이를 "첨면장(甛麵醬)"이라 하고, 한국의 춘장은 여기에다가 캐러멜을 석어서 색을 검게 만든 것이다.
"첨면장"은 발효가 진행하면 할수록 색이 진해진다.
"첨면장'에 캐러멜을 섞어 처음으로 한국식 춘장을 만든 분은 화교 "왕송산"씨인데 1948년이었다.
시중에 판매된 브랜드는 "사자표"였다.
중국 춘장과 한국 춘장의 결정적 맛의 차이는 우리 춘장이 단맛이 더 강하고, 춘장 특유의
고소한 맛도 훨씬 강하다.
"짜장면"의 종류는 "짜장면"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하다.
채소와 야채등 재료들을 면발처럼 길쭉길죽하게 썰어서 남기지않고 먹기 쉽게 만들어 납작한 접시에
담아내는 일명 "알뜰짜장"이라 불리우는 "유슬짜장" (향토짜장면)이 있나하면.....
고기를 잘근잘근 갈아넣어 고기맛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유니", "유미"라고도 불리우는 "유모짜장"...
춘장에 물과 전분을 넣지않고 그냥 기름에 볶기만 한 "간짜장"....더 기름지고....면이 따로 나온다.
새우, 갑오징어, 해산을 넣어 만든 고급으로 일명 "해물짜장'이라고도 불리우는 "삼선짜장".....
짜장 볶을 때, 고추기름을 넣어 매운 맛을 확 돋꾸운 "사천짜장".....
내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오피시아빌딩 뒷골목에 있는 중국집은 "낙지짜장"이 유명하다.
사무실빌딩 지하와 뒷골목에 중국집이 두군데인데..둘다 수십년된 가게들이다.
한마디로 점심시간마다 미어터진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일식집에서는 오히려 보기 힘들고 중국집에서만 볼 수 있는 "단무지".
"단무지"나 "양파"없으면"짜장면"의 맛은 반감한다.
일본식 이름으로 "다꾸앙(澤庵)"이다. 300년전 일본스님이름이다.
어느 영주가 다꾸앙스님이 있던 동해사(東海寺)를 찾았다가 함께 공양을 했는데.음식 귀한 시절에
선사가 내놓은 것이 "밤과 단무지"였다. 영주가 단무지를 맛보고 그맛에 감탄하여 일반 주민들도
먹을 수 있게 전파시킨 것이라고 한다.
무를 쌀겨와 소금에 절여서 만든 것으로 전쟁이 많은 당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이
"오이기리"라고 하는 오늘 날 삼각김밥의 원형인 주먹밥을 만들면서 단무지도 함께 가져가게 되면서
일본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국민의 애환이 깊이 스며있는 "짜장면"
갑자기 10여년전 미국 어바인에 있던 화교가 하던 "중국집"이 생각나네..
우리가 가면 너무도 반가워하던 아저씨....광주가 고향이라던 중국화교부부.
저녁에 가면...15년 묵힌 술과 함께 내오던 "짜장면"과 "짬뽕국물"..
일년열두달 쉬는 날 하루없어 결국 가게 문을 닫던 아저씨..보통시켜도 "곱배기"주던 ..
|
첫댓글 근년 짜장면 원조로 알고 많이 찾는 인천의 '공화춘'을 몇차례 찾았지만..
소문으로는 원래 주인으로부터 상호만 빌린 사람이 운영하는 집이라 하며, 인파가 밀리니 오래 기다리고 당연히 서비스는 문제점..
바로 옆의 다른 집을 찾았더니 맛과 시설은 그런대로 좋은듯 했는데, 벽에 걸린 방문 유지(인사)들의 면면이 '친북'일색이라서 영 ~(2010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