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글이니, 나중에라도 한번은 읽어봐주세요. 대주제 아래 하나의 단락을 분리한거라, 이해와 집중을 위해서 더는 나눌 수가 없었어요ㅠㅠ
좌파들은 365일 24시간, 잠시의 멈춤도 없이 선동을 유지해야만 정치적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있어요. 허구와 날조라는 실체도 그러하지만 스스로의 뿌리를 잘 알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북한을 마주한 자유대한민국에선 도저히 공존이 불가능한 사상과 이념을 지녔으니까요.
오늘 날, 좌파들이 활개를 치는 것에는 보수 정당의 수수방관과 좌클릭이 큰 몫을 차지하지만, 필요할 때만 결집하는 우파 국민들의 무관심도 적지 않은 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임기 중 북한인권법을 막은게 가장 잘한 일" 박지원의 말을 곰곰히 되새겨보세요. 그리고 이런 사람이 야권의 거물로 여전히 자유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기생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세요.
긴 세월, 꾸준한 선동의 결과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 느껴지시죠?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연탄봉사하고 사우나간 김진태의원을 미친듯이 까잖아요? 하지만 그런 시위로 부상당한 경찰의 안위는 누구도 돌아보지 않아요. 더 심각한건 이걸 문제삼는 사람도 없다는거에요.
좌파의 선동을 끝내야할 때가 왔어요. 그러기 위해선 저들의 뿌리를 걷어내야해요.
오늘부터 다른 포스팅은 잠시 접어두고, 주사파에 대해서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해당 자료들은 관련기사와, 국회도서관의 추천 참고문헌 등과 제가 인지하고 있는 여러가지 것들을 취합해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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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전원 모이셨습니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께서 교시하신 주체의 당 창건 방침을 받들고, 그 사이 동지들께서 필사의 노력으로 분투하신 결과 오늘로써 우리는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의 결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당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혁명의 전위당인 만큼 당원과 각계의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으로 결속해야 할 것이라는 정치활동의 목표로부터 출발해 우리 당 기관지를 [혁명전선]이라고 하면 어떤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 힘 있는 정치선전수단으로 보다 많은 김일성주의자를 육성하고 각계각층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 통일혁명의 깃발 아래 강고하게 결집시키도록 합시다."
- 67년 발간된 통혁당의 불법기관지 "혁명전선" 중에서.
#. 1 61년 직파간첩인 김수영에게 포섭되어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전남 무안 출신의 최영도라는 사람이있습니다. 어업과 농업을 겸해 살던 사람인데요.
김수영으로부터 받아들인 사상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당시 사회 엘리트층이던 김종태를 다시 포섭하게 됩니다. 이후, 김질락, 이문규, 신영복, 박성준 등이 차례로 포섭되고 이들은 남로당의 부활을 꿈꾸며 '통일혁명당'을 만들게 됩니다.
우리가 자주 들어왔던 '통혁당'입니다.
#. 2 이 중, 김종태는 '통혁당'의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게 됩니다. 서울시당... 무려 서울시당입니다. 이게 뭘 뜻 할까요? 단순히 치기어린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규모와 체계를 갖췄다라는 뜻입니다.
'통혁당'을 통해서 우리는 익숙한 조직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요. 김질락, 신영복이 주도한 '민족해방전선', 이문규가 주도한 '조국해방전선'이 하부조직으로 있었어요. 이외에도 조금은 생소할 '새문화연구회, 청맥회, 동학회'등의 소모임이 있었어요.
확장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서두에 인용한 '혁명전선'과 '청맥'이라는 기관지를 만들어 젊은층에게 반정부 사상을 주입하는 공작도 벌였습니다. 말 문이 막히는게 있는데 이 '청맥'이라는 것은 합법적인 대중잡지였다는거에요.
#. 3 당시 통혁당의 당수로 볼 수 있는 김종태는 북한의 '대남사업총국장'인 허봉학으로 부터 7만달러, 50만엔, 3천만원의 공작금을 지원 받으면서 하수인 노릇을 합니다.
#. 4 한가지 상기해 볼 것이 있는데요. 과거 김일성이 6.25를 계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남한의 추종 세력이 봉기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리고 4.19의 찬스를 아쉬워했다는 김일성의 회고를 감안해보면, 북한은 우리나라의 내란을 지속적으로 유도하여 봉기가 극에 달할 때, 남침을 시도하려 했다라는 것을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선전선동술을 이용한 남남갈등의 야기는 오늘 날 까지 당연히 이어지고 있어요. 우리는 언론과 촛불 속에 숨은 횃불을 통하여 체험하고 있는 중이구요.
#. 5 통혁당 자체가 이러한 북한의 전략 속에서 계획되어지고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늘 날, 통혁당이라는 간첩 조직의 명칭은 우리 국민에게 손가락 질을 받지만, 통혁당에 가담하여 반란을 꿈꿔왔던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포장되고 미화되어 거부감 없이 대중에게 거론 되는 걸 보면, 지금의 적화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통혁당을 조직하려 했던 이유는, 4.19 당시 혁명을 주도할 세력이 없어서 체제전복에 실패했다라는 경험에서 비롯 되었어요.
그래서 지식인층을 포섭하여 소위 '남조선혁명론'을 퍼트립니다. 이렇게 세를 확보한 지하조직은 64년 3월 '통일혁멱당 창당준비위원회'를 조직하면서 대단히 위협적인 체제전복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하부조직과 여러 소모임, 기관지 등을 활용해서 어마어마한 선동과 반정부 활동을 했겠죠?
통혁당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사파 조직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조직에 참여하는 절대 다수가 조직의 실체, 북한과의 연계, 심지어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름 조차도 모른다는 점이에요. 그만큼 실체확인과 검거에 어려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검거하여 때려 죽인다 해도 자백할 것이 없으니... 핵심 가담자를 직접 검거하지 않는 이상엔 전체를 도려낼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굵직 굵직한 지하조직과 간첩사건들을 밝혀내며 지금까지 나라를 지켜왔다는 것은, 정말 하늘이 도운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물론, 일XX, 왕XX 등의 간첩사건과 한XX이라는 신비의 조직 등은 여전히 커다란 숙제로 남아있긴 합니다.
#. 6 미소의 대리 경쟁에 내 몰렸던 우리나라와 북한의 치열한 체제 싸움으로 인하여 철두철미한 대북감시 체계를 유지해 온 것이, 통혁당의 실체를 밝혀내는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68년 8월, 접선을 위해서 내려온 북한의 공작선을 나포하면서 통혁당의 실체를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김종태가 4차례에 걸쳐 북괴 김일성과 면담하고 '통일혁명당'을 결성하여 혁신정당으로 위장한 뒤 합법화하여 반정부 및 반미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 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 - 당시 중정부장 김형욱 -
'혁신정당으로 위장하여 합법화..'라는 대목이 눈에 확 들어오죠? 지금까지도 실천적으로 이어져오고 있겠죠? 대단히 위험한 것이고, 안보관을 신뢰할 수 없는 정권이 들어서서는 안되는 이유도 보이시죠?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야권은 인정할 수 없는거에요. '설마.."라는건 너무나도 교만한 방심입니다. 구시대적, 시대착오적 등의 말 장난으로 현실을 감추려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논쟁을 통하여 바로 잡아줘야 합니다.
#. 7 통혁당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김종태를 포함한 158명이 검거되었습니다. 이후 김종태를 포함한 주요 가담자들은 대부분 사형되었고, 김제동이 존경한다는 신영복은 전향서를 쓰고나서야 약 20년 뒤 가석방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 외 일부도 감형으로 출소하게 되구요.
김종태가 구속 되었을 때, 북한은 753부대 소속 공작선을 보내서 구출을 시도하기도 했어요. 68년 8월 20일, 14명의 무장공비가 제주도에 상륙을 시도했지만 12명을 사살하고 2명은 생포함으로써 다행히 저지됩니다. 통혁당에 대한 북한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보이시죠?
69년, 김종태의 사형이 집행되었는데요. 북한은 김종태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대규모 추모 집회를 열기도 했어요.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 '김종태사범대학'이 북한에 있는 걸 보면, 김종태의 사형을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또 얼마나 체제전복에 대한 기대가 컸는지를 마찬가지로 엿 볼 수 있어요.
#. 8 들어보셨을, '한국민족민주전선', '구국의소리'등으로 통혁당 재건을 꿈꾸는 세력도 있었지만 '구국의의소리'는 2003년에 중단되었고, '한국민족민주전선'은 현재까지도 실체가 명확하지 않아요. 당장 NL 계열 내부에서도 설왕설래하거든요.
#. 9 통혁당 검거 후 압수목록을 보면 정신이 멍해져요.
무장공작선 1척, 고무보트 1척, 무전기 7대, 기관단총 12정, 수류탄 7개, 무반동총 1정, 권총 7정, 실탄 140발, 고사총 1정, 중기관총 1정, 레이더 1대, 라디오수신기 6대, 그리고 미화 3만여 달러, 한화 73만원 등 입니다.
과연 이석기의 RO가 저들의 주장처럼 허상이기만 한 것일까요?
통혁당을 말할 때 반드시 인지하고 넘어가야 할 사람들이 있어요.
#. 신영복 노회찬이 "마음으로 모시는 스승"이라는 신영복입니다. 모 소주 상표의 원저작자로도 알려져있어요 . 통혁당 검거 당시 무려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생도들을 가르치던 사람이었구요. 출소 후에도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끔찍하네요.
신영복을 통한 좌파 인사를 보자면 김제동, 윤XX, 탁XX 등이 있어요. 신영복이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두고 유시민은 "나와 이웃의 관계를 성찰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책"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죠? 신영복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젊은층에선 국사독재시절 용공 조작의 희생양 정도로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저들의 선동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예를들자면, 명백한 공산화시도였던 '학림,부림' 사건을, 영화 '변호인'을 통하여 용공 조작 사건으로 미화 시키는 행태와 같은 거에요.
신영복은 김일성 사상의 전파자입니다. 그렇기에 절대 존경받는 지성이 되어선 안되요.
학생 운동에 몰두하던 시절에 학교 선배인 김질락 등에 의해서 통혁당에 참여하고 핵심 인사로 자리잡게 됩니다.
합법 대중지인 '청맥'을 통하여 주로 활동했지만, 실은 불법 기관지인 '혁명전선'에도 깊이 관여되어있어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한겨레21에 기고한 '신영복의 60년을 사색한다'라는 글을 보시면, 선동을 기획하는 좌파세력이 신영복을 변호하고 미화하는 과정을 여실히 볼수 있습니다. 핵심 가담자와 분리하여 '신영복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냐'라고 변호하고 있거든요.
사실 신영복은 죽을 때까지 반미/반자본주의자로 살았어요.
신영복의 어록 일부를 볼까요?
"미국이 한국의 은인이라는 환상을 청산하고, 미국이 한국에 친미적 분단 정권을 창출하고 미국경제의 하위 경제구조를 편성한 나라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반도의 전쟁위험은 북한으로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올 수 있다."
"한반도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북한이 자기들의 경제문제에 전력 투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북한 핵의 기본이다. 북한 핵을 북한 정치지도자의 야심이나 북한의 정치적 오판으로 설명하는 것은 잘 못이다"
대단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을 하나 보기로 해요.
"그의 이름 석자는 한때 '갇혀있는 이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고픈 편지의 대표 발신자였다. 1988년 출간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년 20일을 '짐승의 시간'에 묶여 지내야 했던 한 양심수의 고백이자 연서로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고전에서 읽은 세계 인식'을 한 손에,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을 또 한 손에 든 인간 농부가 되었다. 인간과 세계, 사람과 삶을 파헤쳐 농사짓는 일이 공부라며 그 고생길에 함께 나서자고 손을 내민다. 사상범들이 한데 모여 있어 '한국의 모스크바'라 불리던 대전교도소에서 맺었던 스승들과의 관계를 그는 이제 이웃에게 되돌려 보낸다."
이건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경향, 프레시얀, 미디어오늘 등의 기사 일부가 아닙니다.
무려 중앙일보가 14년 4월 25일에 신영복이 지은 [담론]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기사에요. 이뿐 아니라, 중앙일보는 여러차례 신영복 관련 기사들을 실었어요.
환장할 노릇이죠ㅋㅋㅋ 자본주의의 최대 수혜 집단이 이런 사람을 미화시키다뇨... 쯧쯧... 하긴, 지금 JTBC를 보면..
교보문고는 15년도에 약 열흘간, '신영복 서화전' 기획 전시회를 열기도 했는데요. 전시회의 이름이 뭔지 아세요? "스승들의 스승 신영복"입니다.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어요. 반드시 걷어내야해요.
교보문고는 수차례 신영복에 대한 홍보를 벌여왔는데요..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이라는 창립 이념을 잊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셨던 창립자 '대산' 신용호 선생님께서 보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 박성준과 한명숙 신영복도 자신의 선배 김질락 처럼 후배를 끌어들이게 되는데요. 그가 바로 박성준입니다. 그리고 '청맥'의 창간에도 참여하죠. 박성준과 한명숙은 학창 시절 '경제복지회'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한명숙은 남편을 따라 서슬푸른 '재야운동가'로 변하게 되요. 신영복의 포섭으로 본격적인 공산운동가가 된 박성준을 본다면 한명숙 역시도 대충은 가늠할 수 있겠죠?
한명숙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박성준과 결혼했고, 곧 통혁당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집니다.
박성준이 징역 15년을 받은 것에 비하면 한명숙은 한참 적은 징역1년 집유1년을 받았어요.
여기서 그만했으면 됐을텐데요... 남편을 대신해서 좌익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오던 한명숙은 79년, 이른바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감옥생활을 하는 등, 거칠게 재야활동을 하게되며 2000년도에 김대중의 부름을 받고 정치권에 입문하게되죠. 여성부 초대 장관을 거쳐서 2006년엔 최초의 여성총리로 지명되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뿌리채 뽑혀서 남김없이 태워졌어야 할 이런 부류들이 자유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이 되어 활보한다는 것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에요.
이들을 격파하는 것은 엄벌 뿐입니다. 과거 박성준이 이에 대한 힌트를 준게 있는데요.
유죄 판결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심을 거치는 과정에서 박성준은 아래와 같은 법정 진술을 합니다.
"[민족해방전선]을 구성한 바 없으며, 4.19묘지에서 북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사실도 없고, 그 밖에 이 사건 책자를 구입하거나 빌려 보거나, 빌려주고, 필키시키고 한 모든 행위가 북괴를 이롭게 한 것이 아니며, 신영복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경솔한 소행을 하기에 이른 것이니 기독교인으로서 깊이 반성한다."
'북괴, 반성' 두 단어가 눈에 띄네요. 그리고 신영복을 부정하는 발언도 주목할만합니다.
엄벌하여 저들의 결속력을 깨는 게 방법이란 겁니다.
저들도 이를 알기에 이렇게 대처하죠. 교육계를 의식화해서 아이들의 의식을 병들이고, 문화계를 의식화해서 대중의 의식을 병들이고, 사법부를 의식화해서 위 과정의 방패막이로 사용한다.
그럴듯하죠?
주사파가 준동하는 시기는 통혁당보다 한참 후의 것이니, 통혁당을 주사파라고 말할 순 없지만, 계보상 주사파의 처음이라고 보면 됩니다.
통혁당이 검거된 것은 이미 반세기가 지났지만, 역시 반세기가 지나도록 청산되지는 못하고 있어요.
정치계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추앙의 대상이 되며 나라를 병들이고 있어요. 그렇다면 통혁당 이후 시기의 지하당들과 간첩사건들이 현재 우리나라에 미치는 악영향들은 더욱 치명적일 수 밖에 없겠죠?
잘 알고 경계해야하며, 좌파들과의 논쟁은 "나와 다르다"하여 피할 것이 아니라 격파를 위하여 싸움에 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야당은 역풍으로 끝났다 차기대권은 박대통령 업은 여권후보가 유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