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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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난세에는 영웅과 간신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인지라 중간의 회색지대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순간적으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므로 평소에 갈고 닦은 품성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위기 때 확연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품성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최대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때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하는 도중에 백성으로부터 돌팔매질을 받았습니다. 반면 이순신 장군은 간신의 온갖 모함에도 12척의 배를 끌어모아 결사 항전하며 나라를 구했습니다. 지금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 있지만, 선조의 무덤이 어디(구리시 동구릉에 있음)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샤를 드골은 영국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레지스탕스를 이끌며 항전했지만,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필리프 페탱 장군은 나치독일에 부역하는 비시 정권을 이끌었습니다. 드골은 1차 대전 당시 페탱 장군의 부관이었지만 순간의 선택이 둘을 영웅과 역적으로 갈라놨습니다. 이렇듯 역사는 위기 때 지도급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준엄한 심판을 내립니다.
왼쪽부터 김용현, 이진우, 여인형, 조태용.
윤석열은 ‘7무-4비-4질’의 최악의 인물
저는 이제까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물이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악인 떼나르디에인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황에 따라 아부와 협박, 거짓과 사기, 도적질과 강도질을 무시로 행하는 허구 속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12.3 내란 사태를 보면서 그보다 더한 악인이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바로 윤석열이란 인간입니다.
제가 볼 때, 그는 ‘7무-4비-4질을 두루 겸비한 최악의 피조물입니다.
7무는 무도, 무법, 무식, 무능, 무지, 무모, 무례를 가리킵니다.
4비는 비굴, 비겁, 비루, 비열입니다.
4질은 찌질, 뺀질, 악질, 구질을 말합니다.
찾아보면 추가할 게 더 있을 겁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책임감도 품위도 도의도 갖추지 못한 그는 현실의 법정뿐 아니라 역사의 법정에서도 준엄한 심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논다고 그의 주위에는 아직도 그를 감싸고 도는 간신배들이 득시글합니다.
위헌·위법의 내란에 적극 가담하고도 ‘경고성 계엄’,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 ‘재판 중이어서 답변하지 않겠다’라느니 하면서 혹세무민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진우 수방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전·현직 장군들이 맨 앞줄에 있습니다.
12.3 비상계엄 발령 전날 대통령 부인 김건희로부터 흔치 않은 문자 2통을 받고도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횡설수설한 외교관 출신 조태용 국정원장도 같은 족속입니다.
왼쪽부터 홍장원, 조성현, 류혁, 곽종근.
12.3 내란 속의 4영웅, 홍장원·조성현·유혁·곽종근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은 이런 와중에서 몇몇 영웅들도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14명의 체포 명단을 가장 먼저 폭로한 홍장원 전 국정원 제1차장, 사령관의 국회의사당 진입 지시를 받고도 재고를 요청하며 거부한 조성현 수방사 제1경비단장(대령), 계엄 발령 당일 불법·부당한 행위에 가담할 수 없다면서 고위 공직자로서 유일하게 사표를 던진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면서 대통령의 지시를 까발린 곽종근 특전사령관이 그들입니다.
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기에 당당하고 거침이 없습니다. 선택적 기억도 없고 전과 후의 논지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표정에서도 주저함이나 어색함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100번 이상 낙하 훈련을 소화한 베테랑 공수부대원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베테랑인데도 낙하 훈련을 계속하는 건, 유사시에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익힌 대로 망설이지 않고 즉각 뛰어내리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류혁 전 감사관이 계엄 당일 소집된 법무부 간부회의에 도착하자마자 사표를 던진 행위는 그와 마찬가지로 평소에 불법 부당한 명령은 따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결과일 것입니다.
어찌 그리 명료하고 당당할 수 있을까
홍 전 차장은 1월 22일 국회 내란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그 명단을 보니까 그거는 안 되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위원장님이 집에 가셔서 편안하게 가족들과 저녁식사 하고 TV 보는데 방첩사 수사관과 국정원 조사관들이 뛰어들어서 수갑 채워서 벙커에 갖다 넣는다? 대한민국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게 매일매일 일어나는 나라가 하나 있습니다. 어디? 평양. 그런 일을 매일매일 하는 기관이 북한 보위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월 13일 헌재에 증인으로 나온 조 경비단장은 윤석열 쪽 변호인이 자신의 증언에 대해 ’사령관 지시가 불법이라 이행하지 않은 것처럼 의인처럼 행동한다‘라고 비꼬자, “저는 의인도 아닙니다. 저는 1경비단장으로서 제 부하들의 지휘관입니다. 제가 아무리 거짓말해도 제 부하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일체 거짓말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담담하게 맞받았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발언이 이번 내란 사태 와중에 쏟아진 수많은 말의 홍수 속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명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태도와 어조만 보고도 그들의 말이 진실이고 본심이라는 걸 충분히 느꼈습니다. 더구나 두 사람이 속한 조직의 우두머리가 전혀 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 터이기에 더욱더 가슴속 깊이 다가왔습니다.
윤석열로부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직접 받은 곽종근 사령관은 내란 주요 가담 장군 중에서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진실을 털어놨습니다. 그는 김용현으로부터 비화폰이라 녹음이 되지 않았으니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서 잘못하면 부하들이 화를 당하겠다는 생각에 사실대로 밝히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억이 생생할 때 글로 당시 상황을 정리해 놓은 뒤 그것을 기준 삼아 진술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쪽의 회유와 겁박에도 진실을 그대로 털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도 의인입니다.
악인에게 철퇴를, 선인에게 박수를
12.3 내란은 좋은 학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곧 선인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니 그런 사람일수록 국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소인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홍장원, 조성현, 류혁, 곽종근처럼 상식과 양심, 책임감과 정의감을 갖춘 사람들이 누란의 위기에 빠진 한국 사회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지금도 내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악인에게 철퇴를 가하고 선인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 내란을 종식하는 첫걸음입니다.
바로 깨어 있는 시민이 해야 할 일입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