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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축복된 인생의 줄은 든든하십니까?”
+ 본 문 : 누가복음 16장 19절 - 31절 (신약성경 p.123)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고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아멘!
+ 말씀을 듣기 전에 서로 사랑의 인사를 나눕시다. / ‘승리하십시오.’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그네뛰기, 씨름, 탈춤, 가면극놀이 등을 즐기며, 여자들은 창포에 머리를 감고, 민가에서는 차륜병을, 왕궁에는 제호탕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단오절의 절정은 역시 그네 뛰는 것이었습니다.
그네는 두겹 줄로 꼬여진 것은 사람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금방 터져 버리기 때문에,
삽겹 줄로 잘 꼬아서 든든한 나무 가지나, 나무 기둥을 세워서 매달아야만 합니다.
또 한 가지 시골에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소를 먹이는 것인데, 소를 이끄는 줄을,
표준말 ‘타래 - 소타래’ 라 합니다만,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깨삐 - 소깨삐’ 라 했습니다.
소깨삐 역시 두겹 줄로 꼬아놓으면 금방 터지만, 삼겹 줄은 웬만해서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무거운 것을 매달기 위한 줄은, 반드시 잘 꼬아진 삽겹 줄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인생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두겹 줄의 인생으로는,
탄탄한 생애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딘가 불안하고 모자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삼겹 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일생을 감사함으로,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인생뿐만 아니라, 신앙생활도 삼겹줄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중심이,
하나님 중심으로 든든히 서 있고,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그것을 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식들을 잘 양육하여 성공했다고, 그것을 다 축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출세 좀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두고 다 행복하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가만히 보면, 어느 한 가지 좋은 일이 있으면,
어느 한 가지는 반드시 좋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에서 모든 것이 감사하고, 모든 것이 평안하며, 모든 것이,
은혜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면, 든든한 삼겹 줄의 인생, 삼겹 줄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에 대한 예수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인 ‘부자와 거지 나사로’ 를 비교하면,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부자는 물질 관계는 탄탄했지만,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좋았지만, 물질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부자나 거지 나사로나 그 어느 편도 온전한 축복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오늘 본문의 결론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축복된 인생을 살아간 사람인가?‘ 하는데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함’ 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에는 나름대로 질서가 있습니다. 첫째는 위치 질서입니다.
적당한 장소에 적당한 사람이, 적당한 물건이 있어야 하는 질서입니다.
둘째는 역할 질서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역할 질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남용해도 안 되고, 경시해도 안 되고,
포기해도 안 되는 것이 역할 질서의 기본자세입니다.
셋째는 관계 질서입니다. 바로 이 관계 질서에는,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삼겹 줄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오늘 본문의 두 주인공,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중심으로,
‘축복된 인생의 줄 든든하십니까?‘ 하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첫 번째 삼 겹 줄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줄입니다.
오늘 본문의 부자는,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첫 번째 삼 겹 줄인 하나님과의 줄이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31절 말씀을 보면, 부자는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베풀면서 쾌락을 누렸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고, 이웃에 대해서도 무관심했습니다.
돈이 많은 부자였기에 좋은 옷을 입었고, 좋은 음식을 먹었고, 자기의 원하는 대로,
마음껏 즐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에게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이 세상의 삶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내세의 소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부자는, 내세의 소망이 없다는 것은,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의 줄이 끊어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과의 줄이 든든이 맺어졌다는데서 삶의 참 의미를 찾는데,
오늘 본문의 부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어리석음이 있고,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동물은 땅만 바라보지만 인간은 위를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안드로포스 = 위를 바라본다." 는 뜻을 가ㅓ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으라! 땅엣 것을 찾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마땅히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땅의 것만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땅에 것만 바라보면서 사는 이에게 마땅히 돌아오는 음부의 고통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성공자의 삶의 산 것 같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철저하게 실패자의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첫 번째 삼 겹 줄인 하나님과의 줄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이,
요한삼서 2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아멘!
한마디로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첫 번째 삼 겹줄인, 하나님과의 관계의 줄이 튼튼할 때,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만사형통하고, 육신도 강건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된 비결을 알았던 아브라함은,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림으로, 먼저 하나님과의 줄을 튼튼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복을 주셨고, 아브라함이 행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는 말씀은 성경 속에 없습니다.
롯이 선택한 것은 기름진 땅이었고, 소돔과 고모라의 부귀와 영화를 즐기는,
쾌락의 삶이었습니다. 결국 그에게 이루어진 모든 결과는,
그 모든 부귀영화가 한 순간에 불타버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줄을 든든히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징 6절 말씀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든든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줄이 바르게,
든든하게 매여 있습니다. 교회 생활에서도 무엇을 하든지 인간적인 생각은,
철저하게 버리고, 가장 먼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나사로에게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의 줄이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엘리에셀' 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 라는 뜻입니다.
나사로와 같은 이름의 뜻을 가진 ‘엘리에셀’ 은 아브라함의 충성된 종의 이름이었고,
나사로라는 이름은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사람의 이름과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진 자’ 라는 뜻을 가진,
‘엘리에셀’ 이나 ‘나사로’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야 할 첫 번째 삼 겹줄인 하나님과의 줄이 튼튼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부자는 음부의 고통을 당했지만, 나사로는 낙원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하나님과의 삼 겹줄은 튼튼하십니까?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두 번째 삼 겹줄은, 사람과의 좋은 관계의 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줄도 튼튼해야 하지만, 사람과의 줄도 튼튼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사회생활에서 실패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아주 좋은 기술도 있고, 탁월한 능력도 있고, 돈도 제법 많이 있는데,
직장생활에 잘 적응을 못한다든지, 사업이 잘 안 되고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모두 다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 주일성수도 잘 하고, 십일조도 잘 하고, 봉사도 잘 하고,
기도도 잘 하는데, 다른 교우들과 인간관계에서는 이상하게 불편하고,
화목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외톨이가 되고, 그러다가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경우를 보면서, 저는 참으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사람과의 좋은 관계의 줄이 튼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행일치’
‘학행일치’ ‘신행일치’ 라는 말처럼, 말과 아는 것과 믿음이 진실해야하고,
자신이 한 말과 아는 것과 믿음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만 잘났다는 교만에서는 인간 관계가 아름다울 수 없고, 결국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사도 바을은 빌립보서 2장 3절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인간관계가 튼튼합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실패는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교만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예수님의 인간관계는 항상 긍휼이었고, 겸손이었고, 섬김이었습니다.
인간관계를 가질 때는 항상 자신을 상대방보다 낮은 자리에서 대화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존중해 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존중해 줍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좋게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이야기해 줍니다.
시부모 불평하는 며느리는 민망스럽고, 며느리 홍보는 시어른들 역시 추해 보입니다.
남편 욕하는 아내는 가장 가련해 보이고, 아내 흉보는 남편 역시 정말 꼴불견입니다.
자기 직장이나 직장 상사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몸담고 있으면서 영적 축복을 받는 교회를 불평하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마음도, 사랑도, 물질 등, 모든 것을 내가 먼저 주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 이익만 차리는,
사람을 보면 추하게 보입니다. 우리 사람은 먼저 사람을 사랑하고,
그 다음 물질을 사용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을
먼저 사랑하고, 그 물질을 얻기 위해서 사람을 이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물질을 얻었다 해도 그것은 실패의 삶일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예수님처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사람과의 관계의 줄을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세 번째 삼 겹줄은, 물질과의 줄입니다.
축복된 인생이 되려면, 우리 인생의 줄이 하나님, 사람, 물질에 삼 겹줄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물질 관계도 매우 중요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은 악하기 때문에, 구원은 지식으로만 얻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질세계를 악의 세계로 정의하고 금욕주의에 빠져 이단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인간, 그리고 물질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에게 생육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 있는 아브라함에게 물질의 복을 주셔서,
은금이 풍부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질 관계를 바르게 갖는 것입니다.
물질이 귀하지만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면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셨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말했습니다. '제 아무리 회개를,
하였다 해도 돈주머니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그 회개를 믿을 수 없다.'
우리는 물질을 떠나 살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수단이 물질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해도 물질 관계를 바르게 갖지 못하면, 그것은 오히려 악이 됩니다.
목회하면서 성도님들의 삶을 지켜보면, 한 가지 분명하게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물질 문제에 깨끗지 못한 사람은 절대 물질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 관계에 정직한 사람은 분명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물질 관계를 잘해야 합니다. 드릴 것을 드려야 합니다.
드려야 하는데 드리지 않으면 헛된 돈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물질 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남의 돈 빌려 쓰고 갚지 않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웃을 도와야 할 때 물질로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에게 복을 받을 기회를 잃는다는 심정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물질로 도와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왜 오늘 본문의 부자가 음부의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의 줄이 끊어졌습니다. 이웃과의 관계의 줄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물질 관계의 줄이 썩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는데, 사실 그는 모든 것이 없는 자였습니다.
날마다 축복을 노래하는 것 같았는데, 사실 그는 날마다 저주의 탑을 쌓아 갔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마쳤을 때,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음부의 불꽃이었습니다.
왜 나사로가 낙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까?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게 살면서 이웃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부자의 집 대문밖 찌꺼기를 주워 먹었지만, 남을 해롭게 하지 않았고,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가 인생을 마쳤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낙원의 아브라함의 품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맺고 살아가야 할 삼 겹줄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삼 겹줄은, 하나님과의 줄입니다. 두 번째 삼 겹줄은, 이웃과의 줄입니다.
우리의 축복된 인생을 위한 세 번째 삼 겹줄은, 물질과의 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 축복된 인생의 줄인 하나님과의 줄,
이웃과의 줄, 물질과의 줄을 바르고 튼튼하게 가지므로,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