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56]옥수수를 삶아 맛있게 먹는 방법
옥수수 농사를 짓기 전까지는 옥수수가 그렇게 맛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의외로 ‘옥수수 마니아’들이 많다는 것도요. 물론 옥수수는 첫 마디에 열린 것만 상용화商用化한다는 것도 몰랐지요. 두 번째 마디 것도 여물기만 하면 먹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옥수수 끝부분이 영글기가 쉽지 않아 미관상 좀 거시기하지요.
아무튼, 옥수수 10여개를 큰 냄비에 담아 삶았습니다(쪘습니다). 소금에 뉴슈가를 조금 넣어 20여분 동안 삶으면 됩니다. 치과에서 미백美白치료를 하듯, 미백찰옥수수는 삶아놓으면 꼭 가즈런한 치아齒牙같습니다. 얼룩배기찰옥수수도 있지만, 사람따라 다르기는 해도 제 입맛으로는 미백보다 훨 못한 것같더군요. 얼룩배기 옥수수는 처음엔 괜찮는데, 먹다보면 이빨 사이에 끼기도 하고 맛이 틉틉해집니다. ‘순백純白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요?
재야시인인 제 후배(시집 한 권 내지 않은 배영조)는 <단맛 머금은 탱탱한 백옥/향내 솔솔 풍기는 숨결/켜켜이 껴입은 갈맷빛 모시적삼/흰살 우련히 비치는 부드러운 린넨 속옷/떨리는 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벗길 때/마침내 봄햇살 첫사랑 그녀처럼/한꺼번에 와르르 안겨오는 내밀한 충일/까는 것은 까이는 것보다 즐겁다/씹는 것은 씹히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읊었더군요. 옥수수를 까면서 제법 섹시한 장면이 떠올랐나 봅니다. ‘흰살 우련히 비치는 부드러운 린넨 속옷’‘마침내 봄햇살 첫사랑 그녀처럼 한꺼번에 와르르 안겨오는 내밀한 충일’ 어쩌고 하는 게 완전히 절창絶唱이더군요. ‘충일充溢’ 좋은 단어입니다.
누구라도 그냥 하모니카 불 듯 옥수수를 들고 뜯어먹기 쉽지만(옥수수 알 뿌리까지 씹히지 않고 중간에서 뜯어지므로 이빨 사이에 끼는 게 흠이지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하나씩 뜯어먹는 방법을 강추합니다. 일단 한 줄을 하나씩 떼어낸 후 그 옆에 줄의 옥수수를 엄지손가락을 길게 뻗어 옆으로 뉘입니다. 살짝 비트는 것이지요. 잘하면 8개까지도 쉽게 뉩혀집니다. 은근한 기쁨입니다. 그럼 손바닥에 모아진 옥수수알을 한 입에 털어넣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모았다가 숟가락으로 퍼먹는 방법도 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뻗쳐 옥수수 한 줄을 살짝 옆으로 뉩혔는데, 못해도 대여섯 개가 뿌리째 뽑히는 것을 볼 때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신조어가 생각납니다. 결국, 사는 것은 별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옥수수를 뜯다가,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자주 만나지 못하는 여동생들이 생각났습니다. 여름날입니다. 앞 냇가(둔남천)에서 잡아온 다슬기(전라도 표준어로는 대수리이지요. 충청도에서는 올갱이라고 한다지요)를 어머니가 된장을 풀어 삶아 바가지째 툇마루에 올려놓습니다. 바늘로 하나씩 일일이 까야 합니다. 긴 바늘에 잘하면 10개쯤 뽑힌 대수리 속살이 대롱거립니다. 저도 물론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여동생들 입에 차례차례 넣어주는 즐거움이라니요? 그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절대로 제가 먼저 먹지 않고, 여동생들에게 먼저 차례차례 줍니다. 한두 번의 기억이 아닙니다. 제비 엄마도 아닌 주제에, 동생들은 이 못난 오라버니가 고마웠겠지요. 그 재미를 60 넘어서도 맛보고 싶습니다만, 이제 언제 다시 그런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수 있을까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삶은 옥수수, 한 알 한 알을 따는 방법을 동영상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번씩 해보시지요? 아주 쉽습니다. 그렇게 먹다 남은 옥수수 알들은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넣어둡시다. 밥하려고 쌀을 안칠 때마다 한 주먹씩 넣으면 ‘옥수수 밥’이 되지요. 밥을 씹을 때마다 한 알, 한 알 톡톡 씹히는 옥수수 맛이 제법 맛있고 재밌습니다. 식감食感이 짱이라는 얘기입니다 지난 겨우내 옥수수밥을 먹으며 행복했습니다. 다시 ‘소확행’입니다. 이것이 ‘사는 맛’입니다. 기회만 된다면, 내년에도 옥수수 농사를 하고 싶습니다. 100일 사이에 한두 번 살충제를 해야 하지만, 게으른 탓도 있지만, 무농약 무공해로 짓고 싶어 안했더니, 역시 징그럽게 생긴 벌레들이 옥수수 머리부분을 파먹기도 하고, 암처럼 제 몸피의 몇 배가 부풀어오른 옥수수도 있더군요.
‘슈퍼 옥수수’를 개발해 북한에 구황救荒작물로 소개한 농학박사도 있었지만, 옥수수는 우리의 간식間食거리론 쵝오인 듯합니다. 농부들의 비지땀을 생각해서라도 값을 깎을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곧 시장에 가셔서 양파망에 가득 담긴 옥수수 봉지를 하나쯤 사다가 삶아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연일 주야장청 내리는 장마철에는 딱이지 않을까요? 옥수수를 씹다보면 가족끼리 우애는 저절로 되지 않을까요? 한자리에 만나기가 어려워서 문제이긴 하지만요. 저를 아는 모든 친구와 지인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며, 졸문의 ‘옥수수 편지’를 줄입니다.
임실 우거 ‘구경재久敬齋’에서 우천 최영록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