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묵은 가지를 과감히 쳐내었다. 쉰 살이면 노목이라고. 다듬으면 젊어져서 실한 열매가 열린다고. 오래된 줄기는 구부정한 노인의 어깨처럼, 쇠잔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늙은 몸에서 열매의 단물이 나올까 싶었다. 열매를 다 떠나보낸 늦가을이 오면, 그는 사다리를 타고 나무의 우둘투둘한 껍질을 벗겨내었다. 호미 같은 도구를 가지고 마치 발바닥에 달라붙은 각질 벗겨내듯 배나무 껍질을 매끈하게 긁어주었다. 그러면 껍질 속에 기생하던 벌레들이 겨우내 얼어 죽기도 하고, 나무의 생체가 젊어진다고.
나무가 쉰을 훌쩍 넘긴 해에 그는 서너 개의 굵직한 줄기 중, 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기톱으로 잘라내었다. 나무는 헛헛한 노모마냥 가슴이 휑 뚫렸다. 그해 배 수확량은 평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배나무의 미래를 걱정했었다.
이듬해부터 그가 일찌감치 점찍어서 길러온 새 가지가, 튼실한 처녀의 엉덩이처럼 돋보이며 쑥쑥 자라났다. 새 가지는 회임한 새신부가 되었고, 나무는 신실한 어미처럼 주렁주렁 열매를 달게 되었다. 젊은 신부에게서 나온 열매는 더 신선하고 더 감칠맛 났다. 그의 정성어린 손길에 의하여 고목나무는 심줄 건장한 젊은이가 되어갔다. 덕지덕지하던 껍질은 깔끔하게 정돈 되었고, 묵은 가지는 시나브로 새로운 가지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배나무는 제2의 생을 새 출발하고 있었다.
사람도 쉰이 되면 새로운 삶을 생각해보는 나이인가. 쉰의 나이 즈음에, 마음 나눌 벗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우리네 사람은 만날 때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하여 각자의 속엣 말을 나눈 후, 그날의 결미를 장식하곤 한다. 어느 날 우리는 제2의 인생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A는 호주의 유수한 기업에서 IT 전문가로 일한다. 60대 초반에 은퇴하게 되면 나사 조이는 법을 익히고, 문고리나 수도꼭지 고치는 기술도 배울거라 한다. 또, 핸들을 잡고 운전만 하고 다니는 자동차의 속사정을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을 토대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독거노인이 살고 있을 어느 집에 들어가 소소한 부품을 새것으로 갈아 끼워주고, 멈춘 자동차를 작동시켜주고 싶다고. 직장에서 머리 쓰는 일을 하다가 타인을 위하여 몸 쓰는 일을 하고 있을 그녀의 미래를 상상하다니, 나도 모르게 만면에 미소가 번진다.
B는 한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호주에 와서 다시 대학 공부를 마친 케이스다. 그 후, 호주 공무원으로 스무 해째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生을 파고 쪼개는 철학서적을 마음껏 읽어보고자 한다. 삶을 논리적으로 헤쳐 보는 묘미에 빠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황홀경에 든다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고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철학과 신학이 바탕이 된 삶은, 근본이 탄탄하여 좀체 흔들리지 않는다고. 이순을 넘긴 그녀가 코끝에 걸친 돋보기 속 눈동자를 반짝이며, 생의 물음표를 던지면서 생을 고심할 모습을 상상해본다. 꽃잎에 날아든 나비 날갯짓처럼, 내면 가득 새로운 무언가로 차올라옴이 느껴진다. 타인의 생각도 전염이 되나보다.
C의 꿈은 무엇일까. C는 마음속에 접어둔 내면의 느낌을, 느끼던 그대로 고스란히 표현해보는 것이다. 삼십여 년 동안 시어른을 모시고 선하게만 살아온 그녀에게, 억압된 감정이 없을 리 없다. 팔순을 넘긴 양 어르신의 인품이 넉넉하셔서 아무도 그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시키진 않았지만, 스스로 도덕과 예절을 자아보다 앞세우다보니 속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가지런한 그녀의 삶의 자세 속에서, 스콜처럼 충격과도 같은 신선함을 맞고 싶은 날이 왜 없었으리.
A, B, C의 말을 듣고 보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애정과 미련이 그윽함을 알 수 있었다. 지나온 삶이 접영이라면 다가올 삶은 배영이듯 과거와 미래, 두 삶은 등과 가슴의 거리만큼 멀고도 가까운 관계임이 느껴졌다. 저마다의 가지 못한 길은 고국을 향한 향수처럼, 나무의 헛가지처럼 꽤나 빈번하게,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려지곤 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갈증은 무엇일까. 삶이 다할 때까지 수필을 쓰는 것이다. 누군가 공감할, 느낌 있는 언어를 엮고 싶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스무 해가 되어 가는데, 내 글제 하나라도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 이곳 호주에 온 지 2년 즈음이던가. 영어 수업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날, 내가 작가라고 하자 호주 선생님은 유명한 작가냐고 물었다. 그때 옆자리 한국인의 머뭇거리던 모호한 표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 내 탓이다. 하지만 유명세를 내는 작가 이전에, 편편한 삶 속에 성숙한 나의 향내를 심고 싶다. 그 여문 기운으로 인간을 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가 공들이며 만져놓은 나무의 새로운 몸집에서 사람의 사소한 생각 같은, 자잘한 가지가 또 다시 돋곤 하였다. 그때마다 그는 전지가위를 들고 과수원으로 나가서 쓸만한 가지 몇 개를 남기고, 불쑥불쑥 나오는 불필요한 잔가지들을 쳐내곤 하였다. 그러면 가지는 또 자라나고 그는 또 쳐내기를 반복했었다.
그 잔가지들은, 밤마다 베갯머리에서 부질없이 골똘하던, 걱정해봐야 소용도 없는 상념들이었다. 한편으론 그 상념들이, 삶을 지탱시켜주는 애증어린 생각의 조각보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과 나무의 삶은 다를 게 없다. 사람의 가슴에나 나무의 꽃눈엔, 자신이 가지 못한 길에 대하여 그 근원적 그리움을 향수처럼 안고 지내다가 잔가지로 표출되곤 한다. 그래서 나무나 사람이나, 캥거루가 새끼를 치듯 때론 헛가지 같은 잔가지를 자꾸 치는 거다.
(남홍숙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