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이날은 우리 글방의 정모가 있는 날이라 오후 들어 조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모처럼 글방의 문우님들을 만나는데 때 빼고 광내고 갈 수는 없을 지언즉 거울을 보니 꼭 이상의 자화상이 연상되는 이 봉두난발의 머리만은 좀 자르고 가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어 미장원으로 향했다. 머리를 자르러 이발소가 아닌 미장원으로 가는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다. 한국에 있을 때 어느 날 이발소에 갔더니 아줌마들이 벌건 대낮에 해괴한 짓을 하자고 하는 바람에 그 뒤로 이발소에 안 가고 미장원만 간다. 내가 그렇다고 훈장 선생님 같은 금욕주의자는 아니지만 남녀간의 房事는 어떤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소위 말하는 戀情이라는 것이 먼저인 후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이 泥庫 앞에서 무슨 서비스를 해 준다니...망측한 쌍것들 같으니라고. 쯧쯧,…….아무튼 그러한 해괴한 추억 이후 미장원에만 간다. 그리고 사실 요리나 디자이너 등 남자들의 기술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으나 남자 머리만큼은 여자가 더 잘 자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여자가 보아 보기 좋은 모습으로 자르는 것이 예쁘게 깎은 머리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날도 자주 가는 한인타운에 남자 헤어컷을 $7.99에 하는 단골미장원으로 갔다.
먹는 것은 다 머리카락으로 가는 지 한 달에 두 번이나 이발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가난한 서생인지라 錢도 아껴야겠지만 요금이 밖의 간판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미장원의 경우 좀 불안한 문제가 있다. 지난 번 자주 가는 미장원이 너무 붐벼 시간이 없어 아무 미장원에 가서 일단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깎으라고 말만하고 가만히 있으려고 하다가 얼마냐고 물어 보았다. 남자 헤어컷이 35불이라고 한다. 그냥 일어설까 했으나 체면을 중시하는 선비가 錢 때문에 옹색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일수불퇴, 낙장불입인 것이다. 그러나 그냥 앉아서 머리를 깎는데 자꾸 35불이면 주점에서 이슬이를 세 병이나 더 시켜 먹을 수 있는 전이라고 생각하니 솔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언제부터인가 모든 錢의 가치를 이슬이 병수로 환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행히 주말인데도 그날은 미장원이 붐비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이 두 사람 정도. 남자이다. 이럴 때 여자가 기다리고 있으면 그냥 가야하겠지만(여자들의 머리는 시간이 엄청 걸린다.) 다행이 이곳에는 여자는 많이 안 오는 편이다. 그 이유는 7.99라는 간판 때문에 이곳이 싸구려 같다는 인상 때문인데 내가 아는 여자란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본능적 속성이 있어 싸구려 느낌을 주는 곳은 절대 안 간다.
그러나 우리 글방의 남성들에게도 이곳을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 나는 남자보는 눈이 높기로 소문난 우리 글방의 금벼리님이 인정하는 미남이기 때문에 머리를 웬만큼 깎아도 괜찮게 보이지만 이처럼 서민형 미장원은 몇 가지 위험성이 있다. 미용사가 자주 바꿔 머리를 자를 때마다 스타일이 바뀐다는 점이다. 아무리 단골이라도 미용사가 바뀔 때마다 자신이 어떻게 깎고 싶다는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물론 미용사가 자주 바뀌는 이유는 팁이 적기 때문이다. 8불짜리 이발에 얼마를 팁으로 주겠는가? 그러니 웬만큼 머리 스타일이 변해도 항상 멋있게 보이는 나 같은 미남의 문우님들이 아니고는 이곳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는 이처럼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그 기술이나 친절함 말고도 반드시 필요한 한가지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억력이다. 한두 번 다녀간 손님을 기억하는 기억력이 그것이다. 내가 이것이 필요한 예를 하나 들고자 한다. 예전에 타운의 한 미장원에 자주 갔었는데 참하게 생긴 아줌마가 참 마음에 끌렸다. 언제 한 번 돌아온 처녀이시면 곡차나 한 잔 하자고 꼬셔볼까 했으나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 집을 간 것이 벌써 근 예닐곱 번이 넘는데도 갈 때마다 머리를 어떻게 깎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나는 미장원에 가서는 머리에 대한 주문은 항상 두 가지만 한다. 하나는 옆머리를 애들처럼 바짝 깎지 말라는 것과 삼푸를 하고 나서 머리에 드라이어를 대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드라이어에서 뿜어 나오는 전자파가 내 두피세포를 마구 때리는 것을 상상만 해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줌마는 똑같은 질문을 올 때마다 하는 것이다. 아! 너무 손님이 많아 일일이 기억을 못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그때마다 나도 인내심을 갖고 똑같은 주문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갔더니 드디어 아줌마가 나를 보고 반갑게 아는 체를 하고 이번에 머리를 어떻게 깎는가를 묻지도 않고 가위질을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아줌마가 반 년 만에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구나 생각하고 기분이 좋아지니 슬슬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사고는 그때 발생하였다. 눈을 떠보니 어느 새 내 머리는 당시 유행하는 애들 머리처럼 옆을 바짝 깎아 놓은 것이 아닌가? 아! 정말 열 받은 나는 “아줌마! 제가 여기 온 것이 열 댓번도 넘는데 머리를 이렇게 깎아 놓으면 어떡해요. 모르면 물어 보셔야죠?” 눈만 말똥말똥 쳐다보며 당황해 하는 아줌마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더 이상 불평을 안 하고 가려는 데 이번엔 삼푸를 한 후 드라이어를 그대로 머리에 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 그 집에 다시는 안 간다. 몇 달 후에 지나치면서 보니 문이 닫혀 있다. 그래서 이처럼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억력이 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알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그런데 뭐가 운수 좋은 날이냐?하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드디어 이날의 빅 사건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 아저씨가 끝나고 다음 아저씨가 자리에 앉았다. 이 아저씨 다음에 내 차례이다. 그런데 머리를 깎고 대기석에 다시 앉은 이 아저씨가 좀 웃기는 아저씨이다. 시계를 보더니 “야! 딱 4분 걸렸네. 아가씨, 엄청 빨리 깎는구먼.”하는 것이 아니가? 나는 이 4분이라는 것에 좀 마음이 걸렸다. 그 말에 오늘따라 이 미장원이 좀 날림공사를 하는 곳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 말에 아가씨가 좀 미안했는지 “그래도 예쁘게 깎아 드렸잖아요? 왜 마음에 안 드세요?”하고 웃는다. 그러자 이 아저씨 머리를 깎고 있는 다른 아저씨에게 다가가며 “나는 워낙 미남이라 괜찮은데 얘는 좀 못 생겼으니까 4분 갖고 안 돼. 더 신경 써서 잘 깎아줘.”라고 한다. 그 대목에서 나는 나처럼 잘난 체를 하는 사람이 많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 아저씨를 보니 암만 봐도 잘 생긴 것 같지가 않았다.
두 분은 서로 친구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아저씨 “얘가 보기에는 꼭 홈리스 일보직전 같아도 며칠 전에 잠바 1500장을 홈리스에 도네이션해 신문에 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가. 나는 귀가 솔깃하여 거울을 통해 머리를 깎고 있는 이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친구의 말대로 홈리스 일보직전까지는 안 되더라도 차림새가 꼭 어렸을 때 고향의 골목길에서 자주 봤던 고물상아저씨나 번데기장수 아저씨 같았다. 그러나 그 인상만큼은 빈병 모아 엿을 사 먹을 때 강냉이 한 움큼을 더 집어 준다든지 번데기를 꽉 채운 후 국물까지 자북이 넣어 주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이 생겼다. 그런데 이런 분이 잠바를 1500장이나 기부한 기업체의 사장님이라니? 사실 나는 며칠전 이 기사를 신문을 통해 어렷풋이 본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놀라운 사실에도 불구 이때 미용실안의 아가씨나 손님들은 제각기 바빠 아무도 이 말에 주목하지 않았다. 나만이 그때 내 앞에 영웅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 친구분에게 다가가 “저 분이 며칠 전에 신문에 난 그분입니까?”했더니 나에게 “그 기사 봤나요. 예. 바로 그분이에요.”한다. 나는 그 순간 ‘이런 영웅이 나랑 같은 서민 미장원에서 같이 이발을 하다니 이런 영광이…….’하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분에게 “저분에게 좀 사인하나 받을 수 없나요?”했더니 그 친구분 큰소리로 “야! 너에게 이분이 사인 좀 해 달래!”라고 소리치듯 외쳤다.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고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으니…….이런 소란에 겸연쩍은 듯 말없이 빙그레 웃으시던 아저씨는 머리를 다 깎고나서 재차 다가가 부탁하는 나에게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별 일도 아닌데……. 제가 사인은 누구에게 해 준적이 한 번도 없고 명함이나 한 장 드리지요. 제 가게로 오시면 제가 옷 한 벌 드리지요.”하시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이 옷 한 벌이란 말에 귀가 솔깃해진 대중들은 “저도 사인 하나 해 주세요.”하고 늑탈같이 달려들었다. 나는 이날 졸지에 영웅도 만나고 옷 한 벌까지 공짜로 생기게 됐으니 어찌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명함을 보니 이분은 VISION sports wear의 대표이사이신 이인희 사장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도네이션이란 것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올 해 세계에서 제일 갑부인 빌 게이츠가 전 재산을 기부하여 재단을 만들기로 한 이후 세계 2위의 갑부인 웨렌 버핏이 그 재단에 300억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세계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는 평소에 내가 즐겨 입는 닥커(중저가의 캐주얼 브랜드)를 즐겨 입고 웨런 버핏은 아직도 몇 십 년 전에 5만 불 주고 구입한 낡은 집(빌 게이츠가 놀러 갔는데 의자에 방석 하나 없다고 불평함)에 산다고 한다. 미국 부자들 참으로 멋있다. 그런가하면 아버지가 물려준 기업을 이어받아 몇 십 개의 계열회사를 거느린 회장이니 뭐니 하며 수십 년간 개폼 잡다가 지 자식에게 또 다시 불법으로 회사 물려주려다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 부자들을 생각할 때 씁쓸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한편 가끔씩 신문에 나는 김밥 팔아 평생 모은 전 재산 장학기금으로 기부한 김밥집 할머니 등 내가 아는 도네이션은 모두 신문지상에서나 볼 수 있는 나와 관련 없는 먼 곳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 주변에서 이러한 주인공을 실제로 만나니 감개가 무량한 것이다. 자신은 8불짜리 머리를 깎으면서 몇 만불이나 되는 기부를 흔쾌히 할 수 있는 이인희 사장님 같은 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다.
며칠 후 신문에서 ‘부자근성, 거지근성’이라는 이기희(윈드화랑 대표)님의 칼럼을 읽었다. 내 개인적으로 나는 이분의 칼럼을 매우 좋아한다. 그림을 그리신 분이 어쩌면 글도 그렇게 잘 쓰는지 모르겠다. 칼럼의 뒷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부자의 가장 으뜸 되는 덕목은 나눔이다. 나눔의 정신이 사회화한 대표적인 행위가 기부이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이 이 시대의 진정한 부자로 칭송받는 건 그들이 번 돈의 액수가 아니라 이웃과 사회에 바친 기부금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은 수표가 들어 있어요.‘check enclosed'라고 시인 도로시 파커는 말한다. 미국인들이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보낼 때 봉투 위에 즐겨 적는 단어다. 미국인의 작년 한 해의 기부금은 총 2034억 달러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이 중 75%는 평범한 개인이 낸 돈이다. 미국인 중 98%는 어떤 형태로든 기부금을 내며 1인당 연평균 기부금 액수는 70만원이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부금은 5800원으로 그 중 연말의 반짝 후원금이 70%를 차지한다.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이 측은지심이다. 맹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며 인간됨됨이의 근본이라고 했다. 욕심을 버리면 얼마나 많은 축복을 누렸는지 왜 그 축복을 나누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칼럼을 읽고 왠지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초라해지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물론 부자가 아니니까 도네이션과는 상관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라고 맹자님까지 들먹이며 은근히 위협(?)하는 이 필자에게 세상에 불쌍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강변하며 반평생을 살아온 내가 왠지 켕기는 것이다.
그래, 살다보면 운수 좋은 날도 있는 법이다. 올해도 다 저물어 간다. 측은지심이란 한마디로 짠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나를 떠나 남들에게 짠한 마음을 갖는 것, 그런데 누군가가 짠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년에는 정말 찐하게 사랑 한 번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