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가 70%에 가게 낙찰… 정부 물건 ‘공매 재테크’
[위클리 리포트]정부 공매서 숨은 보물 찾는 사람들
도입 20년만에 거래액 100조… 알짜 투자수단으로 인기몰이
‘없는 게 없는’ 공매의 세계
《루이비통 백, 음료수 자판기 운영권, 텃밭, 전직 대통령 사저…. 공매는 이 모든 걸 판매하는 ‘온라인 만물상’이다. 투자 고수나 알뜰한 소비자들은 경매에서 공매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공매에서 ‘숨은 보석’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다양한 공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공매에서 숨은 보석 찾는 사람들
직장인 A 씨는 지난해 수입 오토바이 한 대를 저렴하게 사려 공매 사이트를 뒤졌다. 한 달을 기다리니 원하는 모델이 등장했다. 최근에 650만 원대에 낙찰됐다가 다시 공매에 오른 물건이었다. A 씨는 최근 낙찰가보다 소폭 낮은 510만 원대에 입찰했다. 20여 명이 몰렸지만 결국 A 씨가 입찰가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차순위자가 나보다 약간 낮은 금액에 입찰했더라. 공매 낙찰의 짜릿함을 느꼈다”고 했다.
요즘 투자 고수나 알뜰한 소비자들은 공매의 세계에 눈을 뜨고 있다. 법원이 진행하는 경매는 대중화되면서 경쟁률과 낙찰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주로 공공기관이 압류한 물품을 파는 공매는 상대적으로 ‘블루오션’이다. 공매 품목은 흔히 알려진 부동산 외에도 롤렉스, 루이비통 등 명품, 미술품, 자동차, 골프 회원권, 특허권 등 다양하다.
○ 올해 누적거래 100조 원 전망
공매는 대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전자입찰시스템 ‘온비드’와 관세청에서 진행된다. 온비드의 공매 대상은 세무서나 검찰 등의 압류자산,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이 내놓은 국·공유재산 등이다. 세관공매는 면세 한도를 초과한 물품이나 적발된 밀수품 등이 주로 대상이 된다. 관세청은 수탁 판매기관을 정해 온·오프라인으로 공매를 진행한다.
공매의 대표적인 장점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초 입찰가격은 시세와 비슷한 감정평가액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압류자산은 한 번 유찰될 때마다 입찰 가격을 10%씩 내린다.
대부분 온라인으로 입찰을 진행하기 때문에 경매처럼 법원을 직접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물건 종류도 다양해 ‘온라인 만물상’으로 불린다.
주로 대상이 국가 재산이기 때문에 허위 매물이 없다는 점도 매력이다. 공매 물건은 저렴하면서도 거래 과정이 투명한 편이다. B 씨는 공공기관들이 좋은 입지에 확보해둔 사택에 주목했다. 부산 사하구에 한국수자원공사가 사택으로 소유하던 아파트를 2014년 2억4200만 원에 낙찰받았다. 당시 아파트 실거래가가 3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시세 대비 저렴했다. 이 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5억3000만 원으로 불었다.
이런 장점 덕에 공매 참여자들이 늘고 있다. 캠코에 따르면 온비드는 20주년을 맞은 올해 누적거래액이 1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 은퇴 자금 모을 ‘부업’의 기회
최근 은퇴를 준비하는 중장년층은 공매로 노후 자금을 모으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공매는 노후에 취미를 즐길 기회도 준다.
40대 주부 C 씨는 지난해 남편이 갑자기 은퇴를 하게 되자 공매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도전한 공매 대상은 군부대 병영생활관 ‘자판기 운영권’. 병영생활관에 자판기를 둘 공간을 최장 5년간 임차하는 조건이었다. 그는 연간 임차료 170만 원에 낙찰을 받았다. C 씨는 “음료수가 다 떨어질 때 채워 넣어야 하긴 하지만 휴일에도 새벽에도 매출이 일어나 뿌듯하다”며 “월 30만 원의 수익을 예상하고 운영했는데 목표보다 많은 수익이 나고 있다”고 말했다.
60대 주부 D 씨는 공매로 ‘인생 2막’을 열었다. 그는 노후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장사를 해보려 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옛 파출소 건물이 공매에 나왔다. 최장 10년 임대하는 조건이었다. 1년 임대료인 최초 입찰가격은 1175만5000원. 하지만 D 씨는 감정가의 70%인 823만 원에 낙찰받을 수 있었다. 공매가 네 번이나 유찰돼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과 함께 직접 건물을 리모델링해 카페를 열었다.
50대 남성 E 씨는 부인과 함께 강원 원주의 토지에서 텃밭을 가꾸고 부시크래프트(친환경 캠핑)를 즐긴다. 572m² 규모인 토지를 공매로 811만 원에 낙찰받은 덕이다. 이곳은 주변에 도로가 없어 여러 차례 유찰돼 낙찰가가 최초 입찰가의 절반 수준이 됐다.
○ 롤렉스, 루이비통에서 대통령 사저까지
공매 수요가 가장 많은 분야는 부동산이다. 고가의 부동산이 저렴하게 등장해 입찰자가 우르르 몰리기도 한다. 이지스자산운용은 2020년 서울 강남구 삼성월드타워아파트를 매수하는 과정에서 편법 대출 논란이 일자 아파트를 한 채씩 공매했다. 당시 한 채당 입찰가격이 시세보다 5억 원 이상 낮아 ‘로또’라 불렸다. 28채 공매에 4083명이 몰렸다. 경쟁률이 145 대 1이나 됐다.
자동차 공매는 허위 매물이 없어 인기다. 정부 공공기관의 관용차는 운행거리 대비 관리상태가 양호해 연간 8000대 이상 거래된다. 이렇다보니 입찰참가율(입찰건수 대비 낙찰건수의 비율)은 △2019년 67.9 대 1 △2020년 69.9 대 1 △지난해 75.7 대 1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 연천군청에서 내놓은 6인용 캠핑용 트레일러는 감정가(280만 원)의 두 배가 넘는 591만 원에 낙찰됐다.
명품 거래도 눈에 띈다. 지난해 온비드에서 거래된 명품 브랜드 제품은 △롤렉스 7개 △에르메스 4개 △샤넬 15개 △루이비통 27개 등이었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내놓은 오데마피게 ‘로열오크’ 금통 풀다이아 모델은 최저 입찰가가 8000만 원이었지만 1억790만 원에 낙찰돼 눈길을 끌었다. 슈퍼카인 부가티 ‘베이론’과 7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도 거래됐다.
역대 가장 입찰가격이 높았던 물건은 서울 강남구의 옛 한국전력 본사 부지다. 2014년 현대자동차그룹이 10조5500억 원을 써냈다. 낙찰에 성공해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캠코 관계자는 “관심이 있는 물건이 있다면 비슷한 물건이 과거 얼마에 낙찰됐는지 참고해 입찰 가격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등기부 권리관계 따져보고, 상가는 현장 상권분석 필수
공매,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공매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부동산은 입찰에 참여할 때 권리 관계를 잘 확인해 둬야 한다. 권리 관계를 분석하지 않고 입찰에 참여하면 예기치 못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
25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따르면 공매가 가장 많이 진행되는 분야는 아파트, 상가, 토지 등 부동산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입찰에 참여할 때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통한 권리분석을 꼭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입자 존재 여부, 권리자들에게 배분되는 금액 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입찰에 참여했다가는 입찰 금액과 별도로 추가 비용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공공기관이 압류한 부동산은 낙찰되면 낙찰자가 낸 입찰금을 권리자들에게 배분한다. 배분할 금액이 낙찰 금액보다 큰 경우엔 추가 비용이 들 수 있다.
상가에 입찰할 때는 권리분석은 물론이고 반드시 사전에 현장을 방문해 주변 상권을 분석해야 한다. 서류로는 확인할 수 없는 상권의 특징을 파악해야 투자 가치를 제대로 따져볼 수 있다. 토지나 건물에 입찰할 땐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다를 수 있으니 확인해 봐야 한다.
부동산 공매 가운데는 재개발 지역 내 도로가 ‘알짜 공매’로 꼽힌다. 보통 재개발 지역 내 주택에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도로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입주권을 얻을 기회를 준다. 김헌식 지우옥션 이사는 “재개발 지역 도로는 90m² 이상 면적을 소유하고 있으면 입주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매로 나오는 경우 경쟁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강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