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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 masters Xavi and Iniesta are just two talents to emerge from the Barcelona academy which Van Gaal built
Sunday, 11 July 2010
화려한 이력의 팀들이 쌓아온 명성을 쉽게 잃었듯이 이번 월드컵 성공팀들의 공통점을 찾기 어렵지만
성과를 거둔 팀들 대부분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루이스 반 할이다.
4강팀 중 세 팀에 그의 종적이 남아 있다.
요하임 뢰브는 대회 전에 자신이 바이에른 뮌헨 감독과 리호화 와인 한 잔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며
반 할 감독이 국대 캠프로 보낸 선수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던 것을 스페인과의 4강전이 벌어지기 전에 상기해 보았는데
암스테르담인 반 할에 대한 흥미로운 충성 갈등이 생겼을 것이다.
아약스에서 네덜란드 축구 발전에 일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 델 보스케 지휘아래 월드컵 참가 중인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몇몇 선수들을 키워낸 바르셀로나 유스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이 반 할이니 그런 충성 충돌이 생길만 하다.
" 나는 우리 유스 시스템으로 키워낸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으로 유럽 대회를 우승하는 것을 꿈꿉니다."
1998년에 바르셀로나에서 첫 임기를 맡을 때 반 할이 했던 말이다.
12년 만에 그는 자신이 스페인 국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파라과이와의 8강전에 나온 선수들 중 7명의 선수들이 그가 구축한 바르샤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배웠다.
반 할이 카탈로니아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주위의 조롱도 있었지만 네덜란드인은 라 마시아로 알려진 우아한 18세기
농장건물인 클럽 하우스 중심부의 바르샤 유스 시스템에 대대적인 정비를 하였다.
소년들은 13세 부터 바르셀로나 스타일로 훈련을 받으며 그곳에 머문다.
반 할은 패싱 게임 스타일이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패싱 게임에 대한 첫 매료는 그가 1991년 아약스 감독이 되었을 때 드러났고
상대팀이 내준 공간을 찾을 때까지 그의 선수들에게 끈임없이 공을 돌리도록 주입한 신조를 도입하였다.
이 네덜란드팀이 보이즈팀으로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을 지녔던 파비오 카펠로팀 밀란을 무찌르는 등 1996년까지
챔스 결승에 두 번 오르게 된다.
그들은 그 당시 집단주의가 반 할이 선호하는 네덜란드 축구 언어라고 말하였다.
그는 선수들이 공동체 정신이 확고한 지 보기위해 영입 가능선수들을 인터뷰하였다.
그 문화의 깊이는 분명 스페인의 4강전 경기에서 드러났다.
반 할이 감독으로 두 번의 임기 중 첫번째 시기인 1997년 바르셀로나를 맡았을 때 어린 선수들은 그를 매우 좋아하였다.
사비는 그의 특별한 방식의 플레이가 그에게 바르샤 데뷔 기회를 준 반 할 덕임을 알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인터밀란에 패하며 챔스 결승에 반 할의 바이에른과 인터밀란이 만나긴 했지만 그 전에
사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결승에서 반 할 감독님 팀과 맞붙게 된다면 굉장히 멋진 경기가 될 거예요
전적으로 감사드리며 그 분에게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때때로 펩 과르디올라 감독님보다 저를 더 중용하기도 하셨죠. 전 18세 밖에 되지 않았었는데요.
반 할 감독님은 굉장한 분이셔요 "
반 할은 또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카를로스 푸욜에게 기회를 주었다.
푸욜은 아직까지도 그에게 문자를 보내고 사비롸 이니에스타는 푸욜을 통해 그와 연락을 취하고 있다.
펩 과르디올라 어머니인 돌로스여사는 그녀의 아들이 반 할의 바르셀로나에 들어갔을 때 소리를 지르던 모습을 회상하였다.
" 봐요 엄마 " 그가 소리질렀다. "창문밖을 내다볼 때마다 누 캄푸가 보여요 "
스패인의 터치 패스 게임의 진화에서 반 할의 역할에 네덜란드와 스페인 커넥션을 빼놓아서는 안된다.
물론 요한 크루이프는 반 할이 아약스에서 바르셀로나로 도입하기에 앞서 자신이 스페인팀에게 패스 게임을 가르치는 과정을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말을 섞는 사이는 아니지만 축구와 관련해선 같은 언어를 쓴 것이다.
스페인 선수들 또한 반 할을 경외시하는데 그가 원칙에 매우 충실하였기 때문이다.
반 할은 바르샤에서 최고 선수인 히바우도와 옥신간신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브라질인이 패싱보단 드리블하는 성향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의 고압적인 태도는 많은 사람들과 불화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3년 동안 두 번 스페인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 그 분은 모든 세세한 것까지도 알아차리셨어요 " 과르디올라가 그에 대해 말하였다.
그의 제자 중 또 다른 한 사람은 그를 위해 스카우팅 보고서를 작성했던 조세 무링요라는 젊은 통역가가 있었다.
무링요는 반 할에 대해 스페인 선수들만큼 맹목적이진 않았지만.
" 나는 그의 신봉자가 아닙니다. " 챔스 결승에서 반 갈과 맞딱뜨리게 되었을 때 그가 말하였다.
" 바르셀로나와 같은 위대한 클럽에서 3년 동안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기회는 굉장했지만 난 빚을 갚았습니다. "
반 할의 냉담한 반응에서 무링요가 그의 원칙을 고수하지 않았다는 실망감이 비쳐졌다.
" 그는 우리가 함께 일할 당시에는 굉장히 겸손했는데요.
그에게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는데 현재 그는 오직 이기기 위한 플레이를 합니다, "
그러한 반 할의 원칙들은 최근 몇 년사이 수정되어왔다.
그가 네덜란드 팀을 맡을 동안에 그는 수비가 굉장히 집중력이 높으면 끝없는 패싱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었다.
그의 새로운 압박(집착) 축구는 상대팀이 볼을 내주고 취약해지는 순간을 집중하게 되었다.
뢰브의 2010 월드컵 팀은 반 할의 그러한 축구관을 어느 정도 제시하였는데
오늘 스페인 팀이 선보일 것은 반 할의 초기 패싱 원칙일 것이다.
It has been hard to find the common causes of success in this World Cup, where reputations have been broken as quickly as they were made, but Louis van Gaal is the red line running through most of the sides which have prospered. Three of the semi-finalists bore his imprint.
Joachim Löw acknowledged before Wednesday's semi-final with Spain that he had met the Bayern Munich coach for dinner and a glass of Rioja before the tournament to discuss the talent which he had sent up to the national camp and, had the Germans prospered, it would have created an interesting conflict of loyalties today for Van Gaal, an Amsterdammer.
As things have transpired there is a conflict anyway, Van Gaal being the man who, as well as helping develop Dutch football at Ajax, set about reforming the youth system at Barcelona which has spawned some of the finest talents now performing for Vicente del Bosque.
"I dream of the team winning the European Cup that is composed entirely of players from our youth system," Van Gaal said during his first spell at Barcelona in 1998, and 12 years on he can claim to have contributed handsomely to Spain's national side. Seven Spanish players who finished the quarter-final against Paraguay learned their football at Barça's academy, which he built up.
There were sneers when Van Gaal set about his work in Catalonia, but the Dutchman overhauled the Barça youth system, which is centred on the club's own boarding house, an elegant 18th Century farmhouse known as La Masia. Boys from out of town still stay there from the age of 13, taking lessons while being coached in the Barcelona style.
Van Gaal decreed that style was to be a passing game. His first fascination with it was to be found when he became coach at Ajax in 1991 and introduced a creed based on his players passing the ball endlessly until they found any space the opposition provided. It took the Dutch side to two Champions' League finals by 1996, beating Fabio Capello's Milan with something resembling a boys' team in one of them. They say that collectief was Van Gaal's favourite Dutch word back then. He interviewed prospective signings to see if they were collectivist enough. The depth of that culture was certainly evident in Spain's semi-final display.
When Van Gaal moved to Barcelona in 1997 for the first of two spells as manager, the young players loved him. Xavi acknowledges that he owes the particular way he plays football to Van Gaal, who gave him his Barça debut. Before Barcelona were beaten by Internazionale en route to May's Champions' League final with Van Gaal's Bayern, Xavi told La Vanguardia: "I find it beautiful that we might play against Van Gaal in the final. I appreciate it tremendously and I owe much to him. Sometimes he even preferred me over Pep Guardiola, and I was only 18. That's quite a bit. Van Gaal is a formidable guy."
Van Gaal also gave Andres Iniesta and Carles Puyol their breaks. Puyol still texts him. Xavi and Iniesta communicate with him through Puyol. Pep Guardiola's mother, Dolors, recalls her son's excitement when he arrived to take his place in Van Gaal's Barcelona. "Look, Mum!" he shouted. "Every time I look out of the window, I can see the Nou Camp."
Van Gaal's role in the evolution of the Spanish touch-and-go game is by no means the only Dutch-Spanish connection. Johan Cruyff, of course, can argue that he began that process of teaching the Spanish to pass, having preceded Van Gaal from Ajax to Barcelona. The two men don't speak but they do speak the same language where football is concerned.
The Spanish players also adored Van Gaal because he was so true to the cause. Van Gaal squabbled with his best player at Barça, Rivaldo, because the Brazilian was so intent on dribbling rather than passing – even though those dribbles had a habit of winning matches. His imperious manner saw him row with many others as well but he still won two Spanish titles in three years. "He really notices every detail," Guardiola said of him.
Another of his pupils was a young interpreter called Jose Mourinho, who wrote scouting reports for him, though Mourinho is not quite so doting as the Spaniards. "I am not his disciple," Mourinho said when he and Van Gaal came face to face in the Champions' League final. "Having the opportunity to work with him for three years at a great club like Barcelona was fantastic but I paid my debt." The froideur of Van Gaal's response reflects a disappointment that Mourinho has not adhered to his principles. "He was very modest back then when we worked together. I taught him a few things but now he plays only to win."
Those principles have been modified in recent years. It was while coaching the Dutch national side that he concluded defences had become too sharp to succumb to endless passing. His new obsession became focusing on the instant when a team loses the ball and are therefore vulnerable.
Löw's 2010 World Cup side demonstrated some of that outlook, though it will be Van Gaal's earlier principles to which the Spanish will return today.
http://www.independent.co.uk/sport/football/world-cup/the-man-who-taught-spain-to-play-20238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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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흠....이건 반할에 대해서 미화된 부분이 조금 있는 거 같군요. 반할이 바르셀로나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였던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할이 기용했던 유스 선수들의 대부분은 크루이프 롭슨 시절에 육성되었던 선수들이고, 펩은 크루이프 시절이었죠. 게다가 97-98,98-99 시즌은 히바우두와 피구, 루이스 엔리케등이 날아다녔던 시즌이었고 더치 커넥션이다 뭐다 해서 오히려 스페인 선수들에게 기회가 안돌아온다는 말이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시 바르샤로 컴백했던 02시즌에서는 여전히 제기량을 가지고 있던 히바우두를 내치죠. 그리그 그가 맡았을때 당시의 바르샤 축구가 점유율 패싱게임이었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죠.
이 원문글의 댓글에도 넌센스라고 되어 있더군요. 스페인 팀을 대표로 반 할의 업적을 말하고 있지만 4강에 오른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모두 반 할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기사 같습니다
결국 이 조합은 아라고네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