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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연금
松 鶴 김 시 종
가을이 저물어 간다.
산과 들판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수채화를 그린 듯하다. 이따금 단풍잎은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흩어지면서 행인들의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동산의 은행나무도 무성했던 잎들이 계절이 바뀌자 새로운 옷으로 곱게 몸단장을 하고 있다.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깊어만 간다.
나의 공직생활도 이제는 단풍이 붉게 물든 것처럼 황혼에 물들고 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더니 공직을 떠난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고희를 넘겼다고 생각하니 무정한 세월처럼 빠른 것이 없는 듯하다. 흔히 하는 이야기가 나이를 먹으면 세월도 먹은 나이만큼 빠른 속도로 간다고 한다. 하루가 시계추와 같다더니 세월도 화살촉처럼 빨랐다. 가는 세월 잡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세월만큼 허황스러운 것도 없는 듯하다.
내가 퇴직할 시기는 외환 위기가 극심했다. 퇴임 날자가 결정된 공무원 중에는 연금을 선택해야 될지 일시불로 수령할지 망설이는 사람이 많았다. 정부에서는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금 모우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아내는 정부 방침에 호응이라도하듯 돌반지며, 팔찌, 목걸이 등으로 동참하였다. 일부 공직자는 정말 이러하다가 국가가 부도날까 싶어 노심초사하는 빛이 역력했다. 막상 퇴직이 결정된 공직자도 어떤 선택이 좋을까 싶어 고심하는 듯했다. 그 때는 금리가 턱없이 높았다. 높은 금리마저 시대 흐름에 비례했기 때문이다.
나는 공직생활을 통하여 자식 남매를 키우며 먹이고, 입히고,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나라의 재정 상태가 나빠지자 퇴직 공무원은 연금보다 일시불로 수령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나는 이십 년 연금을 선택하고 일부는 일시불로 현금을 수령하였다. 설령 국가 위기로 연금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쪽 같은 연금이지만 최저 생활비는 되리라 판단했다. 처음 받은 연금 수령액이 84만원이었다. 지금까지 수령한 연금 금액만 하더라도 일시불로 수령한 돈보다 많았다.
연금도 공무원의 봉급 인상만큼 매년 올라갔다. 지금에 와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연금만큼 좋은 효자는 없는 듯하다. 아내는 적은 돈이지만 규모 있는 살림을 꾸리기 위해 해질 무렵 재래시장을 찾아 다녔다. 요즈음 같이 비정규직이 허다한 시절에 어느 자식이라 하더라도 부모의 생활비를 매월 보내 주는 것도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내는 그때 연금 선택을 잘했다고 한다.
이젠 우리나라도 노령화 사회가 가속화 되고 있다. 양질의 의료 기술이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놓았다. 사람의 생명이 존엄한 것처럼 늙은이도 몸이 불편하면 동네의원이나 종합병원을 찾은 사람이 많아졌다.
아내와 나 사이에는 연금이 생명 줄과 같다. 매월 지정된 날짜에 연금이 입금된다. 이 연금만 하더라도 고령화 시대에 노후 대책은 세운 셈이다. 나는 경찰관으로 퇴직 후 손해보험 대리점 영업을 10년 이상 경영하였다. 회사에서는 소(小)사장들의 영업 실적을 올리기 위해 체력 단련으로 산행을 실시했다. 체력이 좋아진 만큼 영업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산행을 통한 삶의 보람과 희열을 맛보았다. 산행시 유산소 운동이 노년층의 건강관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에게 축적된 산행 경험을 의미 있는 곳에 반영하고 싶었다. 노인이 건강하면 집안이 편안하고, 자식에게 경제적 도움도 주며, 국가 의료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경우회 이사회 때 산악회 창립을 발의했다. 몇몇 사람을 규합하여 경우산악회를 창립시킨 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이 모든 것이 연금이란 효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배움터 지킴이 선생으로 재직하면서 손자, 손녀와 같은 아동들의 안전과 봉사 활동으로 활기찬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세상은 영원할지 몰라도 인간의 생명은 한계가 있듯이 나도 언젠가는 이 생명 다할 때가 된다면 자식처럼 아끼던 연금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조강지처인 아내에게 주고 싶다. (尾) 2011년 11월 7일.
첫댓글 송학 성님께서는 참으로 열심히 사셨지요 공무원시절도 지금도 말입니다. 부지런 하고 박식한 삶 그리고 많지않은 효자 연금으로 동기회에도 자주 협찬하였고 경우산악회도 잘운영하신다고 알고있습니다 제가 총무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부디 3,2산악회도 잊지말아주셨으면하는 부탁을 드리고 싶네요 형은 대구 상고 32회 출신이잖아요,
강천 ! 신묘년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지나온 1년간을 돌이켜 보면서
우리 모두가 이제는 고희를 넘기고 아름다운 황혼기를 맞이하고 보니
무엇보다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복된 일이며,
이 송학도 부지런히 열심히 살다보니 늦게 시작한 글쓰기에도 결실을 보니
그것 또한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되는구려 !!! 송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