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감사
신명기 26:5-10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1년 내내 감사절이지만, 또 어떤 사람은 감사를 모르고 무심히 살기도 한다.
감사드리며 사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감사는 내 인생에 더하는 기쁨이고, 만족이다. 날마다 내 인생 감사를 고백하며 사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감사일기를 쓰는 사람도 있다. 나도 매일 ‘일용할 성찰’ 기록에 한 가지 이상 감사를 고백하는데 감사의 내용을 생각하다 보면 별별 것이 다 감사 이야기가 된다.
감사는 가장 어려서부터 배운 삶의 첫 번째 지혜이고, 가장 끝까지 가슴과 입술에 담아야 할 마지막 예절이다.
흔히 중요한 것에 인생이란 말을 붙인다. 인생이란 말이 유행이 되어 특별한 경우마다 ‘내 인생...’이란 말을 잎에 붙인다. 의미를 부여하여 두고두고 새겨두려는 의도이다. 예를 들어 ‘내 인생 맛집, 내 인생 사진, 내 인생 선물, 내 인생 성적표, 내 인생 칭찬, 내 인생 감격...’ 등, 오죽하면 우리 색동가족 중에 ‘내 인생에 치과’도 있다.
오늘은 ‘내 인생 감사’를 생각해 보자. 세상에 감사가 얼마나 흔하면 감사 앞에 ‘만(萬) 가지 감사’라고 할까? 그중에 내 몫의 감사는 얼마나 귀할까?
1)
오늘은 감사절 예배로 드린다. 감사는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세시 풍속의 중심은 감사절이었다. 추수가 끝난 음력 시월을 ‘상(上)달’이라고 하여,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전통이 있었다.
감사는 참 소중한 귀한 마음이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앞으로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한 중요한 팁을 하나 드린다. 언제든 ‘고맙습니다’라는 감사 표현을 잘하면 된다.
심지어 해외여행을 나가서도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감사의 인사이다.
‘땡큐, 메르시 보꾸, 아리가또, 씨에씨에, 깜언, 당케 쇤, 사스 유카리스토, 스파씨바, 그라시아스...’
오늘 읽은 신명기 말씀은 감사절의 원형이 되는 말씀이다. 히브리 민족이 처음 민족 차원에서 드린 감사절 고백이다. 그들은 종살이하던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헤매던 끝에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 처음 농사를 짓고 수확물로 얻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제사장은 첫 곡식을 수확한 후 한 광주리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와 바쳤다. 그러면서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데, 놀랍게도 그 감사의 내용에는 단순히 그해 거둔 곡식만이 아닌, 조상들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그들의 인생 전체에 대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린다.
그들이 드린 감사문은 조상들의 역사를 회고하며 시작한다. 애굽의 종살이로 얼마나 고역을 겪었고, 출애굽 해방의 감격을 경험했으며, 또 광야에서 유랑하며 고생했고, 어떻게 가나안에 정착했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감격적인 첫 수확물을 거두면서 감사드렸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10).
겨우 여섯 절에 불과하지만, 아브라함부터 출애굽은 물론 지금,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역사를 압축한 매우 역사적인 문구이다. 이렇게 감사는 과거의 유산일 뿐 아니라, 새 세대와 새로운 시대를 향한 것이다. 그들에게 감사는 하나님과 매여있는 운명적인 고백이었다.
우리 중에 나 홀로 살아온 사람은 별로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운명적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내 사랑하는 가족과 만남은 얼마나 운명적인가? 어쩌다 어쩌다 색동교회에서 신앙공동체로 살아가는 일도 놀라운 만남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살아간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참 고마운 내 인생이다.
2)
오늘부터 겨울 날씨처럼 느껴진다. 어느 탈북인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한 ‘낮은 목소리’에서 진나리 님은 요즘처럼 점점 추워지는 날씨 이야기를 한다. 북에서 온 나그네들인 그들이 가장 적응하기 힘든 일은 날씨였다고 한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남한을 찾아온 그들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볼까? 진나리 님의 고향은 중강진이다. 중강진은 한반도에서도 가장 추운 고장인 백두산 아래이다. 그는 북한에서 살 때 변변히 입지 못하고 추위에 떨었기 때문에 뉴스에서 춥다고만 하면 모든 옷을 껴입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지하철과 건물사무실은 너무 따듯해 옷을 주체하지 못해 혼이 났다고 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 옷을 적게 입으니 이번에 추워서 영락없이 감기에 걸렸다. 사람들은 백두산 아래 살던 사람이 왜 그리 골골하느냐고 놀렸다.
비로소 추위에 적응한 그는 ‘따듯한 나라’에서 살게 된 것에 대해 큰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고 썼다.
“1년 열두 달 끊이지 않고 공급되는 전기, 따듯한 물, 가스 등 모든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 우리는 이런 당연한 일에 별로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 어떤 사람에게 감사할 마음이 드는 일은 사치스러울 것이다. 얼마나 딱한 인생인가? 그런데 다른 곳에서 온 탈북인이기에 그런 감사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요즘 경제가 전부인 시대가 되었다. 흔히 ‘먹고사니즘’이라고 말한다. 경제도 먹고 사는 일의 한 부분일 뿐인데, 마치 행복과 미래를 모두 좌우하는 모든 가치처럼 생각한다.
사람들마다 평범한 희망이 있다. ‘제 때에 밥을 먹고, 제대로 일을 해서, 평안히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한테 사람이 먹히고,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한테 사람이 치이고, 사람이 잠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잠에 빠져 산다. 그래서 불편하고, 불안하고, 병에 걸린다.
‘마더’라는 영화가 있다. 한때 드라마마다 국민 어머니 역할을 하던 김혜자 님이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마더’란 영화에서 김혜자 님은 어수룩하고 앞가림을 못하는 바보의 엄마 역할을 하였다. 못난 아들은 수시로 사고를 치는데, 행여 아들이 억울할까 싶어 엄마는 악착같이 감싸고 편을 든다. 바로 우리들 어머니처럼 말이다.
한번은 아들이 우연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경찰도, 변호사도 믿을 수 없으니 엄마는 아들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모진 애를 쓴다. 결국 자기 아들은 혐의를 벗지만, 엉뚱한 다른 사람이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렸다. 그때 어머니는 그 어수룩하고 억울한 범인에게 물었다.
“넌 엄마가 없니?”
엄마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힘인가?
부모가 없는 사람을 고아라면,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을 영적 고아라고 부른다. 엄마의 마음 없이 살기도 벅찬데,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각박할까?
공감하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 다른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탈북인이나, 어머니라는 내 편이 없는 그 바보 아들처럼 종종 자기 운명을 원망하기도 하고, 자기 원망이 어떻게 흘러갈지 두려워한다.
성경은 모든 인간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 누구나 부모님의 사랑의 둘레에 머물러 있듯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의지하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무엇보다 우리는 내 인생을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3)
우리나라 작가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님이 쓴 ‘서시’(<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가 있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
최근 내 인생 만남이 있었다. 지난 10월 30일에 부산에서 색동교회까지 찾아오신 할머니가 있었다. 무작정 오신 것이다. 오늘이 수요일이니 목사를 만날 수 있으려니 믿었다. 교회에 도착해 간판에 있는 전화를 걸어서, 결국 그 시간 김포에서 독일손님을 만나 점심을 먹는 나와 연결되었다.
그 이유는 텔레비전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나를 주일 아침마다 보고 그리고 교회에 가셨다고 한다. 꼭 만나고 싶어서 부산에서 KTX를 타고, 수원에서 색동교회가 있는 줄 알고 의왕역까지 전철로 와서, 그곳에서 색동교회까지 택시를 탔다. 물론 만나지 못하고 다음 날을 기약하였다.
그날 밤, 부산에 잘가셨냐고 전화를 하니 “배보다 배꼽이 크데예”하시더라. 그러면서 자초지종 사연을 설명하셨다. 목사님 만나러 가는데 손부끄러울까 싶어 천을 떼어다가 십자가를 만들었어요. 손이라도 잡고,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서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앙모합니다. 팬이예요. 87살 할머니가 사모하니 용기백배 하세요.”
그리고 마침내 11월 8일에 색동교회에 다시 오셨다. 내가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2층 친교실에 들어보자 마자 십자가 벽을 바라보면서 성큼 절을 하신다. 땅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오오 십자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신다.
할머니는 말끝 마다 “목사님 맞지요? 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사모합니다”를 후렴구처럼 반복하셨다. 나중에 외국에 사는 딸이 귀국하면 다시 만나자고 하시더니 30분 후에 부산으로 휑하니 돌가가셨다.
그날 참 고마운 만남이었다. 내게는 ‘내 인생 만남’이다. 입에 감사란 말을 달고 다니던 할머니는 자신의 노년에도 당당히 살아가신다. ‘내 인생 감사’란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감사하는 마음은 그 자체가 소리 없는 기도”라고 하였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께 간구하면 주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늘 감사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다시 인생이다. 인생은 얼마나 다양하고, 또 기대할만 한가? 아기는 아기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청소년과 청년은 청춘 그대로, 그리고 중년과 장년, 또 노년의 삶까지 ‘내 인생 감사’는 차고 넘친다. ‘내 인생 감사’는 고맙고 또 빛난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늘 감사드리는 입술의 복을 주시길 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오늘과 장래, 모든 운명처럼 만나는 시간 속에서 진정한 ‘내 인생의 감사’를 드리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감사절이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