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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예천군과 용궁군이 따로 나뉘었고, 1896년 경상북도 경상북도 서북부에 자리한 예천군(醴泉郡)은 동쪽은 안동·영주시, 서쪽은 문경시와 접하고, 남쪽은 의성군·상주시, 북쪽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룬다. 지형적으로 북쪽은 묘적봉(1,148m)~뱀재~싸리재~저수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과 맞닿아 있고, 저수령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매봉(865m)~국사봉(728m)~꽃재~왕의산(339m) 지맥은 문경과 경계를 이루며 내성천과 금천 사이로 빠져나간다. 동북쪽은 백두대간 묘적령에서 가지쳐 나온 옥녀봉(890m), 자구산(784m), 부용봉(688m) 등이 솟아있고, 남쪽은 낙동강이 하회마을 하류의 구담교부터 의성과 경계를 이룬다. 예천의 고을 중에서 최남단의 풍양면만 낙동강 건너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의 내성천과 낙동강 사이에는 백두대간 옥돌봉(1,242m)에서 남쪽으로 가지쳐 봉화와 풍산을 지난 지맥에 학가산(870m)·보문산(643m) 등의 산이 우뚝 솟아 있다. 백두대간과 가까운 북부는 산간 지역이고, 서남쪽은 낙동강과 내성천이 빚은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전체적으로 북고남저의 지세를 이룬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수주현(水酒縣)이었고, 757년(경덕왕 16년)에 예천군(醴泉郡)이라 처음 불렸다. 고려 때에는 보주(甫州), 양양(襄陽)이라 했으며, 조선 태종 때인 1416년에 다시 예천군이 됐다. 에 속했다. 1906년 동로·화장면이 문경군에, 다인면이 비안군에 편입됐고, 1914년 용궁군이 다시 예천군에 통합됐으며, 1923년 안동군 감천면과 영주군 상리·하리면이 예천군으로 편입됐다. 1937년 예천면이 읍으로 승격됐다. 2003년 현재 예천읍을 비롯해 용문·상리·하리·감천·보문·호명·유천·용궁·개포·지보·풍양면 등 1읍 11면으로 되어 있다. 단술 예(醴) 자와 샘 천(泉) 자를 쓰는 예천(醴泉)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수주(水酒)에서 유래됐는데, 이는 고을의 물맛이 단술과 같다는 뜻이다. 예천읍 노하리에 이 유래와 관련 있는 샘이 있다. 경지면적은 총면적 661㎢ 중 30%인 198㎢. 그 중 논이 109㎢이고, 밭이 89㎢로 주산업은 농업이다. 주요 농작물은 풍양·지보·호명면의 쌀·보리, 용문·감천면의 고추, 보문·상리면의 잎담배, 감천·상리·지보면의 사과, 그리고 지보·풍양면의 감 등이다. 특산물로는 상황버섯·양란·영지버섯·옹골진잡곡·쪽파·참기름·토마토·표고버섯 등이 있으며, 예천 참우는 특허청에 상표등록이 되어 있는 고급육 한우로 유명하다. 임업(면적 368㎢)은 상리면·용문면·보문면 등 북부 산간지역에서 활발하며, 수종은 혼효림과 침엽수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선시대엔 문경새재와 예천 남쪽의 삼강나루로 영남대로가 지나면서 교통이 편리한 편에 들었다. 동북부에 인접한 영주에서 중앙선 및 영동선 철도가 연결되고, 경부선의 조치원역과 중앙선의 봉양역을 잇는 충북선이 예천읍을 지난다. 또 문경과 안동을 잇는 34번 국도가 동서로 관통하고, 남북으로는 상주·군위와 영주를 잇는 28번 국도가 지난다. 몇 년 전 영남 내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앙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 접근이 용이해졌다. 군청은 예천읍 노상리에 있다. ▲ 내성천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은 백두대간의 봉화군 물야면 선달산(1,236m) 남쪽 기슭에서 발원해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기까지 101.8km를 흐르는 강이다. 처음 신흥가계천이란 이름으로 봉화군 중앙부를 관류하고, 안동 북서쪽으로 적시고 흐르다가 영주시 문수면에 이르러서는 풍기·영주를 지나온 서천을 받아들여 덩치를 키워 남서류한다. 이후 호명면에선 백두대간 묘적봉(1,1148m)에서 발원해 예천읍을 적시고 온 한천을 받아들여 덩치를 한껏 키운다. 그 후 낙동강에 합류하기 직전의 용궁면에선 백두대간 대미산(1,115m) 동쪽에서 발원해 동로·산북·산양면 등 문경 동쪽 고을을 적시고 온 금천을 받아들인 뒤 곧바로 낙동강에 합류한다. ▲ 회룡포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내성천 자락에 있다. 강물이 용틀임하며 350도 휘돌아가는 회룡포는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동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육지 속의 섬마을’로 꼽힌다. 전망대가 있는 비룡산(240m)에는 내성천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는 숲속 등산로와 봉수대, 원산성 등 역사적 흔적도 살필 수 있다. 비룡산은 아기자기하고 힘들지 않아 산책 삼아 거닐기 좋다. 장안사~제1전망대(회룡대)~정상 봉수대~원산성~제2전망대~용포마을~제1전망대~장안사 코스가 2시간30분쯤 걸린다. 장안사~제1전망대~봉수대~제2전망대 코스는 왕복 30~40분쯤이면 충분하다. 통일신라시대의 운명선사가 세웠다는 고찰 장안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넓은 산길을 5분쯤 오르면 회룡포 전망대가 있다. ▲ 삼강나루 삼강은 내성천,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다. 예전에는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문경새재를 가기 전에 삼강나루터를 꼭 거쳐 갔다. 200년 넘은 회화나무 아래엔 낙동강 물줄기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주막이 있다. 현재 문화마을로 조성중인 삼강마을엔 1620년(광해군 20년)에 청풍자 정윤목이 세운 삼강강당(문화재자료 제204호)이 있다. 예천읍→28번 국도(상주 방향)→덕미리 삼거리(우회전)→59번 국도→4km→풍양면 소재지(우회전)→6km→삼강나루. ▲ 황목근 용궁면 금남리 금원 마을의 당산목. 수령 500년쯤으로 추정되는 팽나무로 높이 15m, 둘레 3.2m에 이른다. 기록에 의하면 황목근(黃木根)이라는 이름은 1939년 마을 사람들이 쌀을 모아 마련한 공동 재산인 토지를 이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하면서부터 유래됐다고 한다. 5월이면 누런 꽃을 피운다 하여 ‘황(黃)’씨 성과 근본이 있는 나무라는 뜻의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황목근은 10,067㎡의 땅을 소유하고 세금을 내고 있다. 마을에선 매년 정월 대보름 자정에 당제를 올리고, 다음날에는 온 마을 주민이 나무 아래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인다. 또 7월 백중날에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며 쉬면서 나무를 보살핀다(천연기념물 제400호). ▲ 석송령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입구에 서있는 수령 600년 이상 된 노송. 마을의 안녕과 단합을 지켜주는 동신목(洞神木)이면서 5,087㎡의 토지를 소유하고 재산세를 납부하는 부자 나무이기도 하다. 마을에선 석송계(石松契)를 조직해 이 나무를 보호하고 있으며, 정월 대보름 새벽에 석송령 아래 제단에서 제를 올린다. 나무높이 10m, 둘레 4.2m로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됐다. 전하는 말엔 600년쯤 전 풍기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 한 그루를 과객이 건져 올려 이 곳에 심었다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의 이수목이란 사람이 이 소나무엔 영험이 깃들어 있다 해서 이름을 석송령(石松靈)으로 지었다 한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이 나무 이름에게 상속하고 등기해 주었다. 이 때부터 이 나무는 재산세를 납부하게 됐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석송령에게 500만 원을 하사했으며, 그 기금으로 해마다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 명봉사 상리면 명봉리 백두대간 기슭의 명봉사(鳴鳳寺)는 875년(신라 헌강왕 원년) 두운선사(杜雲禪師)가 창건한 유서 깊은 절집이다. 백두대간의 깊고 고즈넉한 계곡에 자리한 절집 들머리 숲엔 소나무·전나무·느티나무 같이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어 여름철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다. 941년(고려 태조 24년)에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는 귀부와 이수의 조각이 선명하지만 아쉽게도 귀부의 거북이 머리가 떨어져나갔다. 비문은 고려 초기에 한림원령과 평장사를 지낸 문장가 최언위(崔彦僞)가 지은 것으로, 이두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꼽히며 금석문으로서의 사료가치도 매우 높게 평가받는다(유형문화재 제3호). ▲ 보문사 보문면 수계리 학가산(711m) 기슭에 위치한 보문사(普門寺)는 676년(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이 창건한 절집으로 예천에선 가장 오래 됐다. 그 후 여러 차례 재난을 만나 거의 폐사가 된 것을 1185년(고려 명종 15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극락전을 비롯해 염불당, 나한전, 반학루, 원당, 운계암 등 건물 7동을 중창 복원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운계암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고, 극락전(문화재자료 제203호)과 반학루, 그리고 3층석탑(유형문화재 제186호)만 겨우 화를 면했다. 반학루는 다산 정약용이 1780년(정조 4년)에 1년간 공부한 곳으로 전해온다. 화강암으로 만든 3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세운 고려 전기의 일반형 석탑이다. 탑신부가 197cm, 기단부가 172cm의 높이로 규모는 아담하나 석재를 다듬은 솜씨가 뛰어나고 화려하다는 평이다. ▲ 용문사 용문면 내지리에 자리한 용문사(龍門寺)는 870년(신라 경문왕 10년)에 두운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맞배기와지붕의 균형미가 빼어나 보물로 지정된 대장전(보물 제145호)은 1173년에 지은 목조건물. 대장전 안에 있는 윤장대(보물 제684호)는 국내 유일의 회전식 불경보관대다. 또 대추나무로 불상을 조각한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제989호)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됐다. 조선 세조가 1457년(세조 3년)에 경상감사에게 ‘절을 잘 보호하고 잡역을 면제해 주도록 하라’며 내린 친필 수결인 용문사교지(보물 제729호)가 있다. 윤장대란 장경(藏經)을 돌리(輪)는 대(臺)라는 뜻으로, 곧 회전식 불경보관대를 말한다. 용문사 윤장대는 마루바닥에 8각을 뚫고 축을 세워 천장에 고정시켜 놓고, 그 축을 중심으로 보궁(寶宮)을 축소한 듯한 작은 팔각형 회전 전당을 만들었다. 크기는 높이 4.2m, 둘레 3.2m이며, 삼존불이 좌정한 양쪽으로 하나씩 한 쌍이 세워져 있다. 또 8정도를 의미하는 8각의 각 면마다 문을 만들어 경전을 넣고 여닫을 수 있게 했고, 문에는 화려한 꽃살무늬 장식을 했다. 빽빽하게 공포(拱包)를 올려 지붕 처마를 아름답게 꾸며서 서고(書庫) 전각 같은 모형이다. 다른 불교국가에도 이처럼 완전한 원형이 남아 있지 않아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보물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삼한 통일의 큰 뜻을 품고 두운대사를 방문하고자 동구에 이르니 갑자기 바위 위에서 쌍용이 나타나더니 절로 가는 길을 인도했다 하여 태조는 산이름을 용문산, 절이름을 용문사라 명명했다고 한다. ▲ 한천사 감천면 증거리의 한천사(寒天寺)는 678년(신라 문무왕 18년)에 의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전하는 말에는 의상대사가 영주에 부석사를 지을 때 절집 기둥이 자꾸 넘어져 그 이유를 알아보니 백두대간 남쪽 주마산(508m)의 지세가 ‘달리는 말머리 형국’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의상은 주마산의 지세를 누르기 위해 현재의 자리에 한천사를 지었다고 한다. 6·25전쟁 때 전각이 완전히 소실되어 최근에 다시 지었고, 다만 전란을 거치면서도 잘 보존된 철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667호)은 통일신라시대 때 조성된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철불로 꼽히고 있다. 방형의 좌대 위에 모신 불상의 높이는 1.53m, 어깨 폭은 0.75m, 무릎 폭은 1.13m, 가슴 폭은 0.4m. 또 1988년 조경공사를 하다 발견된 금동자물쇠 등 4점의 유물은 보물(제1141호)로 지정됐고,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본전인 유리광전 앞에 서있는 3층석탑(유형문화재 제5호)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으로 아담하지만 우아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 금당실 전통마을 용문면 상금곡리에 있는 금당실 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곳이라 한다. 이곳엔 함양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모신 추원재 및 사당(민속자료 제82호),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모신 반송재 고택(문화재자료 제262호), 원주변씨 입향조 변응녕을 모신 사괴당 고택(문화재자료 제337호), 구한말 세도가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저택터가 있다. 용문중학교를 중심으로 500m쯤 길게 늘어선 소나무와 면사무소 앞의 300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에서 마을의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 개심사터 5층석탑 예천 번화가로 들어가는 길목인 예천읍 남본리 ‘솔개들’이라 불리는 논 한복판에 자리한 개심사터 5층석탑(보물 제53호)은 고려시대인 1010년(현종 1년)에 건립됐다. 마음을 연다는 뜻의 개심사(開心寺)가 있었던 자리인데 지금은 탑만 외로이 서 있다. 2층 기단 위에 5층으로 세워진 이 석탑은 높이 4,3m로 그리 크진 않지만 정연한 비례와 적당한 상승감을 보여주고 있다. 2층 기단 중 아래층에는 한 면에 안상(眼像)이 셋씩 나 있고 그 안상 안에 십이지신상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그 위 상층기단엔 각 면마다 가운데 탱주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하나씩 팔부중상이 조각되어 있다. 또 그 위 1층 탑신의 남쪽 정면에는 양 옆에 칼을 잡고 서 있는 인왕상이 새겨져 있다. 이 탑엔 탑신과 갑석 처마 밑에 문자가 새겨져 있다. 상대갑석 처마 밑에 새겨진 96자를 해독하면 ‘고려 현종 원년(1010년)에 이 고을 호장(戶長) 임장부(林長富)의 어머니가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승속(僧俗) 10,000인의 힘을 모아 4월 초파일에 준공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 초간정 용문면 죽림리의 초간정(草澗亭·경북문화재자료 제143호)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의 저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가 1582년(선조 15년)에 건립한 정자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12년(광해군 4년)에 재건했으나,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어 다시 세웠다. 그 후 세월의 흘러 퇴락한 것을 1870년(고종 7년)에 중수해 오늘에 이른다. 주변의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뤄 일찍부터 명승지로 사랑받아 왔다. 초간의 필생의 역작인 <대동운부군옥>은 단군 이래 조선 선조까지의 역사를 비롯해 인물·문학·예술·지리·국명·성씨는 물론이고, 산·나무·꽃·동물 이름 등을 총망라한 책이다. 저작 당시 참고한 자료는 <삼국사기> <계원필경> 등 한국 서적 176종, <사기> <한서> 등 중국 서적 15종으로 모두 191종이나 된다. 개인의 저작으로는 양과 질에서 방대하고 뛰어나서 임진왜란 이전의 사실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문헌으로 꼽힌다. <대동운부군옥>을 찍어낸 책판과 3종의 초고본(草稿本)은 보물 제878호로 지정되어 있다. 후손인 예천권씨 종가에서 보관하고 있다. ▲ 예천권씨 종택 용문면 죽림리에 있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조선시대 가옥으로 중요민속자료 제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1598년(선조 22년)에 초간 권문해의 조부 권오상(權五常)이 세운 것이다. 종택은 종가별당(보물 제457호)과 연결하여 평면으로 구성했는데, 동쪽으로 뒷산이 반달모양으로 싸안고, 좌측으로 백마산(白馬山)이 청룡을 이루고, 우측으로는 아미산(娥眉山)이 백호를 이루어 명당자리로도 유명하다. 사랑채는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안채는 뒤쪽으로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1589년(선조 22년)에 지은 권씨종가 별당(보물 제457호)은 1.8m 높이의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초석을 놓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 중간 앞에 여러 단의 축석을 쌓고 주위에 난간을 돌려 건물 전체가 매우 높고 웅장하며 고졸한 멋을 풍긴다. 건물을 향해서 오른쪽 3칸은 넓은 대청으로 하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이며 내부는 다시 2개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다. 권씨종택 한쪽에 자리한 유물각엔 대동운부군옥 책판교본(보물 제878호), 초간일기(보물 제879호), 예천권씨 종가문적(유형문화재 제170호) 등 여러 점의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고, 입구엔 수령 500년 넘은 향나무(도지정기념물 제110호)가 자라고 있다. 초간 권문해가 1580년부터 57세로 타계하던 1591년까지 11년간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국정 전반과 당쟁에 이르기까지의 상황들을 자세히 기록한 초간일기는 임진왜란 직전의 국내 정치 등을 살피는 데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 정충사 예천읍 고평리의 정충사는 조선 선조 때 명재상 약포(藥圃) 정탁(鄭琢·1526-1605)의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운 유물각이다. 이황의 문하생이었던 약포는 1552년(명종 7년) 사마시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한 뒤 본격적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1568년(선조 1년)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이조좌랑 등을 지냈고, 1581년 대사헌 때 정인홍과의 불화로 이조참판에 전직됐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엔 좌찬성으로 왕을 호종하여 의주로 피란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늙은 몸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 독려하려는 것을 왕이 말렸다. 약포는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곽재우·김덕령 등 명장을 발탁하는 등 인재를 발굴하는 데 높은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저서에 <약포문집>, <용만문견록>이 있다. 정충사의 약포영정(보물 제487호)은 왕명에 따라 그린 공신 초상화. 또 약포유고 및 문서(보물 제494호)는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기록한 일기, 교지 등으로 임진왜란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내성천 건너 호명면 황지리의 도정서원(道正書院)에는 약포선생과 그의 아들 청풍자 정윤목을 모셔 놓은 약포사당이 있다. ▲선몽대 호명면 백송리 내성천변 언덕에 세워진 선몽대(仙夢臺)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가 1563년에 지은 정자다. 창건 당시 퇴계 이황과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김상헌, 이덕형 등 유명 인사들이 찾아와 축하했다고 한다. 이들의 친필시가 게액되어 있으며, 선몽대 세 글자는 퇴계의 친필이라 한다. 선몽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내성천 풍광이 좋지만 늘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아쉽다. 그래도 선몽대 입구의 노송 가득한 솔밭은 여름엔 피서지로 봄가을엔 산책 코스로 애용된다. ▲ 예천 어린이우주과학관 나일성천문관과 나란히 자리한 어린이우주과학관은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의 이용삼 교수가 천문우주과학문화의 보급을 위해 예천군의 보조를 얻어 설립했다. 1층은 우주과학 전시실, 2층은 우주놀이터와 영상교육실로 이루어져 있고, 3층엔 천체 관측 시설을 갖추고 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전시물과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관람시간엔 태양 관측과 수시로 영화를 상영한다. 주말이나 특별한 천문현상이 있을 때에는 천문 강연과 함께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는 ‘천문교실’을 연다. 연휴나 방학중엔 1박2일이나 2박3일의 일정으로 천문공작, 실험, 천체관측, 항공기 조정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우주과학캠프를 연다. 입장료는 어린이는 4,000원, 어른 3,000원. 어린이 위주로 교육을 하기 때문에 어린이가 더 비싸다. ▲ 옥천서원 감천면 덕율리 입구에 자리한 옥천서원(玉川書院)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전체 소설인 ‘국순전(麴醉傳)’의 저자 서하 임춘(林椿·생몰연대 미상) 선생 등 예천의 명현 4위가 모셔져 있다. 원래 옥천에 있어서 옥천서원이었는데, 흥선대원군 때 훼철됐던 것을 1985년 이곳 감천으로 옮겨 세웠다. 넓은 대지 위에 명교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함양재와 흥문재가 있고, 명교당 뒤쪽 높은 축대 위에 사당 상현사(尙賢祠)가 있다. 서하는 고려 의종 때 진사를 지내다가 1170년(의종 24년)에 일어난 정중부의 난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예천으로 피신해 당대의 문인 이인로를 비롯해 오세재·조통·황보항·함순·이담지와 더불어 시와 술을 즐겼다. 이들은 스스로 중국 진나라 때의 죽림칠현에 비하여 강좌칠현(江左七賢)이라 했는데, 우리나라 청담(淸淡)의 풍(風)은 여기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술을 의인화하여 교훈적으로 풍자한 ‘국순전’과 엽전을 의인화한 ‘공방전(孔方傳)’은 조선 전기 소설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익장 문화유적마을 지보면 도장리 낙동강과 가까운 태을산 기슭의 익장 마을은 동래정씨 집성촌이다. 정사(1400-1453)의 묘소를 보호하기 위해 지은 지보재를 최근 보수했고, 내성군 사당은 임진왜란 때 만인의총에 묻힌 선무공신 정기원을 모신 사당이며, 지포강당은 석문 정영방이 학문을 논한 사당이다. 이런 전통에 걸맞게 국문학의 태두로서 <조선시가사강>, <한국시가의 연구>, <한국문학사> 등을 지은 도남(陶南) 조윤제(趙潤濟·1904-1976) 선생의 생가가 있다. ▲ 학가산 우래자연휴양림 2000년 6월, 예천과 안동 경계에 있는 학가산(870m) 기슭에 개장한 자연휴양림이다. 산막 13동, 복합산막 1동, 취사장 1동, 전망대 1동의 편의시설과 야외무대, 야외탁자, 야영데크 등을 갖춰 놓았다. 다락방이 있는 숲속의 집(8평 4인용)이 70,000원, 통나무집(13평 8인용)이 100,000원이다. 또 단체 손님을 위한 15평(120,000원), 18평(140,000원), 50평(300,000원)짜리 산막이 있고, 이외에도 소규모 가족 단위로 적당한 복합산막(30,000~50,000원)을 갖추었다. 야영테크 사용료 5,000원, 오토캠핑장 사용료 15,000원. 중앙고속도로 예천 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우회전하면 3.5km만에 내성천 보문대교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강변도로를 타고 3km 간 뒤 우래교를 통해 다시 내성천을 건너 2km쯤 들어가면 우평 마을 지나 휴양림이 나온다. ▲ 나일성천문관 감천면 덕율리의 나일성천문관은 별똥 나일성 박사(연세대 명예교수)가 동서고금의 대표적 천문도와 동양?한국의 해시계 등 천문관련 자료 수백 점을 수집해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별을 관측하는 시설도 갖춰 놓아 방학 기간과 특별한 우주쇼가 있을 때에는 천문관 학습장에서 관측회도 개최한다. 별자리와 망원경에 관한 궁금증은 나일성 박사가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흠경각에서 상담한다. ▲ 예천온천 감천면 관현·천향리 일대에 있는 예천온천은 1998년 온천지구로 지정 받았다. 한국자원연구소 수질 검사 결과 pH 9.52~10.25의 강알칼리인 중탄산나트륨(HCO3-Na) 단순천으로 수질이 매우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또한 지하 800m에서 용출되는 온천수의 수량(1,600㎥/일)도 매우 풍부하다. 수질이 부드러워서 인체 표피 지방분을 제거하여 청량감을 주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여 여성의 미용에 아주 좋으며, 피로회복이 빠르고, 혈액순환, 항진작용, 진정작용, 신진대사를 도와 신경기능의 활성화, 신경통 등에도 효험이 뛰어나다. 또한 중탄산(39.6㎎) 나트륨(32.5㎎)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성인병, 부인병, 노인병 예방에도 매우 좋으며 염소, 규산, 칼슘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2000년 3월에 개장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하루 평균 1,500명이 이상의 고객이 다녀간다. 2010년까지 개발을 완료해 영남 북부 지방의 대표적인 온천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인데, 아직 주변에 숙박시설은 없다. ▲ 예천 청포묵 예천읍 남본리의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은 50여 년동안 묵과 함께 살아온 이필성 할머니(78)가 만든 청포묵이 유명하다. 녹두는 쉬 상하기 때문에 매일 새로 쑤어야 하는데, 이필성 할머니는 요즘도 손수 녹두를 불려 껍질을 벗기고 다시 갈아 녹말을 걸러내 묵을 쑨다. 처음에는 예천향교가 있는 노상동 언덕에서 ‘언덕배기묵집’이란 간판을 달고 묵을 쑤다가 얼마 전 현재의 번화가 한쪽에 가게를 따로 내고 며느리가 손님을 받고 있다. 청포묵무침 한 그릇에 된장찌개, 생선구이, 젓갈, 도라지무침 등 10여 가지에 반찬을 곁들인 청포정식이 6,000원. 또 옥색의 청포묵을 곱게 채치듯 썰어 달걀지단과 당근 등으로 맛깔스럽게 꾸미고, 참기름과 양념장을 얹어 먹는 탕평채는 한 접시에 13,000원. 예전에 영남 선비는 하늘거리는 청포묵을 젓가락으로 들어 입까지 가져가는 동안 도포자락에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아야 양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용궁 단골식당 비룡산 회룡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회룡포(의성포 마을)는 몇 해 전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 배경지. 주인공들이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 지내는 과정을 잔잔하게 펼친 배경지가 바로 여기다. 용궁면 가는 도로와 면소재지의 경북선 기찻길은 은서와 준서가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던 길이다. 용궁면 번화가인 읍부리에 위치한 단골식당은 당시 가을동화 촬영팀이 단골로 찾았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다. 요즘도 휴일만 되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단골식당 주인이 손수 재료를 구해와 만든 순대 맛이 일품이다. 오징어불고기도 잘 한다. 순대국밥 한 그릇 3,000원, 순대 한 접시 5,000원, 오징어불고기 1인분 5,000원. ▲ 예천 사과 예천 사과는 주로 백두대간과 그 지맥의 해발 300~600m에 위치한 중산간지대의 일교차가 심한 산비탈에서 생산된다. 색이 밝고 모양이 수려하며, 육질이 치밀하면서 당도가 높아 인기가 높다. 해외에서도 평이 좋아 대만 등지로 좋은 가격에 팔려나가고 있다. 사과 수확철엔 상리·하리·감천면의 도로변에서 사과를 구입할 수 있다. 바로 따온 것이라 더 없이 싱싱하고 맛있다.
[르포라이터 민병준의 향토기행] 예천, 어떤 곳인가
용궁면사무소 전화 054-650-6609.
풍양면사무소 054-650-6612.
명봉사 전화 054-653-1365.
보문사 전화 054-653-0777.
용문사 054-655-8695.
한천사 전화 054-652-6911.
용문면사무소 전화 054-650-6602.
초간정(권영일) 전화 054-655-8955.
예천권씨 종택 전화 054-655-9225.
정충사 054-654-5682.
호명면사무소 054-650-6607.
어린이우주과학관 전화 054-654-1710, 홈페이지 www.portsky.net.
지보면사무소 전화 054-650-6611.
휴양림 전화 054-652-0114, 홈페이지 www.hakasan.co.kr.
나일성천문관 전화 054-654-4977.
예천온천 전화 054-650-6588.
전화 054-655-0264.
단골식당 054-653-6126.
예천농협 054-655-0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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