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중 첫계명부터 세번째 계명 까지는 모두 [ ㄹ로] (~말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즉.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우상을...만들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말라> <말라> <말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에게 우선 금지명령을 발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접근금지명령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타의 신들처럼 인간이 범접하기 쉬운 신이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인간이 함께 어울려 놀수 있을 만한 적당한 포용성이 없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완고하고 편협하시다는 뜻이 아니라 거룩하시고, 엄격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하나님 여호와는 무서운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엔 하나님에게 접근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접근하려면, 상당한 준비를 갖추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즉, 피의 제사를 드리고, 자신을 씻어 정결케 하고 난 후에야 가능했습니다.
그마져도 누구에게나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제사장 외에는 그런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언감생심 하나님을 만난다거나 회동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정확한 발음이 무엇일까요? 죄송하지만, 저도 모릅니다.
현재, 여호와, 예호와, 야웨, 제호바...등 나라에 따라 또는 신학자들 따라 다양한 발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느 것이 옳다고 하는 주장은 감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인정해 주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가르친 그 발음을 정확히 녹음해 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의 언어로 표기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록은 해 놓았을 것이 아니냐?
물론 모세는 성경을 기록하여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모세 오경은 자음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모음부호가 생긴것은 AD 6세기 경에 와서의 일입니다.
우리가 읽는 모음 부호 있는 히브리어 성경도 이때 생긴 것입니다. 우리 나라말로 친다면 닿소리로만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읽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들면, 우리 한글로 표기할 때, <이.ㅎ.우.ㅎ(Y H W H)>만 가지고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읽었습니다. 어려서 부터 성경을 외우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자음으로만 되어진 글도 읽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자음 중에서도 모음 역할을 하는 소위 '침묵자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성경을 읽을 때, 신성한 이름<네개의 자음문자:YHWH>을 그대로 발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도나이('주'라는 뜻)>라고 읽은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케티브와 케레>라고 합니다. 원래 본문에 써진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난외주에 별도 표시된 대로 읽는 법칙을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네개의 자음문자>는 글자로만 존재했고, 막상 읽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읽지 않은 것인데, 오늘 날 그 정확한 발음을 추적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아쉽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날, 왜 여호와, 야웨, 예호와, 제호바등의 발음들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위의 <네개의 자음문자>에다가 <아도나이>에 붙어 있던 모음자들을 가지고 와서 붙여놓고 보니 그렇게 발음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직도 그 정확한 모음을 찾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첫글자에 대한 모음에 대한 견해도 엇갈립니다.
<아도나이>의 후음문자 <아>에 붙어있던 <복합쉐와(ㅡ:)>를 <네 자음 문자>중 <첫자음>에 가지고 올 때에 단순쉐와(:)로 전환이 되어, <아>가 <예>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예호와로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다른 주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도나이의 알렙(후음문자)에 있는 <복합쉐와(ㅡ:)>를 비후음문자인 <요드> 밑으로 가지고 오자 불완전 모음인 쉐와가 완전모음으로 바뀌어서 <아>로 변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견해로써 <야웨>가 맞다고 주장을 할 것입니다.
제가 히브리 학자들을 대면하여 질문해보진 못했지만, 문법의 법칙상 그런 원리가 아니라면 첫자를 <야>라고 부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에 발음 법칙상 이 문제를 완벽히 설명하거나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세한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일련의 난제는 어쩌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망령되이 부르지 못하게 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말많고 허영심 많은 호지가들이 하나님의 성호를 가지고 함부로 논쟁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 그 이름의 정확한 발음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드신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할 때 저는 통쾌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난제가 아니라 섭리입니다.
오히려 신성한 이름을 감추셔서 속된 인간들 입에 오르지 않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은 이 이름을 우리가 구태여 정확하게 발성하진 못하더라도, 자음만 가지고도 깊고 장엄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요르단강 카페(http://cafe.daum.net/jordan2/8eDf/730) 글쓴이/ 갈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