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권
툰드라 지역의 강우량은 사막보다 적은 연간 200 mm.
하지만 사방 곳곳마다 물이다.
얇은 표토 밑의 영구 동토층 때문이다. 얼음 박힌 흙과 암석 구조물인 영구 동토층은 일년 내 얼어있어 배수가 되지 않는다.
영구동토층 윗 쪽은 계절에 따라 밤이면 얼고 낮에는 녹는다.
그래서 여름에는 표면층이 녹아 움직이기도 하지만 심층부는 물이 스며들지 못한다. 지상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얼음덩이다.
영구 동토층이 있는 툰드라 지대는 북극에 몰려있다. 그래서 북방 수림대와 북극해 사이의 극점을 에워싼 띠를 이룬다. 알래스카, 카나다, 그린란드, 스칸디나비아를 거쳐 시베리아.
알라스카 북부의 동토층은 두께 600m, 시베리아는 1.5km가 넘는다.
툰드라 토착민들도 이 지역까지는 진출 못하고 있다.
나무도 길도 없고 정적만이 지배하는 겨울 툰드라
눈 덮인 벌판은 흰 눈에 반사된 눈부신 햇살이 공간을 채운다. 태고의 정적 속으로 갈 까마귀 울음만 이따금씩 퍼져 나간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관찰력이 예리해진다. 수렁 주위의 변화나 이끼 사이로 난 길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단단한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일견 황량해 보이는 이곳 땅이 실은 매우 섬세해 매일매일 그리고 꾸준히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찰하는 과정에서 극동 연구소 사람들은 이 땅의 끈질긴 생명력에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6월말에서 8월 중순까지인 짧은 여름이 오면 툰드라의 호수와 작은 강에는 남쪽에서 물새가 날아온다. 오리, 기러기, 뇌조도 뒤따라 날아온다. 무엇이던 먹는 회색곰과 카리부(순록의 일종)를 노리는 늑대들도 서성댄다. 여우는 새들의 알을 먹고 올빼미는 눈 속에 굴을 파서 그 안에 사는 시크 시크라는 다람쥐 종류를 노린다.
시냇물은 앞을 다투며 졸졸 흐르고 바람은 여름에 어울리는 미풍.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북극권은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에까지 동물이 풍부한 곳이다.
카리부 떼가 며칠씩이나 계속해서 지나갈 때도 있었다. 이 동물들을 쫓아올라와 정착한 종족이 에스키모다.
버드나무 오리나무 등 제법 많은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는 있지만 길고 곧은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습지와 자갈 지대 사이에는 순록 이끼가 빽빽이 자란다. 이 지역은 카리부의 식량 창고이며 북극권의 목장이다.
식물들은 짧은 여름동안 꽃을 활짝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이윽고 겨울이 오면 땅은 다시 얼고 생명은 모습을 감춘다.
이곳이 에스키모들의 `누나카` 즉 `우리들의 땅` 이다.
한때 수십만을 넘던 에스키모들은 자꾸 줄어 지금은 추코트 반도에 1,200명, 알라스카에 32천명, 카나다에 18천명, 그리고 그린란드에 41천명 정도만 살고 있을 뿐이다.
1989년,
알라스카 쪽의 베링 해와 인접한 웨일즈 근교의 전진 기지.
7명의 극동 연구소 대원들과 일우건설 현장직원들이 아침 달리기를 하고 있다. 시끄럽게 짖어대는 썰매 개들이 대열의 옆과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함께 달린다.
초창기에는 찝차와 스노우 모빌을 썼다.
하지만 스노우 모빌은 정비에 손이 많이 갈뿐 아니라 혹한 속에서 시동이 꺼지는 봉변을 당한 뒤 개썰매를 애용했다. 그래서 기지에는 30마리도 넘는 썰매 개가 있다. 그 놈들에게 먹이 주는 일이 만만찮았지만 대원들은 저마다 자기 개를 정해 놓고 열심히 보살폈다. 외로움을 타기 쉬운 극지생활에서 개들은 애완용으로도 인기였다.
이제 여름이 끝나가는 9월, 건설팀도 철수할 때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달리기가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측정팀에서 온도와 결빙 상태를 점검해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확실한 일자는 누구도 모르는 사항이다.
헉헉
내뿜는 입김 속으로 땅 표면에서 어른 키만큼 높게 짓는 전형적인 극지 방식 기지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삼선교의 정수네 세차장처럼 기둥 위에 올린 건물.
눈이 쌓여 문이 막히는 것을 막고 바닥과 지면의 열전도를 막아 가라앉는 것도 방지해 준다.
기지에는 4인용 침실 7개와 휴게실, 체련실, 화장실을 갖춘 거주동이 있고 사무실과 식당은 본관동에 있다.
달리기 뒤끝의 맨손 체조를 마친 대원들이 거주동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들은 5년 전부터 매일 2천개씩의 샌드 파일 박는 작업을 해왔다.
3km에 걸친 폭 100m 지역에 샌드 간격을 각각 달리 한 20개 시험장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작업은 직경 30cm의 빈 강관을 땅에 박는 것으로 시작된다.
깊이는 1m에서 10m까지 각각으로 시험장마다 차이가 있다.
강관 속에 푸대가 들어있어 다 박으면 모래를 넣는다. 넣은 모래를 다지고 강관을 빼내면 땅속에 모래기둥만 남기 때문에 샌드파일 공법이었다.
이렇게 두면 땅 속 습기는 모래의 모세관 현상으로 지상으로 나온다. 자연 상태라면 수백년 걸려도 마르지 않을 수렁이나 개펄도 이렇게 하면 5년 내외에 마르기 때문에 습지공사에 많이 이용되는 공법이었다.
시험 목적은 샌드 파일의 효과가 가장 좋은 깊이와 간격을 알아내는 것,
5년 이상 느긋하게 기다려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5년 전 첫 작업이 시작되었던 지역의 건조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이미 확인되었기 때문에 작업 팀들에게는 자신이 넘치고 있었다.
이곳 웨일즈 외에도 300km 남쪽의 해밀턴,
900km 동쪽의 페어뱅크스 근교,
그리고 앵커리지 근교의 3 군데에서 같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시베리아의 기후조건과 유사한 지역으로 선별된 곳이었다.
태초 이래의 평온은 20대의 중장비가 쇠기둥을 두들겨 박는 굉음에 산산조각나 버렸다. 곰과 순록들은 노이로제 증세를 보이며 사나워지고 있었다.
처음에 인력을 파견하던 1984년에는 극지작업이 육체적으로 힘들 것을 우려했는데 실제는 심리적 부담이 더 심각했다. 하루 종일 밤, 또는 낮인 기간이 몇 개월씩 계속되기 때문이었다.
낮만 계속되는 6월에서 8월, 그리고 종일 밤이 되는 겨울을 겪으면서 생활리듬을 잃은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보다는 부담이 적지만 영하 30도를 밑도는 추위 역시 만만치 않다. 겨울에 밖으로 나가면 코에 무언가 끼어있는 느낌이다. 코털이 언 것이다. 숨을 내쉬며 콧구멍이 녹는다 느낀 다음 순간 또다시 얼어 버리는 추위.
북국의 겨울은 아침이 늦다.
8시가 넘어야 어렴풋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영하 40도 정도면 공기 중의 미세한 수증기가 결빙되어 안개 낀 것처럼 된다.
낮이 되어야 태양이 어디 있는지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날은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다.
그런데 무언가의 영향으로 공기가 움직이면 하늘이 마법의 빛처럼 흔들린다.
마치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리는 것 같다.
이 아름다움은 결코 사진으로는 찍을 수 없다.
이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극한의 땅, 북극권을 찾아온 보람을 느꼈다.
오후에는 대개 맑아진다.
양지에서는 슈바(모피 외투)가 땀에 젖게 마련이다.
그러나 태양은 금세 힘을 잃고 서쪽으로 기울어진다.
한 장의 붉은 원반으로 인적 없는 타이가 수림 위로 떨어진다.
수빙樹氷도, 적설도, 통나무 집의 유리창도, 사람의 얼굴도 붉은 색으로 잠시 불탄다.
붉은 구슬이 밑에서부터 조금씩 사라져간다.
그렇게 지구의 자전 속도를 알 수 있었다.
밤이면 기온이 내려간다. 밤중에 문 밖에 나가면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들려온다.
보이지 않는 대기 속 얼음 결정이 달라붙어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것을 별의 속삭임이라 부른다.
혹한기에는 영하 40도 아래까지 내려간다.
이때면 아침 달리기도 중단된다.
찬 공기를 깊이 마시면 폐가 상하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캠프 옆에는 얼음덩어리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생활용수와 식수.
수도가 없는 이 지역에서 여름에는 급수차로 공급받지만 겨울이면 강도 밑바닥까지 언다. 그래서 트럭으로 공급하는 얼음을 쌓아 두었다 그때그때 녹여 사용한다.
하지만 보너스도 있었다.
이 지역을 벗어날 때마다 대원들은 자신이 오염에 민감해졌음을 깨달았고 따뜻한 지역에서는 습한 공기에 괴로움을 느꼈다. 그들이 사는 캠프는 세계에서 가장 맑고 건조한 공기가 유지되는 청정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기술부에서는 1980년대 초까지도 아직 철도 사양을 정하지 못했다. 초조해진 극동 연구소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시험부터 우선 시작하기로 하고 1984년 여름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
3년마다 교체하기로 한 작업팀의 초기 인력은 일우건설 직원들이 중심이지만 건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부터는 극동연구소 팀이 상주했고 작년부터는 동수가 책임자로 나와 있었다. 모든 샌드 파일에는 매 1m마다 습도 감지 센서가 들어 있고 이것이 기지의 점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주인력이 수행할 사무적 업무는 적었다.
대부분 인력은 시험결과 점검보다는 토목공사를 위한 기초조사에 투입 되었다.
토목공사의 기초조사라는 것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되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대원들은 항공정찰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지질조사와 현지실사를 위해 3명씩 한 조가 되어 대상지역을 돌아다녔다. 이들의 행동반경은
북쪽으로는 북위 60도 선에서 북극권의 경계선까지,
동쪽으로는 서경 150도 선에 있는 페어뱅크스,
서쪽으로는 서경 168도 선의 황태자 곶에 걸친 동서 1,000km,남북 150km에 달하는 넓은 지역이었다.
교통수단은 스노우 모빌이나 개썰매, 그리고 찝차였는데 야영이 잦아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다. 유 이근은 기술부의 자기부상열차 개발팀 소속이지만 철도 부설의 최적공법을 확인하기위해 작년 말부터 참가했다.
상주팀에는 수송 차량 정비를 맡은 상원이도 끼어 있었다.
이들은 일지 기록이 습관화 되어있었다. 비록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불의의 사고가 생기더라도 조사결과는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묵계에 의한 습관이었다.
이들의 기록은 198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신문의 인기 연재물이 되었다. 갑갑한 정치상황에 지겨워진 국민들의 청량제로 환영받은 탓도 있었지만 사실은 극동 연구소의 노련한 홍보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이 중 유 이근과 상원이, 그리고 동수가 같은 조가 되어 작성한 탐사일지가 특히 인기였다. 상원이의 덜렁대는 기질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 많은 덕분이었다.
강의 얼음을 깨고 냉수욕 하는 상원이의 사진은 인기를 독점했는데 강변 캠프의 사우나에서 몸을 데운 후 얼음구멍에 들어가 냉온탕을 즐기는 장면이었다.
이들은 1987년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간 페어뱅크스 북쪽의 유콘 계곡에서 베링해 연안의 코체브까지 3,100km를 횡단 하는 대 기록을 남겼는데 베링 자치주의 주요 자산으로 기록소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이들의 탐사는 페어뱅크스 북쪽의 유콘 강 유역에 있는 늙은 까마귀(올드 크로우) 계곡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알라스카와 북극 사이에 병풍처럼 버티고 있는 대 연봉, 브룩 레인지 산맥의 남쪽 기슭을 따라 북극권 국립공원 입구의 워커 호수를 통과했고 호수에서 똑바로 황태자 곶까지 직선으로 이동하는 코스였다.
올드 크로우에서의 출발은 이른 봄이 시작되는 4월 중순이라 강의 얼음이 약해지고 툰드라가 녹기 시작했다. 여행에는 별로 적절하지 않은 시기였지만 사기충천한 세 사람은 개썰매 2대를 몰고 출발했다.
알라스카 지역의 베링철도 코스에 `인적미답`의 장소가 사라진 것은 이들 3명 덕분이었다.
이들의 탐험 일지에서 토목기술 관련부분을 제외한 발췌 부분.
유 이근의 일기
1987.4.27(화) 눈
늦은 오후부터 눈이 내려 시계가 온통 뿌옇다.
삽으로 눈을 파내 야영할 구덩이를 준비했다. 봄이라지만 밤이면 영하 15도 밑으로 내려간다. 산기슭을 훑는 강풍이 지나갈 때마다 텐트는 요란한 비명을 지른다.
텐트 옆에서 자던 썰매개가 낑낑거린다.
눈가루 섞인 바깥 바람이 텐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슬리핑 빽 밖으로 내놓고 일지를 쓰는 손이 굳어 온다. 이곳에서는 얼어붙기 때문에 만년필이나 볼펜은 쓰지 못한다.
북극촌 출발한 이래의 순탄했던 코스는 끝나고 우리는 지금 브룩 레인지의 등뼈를 따라 산맥을 통과하는 첫 포인트에 들어서 있다.
여기부터는 인적미답의 땅.
출발 전에 알라스카 횡단에 대한 책을 읽고 지도를 보며 현지인들로부터 세세한 설명 까지 들었지만 코스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상원 씨와 동수는 팔팔하다. 도무지 걱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 같다. 밤 사이에 눈이 그쳤으면 좋겠다.
1987.5.1(토) 눈
포쿠핀 강변에서 야영.
회색 하늘에서 진눈깨비 섞인 눈.
얼어붙은 강은 군데군데가 갈라져 있다. 갈라진 틈새로 솟아오른 강물이 얼음 위를 범람해 홍수처럼 휩쓸고는 다시 나왔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곤 한다. 강이 녹을 때가 멀지 않다는 표시다.
`꽝 꽝`
대포소리 같은 큰 소리가 들린다. 상류에서 녹기 시작한 얼음 덩어리들이 하류의 아직 녹지 않은 얼음에 부딪쳐 내는 소리다.
썰매를 타고 상류 쪽을 지나며 본 그 장엄한 광경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거대한 유빙들이 서로 옥신각신 하며 수증기 피어오르는 강물로 천천히 흘러 내려가는 웅장함이란, 호연지기가 절로 솟는 느낌.
감정이 무딘 사내들끼리 만인 것이 아쉽다.
이곳에서 일 주일 정도 떨어진 곳에 옛 개척자들이 쓰던 캠프가 있다는데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단다. 우리는 그 캠프에 머물며 뗏목을 엮을 작정이다. 캠프에 사우나 시설이 되어있다는 것을 얘기해주니까 동수가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실은 내가 더 기다려진다. 뼛속까지 배어든 냉기를 사우나에서 녹이고 싶다.
1987.5.11.(화) 맑음
캠프 생활이 마음에 들어 떠나기가 싫어질 것 같다.
우리는 매일 열 길쯤 되는 나무 몇 그루씩을 베어 넘긴다. 다듬느라 쳐낸 나뭇가지가 집채만큼 더미로 쌓여 간다.
일을 마치면 통나무 사우나실에서 피로를 푼다. 겉보기는 허름한 창고지만 들어가면 무척 아늑한데다가 나무냄새까지 향긋하다. 사우나에서 몸이 달궈지면 강가로 달려 나와 얼음물에 식힌다. 벌거벗은 세 남자가 통나무 집과 강가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누가 뭐랄 사람조차 없는 곳이다.
상원씨와 동수가 강에서 고기를 낚았다.
팔뚝만큼 큰 생선을 저미니까 연어처럼 분홍색 살이 나온다.
연어는 아닌 데 맛은 비슷해 연어 사촌으로 명명 했다.
생선회로 저녁 겸 소주 파티.
1987.5.17. 맑음
드디어 뗏목 진수식이다.
썰매 개 16마리와 짐이 실린 썰매 2 대, 그리고 우리 3 명이 타자 뗏목이 찬다. 기울어져도 짐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장자리에 난간도 만들었다. 내일이면 정든 캠프와도 이별이다.
1987.5.21 흐림
처음 해보는 삿대질이 생각보다 쉽다.
강을 따라 흘러가면서 삼림, 강변 지형, 그리고 짐승들을 비디오에 담았다. 새들이 많이 보인다. 오리 거위 백조 독수리 갈까마귀 농병아리 그리고 로빈
수백만 마리는 될 것 같은 모기의 대군이 우리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모기뿐만 아니 라 이름모를 곤충들까지 달려들어 헌혈을 강요한다.
그 등살에 개들까지도 잠을 못 이루고 껑얼댄다.
첫날 호되게 당한 우리는 강변에서 나뭇가지를 준비해 다음 날부터는 모깃불을 피웠다. 연기에서 조그만 멀어 지면 바로 덤비기 때문에 우리는 늘 모깃불 주변에 모여 지낸다.
1987.6.1. 맑음
여름의 첫 날이다.
해는 서북쪽 숲 뒤로 잠시 가라 앉았다가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비스듬하게 솟아 오르기 시작한다. 강을 흘러내리는 우리의 그림자가 강기슭까지 길게 드리워지는 게 보인다. 우리는 시계에 맞추어 자고 일어난다.
강은 양키 능선 서쪽의 좁다란 툰드라 계곡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 지역을 벗어나면 우리는 뗏목을 버리고 찝차로 가야 한다.
하 동수의 일기
1987.8.5. 맑음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다. 툰드라의 여름은 정말 노루 꼬리만큼이나 짧다.
케치가 오후 내내 따라 다니며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느냐 졸라댄다.
케치 칸은 우리가 찝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있는 아낙투프 재의 마을에 사는 9살박이 여자아이다. 북극권 국립 공원 입구에 있는 이 마을 본토박이인 에스키모인데 우리와 너무 닮아 한국의 시골 아이를 보는 느낌이다.
케치는 찾는 사람이 드문 산골이라 사람이 그리웠는지 나를 잘 따라다녔고 나도 지형이 또래인 케치가 귀여워 친해졌다.
케치는 곧 `마사크`가 내리는데 그렇게 되면 다닐 수 없다고 제법 조리있게 내가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마사크`는 얼음이 얼기 직전에 내리는 부드러운 눈을 가르키는 에스키모 말이란다.
에스키모 말에는 눈의 종류를 구별하는 말이 30개 가까이 있단다.
눈으로 계절을 나누고 집을 짓는 사람들이니 당연하겠지만 정서가 풍부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이다. 겨울이 오는 툰드라로 떠나기보다 인심 좋은 이 마을에 눌러 지내고 싶다.
오늘 케치는 나무로 겨울철 설맹 방지용 안경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색 유리 대신에 나무로 만든 안경 중심에 가는 구멍을 뚫는 식인데 눈에 들어오는 광선의 양을 줄여준다고 한다.
여분으로 있는 선 그래스를 작별 선물로 케치에게 주어야겠다.
1987.9.7. 맑음
아낙투프 마을에서 300 KM 지점인 워커 호수에 와있다. 찝차로 다니면 편할 줄 알았는데 길이 없는 곳이 많아 걸을 때보다 오히려 불안하다. 이제 목표코스의 80% 이상은 온 셈이다. 케치 말대로 겨울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할텐데.
1987.10.12. 맑음
늑대다. 새끼 두 마리를 거느린 하얀 늑대가 강변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이윽고 달이 구름을 비집고 나타나자 늑대는 길게 울부짖기 시작한다. 그러자 여기에 호응하는 다른 부르짖음이 멀리서 들려온다. 그리고는 잠잠해졌다.
잠을 청하려 뒤척이는데 무언지 모를 써늘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정신이 번쩍 든다.
잠시 생각하다 살그머니 텐트 문을 비집고 내다보았다.
텐트 앞에 피워 둔 모닥불 뒤의 어둠 속에 번쩍이는 초록색 불빛 두 개. 완전히 다 자란, 어른 몸무게는 되어 보이는 큰 늑대다.
녀석은 조심스레 앞으로 몇 발자국 다가왔다가는 다시 뒤로 한두 발자국 물러서는 식으로 서성대며 차츰 모닥불 가까이 다가온다. 하지만 녀석의 궁금스럽다는 듯한 표정과 축 늘어뜨린 꼬리에서는 위협적인 기색이 통 보이지 않는다. 아마 아까 강가에서 쳐다보고 있던 호기심 많은 녀석의 친선 방문인 모양이다.
나는 늑대가 놀라지 않도록 다정하게 혀를 차며 개를 부르듯 달래는 목소리로 불렀다. 이윽고 경계를 푼 녀석은 드디어 모닥불에 몸을 드러내며 다가온다.
모닥불 옆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녀석은 나를 빤히 응시하며 몸을 쬐기 시작한다. 초록색 발광체인 녀석의 눈에 일렁이는 황금색 반점으로 모닥불이 박혀있다. 무언가 먹을 것을 주고 싶지만 내가 움직이면 달아나버릴 것 같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녀석과 시선을 맞춘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있는 동안 내 가슴 속으로는 차츰 까닭모를 잔잔한 기쁨이 솟아올라 샘물처럼 괴여온다. 마치 이번 탐사 여행의 모든 의미가 결국 이 순간을 위해서 있었던 것 같은 벅찬 기쁨이 온 몸을 적셔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녀석은 천천히 일어서더니 달을 향해 한번 길게 울부짖어 미소에 답하더니 후다닥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상당히 먼 곳에서 다시 한번 길게 여운을 끌며 울부짖는 녀석의 소리가 캄캄한 툰드라의 광야를 가로지르며 들려왔다.
1987.10.27. 맑음
찝차와 뒤에 매달고 다니는 트레일러가 모두 손가락 두께의 얼음으로 뒤 덮였다. 자기 전에 손도끼로 깨는데도 자고 나면 마찬가지가 되어있다. 이제 최종 목적지인 코체브 까지 200km 남았다.
거진 다온 거나 마찬가진데 차가 애를 먹인다.
길도 아닌 비포장 노면으로 끌고 다니며 혹사시킨 보복을 하는 모양이다. 시동이 꺼지면 그 자리에다 임시 캠프를 치고 모닥불을 피워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몰아치는 혹한에 금방 동상이 걸리고 만다.
북동풍이 거세게 불어온다. 팬벨트를 갈아 끼는 상원이 아저씨 장갑 끝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무쇠구두 신은 것처럼 차고 딱딱하다.
1987.10.28.맑음
찝차 뒤를 어미 곰 한 마리와 아기 곰 한 마리가 한참 동안 뒤뚱거리며 따라왔다. 제법 빨라 길이 나빴으면 우리를 따라잡을 뻔 했다. 곰이 상하 좌우로 뒤뚱대며 껑충껑충 달려오는 모습은 정말 우습다.
차창에 비친 얼굴을 보니 선 그라스를 낀 눈 밑에 바른 검은 색의 설맹 방지용 크림과 얼굴색이 비슷하다. 졸립다.
운전석의 상원이 아저씨가 느닷없이 괴성을 지른다.
졸고 있던 내가 내다보니 바다가 보이고 있었다. 아직은 결빙하지 않은 바닷물이 출렁이는 베링 해협. 드디어 해냈다.
이근이 아저씨와 나도 괴성에 합세했다.
우리는 육포를 뜯어들고 소주로 건배하면서 기념촬영을 했다. 상원이 아저씨의 입이 좋아서 웃느라 찢어질 것 같다. 입이 괜찮은지 알아봐야겠다. |
첫댓글 10.27 일기 중,
얼어붙은어 무쇠 -> 얼어붙은 무쇠
아래는 정작가님의 작품완성도를 높이는데 혹시 도움이 될랑가 하는 헛소리입니다.
인천신공항 활주로와 택시웨이 지반안정은 디젤해머로 파이프를 박아 샌드파일을 만들거나 종이를 넣어 샌드 드레인 또는 페이퍼 드레인 방법을 썼는데
서해안 뻘로 간척한 매우 연약한 토사였으므로 쉽게 파이프를 박을 수 있었습니다.
지상에는 모래를 넓게 깔아 올라온 물이 모래에 흩어졌다가 대기 속에 증발되도록 했지요.
묘사하신 것처럼 얼음층이 그렇게 두텁다면 해머로 파이프를 박기는 가능하지 않을 듯.
회전식 드릴로 얼음층에 수직 구멍을 만든 후 그 속에 파이프를 박는 것은 가능할 듯.
이 경우에도 얼음이 녹아야 모래층 모세관을 통해 수분이 상부로 올라 올 수 있을 것인데 얼른 이해가 안 되네요.
샌드 파일로 말릴 부분은 여름이면 개펄로 변하는 표토층.
계절 불문하고 녹지 않는 층은 암반과 마찬가지이니 걸림돌이 아니라 생각했지요.
“때려 박기? 현지 실정과 맞지 않는다.”
그렇군요. 원유채굴식 드릴공법은 생각 못해봤어요.. 비싸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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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 저나 시생은 토질엔지니어링 언저리에서 몇 년 밥을 먹은 사람이지만,
정작가님은 대단하십니다. 존경 + 찬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