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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교차점(鐵路交叉點: 후미끼리)
― 『임금(林檎)』 의 속편
한 설 야
1
‘간조날’이요 겸하여 장날이 되어서 경수는 지난 닷새 동안에 번 임금 전표(賃金傳票)를 돈으로 바꾸어가지고 여느 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
그가 S강 제방 공사장에서 일하게 된 지도 벌써 거의 한 달이 된다. 날삯 40전에서 의무 저금으로 2전씩을 제하고 나면 하루에 겨우 68전이 질리는데, 그나마 돈 쓸 일이 바쁜 사람은 ‘간조날’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서 그날그날 전표장에서 미리 팔면 한 장에 3전씩이나 더 떼이게 되지만, 그래도 불튀가 나게 구차한 농민들은 이런 큰 벌이가 없다고 범벅덩이에 파리같이 이 일판으로 덤비어든다.
그래서 하루 2백 명 내외밖에 붙을 수 없는 이 일판에는 새벽마다 5백 명도 넘는 일꾼이 알감자 씻듯이 오글오글 몰려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세 맡고 날 샌 패들이 눈알이 까뒤집힐 듯이, 이 공삿장의 감독과 십장들이 내어던지는 부삽을 잡게 되고, 나머지 늙고 손줄이 굼뜬 족들은 백 명 가까이나 날마다 까불려서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때마침 추수 후가 되어서 농촌 사람들은 빚단련에 껍데기 벗어질 지경이매 요새는 날부일 이런 경쟁이 심하여갈 뿐이다. 말하자면 이 일하는 농촌의 곤경을 반영하는 한 마당의 활화면(活畵面)이라고도 할 것이다.
하나 경수는 아직 별로 일자리에서 까불려본 일은 없다. 나이 젊고 또 부중¹에서 치여난² 그이매 농민들에게 비하면 한결 팔팔한 편이다.
비록 짧지 않은 사이를, 거리의 방랑자―룸펜으로 하는 일이 없이 술집을 엿보고, 객담꾼을 찾고, 선술이나 살 만한 사람을 물색하고 다니던 그였지만, 몇몇 친구들의 연줄로 일손을 잡게 되면서부터는 짜장³ 딴사람같이 변하였다. 지난 한때, 잊어지지 않는 호화로운 시절 ―그들의 활동이 자못 씩씩하던 그때의 의기가 지금은 × ×때의 일부로서의 노동에 되살아나는 것을 그 스스로가 깨닫게 되었다.
그는 지금 생활을 결코 창피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소사 없이 비 맞은 삽사리같이 어깨를 축 늘이고 같은 거리를 하루에 몇 번씩 오고 가던 그때에, 때 따라 일어나던 것 같은 얼굴 가렵고 마음 찔리던 그러한 창피와 수모가 이마적4의 자취를 말끔 거두어버렸다.
흙냄새 나는 제 몸이 향기를 품기는 유두분면(油頭粉面)⁵의 한가한 미인을 스쳐도 아무런 가렴증을 느끼지 않고 기름진 신사에 좋다고 차링과 겨루어도 어깨가 떠지는 일이 없다. 어두우나 번한⁶ 저희들의 세상이 따로 있는 것같이도 생각되었던 것이었다. 누구를 부끄러워하랴 하는 버젓한 생각도 연성 일어나고 내로라하는 억센 자존심도 때 따라 들솟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한 달 가까이 일하는 사이에, 일동무들과 함께 이런 결점은 이렇게 다스려가고 저런 불만은 저렇게 채워가야겠다고 피차 의사가, 공통히 흐르게 된 것을 생각하매 그는 적이 믿음과 힘이 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부상자가 나게 되면 대부분 인부들의 동정금으로 군색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을 이마적은 부상 수당으로 고쳐주게 하고 동정금은 가족에게로 보내도록 하였으며 군둔한 농부들의 부상자를 작게 하고 설비에 부속을 하나씩이라도 고치게 하였다. 하나 갈수록 이렇게 했으면 혹은 저렇게 했으면 하는 일이 새로 눈에 뜨인다. 눈에 뜨이면 어찌해서든지 뜻대로 해보고 싶었다. 해보고 싶은 생각은 그의 맘에 긴장을 가져오고 그의 손에 뜻 맞는 손을 찾게 하였다. 그는 이만치 딴사람같이 변하였다. 그는 지난 일을 생각하는 때마다 ‘나는 일없이 노는 것 같이 나쁜 일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술 마시기를 일삼고 계집질하는 것을 자랑으로 알던 것을 돌아다보며 지금의 노동이 얼마나 깨끗한 일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 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그는 4마장이나 되는 M다리를 건너와버렸다.
2
M다리를 건너서, S강가를 남북으로 달리는 경편 철도 동쪽 큰길에 잡아드니 아낙네 장꾼들이 패패 떼를 지어 올라들오고 있다. 장을 보아가지고 촌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벌써 장꾼이 빠지기 시작하는 석양이 되었던 것이다.
서울 사람들이 들으면 말쌈질을 한다고 생각하리만치 이북도 여인네들은 입심이 좋다. 머리 위에 커다란 함지를 이고 등허리에 혹은 엉덩이에 어린것을 처업고 유성기 개타령같이 왈왈거리며 걸어오는 패도 있다.
하나 한참 내려오는 사이에 경수는 그 말 많은 아낙네들의 말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그 얼굴이 이상하게 찌푸려진 것을 발견하였다, 하면서도 첨은 물론 그는 심상하였다. 하다가 자전거를 끌고 오는 순사와 때기름기 바들바들한 ‘쯔메에리’⁷에 학생 모자 같은 둥그런 모자를 쓴 얼굴 검은 젊은 사나이를 그 장꾼들 속에서 발견하면서부터 그는 무언지 모르게 이상한 생각이 스르르 돌기 시작하였다.
잿빛 같은 얼굴을 해가지고 조상꾼⁸같이 굼뜬 발을 어디다 놓이는지 모르듯이 가끔 허전거리는 검은 ‘쯔메에리’ 입은 사나이라든지 바로 그 뒤에 바싹 붙어 서서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오는 순사의 모양이 아무려나 예사롭지는 않았다.
경수는 그들을 지나놓고는 웬일인지 그대로 가버릴 수 없어서 되돌아다보았다. 어린애 몇 놈이 따라선 것과 장꾼들이 유난히 그들을 엿보며 비슬비슬 따라가는 것을 새로 발견하였다. 그는 고개를 뒤로 돌리며 걸어가다가
“앙이 참 불쌍해.”
하는 장꾼들의 낮은 말소리에 그 가숨이 찔렁하며 선뜻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한 여인들의 얼굴에도 정녕 슬픈 빛이 서린 듯하였다.
“아매 대여슷 살 먹었겠습데.”
“앙이 다 자라와서……”
“× 원’에나 가져 갔는지?”
“가져 간들 소용있습메. 배리가 다 나왔는데…….”
“에미 애비가 여복¹⁰하겠음.”
이런 이야기에 경수는 벌써 정신이 아찔해졌다.
한데 그다음 패는 또 이런 말을 하며 결어오지 않는가!
“앙이 쌍둥이랍데.”
“쌍둥이는, 하나 죽으면 그담 애도 죽는다는데.”
그담은 더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더 들리지 않았다.
경수는 그만 정신이 팽그르르 돌아가며 발이 허둥지둥해졌다. 쌍둥이요 게다가 대여섯 살이면 자기 아들이 분명하다. 사고가 많기로 이름난 자기 동네 ‘후미끼리’ 쪽에서 올라오는 장꾼들이요 또 그 동네에는 쌍둥이라고는 자기 아들밖에 없다. 그리고 아까에 순사 앞에서 가던 젊은 사나이는 정녕 경편 철도 운전수인 것이 틀림없다. 아이는 분명 늑살(勒殺)¹¹이 된 것 같다.
순간, 모든 생각이 죄다 물러가고 ‘이 일을 어찌할까?’ 하는 생각이 천 근 철퇴와 같이 머리를 때렸다. 눈이 팽 돌아가고 다리가 사시나무같이 파르르 떨리었다.
집으로 가려면 아직도 이 길을 한참 실히 걸어가야 한다. 조철(朝鐵) H역을 지나 그 관사 앞에 이르러 바로 자기 동네 어귀를 내려다보았을 때에 그는 그만 주춤하고 발을 멈췄다. 그 일대에는 사람이 하얗게 몰려 있다.
“틀림없구나!”
그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이렇게 부르짖었다. 미쳐 날뛸 아내를 어떻게 보랴―—골통이 뻐개질 그 죽음을 어찌 보며 또 그 뒤치다꺼리를 어찌할까! —―이런 생각이 방아벼락같이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는 정신없이 다시 걷기 시작하였으나 한참 가다가 그만 멈칫하며 슬며시 돌아섰다. 그 길을 결어서 그 숱한 사람 속으로 걸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죽은 아이 애비 온다!’ 하고 우우 몰려드는 군중이나 게거품을 우구구 처물고 나자빠질 아내를 그대로 가서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경수는 얼마큼 되돌아 올라오다가 동쪽으로 빠지는 좁은 골목으로 잡아들었다. 그 골목을 한참 가다가 바른편으로 꺾어서 한 3, 4마장 내려가서 다시 바른편으로 꺾이어 조금 서쪽으로 나가면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얕은 막다른 골목이 나진다.¹²
그는 이 두름길을 취하기로 한 것이나 그 길도 대숨에¹³ 주르르 가버릴 수는 없었다. 비록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말 많은 아낙네들의 쑥덕대는 불길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어차피 무서운 그 마당이 오고야 말 그 길을 혼 손바로¹⁴ 붓다새 걸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또, 가보지 않을 수도 없는 터이다. 그는 얼빠진 사람같이 걷고 있다. 하다가 어느 만치 왔는지 저도 모르는 그는 선뜻 놀라며 멈칫하고 섰다. 옆으로 뚫린 좁은 골목 어귀에서 두세 아낙네가 수군거리는 것을 언뜻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아낙네들의 얼굴이나 말소리로 미루어보아서 오늘의 참변을 수군대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 말의 내용을 샅샅이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다만 한마디―— “붉은 저고리…….”라는 말을 그는 똑똑히 들어내었다.
그의 네 자식 중에서 붉은 저고리 입은 아이는 하나도 없다. 동넷집 고양이 알이라도 빌려 쓰고 싶도록 줄창 선도래¹⁵를 치는 바쁜 아내는 아이들 옷 한 가지 꿰맬 틈이 없어서 찬바람이 떨어지기 시작한 엊그저께야 겨우 고물상에서 검정 ‘고구라’ 양복 아래 위를 이것저것 주워 사다가 가까스로 걸쳐준 기억 이 그의 머리에 새로워졌다.
아무리 피투성이가 되었다손 치더라도 검정 양복이 붉은 저고리로 뵈었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는 한 가지 안심에 줄을 잡은 듯하였다. 다만 한 가지 안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안심은 아까의 불안에 비기면 천리만리의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식을 애꿎이 사랑하는 깊은 감정이라고는 별로 가지어본 일이 없는 그였고, 또 내 자식을 사랑하면 남의 자식도 그만치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아가서는 자기보다 더 구차하고 더 불쌍한 사람의 자식이면 따라서 그만치 더 사랑해줘야 하리라고 생각하는 그였지만 이 순간에는 ‘내 자식’이라는 가냘픈 감정이 모든 감정의 꼭대기를 디디고 맨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는, 자기 집 골목을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굽이를 간신히 돌아섰다.
아! 이 어인 요행이랴?
그의 집 앞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사람의 떼가 욱적욱적 몰켜서서 불행을 구경하고, 구경하는 남아에 한줄기 조상의 빛을 던져주리라고 생각하던 그의 눈에는 평온무사한 텅 빈 광경이 뵈지 않는가?
그는 얼른 자기 집 앞에 와서 수수 바자 사이로 쭈빗이 들악을 엿보았다. 그의 아내는 마루 앞에서 올망졸망한 네 아이를 제 앞에 모여 세우고 두 손으로 한꺼번에 안아줄 듯이 팔을 벌려 머리와 어깨를 슬슬 어루만지며 동네 아낙네와 무슨 말을 하고 있다. 아내는 모진 놀람에 얼굴이 아직 울긋불긋하고 말소리가 뛰는 가슴에 띄엄 끊어지는 듯하였으나 그 어느 구석엔지 우수의 빛이 서리어 있다.
그는 수수 바자 사이를 통하여 턱으로 네 아이를 한 번 더 세어 보고는 선발로 ‘후미끼리’ 편으로 뛰어나갔다.
아직도 그 근방에는 사람들이 성깃성깃 남아 있어서 무슨 이야기들을 수군거리고 있다.
경수는 첫머리에 한 사람을 잡아가지고 말을 물으려다가 말고 그 다음다음 사람―—철도길 가까이 선 면안 있는 젊은 사나이에게
“어떻게 됐소?”
하고 곁눈을 팔며 나직이 물었다.
“허!”
하고 그 사내는 입만 다신다.
“병원옐 가져갔는가요?”
“아니요.”
하는 그 사내의 표정은 입원시킬 형지(形址)¹⁶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윽고 쓴입을 연 그 사내의 말을 들으면 어린아이는 기차에 깔려가지고 열 발 이상이나 끌려가는 사이에 아주 말 못 되게 웅크러지고 배가 통 까디벼져서 창자가 빨끈 내물렸다는 것이다.
그러며 그 사내는 제동기를 디디자 기차 바퀴가 돌지 못하고 레일 위를 빠드득빠드득 쓸어놓은 흔적을 따라가며 가리킨다.
사실, 둔하게 빛나는 레일 낯짝에는 바퀴에 갈린 자국이 길게 남아 있다.
“그래, 부모는 없던가요?”
하고 경수가 다시 물으니까 그 사내는
“웬걸요. 애비라는 사람이 곧 달려왔드군요. 허지만 오니 뭘 하오. 기가 콱 맥혀서 말도 변변하게 못 하드군요.”
하고 인제야 제창¹⁸ 경과를 죽 이야기한다.
놀라운 기별을 들은 아버지는 하늘이 꺼질 듯이 천방지축 달려와서는 위선, 일을 저지른 후, 곧 경관에 현장 조사를 받고 있는 운전수를 보더니 “이눔, 눈깔이 없느냐” 하는 말 한마디만 겨우 하고 곧 달려가서, 아직도 온기가 있어 보이고 가끔 풀풀 뛰는 것 같은 밀려나온 창자를 두 손으로 푹 싸쥐자 배 속에 얼른 밀어넣어가지고 아이를 성큼 가슴에 안으며 피투성이가 된 어린애 얼굴을 제 얼굴에 비비어보더라는 말을 저저이¹⁹ 한 후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군요, 평안도에서 막벌이로 이곳 온 지 얼마 안 된답디다. 겨를이 없어서 그런지 억이 질려서²⁰ 그런지 말도 변변히 못 하고 벌벌 떨며 저도 모르는 눈물만 죽 흘리구 있드군요. 헌데 파출소에서 경관이 오고 정거장에서 역장인지 뭔지 한 사람이 와서 현장을 조사하고는 인차 운전수를 데리고 가버렸으니 더 할 땅이 있어야죠.”
“그래, 아이는 정거장으로 가져갔는가요. 집으로 가져갔는가요?”
“애비가 안고 집으로 갔어요. 역장인가 한 사람이 주수 성명을 묻고는 역부인가 누군가 하나 달아서 집으로 보내드먼요.”
“그래, 이 동네 사람은 하나도 따라가보지 않았는가요?”
“몇 사람 따라는 가는 모양입디다만 어데 이 동네라구야 말마디나 할 사람이 있어야죠.”
그 사내의 말이 필하기 전에 경수는 곧 다쫓아가보려다가
“헌데 참, 아이는 이곳에서 놀다가 그렇게 됐는가요?”
하고 그제야 깔리게 된 사정을 물어보았다.
“내 집 남의 집 헐 것 없이 아이들이 낮이면 늘 이 근방에 모여 놀고 또 그러다가 크나 적은 사고를 일구는 것이지요.”
그는 잘 알면서도 한 번 더 따져 물었다.
“아니, 그 애는 이 동네 애가 아니랍디다. 저 동쪽 말 뉘 집 제각에 있다는데. 한 들악에 사는 아낙네가 빨래하러 가는 델 따라가다가 그렇게 됐답디다.”
“아니, 그러면 어른이 데리고 왔는데 그렇게 깔리게 했단 말이오?…… 온.”
“그런 게 아니라 그 아낙네가 빨래를 잠뿍 이고 먼저 후미끼리를 건너가놓고 기차가 오는 게 염려되어서 돌아서며 아이에게 건너오지 말라고 소리를 쳤다는데 그만 기적 소리에 맥혀버렸는지 그 말은 들리지 않고 되려 건너오라는 뜻으로 뵈었든 모양이에요. 해서 애가 극히 뛰어 건너다가 그렇게 된 건가 봐요. 그리기에 이것 보시우. 기차가 바루 요게 와서야 정거를 시키랴 한 것 아니우.”
하며 그 사내는 운전수가 제동기를 디딘 첫 목을 레일 위에서 찾아내며 말한다. 사실 그 갈린 자국은 ‘후미끼리’에서 얼마 안 되는 곳이니 아무리 뜬 경편차라 하더라도 그 짧은 사이에서 정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 그런 말을 다 했습니까? 역장헌테와 순사헌테!……”
“대강 말은 했지요. 아이를 데리고 온 아낙네와 물으니 아주 정신 빠진 사람같이 갈광질팡한 소릴 하기에 내가 대강 보고 들은 대루 말은 했소만!”
“네, 그러면 하여간 여기 모여든 사람도 대강 그렇게 된 사정인 줄 알았겠군요? ……좌우간 다시 뵙겠쇠다. 참, 댁이 어데든지요?”
하고 경수는 그 사내 주소를 물은 다음 발달음질쳐서 집으로 들어왔다.
배리가 사나우면서도 서근서근하고 눈물이 많은 아내는 슬픔 반 울음 반인 야릇한 얼굴을 지으며 지금 듣고 온 이야기의 몇 토막을 말한 후 푸념 비슷이 말을 잇는다―—
“쌍등이두 아닌 데 쌍등이라구……”
“쌍둥이가 아니 야?”
하고 경수는 놀라는 듯이 물었다.
“아니래요. 외살 터불²¹이 형이 있는데 걔가 몸이 약하고 잘 얻어먹지 못해서 동생과 키가 그만그만하다는군요. 형제니까 얼굴도 어슷비슷할 것 아니우.”
하는 말을 들으며 경수는 곧 자기의 자식들을 생각하였다. 쌍둥이는 물론이지만 영양이 좋지 못하고 터불이 작은 아이들은 키나 얼굴이 모두 그렁그렁하다 하니, 겨우 외살 터불인 그 집의 형제는 짜장 그놈이 그놈일 거니 쌍둥이란 말도 남 직한 일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도 아이들은 쉬지 않고 장난을 하고 있다. 어미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탓인지 손바닥만 한 들악과 쥐굴 같은 집 안을 나와 들어가 하며 “으악, 하하하” “앙― 엄마, 에금마” 하고 야단법석을 친다.
경수는 무언지 모르게 슬며시 소이틀빗해졌다.²² 그러며 그제야 오한이 도는 제 몸을 깨달았다. 벌써부터 온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따신 물 좀 있소?”
하고 묻다가, 묻지 않아도 뻔한 일임을 깨달으며 말을 돌렸다.
“참, 그 집이 어디랍디까?”
경수는 아내에게서 그의 집을 물어가지고 곧 밖으로 나왔다.
까닭 모르게 불쾌한 생각이 가슴 한구석을 누르고 있었다.
마뜩지 않게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을 그러지 말라고 할 생각도 없고 또 공연히 가슴이 뛰고 오한이 드는 자기가 몹시 약하게 생각되었다.
경수는 걸음을 빨리하며 “경칠, 줏대 없는 놈!” 하고 스스로 제 몸을 꾸짖었다. 기운이나 버쩍 나주었으면 하길 하였다.
바로 아까에 일어난 참변을 그만 잊어버린 듯이 쓸쓸한 한 거리를 걸으며 자기의 슬기 없음을 그는 께름히 생각하였다. 좀더 강하고 좀더 의젓한 자기가 되었으면 하기도 하였다. 저를 위하여서나 남을 위하여서나 한가지로 충실한 몸이 되어보았으면 하는 의욕도 적이 타올랐다.
“왜, 오한이 드는 거냐?”
그는 속으로 제게 외치며 위정 다리에 힘을 주어 가뜬가뜬 걸어갔다.
그러며 경수는 생각한다.
우선 참변당한 그의 집을 찾아가서 위문하고 그리고 다시 무슨 통지가 있을 때까지는 회사에서 조의금을 가져와도 받지 않을 것과 이 동네의 주민 대표가 회사로 방문하고 ‘후미끼리방’을 어느 기한 내에 꼭 설치하도록 하는 동시에 이번 일에 대한 마땅한 조처를 결정짓기까지 죽은 아이 아비도 피해자로 행동을 같이할 것을 당부하고, 그담으로 이 동네 대표들을 모아놓고 오늘 밤중으로 선후책을 강구하리라고 생각하였다.
‘후미끼리방’ 문제는 벌써부터 있어온 지 오래다. 동네에서 이미 대표까지 선정하여 조철 당국과의 교섭 일체를 일임하고 있는 터이나 아직도 결말을 짓지 못한 채로 ×다. 조철 당국이 ‘후미끼리방’을 둔다고 한 지도 이미 오래다. 하나 대표들은 그 언명만을 듣고 와서는 들뿌리를 풀어놓은 셈이다. 그래서 여태 그것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무책임한 것은 물론이지만 대표들도 성의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이 동네 주민에게 있어서는 직접 생명에 관계를 가진 중대한 문제다. 그러니만치 한시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 시급한 문제다.
작년에는 그 말썽 많던 화재 문제가 여러 해의 운동 덕으로 해결되었다. 즉 기차 굴뚝에서 나오는 불똥이 철길 가 초가지붕에 떨어져서 가끔 불이 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오래도록 말썽이 되어오다가 결국 작년에 와서야 조철 당국은 그 연선 초가집을 양철로 바꾸어 이어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걱정 하나는 덜었으나 그보다 더 큰 문제인 ‘후미끼리방’은 여태껏 그대로 밀리어왔다. 한 곳도 아니요 세 곳이나 되므로 경비가 많아서 회사는 손을 대지 않는 모양이다.
버스가 다니고, 국철에서도 기동차를 새로 부리게 되어, 교통기관의 삼각선이 맹렬해진 관계로 찻삯을 내리게 되고 따라서 그만 차 수입이 줄어졌다 하여 조철 당극은 이 문제를 밀깃밀깃해왔다.
저희들의 × 쟁²⁴ 때문에 수입이 준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개인 경영인 버스도 이익을 내거든 크나큰 회사가 결손을 볼 리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교통기관이 느는 것이나 또 감독 당국이 그것을 인가하는 것은 그만치 교통량이 늘기 때문이 아닌가?
교통량이 늘면 수입도 따라서 늘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교통기관이 더 생겨났다 하더라도 한 회사가 혼자 결손 보게 될 리는 없는 것이다. 인가 당국은 어디까지든지 경영자를 옹호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 승객의 이익을 위하여, 회사들이 유지 곤란에 빠지도록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도륵 만들어 줄 리는 없는 것이다.
경수가 처음 이 동네에 이사 올 당초에는, 이 조철 경편차의 왕복이 하루 10여 회에 불과하였다. 한데 지금은 20회도 훨씬 넘는다. 그리고 또 이 동네의 인총도 사못 빽빽해졌다. 해서 교통사고가 한결 더 많아지게 되고 따라서 ‘후미끼리방’ 문제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이 동네는, 가난한 동네가 거의 다 그런 것같이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 어린애들은 대부분 유지원이나 학교로 갈 수 없고 또 모여 놀 적당한 장소를 가지지 못한 까닭으로 조그만 빈터가 있는 ‘후미끼리’ 대목으로 낮이면 모여든다.
기차와 기찻길에 레일과 침목이, 그리고 색유리 달린 ‘시그널’이 그들의 주린 눈에는 한 가지 유혹의 대상이 되어 있다. 사람은 물론, 석탄과 재목을 실은, 뙤낮고 속력이 뜬 경편차를 바라보며
“야, 조까짓 데 뛰어 못 올라!”
하고 한 놈 외치면
“야, 난, 엇것대(요전에) 자동차 뒤에 달려서 큰 다릿목까지 갔다 왔다.”
하고 다른 놈이 맞장구를 친다.
“히, 하이칼라상, 하이칼라상…… 야― 에미네 색주경 (안경)썼네.”
“거, 양국 복장 개화장 좋一다.”
이렇게 승객을 놀려먹다가는, 게창 성수가 나서 잦은 청으로 한 곡조 떼는 놈도 있다.
―신고산이 우르르 기차 가는ㅡ소리 구고산 큰애기 밤보따리만 싼―다……
그러다가 기차가 다 지나가버리면 주르르 몰려들어 레일에 귀를 대고 기차 달리는 소리를 엿듣기도 한다.
이런 광경이 지금 경수의 머리에 새삼스러이 환히 떠올랐다.
그의 네 자식도 찻길에 나가 놀다가 기차 통행을 방해하였다는 이유로 여러 번 붙들리어 간 일이 있다.
조철 당국은 부모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하고 아이 간수 잘못함을 매무섭게 으르려 하나 그것은 도저히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날그날 벌어야 살아가는 이 동네의 부모로서는 도저히 될 수 없는 일이다. 아이 하나에 어른 하나씩 달려 있을 집이 뉘 집이랴?
회사가 ‘후미끼리방’만 두면 문제는 그만 해결될 것이다. 극히 간단한 일이다. 하나 이 간단한 일도 결코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은 부내면서도 밤거리에 전등 하나 볼 수 없는 터이고 오뉴월 장마에 고인 물 빠질 개천 하나가 변변히 되어 있지 못한 그들의 동네다.
바로 지난여름에도 경수네 앞집 상투쟁이가 들악에 물이 괴어서 부엌으로 숨어드는 것을 빼기 위하여 그 앞길에 지렁이만 한 도랑을 파서 건너편 개천으로 인수하다가 도로 훼손이니 뭐니 해서 혼쭐이 난 일이 있다.
이런 동네니만치 회사가 노상 얕밟아 보고 드는 것이다.
하나 이번은 기어코 약속을 이행시키고야 말리라고 경수는 생각하였다.
그것은, 그 사람뿐 아니라 온 동네가 모두 한가지로 열망하는 문제다.
그리고 또 찻길 가 동네는 물론, 그 인근 각 동네에서도 아낙네들이 빨래하러 다니고 아이들이 가서 노는 일이 많기에 늘 위험을 느끼고 있는 터이다.
그 이튿날 경수네 동네 주민 대표 여덟 사람은 조철 회사로 찾아갔다.
어젯밤 경수는 참변당한 박 서방의 집을 위문하고 선발로 동리 대표들을 한 집에 불러 모아가지고 교섭에 대한 전후사를 밤늦도록 협의하였던 것이다.
이 얘기 끝에 참변당한 아이 아비 박 서방도 데리고 가는 것이 어느 편으로 보든지 유리하리라는 것으로 말이 일치하게 되어 함께 데리고 갔다.
회사 경리과장이라는 조그만 사나이는 그 몸집에 상당치 않게 당당한 태도로 저바로²⁶ 앉아서 시종 묵묵히 대표들의 말을 듣고만 있더니
“네, 잘 알겠소.”
하고 뜨젓이²⁷ 입을 연다.
그의 말은 요컨대 전과 같이 ‘후미끼리방’은 물론 두기로 하겠는데 다만 경 비 관계로 그 시기까지는 확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산 문제가 있고 또 연도(年度) 관계가 있으니까요…….”
하고 의외로 간단히 막아버리자는 상이다.
“그러면 작년도에 언명한 문제를 금년도 예산에도 넣지 않았단 말씀이오?……벌써 금년도도 반년이 넘지 않았소.”
하고 제일 나이 먹은 K라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경수는
“아니, 그건 우리가 알 필요 없는 문제요.”
하고 말을 막았다.
“예산이니 연도니 하는 문제는 회사 내부의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약속한 문제를 이행해달라고 왔을 뿐입니다. 벌써 2, 3년째 있어온 문제니까 지금 해준댔자 결코 이른 문제는 아니니까요.”
“그건 당신네 사정일 테죠. 네, 물론 당신들 사정도 짐작은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사도 서슴지 않고 이렇게 피차 협의하는 거 아니우. 허나 회사도 지금 경쟁 때문에 결손 보는 지경이니까요…….”
새로 갈려 왔다는 키 작고, 되똑한 경리과장은 볼 성보다는 어디까지든지 침착하고 익먹는²⁸ 태도로 슬슬 구슬리려 한다.
“그러면 주민에게 위험을 주는 것으로써 회사가 이익을 보아야겠습니까? 물론 크나큰 회사가 그런 인색한 생각을 하리라고 우리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생겨서 조의금이니 장례비니 하는 걸 지출하느니, 차라리 얼른 ‘후미끼리방’을 두었으면 피차 이익 될 거 아닙니까. 이익이라는 것보다도 주민으로 보면 생명을 건지는 거라고 할 겁니다.”
대판에 가서 메리야스 공장에 다니다가 각기를 만나서 돌아온 Y라는 사람의 말이다.
“사고에 대해서는 회사도 늘 머리를 앓고 있는 터이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부형들이 각별히 주의해줘야 할 것 입니다. 회사에서 말하는 것보다도 경찰에서 말하는 것보다도 가정에서 잘 보살피는 것이 제일 효과가 있으니까.”
“아니, 우리들 가정 형편이 그리해낼 수 없다는 것은 누누이 말해온 거지만……회사는 늘 모든 책임을 주민들에게만 밀려고 드니 정말 딱합니다. 어저께 참변당한 당사자가 저게 와 있고 또 회사에서도 그 전말을 대강 조사하였을 줄 압니다만…….”
“인제 와서는 사고의 책임이 주민 측에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약속대로 해주었으면 그런 봉변이 없을 거 아니우.”
경수는 ‘후미끼리방’ 문제와 어저께 사고를 여기서 연결시키기를 잊지 않았다.
“아니, 거게 대해서는 벌써 조사한 바도 있고 또 더 상세히 조사해보겠습니다만 지금까지의 조사로서는 그 가정 의 불찰이라고 밖에 할 수 없소. 어른이 데리고 가다가 그리 되었으니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와 해석이 전연 다릅니다. 원인을 내버려두고 결과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회사가 왜 언명한 문제를 여태 실행하지 않소? 그 때문에 그런 사고가 또 생긴 거 아니우.”
경수는 좀 흥분되었다.
“아니, 물론 그렇기 때문에 회사도 그저 있으라는 것은 아니오. 어떤 형식으로든지…….”
과장은 이렇게 말하며 슬몃슬몃 박 서방을 본다. 박 서방은 맨 뒤에 꾸부리고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눈만 꺼벅꺼벅 하고 있다.
“물론 어저께 사고에 대해서는 회사로서의 적당한 처리가 있을 줄 믿습니다만…….”
하고 경수는 거기 대해서 의견을 말하였다. ―바로 ‘후미끼리’ 대목에 와서야 정거시키려고 한 것, 현장에서 즉사한 것, 아들인 것, 부모는 이미 단산기(斷産期)는 된 것, 극궁한 사람이요 또 타곳 사람이라는 것을 저저이 말한 다음, 그 사고는 회사가 약속을 이행치 않은 데서 생긴 것이라는 책임감 위에서 고려해야 할 것을 저저이 말하였다. 과장은 그 말을 들으며 빙긋 웃고는
“네, 그건 당신네가 말하지 않아도 회사로서의 정규가 있으니까……”
하고 일부러 서근서근한 태도를 보인다. 사실 과장은 이 문제를 누그럽게 대담함으로써 ‘후미끼리방’ 설치 문제를 흐려버리려는 것이었다.
“허나 문제는 거게만 끄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곧 ‘후미끼리 방’ 을 설치해줘야겠습니다. 이번 사고도 이 문제와 관련된 문제이므로 둘을 다 완전히 해결지어주도록 바랍니다.”
하고 Y가 말하자 경수가 곧 받아 이었다.
“이미 ‘후미끼리방’ 설치는 언명한 바이니까 두느니 안 두느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언제 설치해주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 과장은 약간 눈초리에 냉소를 띨 뿐으로 아무 대답도 없다.
그러다가 이편에서 재촉하다시피 그 말을 되풀이하매
“그건 명언할 수 없소.”
하고 입을 딱 닫아문다.
“명언할 수 없다니요? 그러면 처음부터 해줄 생각이 없는 걸 빈 말로 해준다고 했던 건가요?”
Y가 따졌다.
“아니, 아까도 말한 거고 또 그런 문제는 나로서는 어떻다 말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중역회를 거쳐야 하고 또 예산이 서야 하는 거니까요.”
하고 과장은 이어서 오늘날 주식회사라는 것이…… 더욱이 이런 큰 철도 회사라는 것이 얼마나 범절이 크고 계제가 층층한지를 요령 있게 따서 말한다.
“아닙니다. 이 문제는 어제오늘에 생긴 문제가 아니고 벌써 수 년째 있어온 문제니까 여태 논의되지 않았을 리도 없는 거고 또 우리 주민들은 절대 더 기다릴 수 없는 터입니다.”
경수는 이렇게 말하고는 한층 기를 가다듬어가며
“우리 주민 측의 사정은 충분히 말했으니까 인제 주민의 요구를 결론지어 말하겠습니다. 오늘부터 1개월 이내로 ‘후미끼리방’ 3개소를 전부 설치해주기를 관계 주민의 대표로서 요구합니다. 주민 측에서는 참을 대루 참아왔으니까 부당하다고 할 이유는 절대 없을 것입니다.”
하고 따라서 말하였다.
이리하여 교섭은, 이 중심 문제를 싸고 한참 긴장히 전개되었다.
하나 끝끝내 회사 측은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면서도 쌍방의 정면충돌을 교묘히 피하여 대표들이 격앙하는 때면 저편은 슬쩍 꺾이듯이 부드럽게 늦추고 그랬다가 이편이 조금 사정 귀가 뜨인 듯하면 저편은 맹랑히 냉담한 태도로 감돌아들곤 한다.
과장은 공개하지 못할 비밀이나 누설하듯이 또는 관계 주민에게니 폐부 없이 털어놓는다는 듯이, 근자의 교통기관 사이에 경쟁과 그 때문에 생기는 손해를 지루하게 되풀이하고는
“물론 이런 사정은 회사 체면으로는 터놓고 말하고 싶지 않으나 당신들 관계 주민에게니까 말하게 되는 거고 또 감독 당국도 이런 사정은 잘 양해하고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야 당신들보다 감독 당국이 더 먼저 간섭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기실은 회사가 지금 이만큼 곤경에 처해 있단 말이오. 하하하…… 참 딱한 일이지요.”
하고, 회사의 곤경을 말하는 반면에서 배후에 딴 방패를 슬쩍 비춰주는 것이었다.
대표들은 생목이 바짝 올랐다.
“한 개 회사의 손해를 그같이 문제시하는 당국이라면 주민의 생명은 보다 더 중대시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경수는 흥분으로 말이 끊어졌다. 그러자 나이 먹은 K가 곧 말을 이었다.
“회사의 손익을 우리가 이러니저러니 참견할 배 아니지만 우리가 보는 바로는, 승객도 전보다 훨씬 늘어나고 또 운전 횟수도 엄청나게 잦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하루 왕복이 꼭 스물여덟 번이니 그 얼마나한 발전입니까. H읍에 질소 공장이 생기고 요즘은 또 B촌에 대두백(大豆粕) 공장이니 뭐니 하는 것이 된다고 해서 이 인근 일대는 인구가 날부일 늘어가고 사람의 내왕이 연락부절하는 형편이 아니오. 이전에 한 사람 타는 것이 지금은 세 사람 네 사람이 되는 폭이니 찻삯이 조곰 내렸다기로 무슨 문제가 되겠소.”
하고 창황히 늘여 뱉는 사이에, 경수는 마음을 사려²⁹가지고
“좌우간 긴말이 없이 확답해주십시오.”
하고 결론을 외목으로 몰아세웠다. 문제의 중심을 떠난 객담은 길면 길수록 자기네들의 약점을 보이는 것이라고 경수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딱 중심을 잡고 의젓이 버틸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가 경험한 바로는 이 세상은 손을 짚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보다 발을 벋디디고 배통을 내미는 것이 항상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더욱이 권세와 금력을 가진 축들은 정의감이 극히 박약하고 정의감이 없으면 따라서 약자를 동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얕잡아 누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기 때문에 버티어주어야 한다. 더군다나 이편저편 하는 무릎에서는 때를 헤아려 줏대를 세워봐야 하는 것이다.
“1개월 이내에 설치해준다든지 못해준다든지 그 어느 편이나 가부간 똑똑히 따서 말해주시오. 우리 대표들은 관계 주민에게 보고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니 까요.”
하고 경수는 그만 일어설 듯이 선뜻 허리를 펴며 과장을 건너다 본다.
순간, 대표들은 거의 동시에 긴장해졌다. 자기들의 배후에서 이 문제의 하회를 지키고 해결을 고대하는 주민들의 모양이 방불히³⁰ 떠올랐다.
“거게 대해서는 벌써 다 말한 줄로 생각하오.”
하는 과장은 힘써 침착을 꾸미나 어딘지 모르게 당황한 빛이 보인다. 그의 손은 테이블 위의 서류를 까닭 없이 뒤지고 있다.
“그러면 설치해줄 수 없단 말이죠?”
경수는 간발을 넣지 않고 말끝을 받아쳤다.
“네, 이를테면…… 글쎄 아까도 말한 바지만 예산 관계로 보든지 시기 문제로 보든지…….”
과장은 조금 갈팡질팡하는 어조다. 경수는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며
“네, 잘 알았소, 그것은 물론 회사의 의견일 테죠?”
하고 다시 추급하였다.
“암 물론이지요. 허나 당신들 의견은 한 번 더 전달해보겠습니다.”
“그건 당신의 생각이겠지요…… 자아 우리는 가겠습니다.”
하고 경수는 자리를 차고 우뚝 일어났다. 그리고 도고히³¹ 몸을 가다듬으며 ,
“회사의 태도는 당신으로부터 충분히 들었습니다. 그것을 관계주민, 3개리 1천5백 명에게 그대로 보고하지요.”
하고 앞을 서서 가뜬한 보조로 걸어 나왔다. 다른 대표자와 박 서방도 이어 뒤미처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미상불 발길이 허든거렸다.
하나 이 순간 그들의 머리에는 주민의 그림자가 까만 밤중의 횟불같이 어물거렸다. 일찍이 이때같이 그 그림자가 선명히 그려진 때는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믿을 사람은 없다. 또 도와줄 사람도 없다. 그러니만치, 처지가 같은 관계 주민에 믿음과 기대가 실리어졌다. 오직 그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 여덟 사람은 확실히 힘이 약하다. 힘이 무척 세어야 할 이 마음에서 그들은 힘이 약함을, 그리고 힘을 보태어야 함을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느꼈다.
오직 관계 주민만이 힘이 될 수 있다.
주민대회로!
막다른 골목의 강아지는 호랑이를 향하고 돌아선다.
그날 밤이다.
경수는 웬일인지 몹시 피곤하고 여름과 같이 찌물쿠는³² 듯함을 느꼈다. 자리에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이 오고 가는 사이에 어느 덧 정신이 흐릿해졌다. 그러자 이상한 세계가 눈앞에 전개되었다.
그것은 어둡고 막막한 혼돈천지다. 그 아래에 꺼먼 방축이 길게 가로누워 있고 그 위에 웬 사람이 장승같이 우뚝 서 있다. 일순 그 방축은 자기 집 서쪽 방축으로 변해지고 그 사나이는 박 서방으로 변해졌다. 그러자 바로 철도 길 위에 엎드러진 붉은 저고리 입은 어린애가 또 눈에 비쳐온다. 그 어린애는 분명히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그는 날새같이 재바르게 텁석 그 애를 안아 들었다. 확실히 산 아이다.
“여……!”
하는 된소리가 뒷덜미를 콱 꽂아준다. 그것은 어김없이 기차가 오니 얼른 비키라는 ‘후미끼리방’의 고함이다. 그는 꼭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며
“기차가? 와?”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지나가는 순간, 머리가 팽그르 돌아가며 그는 황겁히 박 서방을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소리가 나가지 않는다.
“박 서방! 아이가 살었어 살었어·…‥”
하고 부르려는 생각이 가슴에서 네굽을 안고³³ 달구질을 하나 소리가 나가야 말이지.
그는 가슴이 뻐개져라 하고 소래기를 질렀다. 그러나 여전히 소리가 안 터진다. 또 한 번 악을 써 외쳤다. 소리가 날 것도 같았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서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어 ―”
하고 길게 끄는 소리가 차츰 들리는 듯하였다. 아니 들렸다. 하나 그 소리를 듣게 된 때는 이미 꿈이 깬 때다. 머리가 베개에서 떨어지고 고개는 가슴에 처박혀 있었다. 땀이 호조고니³⁴ 흐르고 숨이 몹시 가쁘다.
잠은 다 깨었다. 꿈에 본 박 서방과 어린애의 모양을 생각하니 그 무서운 양이 몸서리를 치게 하였다. 그리고 그보다도 언듯 꿈 속에 들은 ‘후미끼리방’ 의 소리와 그 뒤에 유령과 같이 거멓게 솟은 ‘미하리쇼’ 〔見張所〕³⁵가 더욱 요괴하게 생각되었다.
현대 문명 이 던져주는 암담한 반면을 그는 이 꿈속에서도 발견하였다.
*
‘후미끼리방’이 된 것은 그로부터 달포 후 일이다.
그는 공사장에서 늦게 돌아오는 때 날씨가 흐리고 음침한 밤이면 피와 땀으로 된 이 동네 앞 ‘후미끼리방 미하리쇼’―비둘기 통 같은 조그마하고 높은 집은 마치 꿈속에 본 유령과 같은 박 서방으로 뵈는 때가 종종하다.
그러며 그 집이 엎더지며, 창자가 내밀린 어린애를 텁석 안아드는 피투성이의 광경을 연상한다.
이 조그만 한 가지 성공에도 얼마나한 땀과 힘이 요구되었던가?
경수는 지금도 여전히 제방 공사장에를 다니고 있다.
벌써 겨울이 되었다.
-끝-
2016년 7월 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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