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 수호 발원하고 조계사 천막에서
100일 기도하는 정범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고 서울 서대문구 옥천암 주지인 정범스님은 2000년부터 2003년 중반까지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 태광사와 뉴욕 불광선원에서도 수행과 포교를 한 적이 있다.
정범스님은 미국에서 해외불교 포교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계종에서 주최하는 각종 해외불교관련 행사나 세미나에도 사회자나, 발표자로 나서고 있다.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정범스님이 1월 13일부터 서울 조계사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100일 기도를 시작하여 ‘민족문화’수호를 위한 참회정진을 시작하였다. 스님은 원래 2009년 옥천암에서 1,000일 기도를 시작하여 1월 12일 700일 기도를 회향하였는데 800일부터 백일간 기도를 이곳에서 시작한 것이다. 스님의 텐트 벽에는 하루 일정표와 <참회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참회내용이 크게 붙었있다. 그리고 전기장판, 전기난로 한 대, 컴퓨터 한 대가 전부이다. 이곳에서 스님은 옥천암 신도를 비롯하여 찾아오는 스님들과 기자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스님이 보는 불교계 현실을 설명하고 왜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시작하게된 심경을 밝히고 있다.
아래는 정범스님이 <민족문화>수호를 위한 참회기도를 하게 된 심경을 밝힌 글이다.
또다시 100일 기도를 시작하며
오늘 저는 옥천암 천일기도 중 8차 100일 기도를 시작하면서 가지게 된 마음을 사부대중과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옥천암에서 소임을 맡은지 벌써 6년입니다. 어려서부터 수덕사에서 자라고 공부하였기에 부처님 세상이 전부였던 제게 군복무와 해외에서의 경험은 한국불교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 불교는 사회 변화에 걸맞는 모습으로 변화하지 못했습니다. 1700여년이라는 시간은 역사성의 장점과 함께 무거운 무게로도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옥천암에서 먼저 시범적으로 현대사회에 적합한 불교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어린이부, 청소년부, 대학생부, 거사회 등 계층별 신도조직과 지역별 법등조직을 꾸리고 일요가족법회를 진행하면서 시대에 맞는 불교공동체를 가꾸고자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차 2007년 3월 내포 가야산에서 무분별한 개발소식(송전철탑, 골프장건설, 유적지관통도로)이 날아왔습니다. 가야산의 개발소식은 저를 키워준 출가본사의 은덕에 보답하라고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수덕사를 시작으로 개심사, 일락사, 문수사 등 가야산 인근 사찰 스님들과 지역 시민환경단체를 묶어 가야산시민연대를 조직하고 가야산을 지키기 위해 산 중턱에 천막도 설치하고 10개월간 활동을 했습니다. 이 일로 1년에 한번뿐인 부처님 오신날 행사도 옥천암에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가야산 속 천막생활을 통해 낮에는 온갖 풀벌레와 야생화를 벗 삼고 밤에는 새들 지저귐을 들으며 밤새 자연과 함께 하였습니다. 보원사 옛 절터와 가야사의 옛 절터에서 천 년 전의 조상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자연환경의 소중함과 물려받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고, 전국의 수많은 옛 절터에서 목탁과 염불소리가 울려 퍼져 새로운 기운이 돋아나기를 기원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옥천암 신도님들과 함께한 신행생활이 부족했던 것에 보답하고자, 제가 없는 가운데에도 열심히 각자의 신행활동을 해준 옥천암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1,000일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를 스스로 묶어두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이제 700일을 회향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가졌지만, 저만을 위한 이기적인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4대강 공사현장에서 부처님이 발견되었으나 구멍이 뚫려 폭파되기 직전의 상황을 접하면서도 애써 외면하였고, 범어사 사천왕이 방화에 불타는 현장을 보고서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일기도 입재 전에 1심 재판에 졌던 가평 현등사 사리구 찾는 일을 봉선사 대중들과 삼성 박물관에 직접 찾아가서 해결했던 경험을 가졌으면서도, 기도한다는 명분으로 논산 개태사의 국보 금동대탑이 돈과 권력 앞에서 똑같은 재판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였습니다.
작년 12월 집권여당의 날치기 예산통과와 함께 템플스테이 예산안 삭감, 그로 인해 종단의 민족문화수호를 위한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는 과정에서 이번 성도재일 철야정진을 맞았습니다. 정진하는 가운데 불법과 성보를 지키지 못했던 과오가 물밀듯이 다가왔습니다. 잠시 접어두었던 불법수호에 대한 열정이 샘솟았습니다.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700일 기도 회향을 맞이하면서 남은 기간 더욱 정진해야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잠들어 있었던 나의 나태함을 깨워서 새로운 희망을 낳아야 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옥천암 사부대중여러분!
이제 제가 불법과 성보수호를 위한 참회정진기도를 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제 자신을 위한 기도였다면 이제 삼보전에 부끄럽지 않는 기도를 하고자 합니다. 어떤 형태가 되었던 널리 혜량하시고 적극 동참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불교계 내부의 청정성 회복과 자정에 게으르고 불의를 용인한 것을 참회합니다.
저는 권력이나 금력과 타협하여 고통받는 중생들을 외면하며 살아온 지난 삶을 참회합니다.
저는 정부의 종교편향과 이교도의 훼불행위를 저지하지 못하여 삼보를 외호하지 못했음을 참회합니다.
저는 비불교적 행위를 용인하고 그들과 타협해온 지난 과거를 참회합니다.
저는 한국불교 1700년 전통과 정체성을 굳건하게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참회합니다.
<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