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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예수님과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람들”
+ 본 문 : 요한복음 12장 1절 - 8절 (신약성경 p.167)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 말씀을 듣기 전에 서로 사랑의 인사를 나눕시다. / ‘사랑합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 결단합시다. / ‘예수님을 감동시키며 삽시다.’
‘0 0 0 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에는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돈 많고, 학벌도 좋고, 인물 좋고, 잘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많을수록 좋은,
예수님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감동시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참으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각각 되고 싶은 욕망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힘을 길러 권력을 잡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높아지려고 하고, 많은 것을 소유하여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은, 예수님과 사람을 감동시키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보다, 하늘과 땅을 감동시키는 사람,
예수님과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키고,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부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출세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물이 잘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닮은 우리의 마음 하나면 가능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애를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우리의 심혼을 흔들고, 감동시키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내노라하는 정치가들이 많지만, 그들은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는 재벌들도 많지만, 그들도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교육자들도 많지만, 그들도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인기 있는 연예인들도 많지만, 그들도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록 가난하게 살면서도, 배운 것이 없어도, 유명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마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위대한 그리스도인,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마음은 물론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킨 위대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곧 옥합을 깨뜨려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마리아라는 여인입니다.
사람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어려운데, 주님의 마음까지 감동시켰으니 얼마나 위대합니까?
예수님의 뒤에는 열두 제자는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교훈과 진리,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닮기 위해 예수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 제자들도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당시 살아 계신 주님께서
"그가 나에게 좋은 일을 했다." 라고 칭찬하셨을 뿐만 아니라,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마음까지도 계속해서 울리는 감동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옥합과 함께 마리아의 마음이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네 마음을 나에게 다오.” 하십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랐던 수많은 청중은 육신적인 욕구와 유익을 얻기 위해 따랐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역시 예수님에게서 무엇 하나라도 배우려고, 머리로 생각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예수님을 향하여 구체적으로 사랑의 마음을 쏟아낸 사람은,
바로 오늘 본문의 마리아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마음을 자신을 향해서,
구체적으로 쏟아 붓는 마리아에게서 가장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한마디로 마리아는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참으로 멋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라는 동네에 가셨습니다.
베다니라는 동네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동네였습니다. 왜냐하면, 베다니라는,
동네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최고의 선물이 부활인데,
그 최고의 선물인 다시 사는 부활을 베다니에 살고 있는 나사로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병에 걸린 시몬이라는 사람의 병을 고쳐주심으로 새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다니라는 동네 사람들은, 항상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나병을 고침 받고 너무 감사해서, 어느 날 예수님과 함께,
죽은 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초대해 감사의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해,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면서 기쁨을 나눕니다.
바로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가까이 오더니,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그 발아래 엎드려, 자기의 머리털로 향유가 묻은 예수님의 발을 씻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제자들은 분을 내면서 "왜 이것을 허비하느냐?“ 고 비난을 합니다.
특히 예수님을 팔았던 제자인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발에 부어 허비하느니,
차라리 그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아니하고,
그렇게 낭비하느냐?“ 고 말하면서 다른 제자들보다 더 크게 화를 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는 진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탐해서 화를 낸 것입니다. 그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가만 두어라,
저가 내 장사를 미리 준비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내가 장차 고난을 받고 즉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나야 하리라."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은 이것을 믿지도 않았고,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죽으시면 안 됩니다." 라고 크게 만류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그러한 주님을 향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노동자가,
1년간 일해서 품값으로 받는 금액의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드린 것입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여자가 머리 푸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는데, 마리아는 수치를,
무릅쓰고 머리까지 풀어서, 그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정성껏 닦아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을 너무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의 몸도, 마음도, 자기의 물질까지도,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는 고백을 구체적으로,
쏟아 붓는 마리아의 신앙고백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아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막 14: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만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건이 두고두고,
기념할만한 복음이 되어, 듣는 모든 사람들까지라도 감동시켜야 합니다.
마리아는 향유라는 물질 속에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담아 십자가 지실,
예수님께 부어 드림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거기 모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두고두고 기념할만한 복음이 되어,
그 복음을 듣는 오늘 우리까지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예수님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만한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0000 교회와 성도들이 그렇게 큰일을.....’ 하고 놀랄만한 일들을 많이 하므로.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 시키는 일을 하므로,
두고두고 모든 사람들에게 기념할만한 복음이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본문의 마리아처럼 향유라는 물질 속에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담아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 부어 드리는 헌신이 있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교회당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으로만 따라오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라도 드려야 하는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3년 동안 자신을 따르며, 배우는 진리의 끝은,
바로 십자가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가르쳐 주셨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반했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다 도망가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것을 알았기에,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마리아를 보고 감동받았고, 오늘 우리도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신의 머리에 부어지고, 자신의 발에 부어지는,
향유의 가치와 향기를 좋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속에 담긴,
그의 신앙고백과 행위를 보시고 좋아하셨고,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그 발아래 무릎을 꿇었던 마리아를 두고,
‘발 아래 여인’ 이라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언제나 위대하신 주님 발아래,
엎드려서 우러러 눈을 떴으며,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주님의 발 닦기도,
감당할 수 없는 천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그에게 하나님의 계시와 감동이 임했고, 물질과 몸과 마음과,
영혼을 쏟아 부어 예수님을 감동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오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나?’ 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으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나?’ 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더 사랑할까?‘ 하는 생각으로 그 마음은 충만해 있었습니다.
은혜를 두 가지로 받습니다. 하나는, 보통 사람들이 받은 은혜인데,.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를 받음으로 은혜를 받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을 너무 너무나 사랑함으로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축복은, 바로 이 예수님을 너무 너무나,
사랑함으로 받는 은혜로 충만한 사람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축복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바로 이 은혜는,
하늘과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는 줌으로 받는 은혜요,
사랑함으로 받는 은혜요, 희생함으로 받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바로 예수님을,
감동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특별한 축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시키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행한 마리아를 향하여,
"마리아야, 네가 나에게 좋은 일을 했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감동시킬 때가 어느 때입니까?
부모의 마음을 알아줄 때입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아버지, 어머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한 일이 많이 있는데, 이제부터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그 부모는 감동하며 눈물이 쏟아집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하는가를 너희가 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믿는다면, 그것은 주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주님을 귀히 여기지는 않습니다. 내가 목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요,
그리스도인 것을 귀히 여기면서도, 주님은 귀히 여기지 않으며,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라보면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어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삶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헌금을 드릴 때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찬양을 드릴 때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평생에 지을 수 없는 찬양은 목사와 성도를 울리는 찬양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후배의 간청에 전라북도에 있는 작은 시골교회에 부흥회를 갔었습니다.
부흥회를 하는데, 전도사가 예배 사회를 보다가 내려가서 성가대를 지휘합니다.
20명 조금 넘는 교인인데, 학생조차 합해서 7명 정도가 성가대원이니,
3분지 1이 성가대원입니다. 성가대 찬양은 화음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 대원이 찬양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찬양대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하자, 교인들도 눈물로 화답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눈물의 찬양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기에, 예수님과 우리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무리 많은 오케스트라와 성가대원이 동원되어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은혜가 안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면,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전 청소를 맡아 감당할 미화위원과, 강단 청소를 맡아하는,
권사님들을 주보에 올리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강단과 성전 청소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게 하시고, 천국 마당과 하나님의 보좌를 쓴다는 마음으로 하게 하시어,
청소하는 이도, 이 성전에 넘나드는 이도 다 성전의 복을 받게 하시옵소서!‘
천국 마당과 하나님 보좌를 쓰는 강단과 성전 청소를 하는 일,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리고 예배 안내위원들은 천국백성들을 영접하는 참으로 복된 일이요,
예배시간의 헌금위원들은 예물을 하나님께 올리는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드려도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헌신을 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자는 예배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사랑하는 애인을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너무 사랑하시는 신령한 의미에서 애인이었습니다.
마리아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사랑해 주시는 신랑으로 생각하고,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좋아하십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 시키고,
주의 종인 저의 마음을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한, 옥합을 깨뜨린 분들을 기억합니다.
옥합을 깨뜨려서 저에게 준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저는 그분들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분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움을 당했을 때, 기도 외에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 제가 생각할 때에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섭섭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끝까지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섰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들, 이 종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들에게,
이 글을 드립니다. ‘교회에 오고간 많은 사람 가운데, 그대는 나를 울렸노라!
그대 있는 곳에 언제나 내 마음이 따라가겠노라! / 이 지구상 어디든지 그대가 /
살아있는 곳에는 나도 함께 있고 /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니 /
그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에게 있을 것이거늘, 내 생각도, /
그대를 향하여 기도하리라. /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 그대 향유 아름다운 향기 되어 /
우리의 숨결 속에 살아 있으려니, 나는 성도님을 잊지 않으리이다. /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간 중에 그대는 나에게 한없는 감동을 불러 일으켰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애인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받는 예수님의 애인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제자들은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일은 귀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부은 일은 낭비라고 생각하고,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것은 주님의 존귀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느 정도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발을 머리털로 닦는 마리아의 얼굴과 가룟 유다의 얼굴을,
비교하면서 상상해 보십시오.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한 척 하면서,
도둑놈의 마음을 가지고 돈에 대한 욕심과 탈취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만 생각하고,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합니까?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서 정말로 행복한 때가 어느 때였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할 때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 나의 전부, 나의 행복이 되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행복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이렇게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등,
예수님을 위해서 한 일이라면, 모든 일들이 다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이 행복을 소유하고 살아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행복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오.
가정에 돌아가서 남편을 감동시키십시오. 또 남편은 아내를 감동시키십시오.
자녀들은 부모님을 감동시키고, 부모는 자녀들을 감동시키며 사십시오.
나아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을 감동시키며 살아 가십시오.
그리고 교회에 와서 목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목사를 울 수 있게 만들어 보십시오.
함께 신앙 생활하는 다른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울 수 있게 만들어 보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한 생을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분의 살아온 삶이,
복음이 되는 기념이 되고, 복음이 전파 되는 곳마다, 마음의 감동을 주는,
교회와 천국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