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할머니의 눈물 그후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합니다.
“안 해도 되는 일을 예수님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라고요.
안 해도 되는 일을 했던 대표적인 성경속 사례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본 사마리아인입니다.
지난 수년간 오지랖 사역이라는 깃발로 많은 분들에게 심적, 경제적 부담을 끼치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조국교회 안에는 사마리아인처럼 안 해도 되는 일들을 예수님 때문에 묵묵하게 해 나가는 분들이 참 많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근래에 아버지를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된 삼남매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지난 23일 소개했었습니다.
그 후로 불과 사흘 만에 총 10분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헌금들이 모금되었습니다. (총 278만원을 26일(금) 밤에 본 교회 명의로 송금했습니다.)
그분들 가운데에는“목사님 샬롬! 갈말에서 삼남매 가정 사연보고 연락합니다.”
“안녕하세요. 해와달(갈릴리마을)을 보는 000입니다.
삼남매 이야기 읽고 조금이지만 보태고 싶어서 문자드립니다.“
또 이분들 가운데 한분은 어려운 처지의 학생을 위해“ 부모 잃은 삼남매 중 큰 자녀인 대학생에게 장학금으로 보내 주려 합니다.”라며 100만원을 보내 주신 분이 계십니다.
5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르기까지, 헌금해 주신 10분의 상황이나 처지는 다 다를것입니다.
또한 이분들의 형편이 특별나게 좋아서 보낸 것이 아니라“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는 말씀을 삶으로 구현하는 분들입니다.
모금을 시작한 다음날인가 군청 사회복지 과장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군의원 분에게 삼남매 가정의 사연을 소개하며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주시길 부탁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앞장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군 차원에서 직접 가정을 방문하여 실질적 혜택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며 끊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경험할 때마다 목회자라는 직임에 감사한 고백이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향한 대 사회적 시선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목회자라는 타이틀로 선한 일에 나서 보면 믿어주심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 사회에서 교회와 목회자라는 단체와 직임만이 가질 수 있는 저력이 있음을 실감합니다.
읍내의 병원에 교우한분이 입원해 계셔서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연이틀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이른 시간에 방문한 사람을 관계자분이 보면서 뜨악한 표정을 짓다가도 목회자임을 밝히면“기도해 주러 오셨구나”하며 인정해 주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한 일들을 경험하며 개인적으로 목회자들 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동일하게 원치 않는 아픔과 절망의 시간을 지나야 하는 이들에게 목회자이기에 다가갈 수 있고 손을 내밀 수 있음이 감사할 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을 찾으면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누군가를 탓하고 정죄하기 보다“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길 기도하는 우리 자신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삼남매의 아픔과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픈 심정으로 물질적 후원에 동참해 주신 분들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하지는 못하셨지만 삼남매를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고마운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 다행하고도 감사한 점은 길에서 우연하게 이모할머니의 차를 타고 있던 삼남매를 만났는데, 아이들이 밝은 모습이어서 위안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삼남매가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 갈수 있도록 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 그 예배자/내가 그 사람 되길 간절히 주께 기도하네>
(주를 위한 이곳에/ 가사 일부)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힘내서 아이들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 시키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삼남매를 돌보시는 이모 할머니께서 보내 주신 인사를 대표로 제가 받은 내용입니다.>
# 혹시라도 삼남매를 위하여 물질로 섬겨 주실 분께서는 010-5532-5935(이도형 목사)에게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