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장,
이른 새벽에 민희는 눈을 뜬다.
조금 더 눈을 붙일까 생각하다 어제 아침처럼 며느리가 음식을 한다면 가족들이 먹지 못하고 나갈까 싶어 미리 일어나 준비를 하려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킨다.
“왜?
벌써 일어나려고?”
“네!
오늘은 아무래도 먼저 일어나 밥을 해야겠어요.
애미가 또 하면 아무래도 가족들이 그냥 나갈까 싶어 미리 준비를 해야겠어요.“
”그냥 내버려두구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입맛에 맞게 할 때가 오겠지.“
”어른들이야 기다린다고 해도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손주녀석들 아침을 먹지 못하고 학교에 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파요.“
민희는 일어나 잠옷을 벗고 홈웨어로 갈아입는다.
“나도 일어나 볼까?”
형우도 몸을 일으킨다.
“당신은 더 주무세요.”
“아니, 당신이 없으면 잠이 오질 않는데 뭐 하러 누워있겠소?
당신 일하는 모습도 보면서 차라도 한 잔 얻어 마실까?“
”호호호.........
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저 먼저 내려갑니다.“
민희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방으로 간다.
주방에는 이미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며느리 유혜영이 가스불 앞에서 뭔가를 한다.
“에미야!
벌써 일어나 나왔구나?
헌데, 무슨 맛좋은 냄새냐?“
”나오셨어요?
곰국을 끓이고 지금 기름기를 걷어내고 있습니다.“
유혜영은 한 손에 커다란 사발을 들고 국자로 끓는 기름기를 걷어내어 담아낸다.
“기름을 그렇게 끓을 때 걷어내는 것이 아니란다.
다 끓고 나서 완전히 식었을 때 응고가 되어야지 걷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요?
그럼 이 기름들은 어쩌지요?“
유혜영은 사발을 든 채 민희에게 다가온다.
“맛 좀 보실래요?”
“기름을 무슨 맛을 보라고.......으아악!”
민희는 비명소리를 지른다.
유혜영이 사발에 든 끓는 기름이 든 곰국을 민희의 다리에 쏟는다.
“국 맛이 어떠신가요?”
유혜영의 비웃음소리는 민희의 귓가에 들리지 않는다.
그때 이층에서 막 내려오던 형우는 아내의 비명소리에 놀라 뛰어 온다.
“무슨 일이야?”
유혜영은 시아버님의 음성을 듣고 놀라는 척을 한다.
“어머님!
아이고, 이 일을 어쩌면 좋아?“
”뭐냐?
어, 여........여보!“
쓰려지려는 민희는 잡고 사태를 본다.
다리에서부터 기름기가 흘러내리며 김이 솟아오르는 것을 본다.
“이게..........대체 이게?”
형우는 아내의 치마를 걷어 올린다.
“성일아! 성일아!”
아들을 부르는 음성이 집안을 쨍쨍 울린다.
성일은 놀라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온다.
“어서.........차를, 차의 시동을 걸어!
병원, 병원...........“
형우는 아내를 들어 안고는 병원이라는 말을 부르짖으며 현관으로 나선다.
성일은 급하게 차의 키를 들고 뛰어 나가 차의 시동을 건다.
아직 아무런 영문을 모르는 성일이다.
“어서 가!
속력은 내서 어서 병원으로 가라고.“
민희는 계속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여보!
기다려!
조금만......조금만 기다려!“
형우는 이마에 땀이 흘러내리며 신음을 하는 아내를 꼭 부둥켜안고 있다.
다행이 대학병원이 근처에 있다.
오분 만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다.
들것을 기다릴 것도 없이 형우는 아내를 안고 안으로 들어선다.
“화상을 입었습니다.”
의사들이 민희의 상태를 살핀다.
무릎에서부터 시작이 된 화상은 발바닥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심하게 화상을 입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어찌된 상황인지 모르겠습니다.“
형우는 도저히 설명을 할 길이 없다.
의료진들의 손길은 신속하고 빨라진다.
“그래도 옷을 걷어내신 것이 참으로 잘 하신 것입니다.
만일 치마가 아니고 바지를 입으셨다면 더 큰 화상을 입으실 뻔 했습니다.
헌데, 기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골을 고은 것이 아닌던가요?“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갑자기 아내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가 보니 이미.........“
민희는 고통에 몸부림을 친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형우는 가슴이 찢기는 것보다 더욱 심한 아픔을 느낀다.
“여보!
조금만.......아니, 아프면 소리를 질러! 응?“
민희의 손을 꼭 잡고 함께 눈물을 흘린다.
성일은 무엇이라고 할 말도 간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제부터 아내가 곰국을 끓인다고 바삐 움직이던 것이 떠오른다.
집에서는 한 번도 해 먹지 않던 것이다.
헌데 그 곰국으로 어머니가 화상을 입으셨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는다.
화상은 상당히 깊다.
한쪽 다리가 아니라 양쪽 모두 화상을 입은 것이다.
게다가 발바닥까지 이르는 화상은 맹물에 입은 화상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의료진들은 발가락 사이가 붙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한쪽 다리의 화상은 심각할 것이 없지만 오른쪽 다리는 무릎과 발가락이 심한 화상으로 사진을 찍어 뼈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한다.
급한 응급처치를 하고 나서야 사진 촬영을 위해 옮겨진다.
형우는 잠시도 아내의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 나선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다 보내는 검사를 하고 나서야 김형우는 주치의를 만날 수 있다.
“선생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까요?“
두려운 마음으로 담당 의사를 바라보며 묻는다.
“네!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화상의 정도가 깊어 오랜 치료를 하셔야 하고 치료 후에도 흉한 흉터를 없애려면 성형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장애 휴우 증은 남지 않을까요?“
“요즘엔 의학이 고도로 발달이 되어 있어서 심각한 장애는 남지 않겠지만 정말 이해를 할 수 없는 화상입니다.
수많은 화상환자들을 다루어 왔지만 이런 화상의 정도는 처음 봅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화상부위가 무엇을 실수로 쏟아서 화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 일부로 사고를 내기 위해서 다리에서부터 부었다고 해야 할지........
무릎에서부터 흘러내린 뜨거운 기름으로 인해 발바닥까지 심각한 것이 도저히 그렇게 화상을 입을 수 없는 것이거든요.
발을 풍덩 빠트린 것도 아니고...........“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형우는 비로소 언뜻 며느리의 표정이 생각이 난다.
뭔가 야릇한 웃음기가 도는 듯한 표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선생님!
돈이 얼마를 들더라도 최선을 다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입원수속을 하고 일인 실 병실에 입원을 한 것이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다.
형우는 그제야 처가 집으로 연락을 한다.
민희 또한 심한 통증에서 조금은 편안해진 듯 지쳐서 눈을 감고 있다.
“여보!
많이 아프지?“
”이제는 조금 살 것 같아요.“
”미안하구려!
내가 조금 더 많은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
민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들려오는 며느리의 국 맛이 어떠신가요? 하는 음성이 귓전에 맴돈다.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자신의 다리에 국을 부었다는 생각을 하니 온 몸이 떨려온다.
그러나 남편에게 말을 할 수가 없다.
민희는 그저 온 몸을 떨뿐이다.
“여보!
왜 그래? 응?“
형우는 민희가 떨고 있음을 본다.
“많이 아파?”
민희는 그런 형우의 물음에 그저 고개를 흔들 뿐이다.
“안심해요.
당신이 왜 그렇게 떨어야 하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짐작을 할 수가 있소.
우선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읍시다.“
형우는 아내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그 시간 성일은 하루 출근을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보내다 병실에 입원하신 것을 보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성일 역시 의료진들로부터 화상의 부위가 심각하다는 것과 이렇게 화상부위가 넓은 것은 다소 고의성이 있는 화상이 아닌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손수 당신의 몸에 자해를 하실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하고 생각을 하다 고개를 흔들기를 수없이 반복한 성일이다.
아무리 아내가 독하고 욕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잔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기적이고 냉정하고 욕심이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늘 불만스럽게 생각을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아내의 성품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이미 포기해 버린 일이다.
성일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유혜영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맞이한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한 마디 관심조차 나타내지 않는다.
“당신은 궁금하지 않소?”
“뭐가요?
내가 궁금해야 할 일이 뭐가 있어요?”
성일은 말없이 아내를 바라본다.
“어머니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궁금하지 않다는 거요?”
"왜 내가 그것을 궁금하게 생각해야 하죠?
그 여자가 화상을 입은 것이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인가요?“
”뭐라고?
그 여자?“
“네, 그 여우같은 여자!”
성일은 주먹을 불끈 쥔다.
마음 같아서는 귀뺨이라도 올려붙이고 싶다.
그러나 성일은 큰 한숨을 내 쉬면서 주먹을 푼다.
“잘 들으시오.
이번 어머니 일에 행여 조금이라도 당신의 고의성이 있는 것이라면 그때는 나는 물론이고 아마 아버지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이오.“
”흥!
맘대로들 하셔!
누가 증인이라도 있대?“
유혜영은 남편의 그런 말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자신이 실수라고 발뺌을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 누구도 자신을 단죄를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유혜영이다.
여자 하나를 위해 자식을 버리지 못하는 시아버님의 성품이라고 믿는 유혜영이다.
다리 불구라도 된다면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병신을 언제까지 떠받들며 살아 갈 수는 없는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치료가 끝나면 이 집안에 더 이상은 들어 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흥!
네 년이 나와 상대를 하시겠다고?
이래도 네 년이 물러서지 않겠다면 다음에는 더 뜨겁고 잔인한 맛을 볼게야!“
유혜영은 스스로에게 만족을 한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충격을 받으시는 시아버님 또한 당신의 생명을 오래 부지 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유혜영을 즐겁게 해 준다.
시아버님의 모든 것 하나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늙어서 여자에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린 늙은 영감의 꼴이 눈꼴사납다.
유혜영은 이 집안에서 더 이상 그 여자의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예전처럼 헬스클럽이나 피부맛사지 실에 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집은 모두 자신의 집이고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에 쓸고 닦고 손을 댄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지 않아도 유혜영 자신이 집안일을 한다.
이제 이 집안에 그 누구도 발을 붙이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유혜영은 민희가 입원한 병원이 바로 옆에 있는 병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시아버님이 무엇을 드시고 간호를 하시는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