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월 13일 주일 [(백) 주님 세례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므로 주님 공현 대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례력으로는 이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 성령을 내리시고,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만민의 주님께서 전해 주신 평화의 복음을 전하기로 다짐합시다. 이사야 예언자는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나자렛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성령께서 내리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복음).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1-5.9-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0,34-38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우리를 물로 씻어 구원하셨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2,11-14; 3,4-7 사랑하는 그대여,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12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13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3,4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임에도 하느님의 자녀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는, 세례를 물로만 받고 성령으로는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믿음’을 선물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어야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늑대에게 키워진 아이는 자신이 늑대라고 믿을 것입니다. 자신이 늑대라고 믿으면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닐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믿는 대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세례는 이렇듯 내 정체성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 곧 ‘하느님’임을 확고하게 믿게 만드는 예식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입니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으로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으로 삽니다. 사람의 자녀는 세상에 집착하며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며 삽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는 오늘 제1독서에서처럼 또한 “종”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순종하는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시어, 오늘 제2독서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임을 믿으면 두 발로 걷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본성상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전삼용 요셉 신부) |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에게 오신 구세주가 얼마나 겸손하고 온유하시고 순명하시는 분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칭찬하시는 내용을 묵상하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칭찬 한번 들어야 할텐데..’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복음 3장 22절) 예수님께서 이토록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극찬을 듣게 된 배경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께 대한 철저한 순명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틀레헴에서 탄생하신후, 나자렛에서 삼십년 세월 동안 마리아와 요셉에게 철저하게 순명하며 지내셨습니다. 제가 예수님 같았으면, 혈기왕성한 스물살 무렵 쯤, 끌어 오르는 사명감을 주체하지 못해, 때가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확!’ 공생활을 시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안에는 아버지를 향한 철저한 순명정신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 앞에 장엄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거침없고 위풍당당한 예수님의 모습에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습니다. 수려한 풍모에다 탁월한 가르침, 계속되는 놀라운 기적과 치유, 구마...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그 어떤 걸림돌도 예수님을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을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 한번, 결심 한번이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목 활동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른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던 세례자 요한을 찾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하게도 다른 인간 존재 뒤에 줄을 서십니다. 옷을 벗으시고 요르단 강 강물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놀랍게도 메시아께서 한 인간 존재 앞에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습니다. 참으로 경탄할만한 하느님의 자기 낮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례의 주체이자 집전자로서 굳이 세례가 필요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한 인간 존재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세례를 베푸셔야할 분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경배를 받아야 하실 분이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지상 과제, 육화강생을 보다 본격화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면서도 철저하게 인간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세례를 받으심을 통해 말로만이 아니라 정녕 인간 사이에 머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육화강생의 신비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세례는 우리에게 오신 구세주가 얼마나 겸손하고 온유하시고 순명하시는 분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꼭 마음에 드는 아들 예수님을 보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외치신 것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복음 3장 22절)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세례를 받았다는 증거 :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믿음
영국의 어떤 곳에서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곳에 세 명의 석수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장이 자신과 일할 사람을 찾기 위해 세 명의 석수에게 “당신은 왜 이 돌을 다듬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사장님이 시켜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른 석공은 “예, 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일을 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사람은 “제가 다듬는 돌이 성전을 짓는데 쓰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니 참 좋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세 사람의 석공 중 누가 사장과 함께 일하게 되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그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인으로 생각하며 일하고, 어떤 사람은 가장이라는 정체성이 강하며, 어떤 사람은 종교심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이 내가 하는 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합니다.
다른 예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빚 하나도 없이 4천 억 자산가가 된 김승호 회장이 한 가게를 운영할 때의 일입니다. 누가 가게 앞에다 똥을 싸 놓고 간 것입니다. 직원들은 더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한 젊은 청년이 맨손으로 그 똥을 집어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스스로를 그 직장의 직원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청년은 자신을 그 직장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빠른 시간에 그 회사에서 높은 위치에 이르고 젊은 나이에 여러 가게를 가진 성공한 사장들 반열에 들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죽을 생각만 하고 어떤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활기가 넘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모르고의 차이에서 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남들이 다 하는 일을 하면서도 힘들어하며 견뎌내지 못합니다.
정신분석 전문의인 이무석 박사가 군대에서 군의관으로 근무를 할 때 한 자해하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는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칼로 배를 그어 배에 수십 개의 칼 자욱이 있었습니다. 박사가 왜 자꾸 자해를 하느냐고 물으니 청년은 자신이 왜 살아야하는지 모르겠고 그냥 우주에 붕 떠 있는 느낌인데 그렇게 자해를 하고 피가 나고 쓰라린 아픔이 오면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정체성을 찾아야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람인 줄 알아야 두 발로 걷는 것이 의미 있고 힘들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나의 정체성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여받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삶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받을 수 있을까요? 부모로부터 부여받습니다. 부모는 아기를 태어나게 한 장본인으로써 아이에게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줍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에 수긍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공부 잘 하고, 건강하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궁극적으로 부모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자녀가 대신 살아주는 것입니다. 늑대에게 아이가 키워졌다면 늑대처럼 사는 것이 그 아이의 삶의 의미이자 가치입니다. 존재하게 한 자만이 그 존재하게 된 이에게 그 존재이유를 알려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부모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부모는 나에게 다시 생명을 줄 수도 없고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을 다시 나게 해 줄 수도 없으며 나 또한 누군가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이 됨으로써 나의 창조자가 부모가 아니었음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정체성에 대한 방황이 시작됩니다. 다시 왜 살아야하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 고민은 이 질문으로 종합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에서 자신의 창조자를 찾지 못하면 아이는 한없는 혼란 속에 빠집니다. 공부도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자녀도 낳아야하지만 그런 힘든 일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기에 일 하면서도 힘들고, 결혼생활 하면서도 힘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하기는 해야 하니까 죽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 하느님이 나의 창조자이심을 알게 되는 것만큼 큰 은총은 없습니다. 이렇게 “아, 나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우리는 종교적으로 ‘세례’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이 나의 창조자이시고 그 하느님의 의도를 알게 되면, 어떤 일을 하던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페루 리마의 성인 중 빗자루 수사로 불리는 마르티노가 있습니다. 그분은 흑인 신분으로 평생 빗자루질만 해야 하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거지 하나를 하더라도 기쁠 수 있다면 참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서 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아직 그 가치와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직 진정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살찐 여우를 발견하고 ‘저 여우는 어떻게 해서 살이 쪘을까?’ 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그가 관찰한 결과 여우는 사자가 먹이를 먹는 장소에 있다가, 사자가 먹이를 먹고 사라진 다음 남은 먹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도 여우처럼 살면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부자들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자신들이 남은 것을 이 사람에게 결코 주지 않았습니다. 허기져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을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대는 왜 사자가 되지 못하고 어리석은 여우와 같은 행동을 하는가?”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은 자신을 만들어주신 분을 만날 때 확립됩니다. 그리고 그분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 ‘세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아버지의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자녀로 목수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살아야 하는 새로운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30년 간 목수의 아들로 살아왔지만 이젠 새로운 정체성을 지니게 되어 그 일이 의미를 잃습니다. 내가 늑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인간임을 깨달았다면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이젠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이제 복음전파와 십자가의 길로 투신하게 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참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찾았다면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미와 가치를 알면 그 일이 비록 고되게 보일지라도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넙칩니다. 우리도 우리가 하는 일이 기쁘고 가치 있게 여겨집니까? 그러면 세례를 받으신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 아시는 것입니다.
|
오늘의 성인
성 힐라리오(Hilary)
신분 : 주교, 교부, 교회학자
활동지역 : 푸아티에(Poitiers)
활동연도 : 310/320?-367/368년?
같은이름 : 힐라리우스, 힐러리
프랑스 중서부 푸아티에의 이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성 힐라리우스(Hilarius, 또는 힐라리오)는 귀족 집안 출신이었으나 스스로 성서를 공부한 뒤에 이교 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개종하기 전에 이미 결혼하였기 때문에 아내의 반대를 뿌리치고 350년경 고향 푸아티에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강력하게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배격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소아시아 중서부 프리지아(Phrygia)로 추방되었는데,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리스의 신학 사상에 심취하여 대 신학자로 성장하였다.
그는 서방 교회의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로 공경을 받았다.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삼위일체론”(De Trinitate)이다. 또 그는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 음률을 붙인 찬미가를 활용하였다.
그는 마태오 복음서와 시편의 주해서를 만들었으며, 그의 제자이자 후에 투르(Tours)의 주교가 된 성 마르티누스(Martinus, 11월 11일)와 함께 갈리아 지방에서 수도원 제도를 장려하였다. 그는 367년 또는 36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851년 5월 13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녀 베로니카 (Veronica)
신분 : 수녀
활동지역 : 비나스코(Binasco)
활동연도 : +1497년
같은이름 : 베로니까
성녀 베로니카의 부모는 이탈리아 밀라노(Milano) 교외에서 힘든 노동을 하며 살던 가난한 사람이었다.
너무나 가난하여 딸에게 학교 교육을 시키지 못하여 베로니카는 글을 읽을 수조차 없었으나, 어머니의 신심에 힘입어 하느님의 사랑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성실하고 일 잘하는 여자로 손꼽혔고 또 지극히 겸손하였다.
그녀가 들일을 할 때에는 동료들과 가능한 멀리 떨어져서 잡담보다는 하느님을 관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녀는 밀라노의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들어갈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입회했을 때부터 한밤중에 일어나 기도하였고 또 읽고 쓰기를 익혔다.
그러나 학업이 극히 부진함으로 원장은 만일 그녀가 세 글자를 알지 못하면 내쫓겠다고 하였다. 첫 번째는 마음의 순결이었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죄나 과오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 매일 묵상하는 내용이었다.
3년의 준비기간 동안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규칙 그대로 실행하여 모범적인 수도자로 변신하였다. 그 후 그녀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속에서 탈혼에 빠졌고, 또 가끔씩은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예언한 날에 선종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는 52세였다고 한다.
성녀 베로니카에 대한 공경은 1517년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