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67년전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사할린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한인들의 영상이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국가기록원이 일본의 한인 대량학살을 기록한 러시아 문서도 찾았는데요.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됩니다.
천권필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캄캄한 탄광 안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채 탄가루를 뒤집어 썼습니다.
황량한 사할린 벌판에서는 인부 두 명이 톱과 도끼로 벌목 작업을 합니다.
70년 전, 사할린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린 한인들입니다.
국가기록원이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 한인들의 영상을 찾아내 처음 공개했습니다.
[김갑섭/국가기록원 기록관리부장 : 우리 역사에서 잊혀져가는 사할린 동포들의 안타까운 삶을 복원하고자 3년 동안 사할린 한인 관련 희귀 기록물 수집을 추진해 왔습니다.]
러시아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사할린 강제노역에 동원된 한인은 2만 2천여 명.
일본인들은 2차 대전에서 패한 뒤 귀국했지만 사할린 한인들은 대부분 고향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사할린 노동자 김종수의 편지) : 강제로 끌고 와서 부려 먹다가 종전이 되니 자기 국민만 귀국 시키고 우리들의 귀국문제는 묵과하는 일본 정부의 처사에 대하여 나는 적개심을 금치 못하는 바이올시다.]
일본의 만행을 증명하는 비극적인 기록도 공개됐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2차대전이 끝나고 한인 인구가 5천 명 가까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학살을 지목했습니다.
그동안 일본 헌병과 경찰이 수십 명을 살해한 기록은 확인됐지만, 대규모 학살 기록이 발견된 건 처음입니다.
이와 함께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간 1만 1천여 명의 명부도 발견돼 피해자와 유족들의 보상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67년전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사할린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한인들의 영상이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국가기록원이 일본의 한인 대량학살을 기록한 러시아 문서도 찾았는데요.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됩니다.
천권필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캄캄한 탄광 안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채 탄가루를 뒤집어 썼습니다.
황량한 사할린 벌판에서는 인부 두 명이 톱과 도끼로 벌목 작업을 합니다.
70년 전, 사할린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린 한인들입니다.
국가기록원이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 한인들의 영상을 찾아내 처음 공개했습니다.
[김갑섭/국가기록원 기록관리부장 : 우리 역사에서 잊혀져가는 사할린 동포들의 안타까운 삶을 복원하고자 3년 동안 사할린 한인 관련 희귀 기록물 수집을 추진해 왔습니다.]
러시아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사할린 강제노역에 동원된 한인은 2만 2천여 명.
일본인들은 2차 대전에서 패한 뒤 귀국했지만 사할린 한인들은 대부분 고향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사할린 노동자 김종수의 편지) : 강제로 끌고 와서 부려 먹다가 종전이 되니 자기 국민만 귀국 시키고 우리들의 귀국문제는 묵과하는 일본 정부의 처사에 대하여 나는 적개심을 금치 못하는 바이올시다.]
일본의 만행을 증명하는 비극적인 기록도 공개됐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2차대전이 끝나고 한인 인구가 5천 명 가까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학살을 지목했습니다.
그동안 일본 헌병과 경찰이 수십 명을 살해한 기록은 확인됐지만, 대규모 학살 기록이 발견된 건 처음입니다.
이와 함께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간 1만 1천여 명의 명부도 발견돼 피해자와 유족들의 보상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