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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지초등학교42회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국어사전’에는 화엄(華嚴)*을 불교용어로 쓰이는 것처럼 적고 있으나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은 불교가 아니더라도 새해맞이 해돋이 때나 송년 해넘이 때 혹은 아름다운 꽃과 불꽃장식을 볼 때도 이것이 장엄한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화려하고 장엄한 그런 모습을 상상해 보면 『화엄경』이라는 경전이 얼마나 화려하고 장엄하기에 장엄이라고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화엄경』의 원래 이름은 『대광광불화엄경』, 이 경전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이래로 불자들에게 널리 퍼졌으며, 오래전 한역(漢譯)한 것으로 60권본, 80권본, 40권본이 있다고 한다. 지금 내가 읽는 이 책은 2018년 4월 무비스님이 강설한 「보현행원품」이라는 책으로 80권본 『화엄경』의 제81권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보현행원품」은 『화엄경』의 일부다.
*화엄(華嚴)
(1) (기본의미) [불교] 여러가지 수행을 하고 만덕(萬德)을 쌓아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하는 일
(2) [불교] 대승불교의 경전. 이를 근본경전으로 하여 뒤에 중국에서 화엄종이 성립되었다. 원어 화엄경(華嚴經)
(3) [불교]《화엄경》을 근본경전으로 하여 세운 불교 종파의 하나. 당(唐)나라 때 성립되었으며, 우리나라는 신라 때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하여 성립되었다.
책 서문에 “화엄경은 60권본과 80권본, 40권본 등 세 종류가 있는데 60권 본은 동진(東晋)시대에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양주 도량사(楊州 道場寺)에서 서기 622년에 번역한 것이고, 80권 본은 당나라 때 실차난타(實叉難陀)가 695년에 동도 변공사(東都 遍空寺)에서 번역하기 시작하여 699년에 낙양(洛陽)의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완역한 것이다. 40권 본은 당나라 때 반야삼장(般若三藏)이 798년에 번역한 것이다.”고 하고 이어
“40권본 화엄경은 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라는 한 가지 품뿐이다. 이름은 달라도 60권본·80권본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한다. 한 가지 품이 무려 40권이나 되는데 마지막 권만 따로 떼어 내어 흔히 독송하는 〈보현행원품〉으로 삼은 것이다. 권수도 줄이고 이름도 간략하게 한 셈인데, 길고 긴 경전을 그렇게 필요한 부분만 떼어 내어 별본으로 유통시켜도 경전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훨씬 돋보인다. 〈보현행원품〉이 얼마나 많이 읽히는가를 보면 안다. 〈보현행원품〉이라는 독립된 경전으로 알고 있을 정도다.
〈보현행원품〉에서 행원(行願)은 사람으로서 마음에 새기며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서원(誓願)이다. 훌륭한 서원을 실천하는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살(菩薩)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보현보살이 대표가 된다. 보현보살은 여기서 열 가지 매우 뛰어난 서원을 설명하여 불교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서원이란 희망이며, 꿈이며, 기대감이다. 삶이 꿈과 희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이익과 생기를 줄 때 그 사람의 삶은 빛난다고 한다. 그것을 우리는 보살의 삶이라 한다.
《화엄경》은 천차만별 차별한 법을 거두어 오직 한마음임을 밝히는 가르침이 일부 담겨져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정각의 안목을 피력한 것처럼‘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아! 이대로가 화장장엄세계요, 이대로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인 것을’이렇게 요약해서 표현하였다. 그러나 ‘우리들 인생이 그와 같고, 세상이 그와 같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보살행 중에 가장 위대한 보현보살*의 행원을 실천하여 본래 아름답기 그지없는 세상을 보현행원의 꽃으로 더욱 아름답게 수놓아 가자는 것(華嚴)이 결론이다.”라고 했다.
*보현보살:부처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는 이 보살은 문수보살(文殊菩薩)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협시(脇侍)하는 보살로 유명하다. 문수보살이 여래의 왼편에서 여러 부처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음에 대하여,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이덕(理德)과 정덕(定德)과 행덕(行德)을 맡는다.
또 문수보살과 함께 일체보살의 으뜸이 되어 언제나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돕고 널리 선양한다.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보현연명보살.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형상은 여러 가지로 묘사되나 흰 코끼리를 탄 모양과 연화대에 앉은 모양의 2종이 있다. 예로부터 코끼리에 탄 형상으로 많이 표현되었고, 연화대에 앉은 모습은 주로 진언밀교(眞言密敎) 계통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보현행원품〉이란 말도 그렇지만 본론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 아니고 한자가 많은 불교용어로 쓰진 저술이라서 읽기가 쉽지 않다. 고심(苦心)도 해보고 사경(寫經)한다는 마음과 공덕(功德)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읽고, 일부나마 베끼다보면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맨 처음은 서분(序分)이라 하여, 서론인데 보현보살이 선재동자(善財童子)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爾時 普賢菩薩摩訶薩 稱歎如來勝功德已 告諸菩薩 及善財言 善男子 如來功德 假使十方一切諸佛 經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劫 相續演說 不可窮盡 若慾成就此功德門 應修十種廣大行願」(이시 보현보살마하살 칭탄여래승공덕이 고제보살 급선재언 선남자 여래공덕 가사시방일체제불 경불가설불가설불찰극미진수겁 상속연설 불가궁진 약욕성취차공덕문 응수십종광대행원), 풀이하면 이렇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찬탄하고 나서 여러 보살과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여래의 공덕은 가령 시방세계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만큼 많은 수의 겁을 지나는 동안 계속하여 연설할지라도 끝까지 다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려면 응당 열 가지 크나큰 행원을 닦아야 한다.”
여기서 그때는 지금 이 순간을 말하는데, 보현보살이 지금까지 화엄경 39품인 입법계품 내용인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설명한 뒤를 말한다. 또 공덕이란 ‘먼지 숫자만큼 많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 헤아려서 알고, 또 바다의 물을 다 마실 수 있고 드넓은 저 허공의 끝을 다 알고 심지어 바람마저 손으로 얽어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은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이러한 공덕을 듣고 환희하는 마음과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낸다면 위에서 찬탄한 모든 공덕을 다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그 공덕에 대해서는 결코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약 이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려면 응당 다음에 열거하는 열 가지 크나큰 행원을 닦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이 그 열 가지가 무엇인가이다. 정종분(正宗分), 즉 본론으로 들어가면 ‘열 가지 서원이 무엇이냐?’고 묻으며 시작된다. 「夏等 爲十 一者 禮敬諸佛」(하등 위십 일자 예경제불), “열 가지 서원이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라고 했고, 다음에 「二者 稱讚如來」(이자 칭찬여래) “둘째는 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는 것입니다.”고 하였으며, 「三者 廣修供養」(삼자 광수공양)이라 하여 “셋째는 널리 공양함”이라고 한다.
첫째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한다.’는 말에서 모든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하물며 나무나 돌로 깎아 만든 불상에도 예배하고 공경하여 세 번씩 혹은 일곱 번, 혹은 백팔 번, 천 번, 삼천 번 절하고, 심지어 백만 번씩 절을 했다고 자랑하면서 왜 살아 있는 사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부처로 보지 않는지 묻고 있다. 그러면서 불자가“관세음보살께 예배하다보면 어떤 관세음보살이 예배하는 우리를 향해 합장하고 예배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그런 관음상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 의혹은 풀릴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다운 사람, 보살이 실천해야 하는 덕목을 이행하는 것이 된다고도 했다.
둘째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못나고 게으르고 살림도 살줄 몰라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마누라도, 돈도 벌 줄 모르고 옹졸하고 무능력하고 고집불통이라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못난 남편도, 내가 사람의 본성을 볼 줄 아는 눈만 열리게 되면 그가 바로 존귀한 부처님이고, 값비싼 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칭찬할 일만 있게 될 것이고, 우러러 찬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고려청자도 가치를 모르면 개밥그릇에 불과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보고 칭찬해 주라고 한다.
셋째는 널리 공양함이다. 사람을 모두 부처로 알고 나면 많은 사람 즉, 부처님께 온갖 것을 바치고 공양하고 싶듯이 그 일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가 보다 널리 전파되지 못하고 그나마 정법이 아닌 삿된 법으로 알려진 것은 물질의 공양만 중요시하고 법공양을 등한시한 때문이며 그런 면에서 〈보현행원품〉이 널리 읽히고 알려져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한다.
넷째는 「懺除業障」(참제업장), 스스로의 업장(業障:불도의 수행과 선행을 막는 세 가지 장애 중 하나로.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에서 지은 죄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가 생기는 것)을 참회한다는 것이다.
‘참회한다’는 이 말은 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 천주교 등 다른 종교에서도 ‘참회하라, 회계하라’고 한다. 스스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지은 죄가 있다면 용서를 빌어야 할 대상에게 참회하고, 용서 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참회는 누군가에게 용서를 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서 “참회한다는 것은 미혹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한다. 미혹이 있어 업을 짓고 업장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고 하고,“그것은 종교가 갖는 특징”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다 같은 방법으로 업장을 참회하지는 않는다며 불교에서는 “죄업이라는 독립된 자성이 없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죄업인데, 사실 마음, 마음 하지만 마음은 본래 고정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죄업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죄업도 없고 마음도 없음을 알아서 두 가지가 다 텅 비어 아무것도 없을 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참회”라고 했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苦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 (죄무자성종심기 심고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다섯째는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한다(五者 隨喜功德)고 했다.‘4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에서 보듯이 남 잘되기를 바라기 보다는 못되는 것을 더 바라는 속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한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제대로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이 잘되고 남이 공덕을 쌓는 일에 함께 기뻐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전 세계 70억 명이 넘는 인간들 중에 누가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했는지 하고 있는지 찾아보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고 있고, 그들의 잘한 일에는 같이 기뻐해 준다면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쉬운 일이다 싶다. 그래서‘불교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는 말이 실감되기도 하는데, 사실 불교는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것 같다.
여섯째는 청전법륜(請轉法輪)‘설법하여 주기를 청한다.’인데 이 말은 배우기 위해서 스스로 청함을 뜻하는 말이다. 아주 무식한 사람이라도 자기자랑과 아는 체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일찍이 공자*도 배우기를 좋아해 지금까지 성인(聖人)으로 불러지고 있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도 ‘사다리에 오르려고 하지 않는 자를 억지로 올릴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배움이란 스스로 하는 것이지 강제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
*好學近乎智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호학근호지 역행근호인 지치근호용)‘배우기를 좋아함은 지혜에 가깝고, 힘써 행함은 어짊에 가깝고, 수치를 앎은 용기에 가깝다.’-《중용》
*공자는 작은 마을에도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것이 나만큼은 되는 사람들이야 분명 있겠지만, 나보다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고 자부하며 말하기까지 했다.
여기〈보현행원품〉의 주인공은 선재동자다.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 가르침을 청한다. 그 이야기가 이 행원품의 전부로 선재동자는 가르침을 받기에 앞서서 반드시 가르침을 청하였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가르침을 주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않고 주입하는 것이다. 53명의 선지식 중에는 스님도 있고, 재가 거사나 보살도, 기생도, 뱃사공도 있다. 그 외에도 사마외도(邪魔外道)도 있고, 온갖 신들도 있다. 그들은 모두가 선재동자의 선지식인 것이다. 배움의 길에서는 스승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곱째는 청불주세(請佛住世)라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기를 청함’이다. 이것은 정신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누구나 세상에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의식주를 제공해 주고, 약과 치료를 도와주면서 건강하게 오래 머물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불교 보살계(菩薩戒)에는 “병든 사람을 보고 간병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일이다.”라고 했다.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살려는 보살은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덕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여덟째는 상수불학(常隨佛學)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움’이다. 불교 공부뿐 아니라 일반 공부도 스승 없이 혼자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서 배우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고 그 효과도 다르다. 또한 올바른 견해를 가진 스승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스승의 견해들도 각양각색이듯이 올바른 스승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좋은 스승을 찾기보다 ‘전래되어 온 경전이나 어록 등에 의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무비스님은 말한다.
16년 전, 강서경찰서에 근무할 당시 명지에 있던 어떤 사찰의 사이비 중이 집안에 액운이 끊이지 않는다며 찾아온 젊은 신도에게 액땜을 해야 한다고 속이고 액땜을 위해 굿을 해야 하는데 재물을 준비하게 하고 밤에 신도를 차에 태워 강가 어슥한 곳에서 액땜하는데 속옷이 필요하다며 속옷을 벗게 하고, 속옷을 벗어려 하자 ‘이때다’하고 여신도에게 달려든 사건이 있었는데 다행히 고함치고 저항해 봉변은 면했지만 당시에 스님의 탈을 쓴 이런 스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홉째는 항순중생(恒順衆生)이라 하여, ‘항상 중생을 수순(隨順-따름)함’이라 했다. 사람은 아주 가까운 부부사이도 그렇지만 부자간, 형제간, 친구간, 동료 간에도 맹목적으로 따르기란 쉽지 않다. 모두 각자가 제잘 낫다고 생각하고 또 각자가 나름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스님들은 가끔 이런 말도 듣는다고 한다. “참다 참다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은 못 참는다. 나도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 것이다.”지금까지 수년, 수십 년간 살아온 관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마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처음부터 자신을 비우고 오로지 수순하는 자세로 살아야 옳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사실은 별 수가 없다. 공연히 아집(我執)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수순하다는 생각 없이 수순한다면 무슨 불평이 있을 것이며, 무슨 놈의 기대가 있을 것인가. 자신을 비우고 다른 사람에게 수순하는 것은 불자의 대표적인 덕목이다.’스님의 말이다.
마지막 열 번째는 보살회향(菩薩廻向), ‘모두 다 회향한다’고 했는데, 불교의 수많은 용어 중에서 매우 훌륭하고, 탁월한 낱말이 이 회향이라고 한다. 공덕을 쌓고, 복을 짓고, 지혜를 닦아도 회향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도 한다. 회향은 자신이 닦은 수행과 공덕과 지혜를 모두 남에게 나눠 주라는 것이다. 작은 복덕도 남을 위해 쓸 줄 아는 사람이 보살이며 불자라고 한다.
회향은 〈보현행원품〉은 물론 《화엄경》의 결론이고 불교의 결론이라고 했다. 결론으로 삼는 이유가 바로 보현보살과 같은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앞서 열거한 열 가지는 지극히 상식적이면서 아름다운 마음씨와 구체적인 실천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회향이다.
그렇다면,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서 성불(成佛)해서는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한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을 제도하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며 불교공부의 결실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사람들을 제도한다는 것이 곧 보현보살의 열 가지 구체적인 행동지침의 실현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보현행원품〉의 핵심내용을 대략 살펴봤다. 그런데 본문을 살피려면 정말로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 싶다. 노력과 수양이 부족하기도 하고 모두 열거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서문과 제1장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다.’와 제10장‘모두 다 회향하다’만이라도 베껴볼까 한다.
“善財 白言 大聖 云何禮敬 乃至廻向(선재 백언 대성 운하애경 내지회향)
선재동자가 말하였다. 큰 성인이시여 어떻게 예배하고 공경하며 그리고 어떻게 회향합니까?”
선재동자가 이렇게 물은 것은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하고 그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려면 열 가지 광대한 행원을 닦아야 함을 말씀하시고, 다시 그 열 가지 덕목을 낱낱이 열거하여 밝혔다. 그러자 선재동자가 자세히 설명해 주기를 청하였다.’는 말이다. 이에 다시 보현보살이 그 열 가지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1)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다
普賢菩薩 告善材言 善男子 言禮敬 諸佛子 所有盡法界虛空界 十方三世一切佛刹極微塵數諸佛世尊 我以普賢行願力故 深心信解 如對目前 悉以淸淨身語意業 常修禮敬
(보현보살 고선재언 선남자 언예경 제불자 소유진법계허공계 시방삼세일체불찰극미진수제불세존 아이보현행원력고 심심신해 여대목전 실이청정신어의업 상수예경)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선재동자를 칭함)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한다는 것은 온 법계와 허공계와 시방삼세 모든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만큼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들께 나 보현의 수행과 서원의 힘으로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여 마치 눈앞에서 뵈옵듯이 받들고 청정한 몸과 말과 뜻으로 항상 예배하고 경경하는 것입니다.”라고 하고 이어서,
一一佛所 皆現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 數身 一一身 徧禮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佛 虛空界盡 我禮乃盡 以虛空界 不可盡故 我此禮敬 無有窮盡
(일일불소 개현불가설불가설불찰극미진 수신 일일신 변예불가설불가설불찰극미진수불 허공계진 아례내진 이허공계 불가진고 아차예경 무유궁진)
“낱낱(하나하나)의 부처님 처소에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많은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만큼 많은 수의 몸을 나타내어 한 몸 한 몸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많은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만큼 많은 수의 부처님께 두루 예경하는 것입니다. 허공계가 다하여야 나의 이 예경함도 다하려니와 허공계는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습니다.”
如是乃至 衆生界盡 衆生業盡 衆生煩惱盡 我禮乃盡 而衆生界 乃至煩惱 無有盡故 我此禮敬 無有窮盡 念念相續 無有間斷 無有疲厭
(여시내지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아례내진 이중생계 내지번뇌 무유진고 아차예경 무유궁진 염념상속 무유간단 무유피염)
“이와 같이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야 나의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하려니와 중생계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습니다. 염념(염려하고 생각함)을 계속하여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의지로)하는 이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누구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여기 불교경전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끊임없이 예경하는 일에 대해 ‘이와 같이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야 나의 예경함도 다하게 되는데, 중생계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계속하여 쉬지 않을 것이고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이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도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을 혹은 누군가를 예경하는 일을 일상의 일로 숨을 쉬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한다. 보살의 눈물겨운 염원이 아닐 수 없다.
이어, (2)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다 (3)널리 공양하다 (4)법공양이 으뜸이다 (5)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다 (6)설법하여 주기를 청하다 (7)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머무시기를 청하다 (8)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다 (9)항상 중생을 수순하다고 되어 있으나 앞서 말한 대로 이들 항목은 생략하고 (10)모두 다 회향하다를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를 흔히 지혜(知慧)와 자비(慈悲)의 종교라고 한다. 지혜가 왼팔이면 자비는 오른팔이다. 지혜가 어머니라면 자비의 실천은 아버지가가 된다. 현명한 지혜가 내면에 충만하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자비의 실천이 행해지면 가장 이상적인 내가되고, 나라가 되고, 종교가 되며 우리들의 삶이 조화롭고 윤택해 질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의 실현을 ‘부처님의 세계’라고 하는데 부처님은 곧 지혜와 자비의 화신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전 싯다르타 태자로 출가하여 6년간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되고 보니 사실은 수행이란 것을 하지 않고도 이미 사람들이 다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화엄경》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서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어느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지 않은 이가 없구나. 본래로 이미 부처님이구나. 다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구나. 마치 자기 주머니 속에 수 억만금의 가치가 있는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듯이 이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음과 망상과 집착만 없다면 온갖 위대한 지혜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고 토로했다.
(10) 모두 다 회향하다
復次善男子 言普皆廻向者 從初禮拜 乃至隨順 所有功德 皆悉廻向盡法界虛空界 一切衆生 願令衆生 常得安樂 無諸病苦 慾行惡法 皆悉不成 所修善業 皆速成就
(부차선남자 언보개회향자 종초예배 내지수순 소유공덕 개실회향진법계허공계 일체중생 원령중생 상득안락 무제병고 욕행악법 개실불성 소수선업 개속성취)
“선남자여 모두 다 회향한다는 것은 처음 예배하고 공경함으로부터 중생들의 뜻에 수순함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공덕을 온 법계 허공계의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항상 편안하고 즐거움을 얻게 하고 병고가 없기를 원하며 하고자 하는 나쁜 짓은 모두 이뤄지지 않고 착한 일은 빨리 이루어지게 함이다.”
關閉一切諸惡趣門 開示人天涅槃正路 若諸衆生 因其積集諸惡業故 所感一切極重苦果 我皆代受 令彼衆生 悉得解脫 究竟成就無上菩提
(관폐일체제악취문 개시인천열반정로 약제중생 인기적집제악업고 소감일체극중고과 아개대수 영피중생 실득해탈 구경성취무상보리)
“온갖 나쁜 갈래의 문은 닫아버리고 인간이나 천상이나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은 열어 보이며 만약 모든 중생들이 쌓아온 나쁜 업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일체 무거운 고통의 과보를 내가 대신하여 받으며 그 중생들이 모두 더 해탈을 얻고 마침내는 더없이 훌륭한 보리를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菩薩 如是所修廻向 虛空界盡 衆生界盡 衆生業盡 衆生煩惱盡 我此廻向 無有窮盡 念念相續 無有間斷 身語意業 無有疲厭
(보살 여시소수회향 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아차회향 무유궁진 염념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보살은 이와 같이 회향하니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나더라도 나의 회향은 끝나지 않고 염려와 걱정을 계속하여 쉬지 않을 것이고 몸, 말,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을 것이다.”
유종(有終)의 미(美)라는 말이 있다. 일의 끝을 잘 마무리한다는 뜻인데 회향은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일을 하던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서는 곤란한 것처럼 회향하지 않는 선행은 이기적이고 소승적이다. 설사 불도를 닦아 높은 경지에 오른다 해도 산중에서 자신만이 누리고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법을 베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닦은 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회향해야 참된 불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 본대로 한국불교가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며 무비스님은 2만 명이나 되는 불교 전문가인 승려 중에 포교하거나 전법 (傳法)활동을 하는 이는 고작 몇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공부가 가득 차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30년 40년 후에는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우유를 짜던 사람이 그 날 그 날 짜는 우유는 너무 적어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없다며, 한 달 동안만 모아서 한꺼번에 짜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리라고 마음먹고 기다렸다가 한 달 후 우유를 짜려고 보니까 우유는 이미 다 말라버리고 없었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했다.
선행으로 중생들에게 회향하고 회향이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불자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회향하는 일이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나더라도 끝나지 않아야 하는데, 보살이라면 모름지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절에 가면 절에서, 집에 있으면 집에서 보살이 아니던가?
경전을 기록하는 데는 산문형식과 게송형식이 있다. 게송형식의 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고기송(孤起頌)이라 하여 산문의 설명 없이 게송만으로 이치를 설명한 것으로 법구경과 같은 경전을 말한다. 둘째 중송(重頌)이라 하여 앞에서 산문 형식으로 이치를 설명하고 다시 거듭 그 뜻을 밝히려고 게송의 형식을 빌려서 이중으로 설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보현행원품〉은 후자의 형식에 준하여 지금까지 산문으로 열 가지 행원을 설명하였고, 다음은 게송으로 그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나중에 시간 내서 그 게송을 옮겨 볼 작정을 하고, 이쯤에서 이 책의 저자 무비스님에 대해 알아보면서 줄일까 한다. 그전에 책 마지막 부분을 보도록 하자. 마지막은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에 이어, 유통분(流通分)이라고 하였는데, “신수봉행(信受奉行-믿고 받들어 행하다)하더라”로,
爾時 世尊 與諸聖子菩薩摩訶薩 演說如是不可思議解脫境界勝法門時 文殊師利菩薩 而爲上首 諸大菩薩 急所成熟六千比丘 彌勒菩薩 而爲上首 賢劫一切諸大菩薩 無垢普賢菩薩 而爲上首 一生補處 住灌頂位 諸大菩薩 及餘十方種種世界 普來集會 一切刹海極微塵數諸菩薩摩訶薩衆 大智舍利佛 摩訶目犍漣等 而爲上首 諸大聲聞 幷諸人天一切世主 天龍夜叉乾闥婆訶修羅迦樓羅 緊那羅摩睺羅伽 人非人等 一切大衆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이시 세존 여제성자보살마하살 연설여시 불가사의해탈 경계승법문시 문수사리보살 이위상수 제대보살 급소성숙육천비구 미륵보살 이위상수 현겁일체제대보살 무구보현보살 이위상수 일생보처 주관정위 제대보살 급여십방종종세계 보래집회 일체찰해미진수 제보살마하살중 대지사리불 마하목건련등 이위상수 제대성문 병제인천일체세주 천룡야차건달마하수라가루라 긴나라마후라가 인비인등 일체대중 문불소설 개대환희 진수봉행)
“그때에 부처님께서 성스럽고 거룩한 여러 보살마하살과 함께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해탈경계의 훌륭한 법문을 연설하실 때, 문수보살을 상수로 한 여러 큰 보살과 그들이 성숙시킨 육천비구와 미륵보살을 상수로 한 현겁(賢劫)의 일체 모든 대보살과 무구보현보살을 상수로 한 일생보처로서 정수리에 물을 붓는 자위에 있는 여러 큰 보살들과 시방의 가지가지 세계에서 모여온 모든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수와 같이 많은 모든 보살마하살들과 큰 지혜 있는 사리불과 마하목건련 등을 상수로 한 여러 큰 성문과 아울러 여러 인간세상과 하늘세상의 주인들과 천신, 용, 왕,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타,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인 듯 사람 아닌듯한 이, 등의 일체 대중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습니다.”고 하였다.
이것이 경전 중에서 가장 길고 방대한 『대광광불화엄경』의 끝이다. 화엄경은 길고 방대할 뿐만 아니라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을 하나도 남김없이 그리고 방편이라는 거품도 없이 진리의 순수성을 철저하게 그대로 드러낸 경전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며, 그 깨달음의 내용을 남김없이 표현한 화엄경은 인류가 남긴 최대의 걸작품.”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거의 모든 경전은 “이와 같이 보고 들었습니다.”(如是我聞)라고 시작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습니다.”라고 끝을 맺으며, 〈보현행원품〉은 화엄경의 80분의1에 해당하는 맨 끝부분이다. ‘여기에 화엄경의 결론과 불교의 결론이 잘 나타나 있어서 완벽한 경전으로 손색이 없다. 만약 길다고 느낀다면 팔만대장경을 보라 거기에 비하면 아주 짧고, 짧다면 부처님이 들어 보였던 한 송이 꽃, 손가락 하나에도 불교의 참뜻이 담겨 있을 것이므로 더 없이 길다.
모두 이해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고, 안목에 달려 있을 뿐이다.’무비스님의 결론이다.
그리고는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이대로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인 것을.”하고 끝맺었다.
▢ 무비(無比)스님
1943년 영덕에서 출생, 1958년 출가하여 덕흥사 불국사 범어사를 거쳐, 1964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였고 동국역경연구원에서 수학했다. 1976년 탄허스님에게 화엄경을 수학하고 이후 통도사 강주, 범어사 강주, 은혜사 승가대학원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법화경 법문』『신금강경 강의』『직지강설』(전2권)『법화경 강의』(전2권)『신심명 강의』『임제록 강설』『대승찬 강설』『유마경 강설』『당신은 부처님』『사람이 부처이다』『이것이 간화선이다』『무비스님과 함께하는 불교공부』『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일곱 번의 작별인사』, 무비스님이 가려 뽑은 명구 100선 시리즈(전4권) 등이 있다.
번역·편찬한 책으로 『화엄경(한글)』(전10권) 『화엄경(한문)』(전4권)『금강경 오가해』등이 있다. (2018.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