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생명체의 근원은 씨앗이다. 좋은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게 한다. 이른 봄에 텃밭에 상추 씨앗을 뿌렸는데 땅을 비집고 촘촘히 싹을 틔웠다. 물을 자주 주면서 관심을 보였더니 몇 달 동안 상추를 솎아내어도 계속 먹거리를 제공했다.
밭을 갈아 두둑을 만들고 거름을 주어 밭을 일군 다음에 씨앗을 가지런히 뿌린다. 농부는 고랑을 따라 이동하면서 싹이 튼 식물에 물도 주고 풀을 뽑아 주어 잘 자라게 한다. 농부의 발걸음에 따라 작황이 결정되며, 작물에 관심과 돌봄이 성장에 큰 역할을 하여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런데 성서에 보면 돌밭에 뿌린 씨앗이나 가시덤불에 뿌린 씨앗은 잘 자라지 않고 죽는다고 한다. 왜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씨앗을 뿌렸을까? 이스라엘의 유다 지역은 산악 지방이다. 우리처럼 밭을 일구지 않고 그냥 씨앗을 마구 뿌린다. 그러니 씨앗이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질 수도 있어 빛을 보지 못하거나 뿌리를 내리지 못해 죽고 만다.
믿음의 씨앗도 마찬가지다. 씨만 뿌렸다고 해서 잘 자라지 않는다. 부지런한 농부처럼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잘 자라지 않고 말라 죽고 만다. 우리나라는 가톨릭 신자가 전 국민의 11.3%(약 597만 명)이나 신자가 주일 미사 참례율이 전 신자의 13.5%(약 80만 명)로 가뭄에 콩 나듯이 줄고 있다.
며칠 전에 한 신부님의 어머니께서 선종하셨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 조문을 갔다. 여러 신부님과 함께 미사도 드리고 연도도 바쳤다. 상주 신부께서 집안 믿음의 내력을 말씀해주셨다. 믿음의 씨앗은 할머니라고 했다. 조부모님께서 대구로 와서 어느 스님이 ‘동쪽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동촌이라고 했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성당 종소리를 듣고 성당으로 찾아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신부님은 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으며 초등 3학년 때 첫영성체를 받았다. 그 뒤로 복사 일도 맡고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그 뒤에 신부님 부모님께서도 세례를 받았으며 신앙 가족이 되었다고 한다.
신부님은 신학교에 들어가 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기 전에 이문희 바울로 주교님과 면담이 있는데 본인은 10초 만에 끝났다고 했다. 그 이유는 주교님께서 동촌 성당에 주임으로 계실 때 할머니와 교분이 있었기에 그 손자라면 알만 하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신부님은 대주교의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그림자 역할을 했다. 그러니 지금도 바울로 대주교님께서 창립한 법인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어 새들도 깃들고 그늘도 만들어 사람이 쉬는 밀알이 되듯 우리도 그 누구의 씨앗이 되어야 하리라. 그렇게 되려면 내가 튼튼한 나무가 되어 그늘을 드리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