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가 올해 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어렵사리 이끌어 냈다. 이전 같았으면 연말 가까이에나 가능했음직한 일이다. 일본의 對韓 수출규제,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 기조 등 만만치 않은 국제 여건이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 듯하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수용에 나선 노조의 자세가 크게 한몫했다. 조합원들의 권익을 위해 파업을 강행할 땐 하더라도 보다 큰 국가적 이익을 위해 잠시 물러설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지난 2017년 12월 30일 현대차 노조원들이 노조집행부가 마련한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임단협에 나선 노조대표들이 "이만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한 것을 조합원들이 "부족하다"며 거부한 것이다. 당시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부결되자 노조 집행부는 물론 많은 시민들이 허탈해 했었다.
그해 한 해 동안 지루하게 협상이 이어지는 바람에 회사의 손실이 엄청난데다 지역 경제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대차와 관련된 중소기업들이 재정적 어려움에 빠져 일부가 도산됐고 지역 소상공인들도 그 여파로 고통을 겪었다.
그래서 잠시 사라졌던 `귀족 노조`란 비판이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노사 양측이 마련한 임단협 잠정 합의안은 말 그대로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 찬반 투표에서 가결돼야 확정된다, 지난 2017년 잠정합의안처럼 노조 대표가 실컷 합의해 봤자 조합원들이 부결시키면 그만이다.
통상 잠정합의안이 그대로 통과되는 게 상례이긴 하지만 이번에 2년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당시 해를 넘겨 타결된 합의안에 덧붙여진 건 겨우 상품권 20만원 이었다. 이번 잠정합의안의 통과 여부는 조합원 개인이나 회사 차원의 이익 못지않게 국가의 체면이 달린 문제다. 일본이 지난달 시행에 들어간 `화이트 리스트` 한국배제 품목에는 현대차의 미래 친환경차 개발과 연관된 것들이 있다.
따라서 일본 산업체들이 현대차가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볼게 틀림없다. 일본의 조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밀고 나가면 향후에라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태풍 전야에 우리끼리 치고받으면 그들의 책략이 먹혀든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들의 꼼수와 상관없이 현대차 노조가 자체적으로 행한 행동이 자칫 그들에겐 쾌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다고 해서 현대차의 친환경차 개발이 영향을 받을 바는 아니겠지만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안주 깜`이 되는 것도 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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