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57]콩, 콩, 콩, 이것이 문제로다!
베트남은 4모작도 한다지만, 우리로서는 2모작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내 평생 2모작을 처음으로 해봤다. 옥수수를 3월말 노지露地에 심어 100일쯤에 수확을 하는데, 수확하기 전 5일 전쯤 옥수수 포기포기 사이에 콩(백태, 대두, 메주콩 다 같은 이름이다)을 심었다. 두 작물 모두 악물스럽기(힘들기)는 마찬가지여도, 콩은 타작이 문제다. 600평에 서 나온 콩을 예전처럼 도리깨로 하는 건 상상이 안된다. 타작기계를 빌며 하루종일 밭에서 매달려 나온 게 20kg 푸대에 30개, 600kg를 생산한 거다. 모두 농협에 수매, 300만원은 벌었지만(옥수수로 150만원), “이제 다시는 콩농사 하나 봐라”고 여러 번 중얼거렸지만, 올해 또 한판 벌였다. 벌인 까닭은 거름을 많이 해놓아서 모를 심으면 나락이 되어 모두 쓰러진다고 한 때문이다.
아무튼, 올해는 옥수수를 4월 2일 심고 7월 7-12일까지 수확했다. 문제는 콩을 그 전에 심어야 했지만, 게으름을 핀 탓에 잡초가 너무 무성해 심기가 어려웠다. 하여, 옥수수 수확 후 옥수수대를 다 베어내고 풀약을 한 후에 심기로 했으니, 예전보다 열흘 가까이 늦게 심은 것이다. 그것도 장마철. 반짝 해가 나왔을 때 ‘1인 총력작전’으로 이틀간 10시간이 넘게 밭에 달라붙었다. 생각해보면 눈물나는 노력이지만, 농부農夫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올해는 ‘타작물 재배’(논에 벼 대신 콩이나 다른 작물을 심는 것)를 하니 직불금을 조금 더 준단다. 안하고 싶어도 땅을 놀리면 ‘천벌天罰’을 받을까 두려움도 있다. 흐흐.
10월말이나 11월초 콩타작을 해야 하는데, 올해의 작황은 어떨까? 600kg는 어림도 없고 400kg만 나와도 대박이라는 게 선임자의 말이다. 허나 맹탕이어도 할 수 없는 일. 올해처럼 비가 많이 내리면 땅 속에서 그대로 녹아버릴까 걱정이다. 오늘 아침 뉴스에도 콩을 많이 심는 김제지역은 벌써부터 콩농사 완전 망했다고 나왔다. 옥수수 구멍이 6000개가 넘었으니, 당연히 콩을 심는 구멍도 6000개가 넘는 것은 당연지사. 생각해보라. 그것을 일일이 일어났다 앉았다하며 1구멍에 2-3알씩 넣고 흙을 덮는다는 것을. 혹자는 콩심는 기계가 있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하겠지만, 그 농기구로 해봤는데 효율성도 없고 힘이 더 드는 것같다. 결론은 ‘(순전히 몸뗑이로) 막고 품는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모두 끝내고 나니 7시 반, 하루종일 밭에 매달렸으니 몸이야 파김치이지만, 정신만큼은 은화銀貨처럼 맑았다. 비둘기나 떼까치들의 코는 ‘새코’이지만 예민하기가 말로 못한다. 어떻게 콩 냄새를 알고 콩을 파먹거나 막 나온 콩잎을 뜯어먹을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일. 3알이나 4알을 넣으면서 빌었다. 1개는 너희 새들 몫이니 나머지는 제발 잘 자라게 남겨두라는 마음인 것이다. 자연은 알 수 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천지비까리이다. 또 하나, 생각해보자. 아무리 우주선이 달을 넘어 화성에 착륙한다해도, 인공지능(AI)가 이세돌을 판판이 이긴다해도,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는 만들어낼 수 없지 않은가. 정말 웃기는 것은 인간조차 인공임신을 시키는데도 말이다.
콩농사가 잘됐으면 고생한 보람이 있으련만, 안된다해도 할 수 없다. 다행히 올해 옥수수농사는 작년보다 잘된 편이다. 출수율出穗率이 90%를 훨씬 넘었으니(작년엔 70%대), 수확도 자연히 많을 수 밖에. 안되면 안된대로 위안을 삼을 판이다. 작년 콩타작을 하는 데, 하마터면 너무 힘들어 울 뻔 했다. 이깟 200여만원 벌려고 이 고생을 하는가 생각하니, 대처大處의 월급쟁이 생활이 생각나 목이 메었었다. 1주 5일 근무에 한 달에 400여만원을 버는데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하는 생각에서였다. 대도시 한 달의 ‘천문학적 수입’과 농촌지역 1년의 ‘쥐꼬리 수입’을 비교해 보라. 그래도 좋았다. 내 고향 산천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즐거운 생각만을 하는 ‘인생 제2막’의 삶이 솔직히 남 부러울 것은 ‘1도’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시시때때로 ‘근본적인 회의懷疑’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은 사실이다. 아내는 별 생각이 없는 듯 ‘그렇게 힘들면 올라와 같이 살자’고 하지만, 어디 그게 나의 의지대로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늙으신 아버지를 보살필 때까지는 보살피는 게 내 말년의 ‘미션’인 것을 어이 하랴.
콩 푸념을 하다보니, 인간적으로는 아주 싫어하는(돈을 너무 밝힌다는 소문이 대한민국에 왁짜하다) 시인 김용택의 동시童詩 <콩, 너는 죽었다>가 또다시 생각났다. <콩타작을 하였다/콩들이 마당에서 콩콩 뛰어나와/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콩 잡아라 콩 잡아라/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콩 잡으로 가는데/어, 어, 저 콩 좀 봐라/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콩, 너는 죽었다>, 재밌다. 예전 소싯적 풍경이 생각나서다. 대부분 자기집 마당에서 콩타작을 도리깨로 했다. 우리는 수씨비(수수비)로 쓸어담기 바빴다. 어머니는 쳉이(키)로 검불을 까불러 콩만, 콩만 푸대에 담았다. 가족공동체 작업이 따로 없었던, 그 옛날 농촌의 풍경이 때때로 몹시 그리울 때가 많다. 그나저나 장마든, 가마솥더위든 이 여름 빨리 지나가 콩타작도 끝나고 겨울 농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