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라듯 살아온 부인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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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중반의 여성이 아들을 앞세우고 내게 왔다. 몇 년 전부터 공황장애로 사람들이 많이 있는 장소에 가면 심장이 심하게 뛰어 도통 가지를 못한다고 했다. 약을 먹다가 얼마 전에 약을 끊은 후 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단다. 약으로 억지로 증상을 가라앉히기보다 상담을 통해 공황장애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면, 그것을 극복하기가 아무래도 쉽지 않을까 하여 내게 왔단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가 반가우면서도 매우 힘들면 약을 먹는 거도 나쁘지 않다며, 상담과 약 복용을 병행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동안 약을 많이 먹었다며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고 싶다고 하였다. 아무튼 본인은 난관을 많이 뚫어냈던 사람인데, 느닷없이 공황장애를 앓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친정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데다 거의 매일 주사를 부려 온 가족이 고통스러웠단다. 그런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어머니가 수시로 가출하는 바람에 장녀인 자기가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그나마 공부를 잘했던 덕분에 졸업 후 괜찮은 직장을 얻었고, 거기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 잘 살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들이 한창 공부할 때 갑자기 남편이 유명을 달리해 힘들었지만, 그와의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며 아들을 씩씩하게 잘 키웠다고 했다. 고맙게도 아들은 잘 자랐고, 결혼해 잘살고 있어 현실적으로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단다. 이렇게 거뜬하게 살았던 자기가 왜 느닷없이 공황장애가 앓게 되는지 모르겠다며,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말하며, 그녀가 언제부터 공황장애를 앓기 시작했는지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몇 해 전 시기적으로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죽음도 거뜬히 견디었던 그녀였는데…. 뭔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대체로 친정 식구들과 아무리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도 남편을 맞이해 자녀을 낳고 살면 무게중심이 새로운 가정으로 옮겨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한 지 30년 이상 되었고, 그사이 엄청난 충격을 주는 남편의 죽음도 맞이했던 사람이다.
그럴만한 단서가 잡히지 않아 뭐 때문인지 예의주시하며 그녀의 말을 듣는데, 왠지 그녀가 과도할 정도로 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아들이나 며느리에 대해 서운한 게 있을 법도 한데, 그녀는 그들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기는커녕 칭찬 일색이었다.
남에게 불만을 품지 않는 태도는 분명 찬양받을 만한 훌륭한 태도다. 그렇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과하면 뭔가 부자연스럽다. 뭘 물어도 긍정적으로만 대답하는 그녀에게서 다소 지루함을 느끼면서 나는 다시 그녀가 살아오면서 어떤 아픔을 가졌는지 면밀하게 파고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러한 탐색이 불편했는지, 이렇게 대꾸했다.
“다 지난 일인데 아버지의 허물을 다시 말해 뭐 하겠어요.”
그 순간 ‘아하!’하고 내 마음에 스치는 게 있었다. 그녀가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과도하게 억압했고,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해 그러한 게 건드려지면서 혼란을 겪는 듯했다. 즉,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일시에 양가감정이 고조되었고, 그것이 공황장애로 표출되었던 게 아닐까 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정도 이상으로 착한 것과도 연결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용납할 수 없으니까, 반동형성으로 과도하게 착하게 굴었던 거로 이해되었다.
이 모든 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묘하다. 어쨌든 이러한 양극의 심리를 장착했고, 남편이 변고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너무 거뜬히 넘겼던 거 같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억압의 반동이니까, 마침내는 공황장애라는 부작용이 터졌던 거지 싶었다.
증상에 관한 이러한 역동을 상세히 설명해 주자, 그녀는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눈에는 눈물이 흥건히 고였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너무 야속해 차라리 죽어 없어지기를 바랐었다고 실토했다.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며 그녀는 놀라워했다.
다음 회기 상담에 왔을 때, 그녀는 저번 상담을 마치고 가서 다소 편안해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들에 대해 썩 편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불만스러워하는 내용에 관해 묻자, 그녀는 엉뚱하게 아들이 얼마나 성실한지에 대해 말하느라 여념 없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또다시 억압하기 시작하는 거였다.
이미 그녀의 핵심적인 대응 방식을 이해하고 있던 터라, 나는 아들이 결혼 이후 어머니에게 무엇을 소홀히 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폈다. 그리하여 알게 된 내용은 어머니가 늘 긍정적으로 말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아들은 아내가 원하는 대로 처가와 가깝게 지냈다. 이사를 처가 근처로 간다든가, 해외여행을 갈 때 아이들을 잘 보살펴준다는 명목으로 처가 부모만 대동한다든가, 소소하게 이런 것들이 많았다.
나는 그 부인에게 아들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런 말을 어떻게 하느냐며 펄쩍 뛰었다. 이러한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자기가 존중하지 않으면 공황장애를 벗어날 길이 없다고 말하며, 그녀가 과도하게 높은 자기상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어려서부터 성숙한 사람이 되고자 늘 성인 전을 읽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나요?”
“충분히 자기를 구축한 뒤에 그것을 넘어서는 수순을 밟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웃자란 격이 되어 진정한 성장을 하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이런 식으로 그녀가 어려서부터 어린이답게 크기보다 애어른처럼 자란 게 문제가 된다고 일렀다. 그러면서 걸음마 하듯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상담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그녀가 비교적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공황장애를 떨쳐냈다. 그렇게 자기를 스스로 가두는 기제를 벗어던지는 데 족히 1년 이상 걸렸다.
첫댓글 증상
공황 장애(panic disorder)란 예기치 않은 공황 발작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증상이 없을 때도 증상이 발현될까 미리 두려워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악영향이 생기는 장애를 의미합니다.
공황 발작(panic attack)이란 어떤 외부의 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과 같은 다양한 신체 증상과 동반하여 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을 의미합니다. 공황 발작은 본래 외부의 위협에 반응하기 위한 뇌의 정상적인 작용입니다. 공황 장애 환자의 경우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도 부적절하게 반응하여 발작이 생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경보기가 잘못 작동하여 아무 때나 경보를 울려서 지장을 초래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일년 걸려 공황장애 치유 소식 ..
감사합니다.
주변에 한 두명 환자 있네요...
텍사스는 지금 홍수재난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