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채동석회장님제공]
어떤 사람이 영험(靈驗)하다 는
스님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님,
저는 사는게 너무 힘듭니다.
매일(每日)같이 이어지는
스트레스(stress)로 인(因)해 너무나도
불행(不幸) 합니다.
제발 저에게 행복(幸福)해지는
비결(秘訣)을 가르켜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스님은
"제가 지금(只今) 정원(庭園)을 가꿔야 하거든요.
그 동안에 저 가방 좀 가지고 계세요.”
라고 부탁(付託)을 합니다.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지요.
그는 행복(幸福)의 비결(秘訣)을 말해주지
않고 가방을 들고 있으라는 부탁(付託)에
당황(唐慌)하기는 했지만,
정원(庭園) 가꾸는 일이
급(急)해서 일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時間)이 지나면서
점점(漸漸)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30분쯤 지나자 어깨가 쑤셔 옵니다.
하지만 스님은 도대체
일을 마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지요.
참다 못 한 이 사람이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 이 가방을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합니까? ”
이 말에 스님은 한심(寒心)하다는
표정(表情)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무거우면 내려놓지
뭐하러 지금(只今)까지
들고 계십니까? ”
바로 이 순간(瞬間)
이 사람은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행복(幸福)하기 위해서는
바로 자신(自身)이 들고있는 것을 내려
놓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려 놓으면
편안(便安)해지고
자유(自由)로워 지는데,
그 무거운 것들을 꼭 움켜잡고 가지고 있으려고 해서
힘들고 어려웠던 거지요.
우리는?
혹여(或如) 내가 내려 놓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요?
모두 내려 놓으세요.
그래야 행복(幸福)이 바로 내 옆에 있음을
발견(發見) 할 수 있습니다.
내려놓고,
더 내려놓고 사는
여유(餘裕)롭고 행복(幸福)한
당신(當身)이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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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
충청도 사람들은 '가셨습니다'를 '갔슈',
'괜찮습니다'를 '됐슈'로 줄여서
말하곤 합니다.
어느 날 충청도의 시골 이발소에
한 미국인 남자가 들어왔는데 이발소 주인아저씨는
그 남자에게 인사했습니다.
"왔슈?"
충청도 말로 '오셔서 반갑습니다'라는 뜻이었는데
미국인 남자는 이발소 주인아저씨의 말을
'What see you?(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로
착각해 들었습니다.
미국인 남자는 비록 조동사 'do'가 빠지긴 했지만
시골 아저씨 치고 그 정도면 제법 훌륭한
영어 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자의 앞에는 이발소의 큰 거울이 보였습니다.
그는 문장이 길어지면 주인아저씨가 알아듣지 못할까 싶어
딱 한 마디로만 대답했습니다.
"mirror(거울)"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남자가 의자에 앉자마자 이발소 아저씨는
커트용 전동식 기계를 갖고 미국인 남자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렸습니다.
이발소 주인아저씨는 '미러'라는 말을
거울(mirror)이 아니라 '머리를 밀어'라는 말로
알아들은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지어낸 유머겠지만
이 우스갯소리에는 알고 보면 중요한 삶의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결국 '소통'이 되지 않는 삶에는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만약 우리의 뜻이 서로 통하지 않고
오해만을 불러일으킨다면 분명 그것만큼 답답하고 괴로운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소통과 고통의 의미가 같아지는 것을
막아줄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소통은 이해의 과정이며, 이해는 인간관계의 밑바탕입니다.
– 피터 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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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은 왜 7일일까? -
원래 동양에서는 7일를 한 묶음으로 해서 시간을 구분하는 관습이 없었으며,
고대 중국인들도 이집트나 그리스인들이 그랬듯 열흘을 단위로 날짜를 끊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전래되어 열흘 단위 풍습이 생겨났고, 그 흔적으로 지금도 초순,
중순, 하순이라 할 때 그 순(旬)이 바로 한 달을 열흘 단위로 끊어서 센 시간의 단위입니다.
시간을 7일씩 끊어서 사회생활에 리듬을 삼는 관습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유태교- 기독교적 전통입니다. (성서는 하느님이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레째에는 쉬었다고 합니다)
그 관습이 3세기에 유럽에 도입되었고 이제는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일주일 중 첫번째 요일이 무슨 요일 일까요?
모두가 월요일이라 생각하지만 일요일입니다.
달력을 보시면 일주일 맨 앞에 요일은 일요일이지요.
기독교에서 일요일은 주님의 날, 즉 주일(主日)이라 하지만 기독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각 요일의 어원을 찾아보면 일주일의 이름은 모두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일요일은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을 가르키니 태양계의 으뜸인 일요일이 첫번째 요일이 된 것이고,
하늘에는 태양(日)이 하루에 한번씩 지구를 돌며 비춰주어 낮과 밤을 만들고
또 밤이면 달(月)이 밤하늘을 밝히면서 지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리하여 태양과 달이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쳐 우리의 일상에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외 수성(水星), 금성(金星), 화성(火星), 목성(木星), 토성(土星)의 다섯 별도 함께 다닌다고 생각하여,
이 행성들이 우리가 사는 지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준은 그 당시 이 일곱 별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큰 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고대인들의 생각에는 이 일곱개의 별이 무척이나 중요했던 것이며,
그래서 이 일곱의 별을 칠요(七曜)라 불렀으며
이 일곱개의 빛나는 별을 날짜의 주기를 정하는 요일(曜日)로 삼았던 것입니다.
일요일은 태양(日)
월요일은 달(月)
화요일은 화성(火星)
수요일은 수성(水星)
목요일은 목성(木星),
금요일은 금성(金星),
토요일은 토성(土星)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일곱별을 가지고 일주일 (7일)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7일 일주일제를 몇 나라가 바꾸어 보려 한 적이 있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합니다.
1792년 프랑스에서는 자기들이 고안한 미터법과 같이 10진법의 1주 10일제를 실시해보았으나
노동자들의 반발로 나폴레옹이 폐지하였고, 1
929년 소련은 1주 5일제를, 1932년에는 1주 6일제를 시도해보았으나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곡절을 거치면서 1주 7일제는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이제는 전세계인들의 일상 생활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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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지혜
침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신뢰가 간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말이 많은 사람한데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나도 이제 가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말수가
적은 사람들한테는
오히려 내가
내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고 싶어진다.
사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으로 말이 여물도록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쏟아 내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불쑥 말해 버리면
안에서
여무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면은 비어 있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경전은 말하고 있다.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전부 말해 버리면
말의 의미가,
말의 무게가
여물지 않는다.
말의
무게가 없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메아리가 없다.
오늘날
인간의 말이
소음으로 전락한 것은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소음과 다름없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침묵의
지혜로 사는 것은
자신과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내면의 평화를 찾고,
생각을 명확히 하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이를 실천하는
몇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말하기 전에 생각하기:
반응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습관을 기릅니다.
이는 더 신중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2. 듣기의 미덕 실천:
활발히 듣는 것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이는 관계를 강화하고
더 깊은 연결을 만듭니다.
3. 명상과 자기 성찰:
일상에서 명상을 실천하거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탐색합니다.
이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4. 자연과의 시간: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침묵의 가치를 깨닫게 합니다.
자연의 소리는
우리 내면의 소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5. 디지털 디톡스:
정기적으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고,
소셜 미디어와 이메일로부터
잠시 멀어지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는 정신적 평화와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6. 창의력 발휘:
예술, 음악, 글쓰기 등
창의적 활동에 몰두하며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합니다.
창작 과정은 종종 침묵과
깊은 집중을 요구합니다.
7. 감사의 실천:
매일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기록하고, 감사의 마음을
키워 나갑니다. 이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조성하고,
내면의 평화를 느끼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침묵의 지혜로 사는 것은
의식적인 선택과 연습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me2.do/xhm8uX1P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
me2.do/F1BR2a2O
나에게 산소같은 당신
me2.do/GTG04V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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