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9일(주)
* 시작 기도
주님...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자기의 죄나 부모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것 역시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자보다 죄가 더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하심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종말의 현상인 지진이나 기근 홍수로 인하여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데 그것도 그들의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이런 일을 통하여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경고임을 믿사오니 우리 믿는 자들이 더욱 각성하여 말씀에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늘도 공동체로 모여 주님을 예배할 때 그 자리에 성령으로 임재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25:1-13
제목 : 굴러온 복을 발로 차버리는 미련한 자 나발, 나야말로 참 복을 알지 못하여 복을 차고 다닌 자였다.
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2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3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털을 깎고 있었으니
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4 다윗이 나발이 자기 양털을 깎는다 함을 광야에서 들은지라.
5 다윗이 이에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6 그 부하게 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7 네게 양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8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9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12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13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400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200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 나의 묵상
다윗은 그의 부하들과 함께 사울을 피하고자 동굴에 들어가 있었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중에 볼 일을 보러 급하게 동굴로 들어갔다.
밖에 있다가 동굴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그 안에 다윗 일행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부하들이 다윗더러 하나님이 당신에게 사울을 죽이라고 보내셨다고 하면서 지금 당장 죽일 것을 권하였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내가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그의 옷자락만 조금 베었다.
사울이 볼일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자 다윗도 그를 따라 나갔다.
그리고 사울을 불러서 자기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왕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죽이지 않고 다만 옷자락만 조금 베었따고 하면서 베어낸 옷조각을 그에게 보여준다.
그로 인하여 사울은 감격하였고 다윗에게 앞으로 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내가 아는데 그 때 나의 후손들을 멸하지 말고 또한 우리 가문에서 나의 이름을 끊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
그렇게 서로 약속을 한 후에 헤어져 자기의 길을 갔다.
한편 사무엘이 죽어서 그의 고향 라마에서 장사하였다.
그 즈음에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갔다.
마온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생업은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3천에 염소가 천 마리였으며 갈멜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비가일이다.
아주 총명하고 아름답지만 그의 남편 나발은 완고하고 악한 자로 갈렙 족속에 속한 자였으며 갈렙은 유다 지파이다.
다윗은 나발이 양털 깎는다는 것을 들었다.
이에 사절로 그의 부하 10명을 보낸다.
그 이유는 그동안 우리가 너희의 담이 되어주어서 너희들의 생업에 전혀 손해가 없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사절에게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었다.
다윗의 사절이 나발에게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문안하고 다윗의 말을 전하였다.
그런데 나발은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며 안하무인으로 대하면서 다윗을 도망한 종으로 폄하한다.
그러면서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부랑자 같은 이들에게 물과 떡 그리고 고기 등 어떠한 것도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다윗의 사환들은 다윗에게 있는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자 다윗은 자기 부하들에게 칼을 차라고 하면서 전쟁을 준비하였는데 400명은 나발을 치러 가고 200명은 소유물을 지키게 하였다.
오늘 본문 3절에는 두 사람 곧 한 부부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의 이름은 남편이 나발이고 아내는 아비가일이다.
나발의 뜻은 ‘미련한 자’, 아비가일의 뜻은 ‘즐거움의 아버지, 기쁨의 원천’이다.
나발은 미련한 자의 대표로 등장하고 이제 내일 본문에 등장할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자의 대표로 등장한다.
나발은 가진 소유물이 많고 부유한 자이지만, 정작 지혜가 없는 미련한 자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다윗이 그의 심복들을 보내서 먹을 것을 구하는데 이를 매몰차게 거절하며 모욕까지 해서 쫓아버린다.
그는 그의 단호한 거절로 인하여 잠시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줄 먹을 것에 대한 손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의 전부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작은 것을 얻고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을 잃게 된 것이다.
다윗의 평안하라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그저 소탐대실한 나발은 그의 이름 그대로 미련한 자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평강을 전하러 오셨다.
그는 땅의 일로 불안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 가운데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전하신 일성이 평안하라는 말씀이었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니까 제자들이 예수인 것을 알고 기뻐하였다.
예수님의 평강은 이 땅의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평강의 능력은 주님의 생명에 연합하는 능력이다.
그 생명은 이 땅에서 두려움을 물리치는 능력을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의 평강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부귀영화는 신약시대의 영생의 부요함을 예표하는 실물예시에 다름 아니다.
곧 구약시대의 땅의 부요함은 신약시대 하늘의 부요함을 예표한다.
하늘에 속한 부요함은 오직 지혜로운 자가 누리는 복이다.
그런데 나발은 그런 부귀영화를 받았음에도 그에 걸맞는 지혜도 없고 삶도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통하여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자기의 재산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다윗의 심복들을 모욕하고 쫓아내버리고 말았다.
굴러온 복을 발로 차버리는 격이다.
다윗의 축복을 잘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게 반응을 했으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나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평안을 누릴 수 있었는데 말이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이 짧고 미련한 존재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다.
나는 사실 재리(財利)에 그리 밝지 못하다.
그렇다고 내 안에 탐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닌 것 같으면서도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를 꼼꼼이 따져 볼 때가 많다.
그러다가 나에게 유익을 있을 것 같으면 아끼지 않고 다 내어주는 것 같이 하면서도 손해가 있을 것 같으면 안면몰수 하기도 한다.
내 안에 미련한 자 나발이 있다.
아니 내가 바로 나발이다.
이런 탐욕에 매인 나는 죽는 것이 지극히 마땅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창세전에 나를 택하시고 당신의 아들로 삼으셨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날 위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
그 십자가의 은혜가 오늘 나를 살게 한다.
나 비록 이 땅에 살면서 순간순간 믿음의 순도가 변하기도 하고 그 신선도 역시 떨어져 썩은 동태 눈깔처럼 되기도 하지만 그런 나를 징계하시되 아주 진멸시키지 않음이 은혜이다.
그런 고난이라는 징계를 통하여 다시금 믿음의 순도를 높이고 떨어진 신선도도 회복시키신다.
그러나 아무리 순도가 높아지고 신선도가 회복이 되어도, 이 땅에서의 믿음은 언제나 오락가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그런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기뻐하시며 좋아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드릴 것은 나의 믿음의 순도나 신선도가 아니다.
오직 나를 덮고 있는 우리 주님의 피요 주님의 의의 옷이다.
나는 그 옷을 입고 있는 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당당히 내어놓을 수 있다.
비록 하나님 앞에서 면목 없고 부끄러운 자일지라도 나를 자녀 삼아주신 그 은혜 앞에서 파레시아로 담대히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구약시대 나발은 재산이 많고 부귀영화를 소유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유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 소유물에 꽉 붙잡혀 누리지 못하는 미련한 자의 표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소유가 많은 자는 아니지만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하여 웬만한 부자들 저리 가라할 정도였음을 고백합니다.
성경에서의 부자는 실물인 돈이 많다고 하여 부자가 아니고 가난해도 그 마음이 온갖 탐욕으로 가득한 자를 부자라고 하오니 이런 나는 주님의 책망을 들어도 싼 자입니다.
내 안에 탐욕으로 가득한 미련한 자 나발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리고 주의 은혜를 붙드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소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땅이 나의 현실이 아니라 창세전 만물 위 곧 묵시의 세계가 나의 현실임을 자각하여 꿈에서 깨어 나의 참 고향을 날마다 소망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리는 나발!
그러니까 이름대로 어리석은 자요.
아비가일은 남편이 차버린 복을 냉큼 받았으니,
진찌 지혜로운 자요!
쏙~쏙 알아듣게 나누어주어 고맙소^^
다 형님 덕분이요 주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