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절의 부처는 제가 위해야
곽 흥 렬
길거리로 나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각양각색의 간판들이다. 즐비하게 늘어선 크고 작은 건물의 외벽이 온통 울긋불긋한 간판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시피 하다. 실로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 것이 간판이 아닐까 싶다.
검정 바탕에 하얀 글씨, 푸른 바탕에 주황 글씨, 미색 바탕에 초록 글씨……, 그중에서도 노란 바탕에 붉은 글씨가 단연 압도적이다. 내 무지의 탓으로 확적히는 모르겠으되, 이러한 색채의 배합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닌가 한다.
비단 글씨만이 아니다. 크기며 모양새도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대개가 직사각형이지만, 더러는 세모꼴, 정사각형, 원형, 계란형을 이루고, 형광등을 단 것,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것 또는 아무 꾸밈새도 없이 밋밋한 것까지 이루 헤아리기가 힘들다.
마치 검열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거기에 쓰인 상호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로니스펍, 기그, 루비나, 마론, 비노, 오카방고, 프리메라, 리베……, 대체 어디서 유래된 건지도 모를 온갖 국적 불명의 간판투성이다. 특히, 이른바 잘나가는 가게라는 곳들은 하나같이 이런 요상스러운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고 있다. 물 건너온 것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얄팍한 상술이라고나 할까. 이런 가게에 들어가면 어쩐지 바가지를 쓸 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이 된다.
어디 간판뿐이랴. 먹고 입고 마시고 자는 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외국어투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고, 심지어 어린아이들의 완구에조차 버젓이 영어식 상표가 난무하고 있으니, 그저 할 말을 잃는다.
우리는 자기 것의 가치를 어찌 그리도 홀대하는 민족인가. 제 나라 말은 격이 낮고 남의 나라 말은 고상하다는 사대주의식 사고, 언제부터 이런 일그러진 관념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한심하고 서글픈 심정이 된다. 옛 속담에 제 절의 부처는 제가 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것을 아껴 줄 것인가.
어쩌다 쌀에 뉘처럼 순우리말 상호를 만나는 수가 있다. 반가운 마음에 눈이 번쩍 뜨이고, 기특한 생각에 어쩐지 정이 끌린다. 이런 가게에는 뭔가 그 집 주인의 품위가 엿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어 안으로 들어가 손이라도 한번 덥석 잡아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중학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난다. 극장 앞을 오가다 보면 출입구 쪽에 ‘조조할인’이란 문구의 입간판이 놓여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당시 그게 몹시도 궁금하게 여겨졌었다. 왜 조조曹操만 할인을 해 주고 다른 사람들에겐 해 주지 않느냐는 의아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량한 한문 지식이나마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조조’가 사람 이름이 아니고 ‘이른 아침〔早朝〕’이라는 뜻임을 알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나저나 여하튼 정감이 가는 말이 못 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셔츠 가슴팍에 ‘climing’이란 영문 글씨가 새겨져 있었던 캐주얼 차림의 어느 아가씨 모습도 오래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그 당자야 물론 태연자약이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내가 도리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었다. 그 아가씨는 그게 속어적으로 ‘올라타도 좋다’는 뜻이란 걸 알기나 하고 거리를 활보했던 것일까. 혹여 서양 사람이 마주 지나치다 아가씨를 어떻게 해코지나 하지 않았는지 노파심이 든다. 일이 잘못되어 불미스런 짓을 당해 놓고서, 나중에 그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변명이라도 하고 나선다면 뭐라고 죄를 따져 물을 것인가. 하기야 이건 그나마 점잖은 편에 속한다. ‘sexual machine(성적性的 기계 곧 변강쇠)’이라는 문구에 와서는 완전히 할 말을 잃고 만다.
요사이 들어 한자말을 아름다운 고유어식으로 고쳐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사찰’ 대신에 ‘절집’, ‘양각’ 대신에 ‘돋을새김’, 동거를 ‘모듬살이’, 부부 중 한쪽 편을 ‘옆지기’라고 쓴 글은 정말이지 품격이 달라 보인다. 그런 글을 만나면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된다.
우리가 대학 다니던 시절만 해도 취미활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일러 ‘서클’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서클 아니면 아니 되는 줄로만 알았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또래들 사이에서 ‘동아리’라는 순우리말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서클이 자취를 감추었다. ‘동아리’ ‘동아리’,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을, 참 아름답고 정겹게 느껴지는 낱말이 아닌가.
한글날이 가까워져 오면서 우리 고유어의 감칠맛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놓는다.
첫댓글
시월 상달에,
개천절도, 한글날도 있습니다.
한글날에 즈음하여,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심이
돋보이는 좋은 글입니다.
曹操를 읽을 줄 아는 나이는
早朝도 알게 될 나이가 될 것입니다.
'아침에는 깎아주기'하면 될까요?^^
그렇습니다. 며칠 있으면 한글날이고 해서 우리말 사랑에 대한 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올렸습니다.
우리는 어찌 그리도 우리 것, 특히 우리말을 홀대하는 민족인지 어떨 땐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우리말이 엄연히 있음에도 굳이 영어 낱말을 써야 유식한 체하는 그 사대주의적 근성이 못마땅할 때름입니다. 예컨대 '요리사'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셰프'라 한다거나, '필요'라고 하면 될 것을 일부러 '니즈'라고 하는 것 등, 살펴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복된 한가위 보내시길 빕니다.
아주 오소독소한 뷰티플 에세입니다.
네..아주 멋진 수필입니다..하는 것보다 좀 있어보입니다만.. ㅎㅎㅎ
멋진 수필은 아닙니다. 그저 한 번쯤 되새겨볼 가치는 있을 법한 칼럼이겠지요.
'뷰티풀 에세이'라는 표현이 우리말 사랑을 주제로 쓴 이 칼럼에는 조금 덜 어울리는 말일 듯도 싶습니다.
행복하고 보람된 명절 보내시길 빕니다.
@곽흥렬 네...역설이죠...
@곽흥렬 네...역설이죠...
원글에 동조하고 말고지오...
곧 한글날이군요.
우리 세대들이 조금 더 한글을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동감입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우리말 홀대 현상이 심해지니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 답답할 따름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추석맞이 하시길 빕니다.
한글날이 다가오는 지금 참 시의적절하고 공감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한글 창제 당시 격렬하게 반대 상소를 올리던 최만리 등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오늘날 영어에 목숨 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씁쓸한 현실입니다.
좋은 글 읽게 해주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