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대 한국, 한국 대 나이지리아 경기가 있던 저녁.
우리 동료들(프랑스 사람, 남아공 사람, 이탈리아 사람, 루마니아 사람)을 한국 식당에 초대해서 비빔밥, 불고기, 잡채, 묵(도대체 묵이 영어로 뭐유?), 김치와 국을 먹였다.
6시 30분부터 시작된 식사는 7시 조금 넘어서 끝이 났고, 7시 반부터 시작되는 경기가 바로 문제의 경기, 한국 대 나이지리아.
대부분의 우리나라 경기가 일과시간(현지시각으로)에 치뤄졌기 때문에 그닥 신경쓰이지 않았건만, 이 경기는 다르다.
나이지리아인 3천명과 100여명의 한국인이 공사 현장에 갇혀 함께 경기를 보기 때문이다.
물론, 주거캠프가 분리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지만, 같은 캠프를 쓰는 인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사무실 휴게실에서 보는 십여명은 끝난뒤 버스로 숙소까지 이동할 예정이라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술이 있는 bar에서 보는 인원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다.
술이 있는 bar에 들어갈 수 있는 현지 흑인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에 비해 한국인의 숫자는 형편없이 더 적다.
게다가 사람이 사고를 치는게 아니고 술이 사고를 치는거라서 럭비공과 같다.
먼저 나이지리아가 골을 넣었을때만 해도 괜찮았다.
1:2로 나이지리아가 뒤지고 있을때 후반전을 위한 휴식시간.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몰리면서 뭐라뭐라 한다. 잘났다. 심판이 이상하다. 이길거 같으냐 등등..
결국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술자리를 파하고 한국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응원을 하겠단다.
다행이다.
엉?
그러나 끝까지 남아있는 다섯명. 헉!
게다가 바닥에 다 마시고 내려놓은 맥주병이 대략 40여병..
몇 분전까지 같이 있었던 동료들이 마셨다고 해도 한사람당 최소 다섯병은 먹은거 같다.
물론, 작은병 맥주도 bar에서 팔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대부분 큰 용량의 맥주를 선호한다. 나도..ㅋ
그리고 마시고 있는, 그리고 마실 캔과 병이 삼십여개.
이미 두 분은 말이 샌다. 혀도 살살 스텝을 밟고 있고...
결국 난 그분들과 끝까지 동행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편하게 시청하고 싶지만, 내 직무가 안전과 보안을 담당하는 일인지라 그럴수가 없다.
우리가 이기면 그네들이 시비를 걸어올거구, 그네들이 이기면 우리네 사람들이 태고적부터 숨겨왔던 태권무를 선보이지 않으려나?
노심초사 실내에서 그들이 목청높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터지는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짝.. 엉? 박수가 여섯번?
이미 박자를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계신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구호도 메아리 치고..
저.. 조금 소리를 낮춰주세요. 주변에 피해를 주게 됩니다.
그러자 술을 권한다. 이리 앉아서 한잔 하라고.. 혀가 혜가 되버린 그 분은 이제 자기 앞에 쌓인 술이 벅찬가보다.
자꾸 내게 권한다.
그래서 받아든 술잔만 세 개.
받아서 옆 테이블에 내려놓고. 엉? 벌써 다마셨어? 또 주시고.. 받아서 옆 테이블에..
져므는 살암위 이로께 잼미먄(젊은 사람이 이렇게 재미난) 경기를 보는데 건배는 해야지? 뭐 이리 급해?
그러시면서 또 한 잔.
경기는 보시지도 않고 술잔만 연거푸 들이키시면서 차두리가 어쩌고, 박주영이 어쩌고, 기성용이 어쩌고, 김남일이 어쩌고..
후반 막판 수세에 몰리는 경기에는 조금 집중하시더군요.
왜냐하면 나이지리안들의 함성이 곳곳에 대단했거든요.
크게 틀어놓은 대형 텔레비젼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나이지리안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소리가 계속 되었습니다.
원정경기 같은 느낌, 우리만 섬에 떨어진 느낌, 이제 우리가 있는 곳이 나이지리아 한가운데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그걸 피부로 섬득하게 느끼는 사람은 저를 포함한 여섯 명중 네 명뿐이었습니다.
결국 네 명이 두 명의 직원을 설득해서 bar에서 겨우 빠져나오는데는 성공했으나 밖에서 서성거리며 주위를 배회하던 그 많은 나이지리안들에게..
야! 우리 16강 간다!
헉!
다행이도 한국말입니다.
어두운 저 멀리서... 뭐라는거야?
..흠.. 정말 멋진 경기였다구. 우리가 운이 좋은거지 뭐...
라며 진정을 시켜봅니다.
결국 문을 닫고 있는 식당에 찾아가서 밥 달라고 큰 소리 치시더니 밥까지 거나하게 드시고 숙소로 돌아가셨습니다. 안전하게..
다음날인 오늘 무지하게 피곤하네요.
한국에서 중국에서 새벽에 관전하신 분들보다는 덜 피곤하겠지만..ㅋㅋ
신경도 많이 썼지만, 그 분들 덕에 잠을 설쳐서 더 피곤합니다.
오늘 그 분들은 지각하기 직전에 출근하신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루종일 물병을 손에서 놓지를 못하시더군요.
게다가 어제 저와 무슨 얘기를 주고 받았는지 기억도 못하십니다.
오늘 현장의 분위기는 조금 다운되고, 경기전 흥분되어 있던 그들의 모습을 찾아볼수는 없지만, 그나마 동점이라서 다행인듯 보입니다.
이렇게 나이지리아 한가운데에서 축구 경기 보기 어렵네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8강을 넘어 결승까지 가야죠.
결승가면 저도 함께 응원하러 갈 수 있습니다.
첫댓글 수고 많으셨어요 ^^
감사합니다. ^^
Alleywalk 입장에서 본다면 동점으로 16강 진출이 그나마 최상의 상황이였겠네요.
안전 보안 담당업무 끝까지 책임 완수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요 뭐.. 먹고사는게 다 그렇죠..ㅋㅋ 감사합니다.
으하하하...!!!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과 대한민국 경기때 저는 포루투갈에서 애국가 들었습니다...!!! 한국어로...!!!그날 포루투갈 장난 아니었습니다...!!!
여기는 한국방송이 두개가 나옵니다. Y**, K**월드, 그런데 저작권문제로 화면을 하나도 볼수가 없죠. 외국방송에서 박쥐성, 박추영, 기성융..이라는 발음으로 들어야만 하죠. 많이 아쉽습니다. 포루투갈에서도 장난 아니었겠네요. ㅋㅋ
그랫군요. 먼곳에서 좋아도 좋은티를 못내셨네요. ^^
마구 소리지르고 응원가 부르고, 신명나게 놀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하겠더군요.. 쩝..
제 사촌오빠는 2002년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전이기도 테러당할까봐 걱정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우리가 이겨서 얼마나 좋았던지 팔짝팔짝 뛰며 기뻐하고 입 틀어막았다고 합니다..ㅎㅎㅎㅎ
저도 입틀어 막으며 응원을..ㅋㅋ
햐! 응원하시랴 ( 이쪽 저쪽 모두) 상당히 힘드신 그때 그 기분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임다. 엄청 수고하셨네요
그 어려운 기분을 알아주시니 감사할따름입니다. 대한민국 결승 갔으면 좋겠습니다. 휴가가 딱 그때라..
2002년부터 월드컵때만 되면 해외에 있어서.. 길거리 응원도 좀 해보고 싶고.. 너무 아쉽습니다.
백번 상상이 됩니다,,,2002년때 제 비서애는 이테리. 스페인 혼혈이었습니다,, 머라고 말은 못해도 이태리전때는 나오더만 스페인전 끝나고는 회사 안 나왔어요,,,울팀이 승리하면 항상 그날 점심은 피자나 치킨 세트 사주고 퇴근할때 라면 한박스씩도 돌리고 했거든요,,,그래서 직원들이 심정적으로는 스페인 응원했어도 얻어먹는 재미에 코레아노 잘한다고 했었는데 비서애는 순수백인이어서인지 안나왔더라구요,,하긴 우리가 이기고 나면 뒤풀이가 길잖아요?
도토리묵은 흠.. acorn jelly라고 합니다. 참 표현해주기 어렵죠.. 단순히 그냥 Korea jelly라고 설명했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외국친구들이 한국음식은 참 다양하다고 대답하는게 아쉽기만 하던 기억이 동시에 떠오르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