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안녕하신지요? 해바라기 피는 마을의 촌장 이계진입니다.
* 얼마나 좋은 술을 마시느냐 보다 누구와 왜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한잔의 소주라도 편하게 마실수 있는 술이라면 좋은 술이다. 많은 남자들이 지금까지 마셔온 가장 기억에 남게 맛있는 술은 군대에서 행군이 끝나거나 고된 훈련뒤에 마셨던 한잔의 막걸리였다는 추억을 가지고 있다.
요즈음 한나라당은 ‘술’ 때문에 일어난 사건 하나로 곤혹스럽습니다. 대변인인 나도 ‘죽을 맛’입니다. 그래서 ‘이놈의 술’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하여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를 다시 읽었습니다. 기억도 새롭게, 술에 떡이 된 남편이 아내를 향해 주절거리는 말은 이러했지요. “자세히 들어 보오.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오. 이 ‘사회’란 것이 술을 권하오. 이 조선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나는 술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양에 있어서는 보잘것없고 분위기와 풍류를 즐기기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풍류술’이 나의 술실력(?)인 셈입니다. 그러나 정치인이랍시고 ‘변신’해서 새로운 음주문화에 젖다 보니 요새는 폭탄주도 몇 잔(최고로 ― 죽을 각오로 마신 것이 아홉 잔!) 할 줄 알게 됐지요. 폭탄주! 묘한 공포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는 ‘조선천지’의 해괴한 음주법입니다.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 잔이 필수(?) 코스로 돌고 나면 좀 괜찮은 저녁 모임인 경우 거의 양주가 나오더군요. 맥주도 소주도 양주도 포도주도 모두 먹을 수 있는 술임에는 같지만 언제 어떻게 합성주인 폭탄주가 시작됐는지의 역사는 분분하더군요. 어쨌거나 폭탄주의 코스는 맥주 한두 잔과 양주 서너 잔이 (사람에 따라서 개인차는 있지만) 돌고 나면 ‘기계’라고 불리는 새 맥주잔과 양주잔이 흰 물수건 깔린 작은 쟁반에 실려 입장하면서 시작되더군요. 마치 살인무기가 들어오듯이……. 사실 맥주 두어 잔에 양주 서너 잔이면 취기가 돌아서 술이 약하거나 못마시는 사람들에겐 이미 ‘치사량’을 마신 건데…… 폭탄주는 그때부터 정작 시작입니다. 마치 수색대가 1차로 적진에 대해 기선 제압을 한 후에 맹포격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폭탄주 기계와 폭약(맥주) 기폭제(양주)가 들어왔을 때 대개의 반응은 그렇더군요. “와~~ 오늘 죽었군!” “약하게 살살합시다……” “아이구 큰일이네……” 거의 환호와 탄성과 비명이 함께 섞인 이상한 반응인데,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즐거운 분위기를 위해 폭탄주를 하긴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달갑지도 않은― 말하자면 웃으면서 함께 먹어 없애야할 필수 코스의 웬수!? 그것도 박수 속에 팔 걸고 사약을 마셔 치우듯이 말이지요……. 내가 즐겨 읽는 (여러 차례) 책 가운데 수주 변영로의 ‘명정 40년’이란 것이 있지요. 수주 선생이 얼마나 재미있게 써 놓으셨는지 읽을 때마다 재미있고, 읽고 나면 술 먹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선생의 음주 실수담 모음입니다. 한 토막만 잠깐 소개할까요? 그 전전해로 기억된다. 나는 두어명의 친구들과 국일관에서 술이 만취토록 마셨다. 우리가 술 먹고 있던 바로 옆방 어느 친구가 갑자기 ‘보이’를 불러서 평양 갈 막차 시간이 되었으니 인력거 한 채를 빨리 내어 놓으라고 하였다. 그 소리를 엿들은 나는 그야말로 취중 객기로 나도 평양을 가겠다고 벌떡 일어섰다. 친구들은 어이없어서 “이 자식이 미쳐도 분수가 있지, 술 먹다 졸지에 평양은 무슨 평양.” 하고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나는 역(驛)으로 일로 직진, 어떻게 표를 샀는지 잘 모를 정도였으나 하여간 틀림없이 경의선 열차 속에 몸을 실었다. 온 차내가 내 독점한 침대인 양 오르는 길로 코를 골았으리라. 얼마 만인지 차창이 부연하여졌다. 기차가 차츰 속도를 낮추고 기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어느 역 구내에 당도한 것 같더니, 창밖에서는 ‘평양역’, ‘평양역’하고 외쳤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나서 부랴부랴 하차, 역 밖으로 나왔다. 역전에 나서서 곰곰 생각하니 내깐으로도 망연하야 부지중 실소(失笑)치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로, 누구를 만나러 평양에 온 것일까?” 자문하는 것이었다. (이상 범우문고 수필 '명정 40년' 중에서) 글쎄, 수주 변영로 선생의 음주 실소기에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낭만과 해학이 가득한데 지금의 술 문화에는 이해(利害)가 오가는 음주행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조지훈 선생의 ‘음주 18단계’에는 술을 아주 못 먹거나 안먹는 경우를 뜻하는 부주(不酒)에서부터,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서 마시는 은주(隱酒), 무슨 이익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사는) 상주(商酒), 여자를 꼬이기 위해서 먹는 색주(色酒), 음주의 마지막 단계인 열반주(涅槃酒)까지 있는데…… 이 시대의 음주는 상주(商酒)가 대부분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벌벌 떨면서도 기묘한 웃음과 박수 속에서, 장하게 마시고 난 잔을 승리의 표정으로 딸랑거리며 흔드는 폭탄주의 시간도 꽤 흔히 보는 상주(商酒)의 음주 현상인 셈이지요. 여자는 폭탄주에 약한가? 강하다 약하다를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의학적으로는 대체로 남자가 강하다고 하나 개인차는 있는 거지요. 오래전……, 모 신문사의 젊고 아리따운 여기자가 군 장성들과 폭탄주를 마셨답니다. 폭탄주에 취한 장군들의 입에서 나온 특종감을 기대했겠지요. 즉 같이 마시고 자기만 정신 차리면 건질 수 있는 ‘특종감’을 생각했던 겁니다. 정말로 취중에 장군의 입에서 아주 중대한 실언이 있었고 그래서 ‘이거다!’하고 잡아냈는데…… 아쉽게도 다음날 아침 깨어나 보니 영~~~간밤 회식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하얗게 지워지고 생각이 나지 않더랍니다… . 납품협조 요청에 진급에 전출에 입사에 퇴사에 동창 모임에 친목 모임에 오랜만에 축하 모임에 경사에 애사에 명절에 기분에 자축에 특종을 위하여 단합을 위하여 오해를 풀기 위하여……. 이 사회는 여전히 우리에게 술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허기를 채워주는 한 사발의 막걸리가 아니고, 풍류를 즐기는 사치한 여유가 있는 적정량의 애주가 아니라, 전쟁을 하듯 폭탄을 퍼부어야 ‘마신 줄’ 알겠다는 감당키 어려운 술 문화의 세상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되돌리기 어려운 사고들이 발생하고 세상은 그로 인해 시끌시끌하고……. 대취하여 평양행 기차를 타버린 수주의 낭만을 생각하며, 이 사회에서 ‘풍류술’은 안되겠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술집에 들어설 때는 신사로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중죄인(重罪人)이 되어 나온다.”라는 명언을 생각해 봅니다.
박근혜 대표 모시고 3월 7일부터 3월 11일까지 일본방문 출장 갑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이 포스트의 글과 그림에 대한 (비상업적 목적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적극 권장합니다.
쿠프랭 : 쳄발로 소품집 3권 中 '시테리아의 종' (Couperin : Le Carillon de Cithere from Pieces de Clavecin - Book 3) 피아노 : 빌헬름 켐프 (Wilhelm Kempff) 1955/05/23 Decca Studios, West Hampstead, London. DG |
첫댓글 이게진 대변인 화이팅!
우리의 이계진 대변인, 정곡을 찌릅니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 이 대변인 만큼만 정도와 절제를 할 줄 알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