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와 다시 일어선 미국
2008년의 금융위기의 다른 요인은 경제 특정 부분, 즉 주택시장에 쏟아부은 자금이 문제였다. 지난 세대부터 주택가는 상승해왔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주격 가를 조정하면 협소한 폭으로 등락을 보였다. 하지만 담보 대출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상승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1970년에 2만 달러를 대출받아 2만 5천 달러의 주택을 샀을 경우, 2000년에 그 집의 가치는 12만 5천 달러가 됐고 대출금도 모두 상환한 상태다. 하지만 실질 가치는 별 차이가 없다. 절대가치는 커지고 대출금도 상환했기에 부자라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주택 소유가 부의 창출에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주택 구매가 손실을 볼 가능성은 없어 보였고, 이는 대부업자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업자는 상황이 악화하면 언제든지 담보의 집을 팔아 돈을 회수하면 그만이다. 대부업자는 매매수수료를 챙긴 다음 모지지, 번들 상품을 만들어 2차 투자자에 팔았다. 이는 서브 프레임 대출을 보수적인 투자처럼 보이게 했다. 모두가 돈을 벌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은 버블이 붕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관심도 두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침략은 시작되었다. 평상시 대출 조건이면 자격이 되지 않을 사람도 주택을 사고, 채무를 이행하지 않기 시작하자 부동산이 강매되거나 압류가 시작되었다. 믿었던 가격은 즉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상승기는 소규모 투자자들이 단기적 이익을 얻기 위해 다수의 주택을 사들어 약간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여 되팔았다. 거품이 붕괴하자 이들은 가격을 내려서 매물을 경쟁적으로 내놓아 하락을 부채질했다. 2005년부터 미약한 내림세는 2007년에 폭락세로 접어들었다. 실제는 폭등 이전의 최고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거품은 사라졌고 본래 가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번들 모지기에 공격적인 투자자 ‘베어턴스’와 ‘리먼브라덕스’ 같은 투자자는 자신의 보유 물량을 이용해 몇 배의 레버리지 투자했고, 결국 투자 융자 상환 일자에는 기초자산의 가치가 불투명해져 담보를 아무도 사러 들지 않았다. 큰돈들이 하나둘씩 도산하기 시작했다. 은행이 발행한 상업어음은 안정적이라 믿었던 투자 상품을 사들인 사람들이 다수 해외에 있었기에 결국 전 세계의 금융체계가 붕괴했다.
부시나 오바마 모두 루스벨트와 레이건이 했던 만큼 미국 국민의 심리 상태를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부시는 전쟁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금융위기의 기습을 당했다. 오바마는 충족시킬 수 없는 기대감을 만들어냈지만, 충족시키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기업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가 국가와 시장 간 경계를 재설정하는 문제에는 항상 이데올로기 이슈가 제기된다. 좌파가 볼 때 기업 엘리트와 시장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평등성에 대한 위협이다. 이 문제는 도덕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실제적인 것이란 점을 제외하면, 이는 구경하기 좋은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현대의 자유 시장은 국가의 발명품이며, 규칙은 자연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정치적 협상의 결과물이다. 현대 경제의 실질적 기반이 기업이며, 기업이 바로 현대 국가가 만든 발명품이다. 기업은 발명품이며 기업은 자신의 채무에 대한 책임을 지는 법적인 실체를 창조한다.
금융위기의 지정학적, 정치적 영향; 2008년 위기가 다음 10년에 미치는 영향이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이고 정치적이다. 다음 10년의 추세는 경제 주권을 제한하는 것에서 경제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돌아설 것이다. 정치적 수준도 유사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중국, 러시아, 유럽, 미국 등에서 목격되는 엄청난 투쟁이 정치 엘리트와 경제 엘리트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2008년의 금융위기를 대공황과 비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대공황에는 GDP가 50% 줄어들었지만 2007~2009년에는 4.1% 줄어들었다. 인구구성비가 변화하면서 노동력이 감소하기에 이주. 이민 문제는 미국이 당면하게 될 두드러진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훗날의 문제이고 다음 10년은 활기 넘치는 시기는 아닐 것이다. 개인의 삶과 정치체제 모두에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근본적인 국제질서에 다, 대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며, 미국은 지배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금융 엘리트들에 의한 오판이 전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가, 미국의 실수가 다른 나라 사람에게 얼마나 고통을 가할 수 있는가가 미국이 가진 지배력의 한 척도라 할 수 있다.
대 테러 전쟁과 무너진 균형; 미국의 선택은 그 지역에서 오직 두 나라만이 아라비아반도를 지배하기에 충분히 잠재적으로 크고 강력하다는 사실에 영향을 받는다. 두 나라는 이란과 이라크다. 알카에다의 9.11 테러로 촉발된 혼란이 이슬람 세계에서 빈 라덴이 원하던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리고 미국과 연계된 정권이 붕괴하기 시작하면 미국은 충격이다. 예로 이집트 정부가 전복되면, 이스라엘의 입지가 바뀌게 되며 미국의 기반은 위협을 받는다. 미국은 인구 밀집 지역이나 경제 기반 시설, 군사시설의 파괴보다 그 지역에서 알카에다의 정치적 승리였다. 미국은 알카에다의 전장이 어디인지 파악했다. 그것은 이슬람의 머리와 가슴이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인의 머리와 가슴을 전정시키고 안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FBI는 공격적인 체포 작전으로 알카에다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자는 체포하고 공항 보안도 강화했다. 미국이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인식에 대한 공격은 알카에다 지도자를 체포하거나 사살이 요구된다. 하지만 알카에다는 점조직으로 흩어져 있는 연결망을 복잡하다. 육지로 둘러싸인 알카에다는 항구가 없는 아프가니스탄이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빈 라덴과 그의 동료들이 사막의 폭풍 작전을 지켜보고 미군이 자신을 공격하는 데는 여름까지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부시는 봄까지도 기다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국민의 욕구에 반응해야 했다. 미국은 중동에 정권들이 붕괴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다시 계산하는 사태를 피하고 싶었다. 미국은 강대국으로 그 지역에서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였다. 해병대 주둔 지역의 폭탄 테러에 소말리아로 철수한 클린턴의 결정과 알카에다의 9.11테러 이전 알카에다의 공격에 대응한 무력 대응 등, 이미 모든 것을 미국이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부시는 아프가니스탄에 정부를 세우고 보호했지만, 대부분의 아프가니스탄의 국민에게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처음부터 계획이 들어있지도 않았다. 9년이 지난 후에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10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알카에다의 처지에서 보면 아프가니스탄과 그 밖의 지역에서 벌인 미국의 활동은 미국이 이슬람의 적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이슬람 정권이 살아남았던 이유는 이슬람 군중들이 그들 정권의 보안기구가 여전히 잔악하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편으로 보면 이들 정부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시민봉기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알카에다는 점점 더 공격적이 되어 갔다.
테러리즘의 함정; 대량살상무기를 제작하고 배치하는 것이, 생각하기에는 쉬울지 몰라도 실제로는 어렵다. 기존의 대량파괴 무기는 소수에 불과하고, 집중적인 보호를 받고 있으며 이동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기 전 테러리스트 자신이 먼저 죽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만약 내가 테러리스트이고 전직 소련군 대령에게 서류 가방 핵폭탄을 사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치면, 무슨 수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핵폭탄인지 아니면 전선과 깜빡이 전구로 채운 물건인지 구분할 수 있겠는가? 정보기관은 대량파괴 무기를 판매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그 고객들에게 겁을 주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결국 정보기관의 함정수사를 목적으로 나온 대량파괴 무기가 진짜 무기상의 매물보다 100대 1의 비율로 더 많으므로 대량살상무기를 사들이려는 욕구도 감소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3.04.04.
21세기 지정학과 미국의 패권 전략-2
조지 프리드먼 지음
김앤김북스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