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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의 오프닝과 피날레를 장식한 두 영화 스타가 <보그>의 카메라 앞에서 격정의‘러브 스토리’를 촬영했다.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 양조위와 사랑에 헌신하는 여자 이은주. <2046>과 <주홍글씨>를 오버랩시켜놓은 듯한 두 남녀의 사랑의 무드 속으로. Photographed by Zo Sun H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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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가 울고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가슴을 찢는 듯한 사운드트랙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딜리아니 그림처럼 복고풍의 ‘트래머리’에 슬프도록 기다란 목을 지닌 이은주가 눈물 방울을 떨구고 있다. 그녀의 손길은 양조위의 체온이 남아 있는 구식 타자기와 중국식 도자기 찻잔을 쓰다듬고 있다. “그가 떠났군요”라고 내가 위로하듯 말했다. “네, 그가 떠났어요. 떠나다니…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마음이 썰물이 지나간 것처럼 쓸쓸해요.” 찰칵! 사진작가 조선희가 마지막 셔터를 눌렀다. 조선희의 고양이 알렉이 사랑의 흔적만 남은 연인들의 침대에 나른하게 몸을 묻었다. 이건 기사를 위한 과장된 수식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아주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있다. 아! 30분 전에 그들은 함께 카펫에 누워 책을 읽어주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지! 라스트가 된 이 신을 끝내고 비행기 시간에 맞춰 떠나기 전 양조위에게 내가 물었다. “적어도 당신의 사랑은 해피엔딩이군요. 연인과 가장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막을 내렸잖아요.” 양조위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타는 듯한 열정의 클라이막스는 아니지만, 담담하고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이 사랑은 오래 지속될 거예요.” | |
이 영화 같은 무드가 어떻게 현실에서 일어났는지, 나조차도 꿈만 같다. 왕가위 말대로 <화양연화>가 불운한 ‘사랑 영화’라면 <2046>은 ‘사랑에 관한’ 영화다. 남자는 과거에 사랑했던 기억에 사로잡혀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많은 여자를 만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바람둥이다. 장쯔이와 공리와 왕정문 세 여자는 모두 그의 분신으로, 그와의 만남을 통해 저마다 사랑의 절정과 추억과 완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양조위는 지금 그 마지막 분신으로 이은주를 사랑의 기억 안에 새겨넣었다. 첫 번째 인연은 칸 영화제에서였다. 그는 <오! 수정>이라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큰 가방을 들고 서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귀여운 작가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스물 두 살에 생애 두 번째 영화로 칸의 레드 카펫을 밟았다. “<화양연화>에서 그를 보았죠. 그는 기자였어요. 그리고 그 영화는 내 영화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됐어요.” 그는 서른 아홉에 칸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와 그녀는 그렇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부산영화제가 환희의 축포를 올렸다. 2046년에야 완성된다는 루머가 돌던 영화 <2046>이 마침내 2004년 부산영화제의 오프닝으로 이은주의 <주홍글씨>가 피날레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부산에서의 개막 행사를 끝낸 양조위가 서울의 메가박스 프리미어 시사회장에서 ‘Wonderful Evening!’이라고 외치던 시점에 이은주는 영화제 폐막식이 시작되기 전 막간의 틈을 내 부산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이은주는 지고지순한 여자다. <주홍글씨>에서 그녀는 한석규의 세 여자(엄지원, 성현아를 포함해서) 중 하나인 ‘정부’로 출연한다. 그녀는 사랑이 아닌 탐욕만 남은 나쁜 남자를 사랑하고 끝까지 그 남자의 파국마저 지켜본다. 이은주는 현재의 사랑에 헌신하는 여자이고, 양조위는 과거와 미래의 사랑만을 바라보는 남자다. | |
연인의 만남은 언제나 그렇듯이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잠깐의 해프닝이 있었다. <보그>의 촬영장에 등장한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가 양조위에게 갑자기 “양조위 씨는 부산에서 이영애씨와 만남을 가졌고 전지현, 전도연 씨를 촬영하고 싶은 배우로 꼽으셨는데…”라고 하자, 영화사 대표가 항의했고 TV 인터뷰는 잠시 중단되었다. 통역은 양조위가 전에도 그런 종류의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두 배우는 촛불이 꺼진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방송 스태프들이 아래층 난간으로 내려가자 이윽고 그들은 친구처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이 영화를 사랑하면서 숨어 있던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 배우들은 작업 시간이 길어서 힘들지 않나요?” “네, 우리 배우들은 체력이 너무 좋은 거 같아요(웃음). 홍콩에서는 좀 쉬었다 찍고 그러죠?” “네, 12시간 촬영하고 쉬고 그래요. 그래도 뒤로 가면 밤샘을 해요. <2046>도 마지막 한 달은 힘들었어요. 왕가위 감독은 시나리오도 없이 작은 힌트만 주고 촬영하고는 했어요.” “<오! 수정> 할 때 홍상수 감독도 그랬어요. 혼자서 끄적이던 메모를 4등분으로 찢어서 나눠주곤 했거든요.” 서로의 말을 들을 땐 눈으로 웃고 박자를 맞추고 마치 귓속말을 하듯 소근소근 이야기한다. “배우가 감독을 믿기 때문에 그런 작업이 가능하죠. 난 왕가위와 10년을 같이 했는 걸요. 그런데 홍콩 음식 중에 이런 거 먹어봤어요?” “아, 그거… 시도해 볼게요. 혹시 이 음악 알아요? <냉정과 열정 사이> 사운드 트랙…” 그의 눈은 여자를 부드러운 흡반처럼 빨아들이고 그녀의 눈은 남자를 섬광처럼 반사한다. 이봐요, ‘운명의 연인들!’ 새로운 사랑을 믿나요? 라고 내가 물었다. 양조위가 양미간과 눈에 살짝 주름을 잡으며 찰나의 생각에 잠겼다. “과거의 누군가를 절절하게 사랑했다면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기 힘들겠지요. 한국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여자는 과거에 집착하잖아요. 그것에서 벗어나는 데 누군가는 3개월이 걸리고 누군가는 1년이 걸리죠. 난 사랑을 믿어요. 다만 잊을 때도 시작할 때도 시간이 필요해요.” | |
양조위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커피도 마시지 않고 온화한 달라이 라마 같은 얼굴로 에비앙만 마신다. 그에겐 어떤 강렬한 카리스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작은 몸은 웅크리면 웅크릴수록 더욱 작아져서 그대로 태아가 될 것만 같다. “어머니는 말씀하셨어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두고 보아라. 함께하면 안 된다. 그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닐고 산을 오르고 함께 김치 조각을 나눠 먹어도 행복한 건 백 쌍 중의 한 쌍도 안 된다.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모든 여자의 꿈일 뿐이란다. 인생 선배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라,라구요.” 이은주가 부서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윽고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아시아 지역에서 상영되고 있어 서울 여자 이은주와 홍콩 남자 양조위의 만남은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뿐 아니라 이미 홍콩, 대만, 싱가포르까지 뉴스가 보도되었다. 촬영장은 영화사 스태프들과 방송국 스태프들, <보그>의 스태프와 배우의 스태프… 한국말과 광둥어와 영어가 뒤섞인 다국적 스태프들이 뒤엉겨 흡사 스태프 경연대회장 같다.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듯 사랑이 선사하는 찬란한 배려에 도취된 두 남녀 앞으로 모여들었고, 여기저기서 ‘아!’하는 탄식들이 터져 나왔다. 양조위의 배 위에 머리를 기댈 때 이은주는 아침을 먹지 않은 그의 움푹한 배가 가여워서 머리를 슬쩍 들었다. 이은주가 고개를 들었을 때 양조위는 그녀가 불편할까 봐 쿠션을 두 개 깔아주었다. | |
양조위는 홍콩 남자고, 이은주는 서울 여자다. “97년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 이민 붐이 일었어요. 모두들 변화를 두려워했고 홍콩을 떠나려고 했어요.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어요. 이곳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고, 난 홍콩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홍콩 사람도 음식도,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습관 같은 것도 좋았어요.” 양조위는 홍콩을 사랑하는 남자다. 그의 말대로 그는 할리우드 스타가 아니지만 홍콩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영화 스타다. “난 운동을 좋아해요. 산이나 바다, 구름, 새가 있는 자연으로 나가는 것도 좋아하구요. 홍콩의 도심은 번잡스럽기 때문에 자연으로 나가면 마음이 편안해지지요. 거의 매일 산에 가서 조깅을 해요. 친구들과 우르르 바다로 놀러나가기도 하구요.” 그는 동물을 좋아한다.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 가족과 함께 홍콩 근교에 살며 골든리트리버종인 ‘벤자민’을 기르고 있다. 그가 없는 동안 벤자민은 그의 어머니와 조카가 돌본다. 부모가 이혼하고, 어린 시절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양조위.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소년은 자주 공상에 빠졌고, 영화가 그 소통의 탈출구가 되었다. “난 전갈자리에 A형이에요”라고 서울 여자가 ‘우린 닮았네’라는 동류의식으로 눈을 반짝였다. “뭐랄까, 본능적으로 독백을 하도록 태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들고 고독하고…, 어쩔 수 없이 배우가 될 운명이었나 봐요.” 바닥 모를 우물처럼 깊숙한 그 눈빛으로 그와 그녀는 많은 말을 대신하곤 한다. | |
“나, 옛날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숟가락의 받침은 디긋이고 젓가락의 받침은 시옷일까? 혹시 아니? 나, 옛날부터 그게 참 궁금했어.” | |
“남자는 너무 그 여자를 사랑했다가도 버릴 때가 있어요.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요. 너무 좋아하는 여자를 발견했는데, 차마 그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구요. 남자라면 모두들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2046>의 차우의 모습을 보고 여자들이 지금 자기 곁에 있는 남편, 애인, 남자 친구를 이해하고 포용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미워할 수 없는 나쁜 남자는 떠나갔다(많은 여자 스태프들이 그와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려고 난리법석을 떨었고 그는 그녀들 모두와 시선을 맞추고 어깨동무를 했다). 북적이던 다국적 스태프들이 빠져 나가자 스튜디오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키가 작은 양조위는 롱 코트처럼 긴 옷을 좋아하지 않았지… 패션 에디터는 그의 야윈 다리를 위해 그의 바지에 바느질을 해주었지…. 키가 큰 이은주가 키가 작은 남자가 머물다 떠난 방에 혼자 들어서자 공간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 그녀가 모딜리아니의 그림처럼 틀어올렸던 머리를 풀었다. | |
내가 <주홍글씨>의 이은주가 <2046>에서의 장쯔이와 비슷하다고 양조위에게 말했을 때,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건 또 한 편의 영화지요.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화학 작용을 한 거예요. 그녀는 누구와도 같을 수 없어요. 나는 배우를 20년 넘게 했기 때문에 그걸 압니다.” 양조위의 캐릭터를 규정짓기란 쉽지 않다. 열렬한 사랑을 추구하지만 사랑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즐거움을 지니고 있지만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은주에겐 대단한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다. 사랑에 빠진다면 하루에 14시간을 촬영한다 해도 피로해 하지 않을 그녀다. 충동적인 사랑에 빠진다 해도 오래도록 그것의 가치를 지켜내고 싶어할 것이다. 물론 자주 일어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쯤 태평양을 건너고 있을 양조위의 독백이 들리는 듯하다. ‘벌써, 당신이 그리워질 것만 같소. 지금 나는 서울을 떠나 파리로 가고 있소. 당신은 지금쯤, 내가 써놓은 메모를 읽겠죠? 느끼고 있겠지만 당신은 이미 내게 잊을 수 없는 과거가 되었소.’ 이은주는 양조위가 <2046>의 스틸북에 그녀에게 남겨둔 레터를 핸드백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나쁜 남자예요. 촬영장에서 이런 기분 정말 처음이라구요.” 그녀는 휴지로 눈물을 닦아냈다. “이젠 드레스를 입고 부산영화제로 돌아가야 해요. 폐막작 행사가 남아 있거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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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김지수 |
이은주 레벨로 감당할 분이 아닌데 양조위씨...................그리고 이은주 씨 입이 심히 튀어나오셨기 때문에 그걸 커버하기 위해 코 심히 높이셨습니다;(이은주씨 안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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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진짜 멋있어여.. 이은주씨 정말 이쁘네요..조각같앗어여..옆선이.. 양조위씨도..정말.. 두분 정말 잘 어울리는 배우와.. 넘 좋은 한편의 영화스토리를 보아서 넘 좋아여..
이은주 원래부터 코높아요. 옛날 작품봐도 똑같고. 그리고 저런식으로 높은 사람 은근히 많은데. 일반인중에서도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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