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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빨리 올리고팠는데,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번역할 틈이 없기 때문에,
주로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번역을 하거든요..
근데 요즘 야근하고 그래서 완전 피곤한 바람에 지하철에서 자느라..┐-;;;
여튼 2편 갑니다. 게리 자서전은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경기 일지'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ㅋㅋㅋ
Chapter 2. 선수생활의 시작 (Starting out for Club and Country)
게리의 데뷔는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 이른 1992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우에파컵에서 Torpedo Moscow와의 1차전에서 교체출전한 것이었고, 이 당시 게리의 나이는 17세.
어느 선수에게도 마찬가지지만 게리 역시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하네요. 그가 언론에 말하기를 ‘그날 밤 나의 꿈이 이루어졌고, 누구도 내게서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없었다. OT에서 뛴 경험은 믿을 수 없을만큼 엄청났고, 그것은 곧 내게 계속해서 나가고자 하는 배고픔과 열망을 가져다주었다.’ 라고 했습니다.
(게리와 벡스, 아마.. 이 내용보다는 조금 더 어릴때의 두 사람..)
유스 출신 선수들을 주축으로 맨유가 90년대 중후반 프리미어 리그를 지배했다는 사실은 익히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사실 92년 유스팀 멤버들로 그렇게 대단한 성공을 거두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죠.
그렇지만 영감님은 그의 자서전에서 밝히시길 “내 지도자 생활에서 우리가 키워낸 그 10대 소년들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9495시즌을 시작했을 때가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뭐 이미 긱시는 1군에서 뛴지 꽤 오래 되었고, 성공적으로 성인팀에 합류해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리고 다른 유스멤버들 역시 곧 성인팀 스쿼드에 합류할 준비를 하고 있었구요.
게리의 프리미어쉽 데뷔는 94년 5월 8일에 있었던 코벤트리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9495시즌에, 앞장에서 말했던 대로 폴 파커가 부상을 당하고 게리는 주전자리를 얻게 됩니다. 브루스, 팰리스터 그리고 어윈의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수비라인에 합류해 뛰게 된 것은 게리에게 있어 불타오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단한 경험이었죠. (Burning... 우리만 쓰는 표현이 아니었는가) 후에 게리는 타임즈지에서 “이것은 매우 어려운 학습이었지만, 동시에 최고의 교육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이야 게리 하면 최고의 라이트 백이니.. 칼크로스니.. 여러가지 수식어가 많이 붙지만, 처음부터 게리의 선수생활이 그렇게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맨유의 선수들은 팀에 대한 프라이드도 엄청 강했고, 때문에 맨유에서 뛰려면 그만큼 좋은 기량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죠. 심지어 어떤 선수들은 데뷔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게리가 곧 OT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허걱..)
특히나 게리를 못살게 군 사람이, 아시다시피 피터 슈마이켈옹입니다. 슈마이켈옹은 정말 게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다고 볼 정도로 구박을 했습니다. 특히 크로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구박을 해댔죠. 그는 게리가 1군에서 뛸정도로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마치 신데렐라를 못살게 구는 계모와 언니들 마냥 게리를 들들 볷았답니다. 그런 슈마이켈의 태도는 게리를 불타오르게 만들었고, 분노의 연습에 돌입했던 것이죠.
뭐 결과적으로 그것이 지금의 게리를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만, 그 당시 슈마이켈옹의 그 무섭던 모습을 떠올려봤을 때, 게리가 지금 TV에서 그 무시무시했던 골키퍼가 붕붕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참고로 그 방송 이름은 Strictly Come Dancing이라고 합니다. 보신 분 있으신가요...(...))
9495시즌의 막판 우승 경쟁은 완전 점입가경이었습니다. 블랙번이 리버풀에게 패하면서 맨유는 우승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불행히도 업튼 파크에서 비겨버리면서 우승하는 데 실패하고 말죠. 그놈의 웨햄....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업튼 파크를 떠나면서 게리,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다시는 이런 뼈저린 고통을 느끼는 일이 없으리라.. 다짐하며 이를 갈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맨유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이 날의 뼈아픈 기억이 결과적으로 크나큰 동기부여가 되어주었고, 우승을 향한 불타는 집념을 가지게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웃음)
덧붙여 그 시즌(9495)엔 FA컵에서도 결승에서 에버튼에게 1-0으로 패했는데, 영감님은 그 날의 패배를 ‘어느 결승에서든 지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에버튼같은 평범한 팀에게 지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라고 표현했네요.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이런 표현을...
그리고 9596시즌, 맨유는 아주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영감님이 칼을 빼 드셨는데, 일명 ‘물갈이’였습니다. 폴 잉스(인터 밀란), 안드레이 칸첼스키(에버튼), 마크 휴즈(첼시)를 차례로 다른 팀으로 이적을 시키죠,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벤치이던 우리 낙엽줄을 드디어 주전으로 끌어올리십니다. 드디어 황금유스시대 개봉 박두!
첫 경기인 아스톤빌라 원정에서 유나이티드는 3-1로 패합니다. 앨런 핸슨은 그 경기 후에 그런 말을 했다죠 ‘저런 애송이들을 데리고 잘도 우승하겠다?’ 그러나 뭐든 끝까지 가고 봐야 안다고.. 첫경기 패배 이후 맨유는 계속해서 승전보를 울려갑니다.
그 첫날의 패배는 우리 낙엽줄을 자식같이 키웠던 에릭 해리슨에게도 매우 슬픈 일이었습니다만, 그는 딱히 그의 애제자들에게 무엇을 도와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즌 후에 핸슨의 말을 비웃어주었을뿐.. ㅋㅋㅋ
(킹 칸토나, 그리고 맨유의 수문장이었던 피터 슈마이켈)
게리는 설마 그 첫날의 패배로 인해 자기가 짤리면 어쩌나 고민했다고 합니다 ㅋㅋ (정말로 'axe'라는 표현을...) 그렇지만 우리 영감님.. 아시다시피 본인이 믿으시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가 걸리든 기다려주시는 분이시잖아요.. 영감님은 계속해서 그 어린 선수들을 경기에 내보내셨고, 우리 선수들은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연승가도를 달립니다. 5번의 연승을 하고나자 사람들은 우리 유나이티드의 새로운 스쿼드에 대해 1968년 유러피안 우승을 가져왔던 버스비 베이브와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대단한 것은 그 결과가, 팀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 없었던 에릭 칸토나가 아직 9개월의 징계로부터 돌아오기 전에 얻어낸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윽고 칸토나가 돌아온 뒤, 맨유는 그야말로 빛나는 스쿼드를 구성하게 되죠. 최고 수문장 슈마이켈에 어윈, 브루스, 팰리스터의 베테랑 수비벽, 긱스와 키노같이 프리미어쉽 경험을 충분히 쌓은 중견(?)선수들, 무섭게 돌풍을 일으킨 신예들 네빌형제, 스콜스, 버트, 베컴.. 거기에 복귀한 킹 칸토나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신구조화를 이룬 팀이 되었죠. 그러고보니 신구조화.. 라고 하니까 요즈음의 우리팀과 비슷한 것도 같네요. (웃음)
칸토나는 우리 낙엽줄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롤모델’과 같았습니다. 그와 함께 드레싱룸에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엄청난 것이었으니까요. (게리는 dream come true라고 표현을...ㅋㅋ) 하지만 게리는 그 보다도 그의 천부적 재능에 완전 매료되어 버렸던 모양입니다. 그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는 그 자체로 위대한 수업이 되었다고 하네요.
(칸토나의 합류, 그리고 어린 선수들의 활약으로 맨유는 9596시즌 더블을 달성한다.)
게리는 그 시즌(9596)에서 뉴캐슬과의 경기를 가장 인상적인 경기로 꼽았는데, 지금이야 뉴캐슬이 좀 주춤하고 있지만, 그 당시엔 우리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한 팀이었죠. 우리팀은 뉴캐슬을 상대로 매우 고전을 했지만 결국 필립의 크로스를 칸토나가 골로 연결지으면서 맨유는 승리하게 되고,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왜 인상적인 경기였는지 아시겠죠? 당연히 1군 데뷔 이후 첫 우승이었으니까요.
FA컵에서는 준결승에서 첼시와 붙었는데, 그 때 첼시는 우리팀에서 이적한 스파키옹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루드 길리트의 골로 지고있던 맨유는 베컴의 활약을 힘입어 2-1로 역전승하는데 성공하고 결승에서 클래식 라이벌인 리버풀과 만나게 됩니다. 리버풀 전에서 게리는 후보였지만 (필립은 선발) 벤치에서 팀이 웸블리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게리에겐 엄청난 것이었다고 하는군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던 두 팀의 균형은 전후반 90분을 모두 넘긴 뒤 나왔는데, 벡스의 코너킥을 걷어낸 것을 칸토나가 골로 연결시키면서 승리하게 되죠. 그리고 맨유는 더블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합니다. 주전중 여섯명이 유스출신, 그리고 그 중 다섯이 처음으로 풀 시즌을 보낸 팀으로써 맨유의 이런 성과는 단연 위대한 업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게리의 나이는 고작 21살이었습니다. (지금의 루니, 날동이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죠. 생각해보면 필립이 더 대단하네요.. 19살이었으니...)
이제부턴 국가대표 이야기... 잉글랜드는 프리미어쉽의 성공적인 출범에도 불구하고 유로 92와 94월드컵에서 삽을 펐죠. 당시 잉글랜드를 맡고 있던 Terry Venables는 팀의 변화를 모색합니다. 그는 처음으로 게리를 국가대표로 발탁했는데, 게리는 95년 일본과의 경기에서 데뷔를 합니다. 2-1로 이긴 이 경기는 게리에게 있어 또 하나의 꿈이 실현된 것이었죠.
한가지 재밌는 것은 이 때 게리가 세운 기록입니다. 게리는 국가대표로 뽑히기 전까지 유나이티드에서 고작 19경기만을 뛰었을 뿐이었거든요. 이것은 세계 2차대전 이후에 세워진 최소기록이라고 합니다. 여튼 이것으로 게리가 여름의 오프시즌을 심심하게 보낼 일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웃음)
그리고 다음 해 유로 96을 앞두고 필립 역시 잉글랜드 스쿼드에 합류합니다. 이로써 두 형제는 보비 찰튼과 잭 찰튼 형제에 이어 ‘형제가 나란히 국가대표가 된’ 두 번째 케이스가 탄생한 것이죠. 집안은 난리가 났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여동생 트레이시또한 네트볼에서 국가대표가 되었거든요. 삼남매가 모두 국가대표라니.. 이런 집안이 어디있답니까...
필립은 96년 중국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를 치룹니다. 형은 일본전.. 동생은 중국전.. 역시 게리네 집안은 친동양적입니다. ㅋㅋㅋ (아는 사람만 웃을 수 있는 농담) 게리 역시 그 경기에서 뛰었고 둘은 ‘함께 국가대표 경기에서 뛴 두 번째 형제’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위의 기록과 약간 틀린건 위의 것은 ‘함께 국가대표 스쿼드에 들어간’이고, 아래 것은 ‘함께 국가대표 경기에 뛴’입니다. ㅎㅎ 여튼 둘 다 대단..)
(게리의 국가대표 모습.. 정말 여러가지네요 ㅎㅎ. 개인적으로 두번째 사진 완전 최고~>ㅂ<)乃)
이제 유로 96 얘기인데요, 게리는 역시 그 대회에도 참가했구요, 잉글랜드 u-18에서 청소년 챔피언쉽에 나간 이후, 성인이 되어서 나간 대회로는 처음이었습니다. 게리는 98년 7월 11일자 타임지에 그의 칼럼에서 말하길 “유로 96은 나에게 많은 이들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일깨워주었다. 나는 우리를 보며 희망에 찬, 그리고 기대감으로 가득찬 표정을 한 그들의 얼굴을,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흥분감을 기억한다.”라고 했습니다.
조별 예선에서 잉글랜드는 스위스, 스코틀랜드, 그리고 네덜란드과 한조가 되었습니다. 95년 11월에 친선전에서 3-1로 손쉽게 이겼던 스위스인지라 크게 우려하지 않았던 잉글랜드는 그만 1-1로 비겨버리고 맙니다. 물론 그들에겐 엄청 충격적인 결과.
그 다음은 스코틀랜드인데 한동안 두 나라 사이에선 경기가 없었고, 섣불리 무언가를 예측할 수 없었지만, 결국 잉글랜드가 2-0으로 힘겹게 (이기긴 했지만 힘들었다고 하네요) 승리했습니다.
마지막 상대는 네덜란드인데 당시 네덜란드에서 뛰던 선수로 데니스 베르캄프, 클라렌스 시도르프, 그리고 데 보어 형제 등 대단한 선수들이 많았죠. (생각해보니 우리 아저씨도 있었구요.ㅋㅋㅋ) 그러나 무색하게도 잉글랜드는 4-1이란 스코어로 네덜란드에게 이깁니다.
16강에서 만난 상대는 스페인, 두 나라는 0-0으로 전후반과 연장전까지 마치고는 승부차기에 돌입합니다. 잉글랜드 하면 어쩐지 승부차기에 약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어찌되었건 여기서는 스페인의 이에로와 나달이 연이어 실축하면서 잉글랜드가 극적으로 8강에 올라갑니다. 지난 두 대회에서 삽질을 해댔던 잉글랜드였기에 너무나 기뻐했죠. 그러나 불행히도 게리는 이 경기에서 옐로카드를 받음으로써, 경고누적으로 다음 경기에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 다음 상대가 바로 숙적 독일이었는데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당한 것을 복수해주겠다며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경기는 매우 치열했고 두 팀은 1-1이란 스코어를 안고 또 다시 승부차기에 들어갔습니다. 나란히 다섯골을 주거니 받거니 한 상태에서 나온 잉글랜드 키커는, 현 보로 감독인 ‘가레스 사우트게이트’ .....네 뭐 이미 예상하시는 분들 계시겠지만, 한 번도 승부차기에서 성공해 본 적이 없다는 그분이 나오셨으니 결과는.. 안봐도 뻔하죠.
유로 96이후 Terry Venables는 감독직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글렌 호들이 이어받죠. 그는 3-5-2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풀백보다는 윙백을 선호했고, 따라서 게리는 자기가,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입지흔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게리의 능력에 의심을 두지 않았고 그를 계속해서 기용했죠.
9596시즌의 더블 이후, 유나이티드는 다시금 팀을 가다듬고 다음 시즌을 준비합니다. 그 전(9495)시즌, 블랙번에게 아깝게 타이틀을 뺏긴, 그런 상황은 두번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면서 말이죠. (어지간히도 뼈아팠던 모양입니다 ㅋㅋㅋ) 게리를 포함한 이 어린 선수들은 모두 트로피를 향한 열망에 굶주려 있었죠. 새로운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읽기만 하고 리플 수정한다는걸 깜빡했어요 ㄲㄲㄲ 우리 캡틴 어릴 때 사진은 보면 볼수록 완소>_< 너무 곱상하게 생겨서 유약해보이는게 싫어 수염을 기르는거라고 믿고 있지요 낄낄낄.신데렐라를 구박하는 계모같았던 슈마이켈이라니 아하핫.정말로 묶어두고 크로스 연습 시키게 했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군요 ㄲㄲㄲ 킹토나님은 천부적인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같이 뛰는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아요.역시 우리 황금 제너레이션 대단해T_T 맨유팬들이 버스비와 아이들 다음으로 칸토나와 아이들 시절을 그리워할만 합니다 홍홍.내 닭강정 큰거 한 조각 양보해드릴테니 챕터 3도 빨리 써주세용^^
님 때문에 저두 질러써유~ㅋㅋ
정말 진심으로 경기일지의 모습을 잡아가는 캡틴의 자서전...하지만 어찌보면 정말 그것이 더 캡틴 답기는 해여?? ㄲㄲㄲㄲ 아 진짜 번역본도 있겠다 예스 24에서 열두번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빼었다 하고 있는...돈만 있다면 아아..ㅠㅠㅠ 슈마옹이 정말 우리 캡틴을 만들었군여 ㄲㄲㄲㄲ 아...정말...이거 사고 싶다.......ㅠㅠㅠㅠ
넘 감사합니다.... 뭐 보답할 것은 없고, 감사의 리플이라도 ...
잘 읽었어요! 감사감사!!! ㅠㅠㅠㅠ
크앙~지난편에 이어...^^ 넘흐 감사해요~
이햐...역시 황금유스라는 말밖에 할 수 없군요.....대단했네요 정말ㅋㅋㅋㅋ잘 읽었습니다!!!!
ㅋㅋ네빌횽제 넘 좋아><
그 무서운 슈마이켈 덕에 게리의 칼크로스가 나왔죠 ㅋㅋㅋㅋㅋㅋ맨날 남겨서 크로스연습 했다던데 게리도 노력파 ㅠ
바쁘신데 이리 번역까지 감사합니다^^
우오오~ 재밌게 잘봤어요~ ^0^ 감솨~
저 이책샀는데, 옛날 자서전하고 다른게 별로 없는건지 걱정되네요~잘봤어요~
역시 게리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악 이 경기 리뷰같은 자서전이란 ㄲㄲ 번역도 재밌게 하시니까 참 감사하다규 ㅠㅠ 황금유스 황금유스,, 정말 말만이 아니라 대단하군요 ㅠㅠㅠ
정말 잘 읽고 갑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게리다운 자서전일듯 하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잘읽었습니다.. 항상 캡틴 게리는 감동이라구... ㅠㅠㅠㅠ
잘 읽었어요. ^^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