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신인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은어 시대 외 4편
김종태
1980년 서울 출생. 2018년 고려 사이버대 경영학과 3학년 편입
은어 철이다. 은빛 비늘을 해반닥이는 사춘기
벚꽃 핀 물길에 열꽃으로 여드름이 돋아난
첫 몽정의 시기로 물거품을 일으킨다
동심을 벗고 민물 세계에 주파수를 맞추지만
살여울이 혼돈의 물줄기로 쏟아진다
내가 누구인가 물음표로 아가미를 팔랑댄다
미래를 펼친 달력에서 맞이할 성인식에
변성기의 기포로 붉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꼬리지느러미에 찍힌 느낌표로 유영한다
조약돌 무늬같이 실핏줄이 번진 지문으로
물살 푸른 액정의 스마트폰을 연다
또래끼리 은짬으로 비밀결사를 맺듯
이모티콘으로 마음을 그려 감정을 날리고
어골문으로 은어隱語를 주고 받는다
칠판에 분필로 교훈을 써서 흘려보내는
낡은 언어를 가벼운 부력으로 거슬러 오른다
하늘 비친 물낯에 파란 눈썹을 띄우며
이제 막 피어난 힘살로 물굽이를 끌어당긴다
새까만 눈망울을 호기심으로 빛내며
새 물살을 호기로운 모험으로 부딪쳐나간다
미성숙한 가능성으로 열린 앞날을 향하는
갸륵한 도전에서 시행착오로 넘어질 때마다
상처를 씻어내며 실패를 넘어선다
물속 바위에서 초록 이끼를 뜯는 섭생으로
미성년 피를 아름다운 약속으로 물들인다
수박 향을 풍기는 사춘기의 꿈꾸는 은어 철이다
조류의 오류
김종태
난생에서 지은 죄도 없이 구금된
가금류로 날개에 오랏줄이 묶인 오리,
단 오 분간도 날지 못하는 생이
집달리에 의해 가압류된 채
식인종이 지배하는 식민지를 걷는다
지금의 금기와 이곳이 금지된 관습에서
자신에게 망명을 명령할 수 없는
나약한 걸음을 뛰뚱거린다
인상적이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질문 형식으로 고개가 구부러진
뭉툭한 부리로 문제적 상황을 풀어간다
햇살 속 명확한 정오의 정답이
자정의 오답으로 까막눈에 찍힌다
생명을 오독하는 미궁 속에서
희망이 오차범위로 어긋나고
행운이 간발의 차이로 비껴간다
자서전에 붙이는 제목이 죄목으로
이유없는 야유로 목을 옥죈다
물위에서 난파선처럼 떠다니고
땅 위에서 폐차같이 떠도는 날들,
조류의 유전자를 명증하게 증명 못하는
백치로 접힌 백색 깃털이
유언을 쓰는 음절로 뽑혀나간다
목숨을 빼앗는 죄악의 손길로부터
오리가 새의 영혼으로 출소한다
숭어의 송가
김종태
숭어 떼가 물길을 연다
각자의 몸이 서로의 생을 끌고 간다
만개한 벚꽃으로 은빛 비늘을 해반닥이며
수컷은 모두 아비가 되고
암컷은 전부 어미가 되어
마지막 생애로 파랑을 채색한다
혼인 색을 띤 찬란함이
짜디짠 눈물이 이룬 필생의 절정임을
꽃소식을 선율로 그려 북상한다
머나먼 해리를 오류 없이 유영한
지느러미로 삼베 필을 펼친 파도에
수의를 짓는 생명의 율동,
산란 때 산고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쌀을 안친 끼끗한 비늘결에
피를 달궈 불꽃을 지핀다
고슬고슬 퍼진 따스한 밥 한 그릇으로
온몸이 초행길에서 최후를 향한다
낮은 심해에서 고통을 완성하여
드높은 수평선에 희열을 퍼트리는
숭고한 숭어가 네 이름이냐
지느러미에 새긴 지문이 닿을 곳을 알고
한 올 한 오리 힘줄을 풀어
해안으로 해류를 당긴다
벚꽃 피는 삶의 끝에서 세상을 깨우며
봉분과 만삭으로 솟은
대륙붕 바다를 환하게 물들인다
숭어 떼가 산란관을 연다
팬더의 젠더
김종태
그녀는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흑백 무늬가 조화를 이룬 천진한 외모로
에덴의 보호지대에서 사육된다
중국인형으로 의인화되어
모든 사람의 애인으로 관람되는 팬더,
대나무를 천천히 씹는 먹이활동에
나태한 낙관주의자로 낙인 찍혀있다
작은곰자리를 빛내는 눈빛이
자정에 묻힌 희망의 좌표를 밝힌다
네 살 난 아이의 장난스런 몸짓으로
여덟 살 먹은 동심에 젖게 한다
양성평등으로 사랑을 나누는 젠더,
난해한 유전자의 내력을 번역한
번식력으로 귀한 혈통을 잇는다
부드러운 근력에 휩싸인 몸이
근심을 초탈해 그림자와 친하게 어울린다
귀여움이 가여움을 불러일으키는
동물원에 갇힌 유리 세계 속,
안에서 밖으로 길을 열지 못하고
중국인형의 무심한 놀이를 보여준다
매일매일 반성문을 쓰듯 학습되어
몸에 길들여진 궤도를 자전한다
은밀하게 팬지꽃 한 송이를 피운
생식기의 수치심을 가릴 데 없이
무수한 눈길에 비밀을 들키는 팬더,
중국인형의 인격으로 애인을 존중한
그녀는 멸종될 수 없다
매일 메밀꽃이 핀다
김종태
하루가 척박한 땅으로 열린다 메밀을 채운 베개에서 천박한 신분으로 깨어난다 길몽 밖으로 파계한 종자를 시간 속에 파종한다 다른 종파를 믿듯 제각각 낯선 얼굴로 지하철에 오른 사람들,
싹을 틔운 발부리로 떡잎을 딛고 선다 삶의 면적으로 찍은 발바닥에서 수액을 길어 올린다 너덜겅을 뚫고 역과 역으로 펼쳐나가는 잎맥, 서로가 닿은 어깨로 저마다 광합성 하는 체취를 풍긴다 햇빛 한 올을 수신하며 스마트폰이 발광하는 전자파에 파묻힌 채 세계를 검색하고 세상을 탐색한다 초록에서 파란 엽록체로 액정 화면을 넘긴다 초침이 지나는 침묵 속에 입을 굳게 다문 잎, 어젯밤 꿈에 익은 별빛을 일깨우는 점성술로 가뭄 든 날을 통과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반죽한 먹구름에서 막국수 같은 빗발이 드리운다 잠깐 긋는 빗금에 갈증으로 고개가 기울어진다 오늘에 닥칠 고단한 예감을 지우는 환상으로 환승한다 철길 바뀐 노선도를 따라 줄기마디를 일으켜 세운다 보통사람들이 메밀로 매일 부대끼는 출근길, 우리로 무리를 지은 틈바구에서 혼자가 된 채 전망 없는 절망을 사느니 지금보다 나은 희망을 품는다 지하철이 가파른 버티고개역을 힘겹게 넘는다
일생의 반절, 일 년의 절반인 6월에 밴 땀으로 꽃물을 들인다 구황식물로 울림 깊은 목숨의 소리를 듣는다 이방인에서 서로 곁을 내주듯 이태원역을 통과한다 빛의 개화로 화르르 전철 문이 열린다 사람들이 흐드러져 녹사평역에서 메밀꽃으로 흩어진다
신인문학상 수상소감
나는 행위로 존재한다
2018년은 저에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해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의미 있는 수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공계열인 컴퓨터학과를 전공했습니다. 삶에 자족한 때도 있었지만 제 생활 안에는 문학과 음악이 항상 있었습니다. 고전들을 읽고 진리와 함께 실존을 고민하였으며 창작으로 연결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문학상에 수상되는 영광이 찾아왔다 생각합니다.
모든 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꿈꿔왔던 일을 끊임없이 추구한다면 그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목표치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인생은 한층 성숙되어 있을 것입니다. 현실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어렸을 때 생각해왔던 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전은 얼마나 아름다운 용기입니까? 도전의 실천으로 “나는 행위 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나 자신에 대한 생의 의지를 삼으려고 합니다.
기존에 익히고 배웠던 것들이 있지만 학교와 전공도 직업도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 시인으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이런 도전들이 저의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합니다. 저의 작품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좋은 소식을 암을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어머님과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첫댓글 2018년 봄호는 사정상 신인문학상 당선작만 올리게 됨을 죄송한 맘으로 전해드리며
폭염이 계속되는 나날들, 건안건필 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