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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사(萬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서 평택시 진위면 동천리
무봉산(舞鳳山)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진위면 일대는 행정구역상으로는 평택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지만 평택보다는 오히려 오산에 훨씬 가까운 지역입니다.
무봉산(舞鳳山)을 배경으로 앞쪽으로는 진위천이 흐르고 있으며 낮은 산비탈을 깎아 3단으로
전각을 배치한 만기사(萬奇寺)는 고려 태조 25년인 942년에 남대사(南大師)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집니다만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이었음을
입증할 만한 것은 보물 제567호로 지정된 철불(鐵佛)인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 뿐입니다.
만기사에 대하여 조선 헌종 9년(1843)년의 <진위현읍지> 불우조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만기사는 무봉산 아래에 있다. 절 북쪽에는 돌구멍에서 맑은 물이 샘솟는데, 맛이 달고 차다.
옛날 세조가 이 절 앞에 수레를 멈추고 우물에 가 물을 마시고 하교하기를 "이 우물은 감천이나
감로천이라고 하여라."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우물을 임금이 마셨다고 해서 어정(御井)
이라고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만기사가 조선조에도 법맥을 이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12월 5일)
▲ 세월이 유수와 같다 하더니 엊그제만 해도 단풍구경에 취했었는데 벌써 첫눈이 내렸습니다.
오늘은 하늘이 맑은 날씨입니다만 아침부터 수은주가 영하 6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입니다.
숨은 보물을 찾아 떠나는 사찰탐방, 오늘의 목적지는 평택에 있는 무봉산(舞鳳山) 만기사(萬奇寺)입니다.
만기사는 보물 제567호로 지정된 만기사 철조여래좌상(萬奇寺 鐵造如來坐像)이 있기 때문입니다.
▲ 경부고속도로 오산 IC에서 나와 오산시를 지나 1번 국도를 타고 5㎞ 정도 평택 쪽으로 가면
하북삼거리에 이르게 되고 진위면 쪽으로 좌회전 하여 314번 지방도로를 계속해서 직진하면
오른편으로 <만기사 철조여래좌상>과 <무봉산 청소년수련원>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습니다.
▲ 만기사 입구에 도착하니 두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무봉산 청소년수련원 안내석 뒤로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눈 내린 주변 풍경이 너무 멋있어서 잠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 눈썰매장과 함께 주변의 나무 가지 위에는 녹지 않은 새하얀 눈이 그대로 쌓여 있습니다.
▲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설경(雪景)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곳 수련원을
한바퀴 돌면서 아름다운 설경을 더 촬영하고 싶지만 오늘의 목적은 만기사 숨은 보물찾기이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주차장에서 되돌아 나옵니다.
▲ 청소년수련원 오른쪽 옆 만기사로 오르는 입구입니다.
사찰 진입로 입구 양쪽에 연화대좌의 모양을 한 주춧돌이 놓여 있습니다. 만기사에는
일주문이 없다고 들었는데, 일주문을 세우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걸로 추측됩니다.
▲ 언덕길 왼쪽 솔숲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소나무 가지에 쌓인 눈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 만기사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사찰 전경입니다. 산세가 아름답고 아늑해 보입니다.
▲ 넓은 주차장 뒤로 계단형의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전각들을 배치한 형태입니다.
▲ 주차장에서 올려다 볼 때는 단순한 일자형 배치로 보이던 전각들이 올라와서 보니 짜임새 있어 보입니다.
▲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만기사 경내로 진입하는 누각인 천왕문(天王門)입니다.
▲ 2층 누각의 1층은 천왕문(天王門)이고 2층은 명부전(冥府殿)입니다.
▲ 1층 천왕문을 들어서면 내부의 좌우에는 최근에 봉안한 사천왕상이 참배객을 맞습니다.
▲ 천왕문을 통과하여 돌계단을 오르면 마당 한 가운데에 5층 석탑과 함께
만기사 주법당인 대웅전(大雄殿)이 나타납니다.
▲ 천왕문 아래 계단을 올라 뒤돌아서면 누각의 2층인 명부전이 됩니다.
명부전 벽면에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를 비롯하여 10면의 벽화로 가득 채웠습니다.
벽화에 그려진 반야용선(般若龍船)은 사람이 죽어서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 속의 배를 말합니다.
▲ 명부전 내부 전경입니다.
▲ 중앙 불단에는 청동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모셨습니다.
청동불상이나 청동보살상을 모신 예는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으며,
이곳에 모신 청동지장보살상은 매우 독특한 경우에 해당되는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청동불보살상을 조성한 예를 흔히 볼 수 있고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 만기사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숨은 보물, 철조여래좌상을 만나러 대웅전으로 가야겠지요.
▲ 명부전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대웅전(大雄殿)입니다.
▲ 5층석탑 뒤편 석축의 돌계단 위에 자리한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 겹처마 세 단으로 구성되었으며 현재의 대웅전은 1994년에 기존의 대웅전이 있던
터전에 새로이 조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비교적 큰 규모의 불전이며, 규모와 내부 평면 및
장엄에 있어서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을 따르면서도 최근의 불전 성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정면 어간에는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글씨를 새긴 커다란 현판을 걸었는데,
현판의 글씨는 '1994년 4월 8일에 김현중(金顯中)이 썼다'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 중앙칸의 꽃살무늬 창호와 하단부 도깨비 문양...
▲ 정면 여섯개의 기둥에는 검정바탕에 금색으로 다음과 같이 한글로 쓴 주련을 걸었습니다.
둥글고 가득 찬 지혜의 해 / 온갖 것 두루두루 비치며 / 캄캄한 번뇌 없애버리고 /
모든 중생들 안락케 하는 / 여래의 한량없는 그 모습 / 어쩌다 이 세상 오시나니
▲ 대웅전(大雄殿) 내부 전경입니다.
내부에는 기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매우 시원스러운 공간구성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내부에 기둥을 사용하지 않는 건축 공법은 어렵긴 하지만 많은 대중이
모여 예불을 들이기에 적합하도록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 후벽에 의지하여 중앙에 일자형 불단을 마련하고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셨습니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이
바로 이곳 만기사가 유일하게 자랑하는 보물 제567호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입니다.
▲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은 신라말 고려초에 유행했던 철조불상(鐵造佛像) 가운데 하나로서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 자세라는 길상좌(吉祥坐)를 하고 앉았는데,
어깨 부분과 팔, 다리 부분에서는 크게 접어 계단식의 주름을 만들었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이 자세는 깨달음을 얻을 때의 자세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입니다.
▲ 약간 긴 얼굴에 눈을 반쯤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고 인중과 턱이 짧은 편이며,
어깨가 넓고 가슴이 발달하여 양감이 풍부해 보입니다. 상체가 약간 긴 편이나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은 편이어서 안정감이 있어 당당한 형태이지만 도식적인
옷주름의 표현과 단정해진 얼굴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의 모습에서 떨어져 나간 팔과 손은 경내에 별도로 보관되어 있다고 하며
현재의 불상은 양손과 오른팔을 접합하고 금(金)으로 개금(改金)하여 본래의 모습에서
조금 변형된 형상입니다.
▲ 때마침 스님이 동편 불단에 모신 금색 목각 신중탱 앞에서 염불 중이라
오랜만에 경쾌한 목탁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만 방해될까 조심스러워 몰래 몰래 찍었습니다..^^
▲ 서쪽 측면 출입문 옆에 세워놓은 범종은 1974년 김혜송(金慧松) 스님이
만기사를 중건하면서 대웅전을 지을 때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 대웅전에서 나와 앞마당을 바라보니 천왕문 앞쪽에 5층석탑(五層石塔)이 서있습니다.
▲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5층석탑은 석가탑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석탑의 각층마다 네 귀퉁이에 작은 풍경을 달아맨 특이한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 대웅전 서쪽 옆에는 남향으로 원통전(圓通殿)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맞배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원통전 내부에 모신 천수천안 십일면 관세음보살(千手千眼 十一面 觀世音菩薩)입니다.
즉 천개의 팔과 천개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일을 도와주며, 11개 얼굴의 의미는
모든 것을 가르치는 관세음보살상을 뜻합니다.
▲ 원통전의 앞쪽 석축의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범종각(梵鐘閣)은 1972년 혜송스님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3칸×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으로 일반적인 종각의 형태입니다.
▲ 범종(梵鐘)의 표면에는 양각으로 새겨진 비천도(飛天圖)의 입체감이 뚜렷합니다.
비천도(飛天圖)는 부처님을 찬양하는 하늘을 나는 천인(天人)들의 세상을 그린 것으로
나름대로 중요한 우리 불교미술의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느 절이나 찾아가도
비천도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불화 중의 하나입니다.
▲ 대웅전 아래 앞마당 서쪽에는 종무소 겸 요사로 쓰이는 감로당(甘露堂)이 있습니다.
▲ 스님들의 거처 겸 수행처인 무봉선원(舞鳳禪院)은 감로당 맞은편 동쪽에 자리했습니다.
▲ 무봉선원 앞마당에는 아담한 인공 연못을 조성하였는데 흠집 없이
아주 깨끗한 상태로 보아 조성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 무봉선원(舞鳳禪院)의 오른쪽 끝부분에는 선방(禪房)으로 이어지는 쪽문이 있습니다.
▲ 사찰의 쪽문이라기보다는 궁궐의 후원으로 통하는 문을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 선방(禪房)의 기와지붕 위에 쌓인 눈이 녹아내리며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 대웅전 동쪽의 한 단 높게 마련된 얕은 언덕 위에 위치한 삼성각(三聖閣)입니다.
삼성각으로서는 드물게 팔각형 모양의 겹처마 팔모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자연목을 그대로 살린 기둥과 변화 있는 창호의 모습이 독특함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 창호는 매우 정성들여 조성하였는데, 정면과 좌우 면에는 상부에 교창을 들였으며,
그 아래 두 짝의 여닫이문을 달았고, 상중하 세 단으로 나누어 상단은 교살, 하단은
띠살을 들였습니다. 중앙에는 방형의 울거미 속에 다시 팔각의 울거미를 돌린 속에
교살을 들이고, 모퉁이 여백에는 卍자 무늬를 베풀어 놓았습니다.
▲ 내부에는 칠성탱을 중심으로 좌우에 목각으로 보이는 산신탱과 독성탱을 모셨으며
일반 삼성각과는 달리 탱화 윗부분에는 허주가 매달린 운궁형의 닫집을 설치하였습니다.
▲ 경내의 가장 서쪽에는 산비탈을 다듬어 조성한 영탑전(零塔殿)이 있습니다.
영탑전(零塔殿)이란 영가(靈駕:불교에서 육체 밖에 따로 있다고 여겨지는 정신적 실체)를
모셔놓은 납골당을 뜻합니다.
▲ 영가 납골을 모시는 영탑은 최고급 화강석으로 부처님 형상을 조각한 부도탑 형태로서,
원주 8각형 4단으로 이루어져 각 단 8위씩 32위를 모시게 되어있고, 1단부터 4단까지
모두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참배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평화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 이러한 영탑은 일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식으로서 만기사가 일본 사찰과
어떠한 교류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명부전에 모신 청동지장보살상과
납골원의 조성은 일본 사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지는 부분입니다.
만기사(萬奇寺)라는 사찰 이름은 고려시대 철불(鐵佛)과 약수를 비롯해 신라 말 고려 초에
제작된 각종 석물 등의 만(萬)가지 기이(奇異)한 보물이 있었다 해서 만기사(萬奇寺)가
되었다고 전해 지는데, 그보다도 만기사 주지스님이야말로 가장 기이한 대상일 것입니다.
주지이신 원경스님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남로당 지도자이며
월북한 공산주의자인 박헌영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만기사(萬奇寺)가 위치한 곳은 산속 깊은 곳은 아니지만 무봉산이 절터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고,
그 앞쪽 멀리에서 진위천이 동서로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터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찰의 전체 배치는 지형의 경사를 이용하여 진입부와 僧俗의 공간, 그리고 聖의 공간을
위계에 맞추어 세 단으로 조성한 터전에 맞추어 하단에 천왕문과 명부전, 중단에 요사,
상단에 대웅전과 원통전, 삼성각 및 납골원 등을 조성했습니다.
경기도 삼림욕장과 청소년수련원이 조성된 울창한 수목을 자랑하는 천혜의 자연공원
무봉산과 절 앞쪽의 진위천은 많은 낚시꾼들이 찾는 곳이며, 또한 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위향교가 위치하여 가족과 함께 산책 소풍에 안성맞춤입니다.
그 여유로움에 더하여 서울 경기 권역에서는 흔하지 않은 고려시대의 철불과 함께
우리 문화의 향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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