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 서원 · 향교
성균관(成均官)
성균관은 오늘날의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태학(太學), 반궁(泮宮), 현관(賢官), 근궁(芹宮), 수선지지(首善之地)로 불리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은 태조 4년(1395) 공사를 시작하여 3년만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비롯한 주요 건물이 완공되었다. 성균관에서는 유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했을 뿐만 아니라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성균관의 공간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대성전, 동무, 서무) 둘째 유생들의 교육 및 기거와 관련된 공간(명륜당, 동재, 서재, 존경각) 셋째 성현의 제사와 유생 교육에 필요한 음식마련 서적출판 등에 필요한 건물이 위치한 부분이다.
성균관 앞에는 작은 개천인 반수(泮水)가 흐르고 있었는데 성균관의 별칭인 반궁은 바로 이 반수에서 유래되었다. 성균관 앞을 흐르는 반수는 현재 복개되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반수를 지나면 대성전이 정면에 위치하고, 대성전 좌우로 동무와 서무가 마주하고 있다. 대성전 뒤에는 강학 장소인 명륜당이 있고 그 좌우로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동재와 서재가 마주하고, 명륜당 뒤에 도서관 기능을 하던 존경각이 자리하고 있다. 명륜당과 동재 및 서재 주위로 성현 제사 및 유생교육에 필요한 제반 업무를 처리하던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서원(書院)
서원은 우리나라의 선현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던 조선의 대표적인 사학(私學) 교육기관이다. 서원은 선현들을 모시고 유생들을 교육시킨다는 점에서 성균관, 향교와 성격이 같다. 그러나 관학(官學. 즉 국가기관)이 아닌 사학(私學)이라는 점에서 성균관 향교와 다르다. 서원의 효시는 조선 중종 38년(1543)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 경남 함안 칠원사람으로 묘소가 구마고속도로 칠서휴게소 맞은 편에 있음)이 설립한 백운동서원이다.
대부분 서원의 공간 구조는 향교와 비슷했다. 일반적으로 서원의 건물 배치는 유생들의 교육 및 기거와 관련된 공간이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공간보다 앞에 위치했다. 즉 서원 건물 배치의 전형은 전교당, 홍교당 등으로 불리는 강당을 중심에두고 그 양 옆에 동재와 서재가 서로 마주보고, 강당 뒤에 선현의 위패를 봉안하는 사우(祠宇)가 배치되어 있다.
향교(鄕校)
향교는 유교 교육을 위하여 지방에 설치한 관학(官學. 즉 국가기관)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각 군현마다 향교가 설치 되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없어지고 일부만 남아있다. 향교 또한 서울에 위치한 성균관 처럼 유생들을 교육시켰을 뿐만 아니라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대부분 향교의 공간 구조는 성균관의 구조와 크게 달랐다. 성균관에는 대성전이 맨 앞에 배치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향교에서는 강학 장소인 명륜당이 맨 앞에 배치되고 그 좌우로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동재와 서재가 마주하고 있다.
명륜당 뒤에는 대성전이 위치하고 ·대성전 좌우로 동무와 서무가 마주하고 있다. 명륜당, 동무, 서무 및 대성전 주위로 성현 제사 및 유생 교육에 필요한 제반업무를 처리하던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대부분의 향교 건물은 이와같이 배치되었으나, 산지에 위치한 일부 향교는 대성전을 비록한 동무와 서무가 명륜당 앞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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