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뒤에는 반드시 피눈물 나는 고통과 연단이 있게 마련이다. 2008년 새해 첫날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의 숨은 이야기가 공개된다. CBS의 간판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에서 조 목사는 지난 50여년간 죽기 살기로 붙잡았던 십자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부작 ‘새롭게 하소서’에서는 과거사역(1부)과 은퇴 이후 앞으로의 사역계획(2부)을 중심으로 조 목사의 삶을 조명한다. 아내 김성혜 한세대 총장과의 결혼 과정, 이단으로 몰렸던 상황, 유창한 외국어 실력 비결, 가족에 대한 미안함, 후임 이영훈 목사에 대한 기대감 등도 밝힌다. 조 목사는 지난 27일 녹화 현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본부’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조 목사는 1부 첫머리부터 철저한 신앙을 강조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데 왜 대충대충, 건성으로 믿으려 하나. 믿으려면 제대로, 철저하게 믿어야 한다”면서 과거 어렵던 시절 선교사의 후원금에만 의지했던 일부 목사들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17살 되던 해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간증은 구원의 역사가 얼마나 오묘한 것인지 상기시켜준다. 훗날 4000명의 심장병 환자를 치료해주고 북한에 심장병원을 건립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누구보다 질병의 고통과 절망감이 얼마나 큰지 잘 알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한 경험도 이야기했다. “최자실 목사님이 나를 사윗감으로 정해서 그런지 다른 여성들은 내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면서 “교회에서 늘 보던 6살 어린 소녀가 아내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했다. 그리곤 “어머니 같은 최자실 목사님이 어느날 ‘내 딸과 결혼하라’고 추상 같은 명령을 내려 꼼짝없이 서른살 나이에 그렇게 했다”고 말해 방청객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서울 대조동에서 서대문으로 교회를 이전하던 이야기에는 고난의 눈물이 배어 있다. 1958년 세운 대조동 천막교회는 말이 교회지 다 쓰러져가는 움막 같았다. 끼니 굶는 건 일도 아니었다. 빈민굴 사람들에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면 “우린 벌써 지옥에 살고 있소. 딴말 말고 쌀이나 주쇼”라며 맞받아쳤다. 하지만 신유(神癒)의 사역은 달랐다. 조 목사는 앉은뱅이와 중풍병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켰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너도나도 고쳐달라고 달려들자 ‘이젠 못합니다. 실수하면 목사 망신이요, 하나님 망신입니다’라고 주저했던 조 목사. 이후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모든 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고 기도도, 설교도, 신유도 전적으로 성령에 의지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서대문으로 교회를 이전하고 3000명의 성도가 6000명으로, 다시 1만명으로 불어났다.
사실 조 목사가 말하는 십자가는 살기 위한 수단이었고, 죽지 않고 강단을 지키는 힘이었다. 몸이 약했던 조 목사는 강단에서 여러 번 쓰러졌다. 강단이 죽음과 삶의 경계선이었던 셈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말이지 죽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의 말에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와 막노동에 가까운 기도, 영혼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2부는 여의도교회 시대로 시작한다. 공사비가 모자라 건물은 못 올리고, 하루하루 피가 말라갔다. 설상가상으로 오일쇼크까지 터졌다. 임금을 줄 수 없다니까 노동자들이 벽돌을 들고 쫓아와 황급히 도망친 일도 있었다. 녹물이 뚝뚝 떨어지는 철근골조를 붙잡고 ‘제발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자금 독촉과 부채 압박이 너무 고통스러워 죄 짓지 않고 죽게 해달라고…. 간증을 하는 조 목사 눈에 눈물이 흘렀다.
성전 건축을 위한 기도회에서 어떤 80세 할머니가 “이렇게 하다간 우리 목사님 죽는다. 내가 가진 것 다 내놓겠다”고 한 간증이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너도나도 재산을 내놨다. 1973년 하나님은 그렇게 놀라운 방법으로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1980년대 본격적으로 이단 논쟁이 시작됐다. 이 계기로 조 목사는 현장목회에 치중하며 소홀히 여겼던 자신의 신학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제자를 해외 일류 신학대에 보내 공부시켰다. 이것이 훗날 신학연구소가 세워지고 순복음 신학을 정립하는 초석이 됐다. 해외 선교에 눈을 돌리게 된 것도 대구집회 당시 지역 목회자들이 ‘신자를 다 빼앗아간다’고 아우성쳤기 때문. 그렇게 해서 70여개국 290회의 해외 집회를 인도하게 됐다.
빌리그레함 목사의 뒤를 잇는 세계적 부흥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 목사는 300여회의 해외 부흥성회 중 인상에 남는 집회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조 목사는 "상파올로 집회에서는 당시 교황이 100만명 집회를 했는데, 저는 150만명 집회를 했다. 사람들이 많아 헬리콥터로 강단에 내려서 설교하고 나올 때도 헬기를 타고 나왔다"고 회상했다. 조 목사는 또 소련이 무너졌을 당시 크레물린궁에서 집회를 인도했을 때의 일화도 간증했다. "3천명 들어가는 강당에서 이틀동안 집회를 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공산당을 망한다는 설교를 했다. 그러자 소련 공산당이 나를 잡으러 왔다. 그런데 나를 잡으러 온 경찰을 KGB 요원들이 돌려보냈다. KGB 요원들이 내 설교를 듣고 '우리가 변화 받았다'고 고백했다"
“은퇴 후에는 직접적인 설교는 줄이고 사회적 활동에 전념할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50주년을 맞는 내년 5월 18일 은퇴 예정인 조용기 목사는 CBS TV의 간증프로그램 ‘새롭게하소서 신년특집’ (1월 1일, 2일 방송 예정)에 출연, 자신의 은퇴 후 계획을 밝혔다.
▲목회 50년을 간증 중인 조용기 목사
“은퇴 후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본부’ 설립하겠다”
75만 명의 성도수를 자랑하는, 단일교회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50년 동안 이끌어 온 조용기 목사는 은퇴 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전력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조 목사는 “담임 목사직에서는 은퇴하지만, 하나님이 명령한 선교 활동에는 은퇴가 없다”며 “은퇴 후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본부’를 설립해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곳에서 조금 더 폭넓은 선교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 교회가 가장 부족한 부분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에 소홀한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조 목사는 12월 초 평양을 방문해 기공식을 갖고 오는 2010년 완공될 예정인 ‘조용기 심장전문병원’에 많은 기대감을 표시했다.
조 목사는 “은퇴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놓고 기도하다가 북한에 심장전문병원을 설립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병원 설립을 추진하게 됐고, 작은 발걸음이지만 이를 계기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남북 크리스천의 교류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항간에 나돌고 있는 ‘은퇴 후에도 주일설교를 맡을 것’이라는 얘기에 대해 조 목사는 ‘후임 이영훈 목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대답으로, ‘그럴 의사가 없음’을 간접 피력했다.
조 목사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를 보듯이 후계자, 젊은 세대 목회자들이 더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간다”며 “내 세대를 섬기기 위한 사명은 이미 다했고, 앞으로의 세대를 책임질 사명은 후임인 이영훈 목사가 충분히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전 건축 도중 자살 생각도”
계속된 간증에서 조용기 목사는 지난 50년의 여의도순복음교회 사역을 회고하며 오늘이 있기까지 헌신한 성도들에게는 ‘감사’와 가족들에게는 ‘미안함’을 전했다.
조 목사는 “1974년 허허벌판 여의도에 성전을 건축하던 시절, 갑작스러운 오일쇼크에 공사에 차질이 생겨 부도 위기를 맞았던 때는 계속되는 어려움에 자살마저 고민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처럼 공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당시 전 재산을 건축헌금으로 바치는 등 오늘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만든 많은 성도들을 회상하면서 조 목사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조 목사는 “바쁜 사역으로 인해 가족을 등한시하고 교회에서만 살았다”며 “아이들이 ‘우리는 조용기 목사는 알아도 아빠는 모른다’고 말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또한 조 목사는 “제가 함께하지 못했기에 아내(김성혜)가 공부를 시작해 대학(한세대) 총장까지 됐지만, 그래도 지난 50년간 가족들에게 충실하지 못했던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이단 시비를 통해 신학적 성숙 가능했다”
▲녹화 후 진행자인 임동진 장로, 고은아 권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조용기 목사
우여곡절 끝에 여의도 성전을 건축하고 본격적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은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앞에 또 다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성령을 강조하며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을 둘러싸고 일었던 ‘이단 시비’가 그것이다.
조 목사는 “수많은 장로교 목회자들이 저와 저희 교회를 이단으로 폄훼했고, 심지어 초창기에는 제가 속한 총회에서도 저를 소환해 청문회를 연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조 목사는 “그런 과정을 통해 제 신앙을 스스로 많이 연구할 수 있었다”면서 “과연 내안에 이단적 요소가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제자들을 외국 일류신학대에 보내 박사학위까지 받게 하고 신학연구소를 만들어 순복음신앙의 기초를 만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조 목사를 둘러싼 논란들은 점점 해소되어 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한편, 조 목사의 간증은 CBS TV를 통해 새해 1월 1일과 2일 저녁 10시에 각 1부와 2부가 방영되며, CBS 표준FM 라디오에서는 오는 2일과 3일 저녁 10시10분에 각 1부와 2부가 방송된다.
귀한 간증 감사드려요. 지나온 고난과 연단의 시간들 뒤돌아보며 나누는 간증의 시간은 짧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흘린 눈물들과 많은 경험들을 어찌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지요..곧 오실 주님과 함께할 영원한 나라에서 귀한 신부님들 영원토록 기쁨의 간증나누며 주님의 사랑을 찬양할 그 날이 속히 오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다립니다..
첫댓글 러브주님 주님안에서 반갑습니다.^^'영광 뒤에는 반드시 피눈물 나는 고통과 연단이 있게 마련이다.'...귀한 자료 감사드리며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 넘치시길...마라나타
귀한 간증 감사드려요. 지나온 고난과 연단의 시간들 뒤돌아보며 나누는 간증의 시간은 짧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흘린 눈물들과 많은 경험들을 어찌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지요..곧 오실 주님과 함께할 영원한 나라에서 귀한 신부님들 영원토록 기쁨의 간증나누며 주님의 사랑을 찬양할 그 날이 속히 오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