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사(泰安寺)의 숲길은 다리가 던져준 화두(話讀)와 함께 한다.
매표소에서 경내까지 2키로 정도 된다.
이 길에는 정심교(情心橋), 반야교(般若橋), 해탈교(解脫橋)
그리고 다리와 정자역할을 함께하는 능파각(凌波閣)이라는 4개의 다리가
산사(山寺)를 찾는 참배객들에게 화두가 되어 가슴속에 담겨진다.






고로쇠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 울창한 수림 아래의
기암괴석 사이를 굽이 돌아가는 물줄기는 잠깐 쉬어가기 위해 소를 만들고
작은 폭포를 만들며 장난을 하고 있다.







태안사로 오는
오솔길과 그 끝에서 만나게 되는
능파각은
그저 이 심연한 돌계단 길을
부연 설명해 주기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3개의 다리를 건너 능파각에 다다르면
‘이 곳을 건너면서 세속의 번뇌를 던져 버리고
불계에 입문하라’라는 글귀가 마중을 한다.
동리산에서
흘러나온 계류를 건너는
다리 역할을
겸하고 있는 능파각.
태안사의 첫
경치다.
정자이자 다리인 능파각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건축물이 아니다.
능파각은
계곡 양쪽에 있는 자연암반을
이용해 낮게 석축을 쌓고
그 위에 큰
통나무 두 개를 잇대어 걸친 뒤
세운 정면 1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겹처마집이다.
통나무 위로
한 단의 각진 침목을 두고
기둥을 올렸는데,
이 침목은
주변의 풍경을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의자로서 쉼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기에 앉아
능파각 내부를 들여다보노라면
화반 사이에
조각해놓은 재미있는
동물상들이 속세의 복잡다단함을
잠시 잊게 해준다.
능파각 밑으로 수량이 많을 때는 급한 물살이 흐르는 폭포가 있어
물보라가 하얗게 일어나기도 하며,
무더운 여름철 정자에 앉아 두발을 물속에 담그는 운치를 느낄 수도 있다.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봉두산(鳳頭山) 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 구선선문 태안사 경내에는
6·25 전쟁
중에 호국(護國)의 신으로 산화한 경찰관
48분의 영혼을 봉안한
「경찰충혼탑」이 우뚝 세워져 있다.
능파각과
일주문만을 남기고 태안사의 모든
전각들을 불태워버린 6·25 전쟁을
자신의 몸을 던저 막아선 경감 남제평 외
47명의 전사자들을 봉안하고자
1960년 8월 6일 경찰 태안사참전동지회에서 충혼비를 건립하였고
매년 8월 6일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태안사 경내에
자리한 경찰충혼탑은
1950년 당시
한정일 곡성경찰서장의 지휘하에
최후까지 곡성
사수를 결심하고
경찰국
작전지시에 의하여
전라북도와
인접한 섬진강 중류(순자강)의 연도교를
중심으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고
아군 후퇴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태안사에
전투본부 를 설치하였다.
그러던 차
1950년 8월 6일 오전 6시를 기해
태안사에 있던
경찰 작전본부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경감
남제평 외 47인이 전사를 하였다.
그 후
1960년 8월 6일 경찰 태안사
참전 동지회 건립 추진위원회에서 충혼비를
건립하고
이들 호국신으로
산화한 영혼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매년 8월 6일
위령제를 치르고 있다.
<출처;
향토자원-지역정보 포털>



부도밭 앞쪽에는 새로 만든 연못 중앙에 삼층석탑 하나가 서 있는데,
비록 새로 만들어 끼운 부재가 더 많지만,
통일신라 석탑의 균형미가 사그라지지 않아 고려 초기의 석탑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 만들어놓은 지나치게 큰 연못은
천년 고찰의 고요함을 무너뜨리는 듯 해 아쉽다.







태안사(泰安寺)는
숙종 28년(1702)까지 대안사(大安寺)라 불려왔다.
대안사가 문을
연 것은
신라 경덕왕
1년(742) 세 선승에 의해서였다고
전하나 고증하기 어렵고,
그로부터
100여 년 뒤인 통일신라 말
문성왕 9년(847)
적인선사
혜철(寂忍禪師
慧徹,
785~861)이 동리산문을
열고,
고려 태조 때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
864~945)가 절을 중창하여
동리산파의 중심 사찰로 발전했다.
태안사(泰安寺)는 한때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사세가 컸으나,
고려 중기
송광사가 수선결사로 크게 사세를
떨치는 바람에 위축되고,
조선 초기
억불정책에 밀려 거개의 절들이
그랬던 것처럼 쇠락했다.
1683년(숙종 9)
정심(定心)이 중창했으나,
6 ·25전쟁 때 대웅전 등
15채의 건물이 불탔다.
사찰 내 주요 전각으로 는
대웅전·보제루(普濟樓)·해회당(海會堂)·선원(禪院)·능파각(凌波閣)·
일주문(一柱門) 등의 당우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대웅전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근래에 건물
신축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적인선사 부도탑)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도라고 한다.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부도에 담겨있는 깨달음과 선사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온 아름다움도 감상할 수 있다.



태안사를 참배하는 사람들은 꼭 적인선사의 깨침의 세계에 들어가시라.
적인선사의 오묘한 가르침을 직접 배울 수는 없지만,
배알문에 담겨 있는
하심만이라도 가져온다면 여러분은 큰 수확을 얻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