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굴의 '코끼리 명장', 특유의 카리스마 18년 호령
고압적 지도 스타일 언제나 아슬아슬
◇ 김응용
김봉연 김성한 이상윤 선동열 한대화 이강철 이종범…. 혹자는 '그 멤버로 우승을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비아냥댔다. '선수복이 지독하게 많다'는 시샘도 샀다. 하지만 아무리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아홉자리를 몽땅 채워놔도 결집시키지 못하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한줌 모래에 불과하다.
지휘봉을 잡은 18년 동안 9번 우승. '우승을 밥먹듯 했다'는 표현이 딱 맞다. 선수들은 오고갔지만 그만은 호랑이 유니폼을 입고 덕아웃을 지켰다. 해태의 팀 역사는 김응용 감독(현 삼성 감독)의 야구인생과 늘 같은 페이지에 담겨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난 82년 김응용 감독은 미국 유학중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곳에서도 불러주지 않았다. 개막전이 열린 동대문구장을 찾아 야구 선후배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지만 마음은 못내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해 10월 정기주 단장(현 해태 타이거즈 사장)의 전화를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 김동엽 초대 감독과 조창수 감독대행에 이어 해태 지휘봉이 그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맺은 해태와의 인연은 지난해말 삼성으로의 이적때까지 18년 동안 이어졌다. 그때 자신을 불러준 해태 박건배 구단주와의 의리 때문에 수많은 스카우트 유혹에도 김감독은 고개를 흔들 수 밖에 없었다.
학창시절 1루수로 활약할 때 내야수들이 던진 공을 넙죽넙죽 잘 받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코끼리'. 김응용 감독은 상대를 위압하는 집채만한 몸집과 퉁명스런 말투, 특유의 카리스마로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었다.
선수들이 실수라도 하면 대놓고 거칠게 꾸중도 했지만 방망이를 부러뜨리고, 덕아웃 의자를 집어 내팽개치는 등 무언의 시위로 팀 분위기를 휘어잡기도 했다.
김감독은 또한 칭찬에 인색한 걸로 소문났다. 천하의 선동열이나 이종범도 김감독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잘했어"라는 소리를 들은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못했던 김감독도 예외는 있었다. 지난 83,84년 해태에서 2시즌을 보낸 제일교포 투수 주동식은 투수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 김감독에게 공을 넘겨주지 않고 덕아웃으로 가져가 내팽개치기도 했다.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주동식씨는 "그때는 자존심 때문에 마운드를 내려오기 싫었다"며 "지금같으면 어림없겠지만 김감독과 나이차가 얼마 안나 봐준 것 같다"며 겸연쩍어했다.
승부에 너무 열중하다 보니 심판 판정이 마음에 안들 때면 누구보다 강도 높은 어필이 잇따랐다. 심지어 경기 후 심판실을 찾아 몸싸움까지 벌여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도 쉽다'고 했던가. 시종일관 고압적인 김 감독에 반발, 선수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가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