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연중 제27주일 - 마르코 10,2-16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결혼, 부단히 서로를 재발견해나가는 과정>
어렵던 시절, 한 신혼부부가 큰 마음먹고 대중온천탕에 갔습니다.
먼저 목욕을 끝내고 나온 사람이 조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목욕을 끝내면 같이 외식도 하기로 했지요.
아내 사랑이 극진했던 신랑은 혹시라도
아내가 먼저 나와서 많이 기다릴까 싶었기에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정확히 30분 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 시간이 지나도 그녀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좀 오래 걸리는가보네, 하면서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2시간이 지나면서 신랑은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깜빡하고 먼저 집에 갔나 싶어 집에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라도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진 것은 아닌가?
약한 몸에 뜨거운 곳에 너무 오래 있어 탈진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여탕에 들어가 볼 수도 없고 점점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언 시간은 세 시간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목욕 후의 상쾌했던 기분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표 끊은 아가씨에게 신신당부를 해서 안내 방송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누구 씨! 지금 밖에서 남편이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빨리 나오시랍니다.”
남편이 겨우 분을 삭이고 있는데,
아내가 젖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면서 염장을 지릅니다.
“뭔 방송까지 하고 난리야, 방송이! 남사스럽게!”
신랑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 마디 합니다.
“너, 때 빼러 왔냐?
목욕탕 물 다 퍼마시러 왔냐?
세 시간이 뭐냐?
세 시간이?”
슬픈 일이지만 결혼은 현실입니다.
사람은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랑만 먹고 살수도 없습니다.
세끼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결혼생활은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결혼은 구체적인 현실이며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매일 직면해야하는 생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결혼의 불가해소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결혼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이므로 인위적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물론 속아서 결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정말 이건 아니다,
하는 결혼도 나중에야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
늘 당사자들은 염두에 두셔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결혼생활은 서로의 다름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입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재발견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서로 조율하고 양보하면서 적정 타협점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입니다. 부족한 존재입니다.
외롭기 때문에,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의 빈 공간을 채워줄
반쪽을 만나 결혼이라는 것을 합니다.
‘완전해 질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엄연한 진리, 불변의 진리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결혼은 결코 완성이 아닙니다. 완성은 끊임없이
추구해야할 목표이자 신기루일 뿐입니다.
결혼은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지는 경우는
없다고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매일 지지고 볶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부부생활입니다.
결혼은 상호출자입니다.
두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철저하게 분담되어야 합니다.
인생은 단 한번 뿐입니다.
한번뿐인 인생, 제대로, 의미 있게,
아름답게 꾸며가야 하지 않을까요?
한번 맺은 인연을 좋은 인연으로 가꾸어나가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이 요청됩니다.
저절로 좋은 인연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물을 마실 때 어떻게 마셔야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언제 물을 마셔야 하는지? 어디다 담아 마셔야 하는지?
어느 정도 마셔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행복한 결혼생활, 원만한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도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속적인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부로 산다는 것’ 참조, 위즈덤 하우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