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역사 및 연표
1. 성서 시대(BC 17세기 ~ BC 6세기) 연도주요내용
1-1.선사 시대 이스라엘 지역의 고대 지명은 가나안이며, 이곳에 살던 원주민인 가나안족은 기원전 7천 년경부터 농경을 시작하였다. 가나안족은 기원전 3천 년경 청동기 시대부터 셈족, 히타이트족 등 여러 민족의 침입을 받았는데, 이것은 가나안 지역이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이에 위치하여 두 문명이 자주 충돌했기 때문이다. 가나안은 기원전 13세기까지 주로 이집트의 통치를 받았다.
1-2.이스라엘 왕국의 성립과 분열 기원전 2천 년경 아브라함이 이끄는 히브리족이 가나안에 정착하지만, 엄청난 기근 때문에 이집트의 나일 강 하류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1300년경 모세가 이들을 다시 가나안으로 이끈다. 이후 히브리족은 가나안족과 싸우며 점차 영토를 넓히는 한편, 북쪽에서 내려온 팔레스티나(블레셋)족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다. 결국 다윗 왕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이집트 변경에서 유프라테스 강 유역까지 다스리는 강대국이 되었고, 뒤를 이은 솔로몬 왕은 왕국을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여,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로 삼았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왕위 다툼으로, 결국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게 된다.
다윗 왕이 기원전 1004년경에 점령하여 수도로 삼은 곳으로, 구 예루살렘의 남쪽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1-3. 강대국들의 지배와 하스모니아 왕조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의해,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 왕국에 의해 멸망한다. 바빌로니아 왕국은 남유다의 백성을 본국으로 끌고 가 노예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히브리족을 유다 사람들이라는 뜻의 유대인이라 부르게 된다. 유대인은 기원전 538년에 바빌로니아 왕국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칙령에 따라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아온다. 이후 이스라엘 지역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알렉산더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기원전 129년에는 유대 국가인 하스모니아 왕조가 세워져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2. 페르시아와 그리스 시대(BC 536년 ~ BC 142년)
연도주요내용
3. 로마제국의 지배(BC 63년 ~ AD 313년) 연도주요내용
3-1.로마의 지배 기원전 63년 이스라엘 땅은 로마 제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된 헤롯 1세는 성전을 다시 짓고 마사다 요새를 세우기도 했지만, 대중의 신임은 얻지 못했다. 이 시대에 베들레헴에서는 예수가 탄생하였고,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초기 기독교가 발생하였다. 헤롯 1세가 죽은 뒤 이스라엘 땅을 직접 통치한 로마가 유대인의 관습과 종교를 인정하지 않자, 이에 유대인들은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132년경에 유대인의 반란이 모두 진압되며, 이후 로마는 이스라엘 땅의 이름을 유대인이 싫어하는 팔레스티나족의 이름을 딴 팔레스타인으로 바꾸고 유대인들을 추방한다. 통곡의 벽헤롯 1세가 지은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의 일부로, 유대인들의 순례지이다. 로마군의 공격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죽자, 이것을 본 이 벽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4. 비잔틴의 지배(313년~636년) 연도주요내용
4-1.동로마 제국과 아랍의 지배 395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나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게 된 동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공인하여 예루살렘, 베들레헴, 갈릴리 등의 기독교 성지에 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다. 7세기경에는 이슬람교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고, 그 뒤로 약 4백 년 동안 아랍 왕조의 지배가 이어졌다. 그 사이 알 악사 사원 등 많은 이슬람교 사원이 세워지며, 예루살렘은 메카와 메디나에 버금가는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었다. 알 악사 사원8세기 아랍 왕조 시대에 지어진 사원으로, 바위 돔 사원과 함께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이슬람 성지이다.
5. 아랍의 지배(636년~1099년), 십자군 원정시대(1099년~1291년), 맘루크 왕조 지배(1291년~1516년) 연도주요내용
5-1.십자군 원정 시대 십자군 원정은 성지 팔레스타인과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의 손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주장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모인 제1차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나 곧 무슬림의 반격을 받아 후퇴하였고, 이후 13세기까지 여덟 차례나 이어진 십자군 원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 원정으로 유럽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교통로가 열리며, 많은 유대인들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십자군 원정 기록화 당시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를 표시했기 때문에 이들을 십자군이라고 부른다.
5-2. 맘루크 왕조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이집트에서 일어난 맘루크 왕조는 1291년 십자군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지역과 시리아 지역을 지배하게 된다. 이들은 십자군이 세운 각지의 교회들을 파괴하고 많은 이슬람 사원과 학교를 지으며 이슬람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정치적 혼란과 빈곤, 질병 등으로 쇠퇴하여 1517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는 예루살렘과 가자, 갈릴리 등지에 모여 살던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핍박이 줄어들어, 유대인의 이주가 늘어났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철도와 도로가 정비되어 대륙과 대륙을 잇는 지리적 이점이 살아났고, 1880년 이후로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 와 1500년대에 5천 명에 불과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때 8만 5천 명에 이른다.
6. 오스만 제국의 지배(1517년~1917년) 연도주요내용
7. 1차 세계대전 이후 ~ 2차 세계대전 연도주요내용
7-1.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통치와 이스라엘 건국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었고, 1917년 승전국 중 하나인 영국이 국제 연합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받는다. 같은 해 영국이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의 국가 건설을 지지하자,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한다. 1930년대에는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더욱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지만, 먼저 이 땅에 살고 있던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 땅의 소유와 성지 관리 등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농토를 개간하고 사해 광물질을 개발하는 등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기반을 쌓았고, 영국의 위임 통치가 끝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스 정부는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였고, 이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 유대인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8. 이스라엘 건국 이후 ~ 현재 연도주요내용
각주 1 헤브루(Hebrew): ‘헤브라이’ 또는 ‘히브리’라고 발음하기도 함, 고대 이스라엘인을 뜻함 2 유대: יהודה(히브리어); Ιουδαία(그리스어); Iudaea(라틴어) 3 스코푸스 산: Mount Scopus(영어); הַר הַצּוֹפִים(히브리어) 4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 영국에서는 공동시장(Common Market)으로 더 잘 알려짐 5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네이버 지식백과] 이스라엘의 역사 연표 (이스라엘 개황, 2010. 6., 외교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