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 / 안희연
그것은 사람처럼 걷고 있었다
마음이 어두울 땐 환해지고 환할 땐 희미해졌다
당신은 오래 알던 친구 같군요 무심히 말을 걸어본 적 있지만 대답을 들어본 적은 없다 의자를 내어주어도 앉지 않는다
그것은 오인될 때가 많다 비가 오지 않을 때조차 비를 맞고 있다 독성이 있는 사과일 거라고 심장을 옭아매는 밧줄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그것은 다만 기다리고 있다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는 풍경을 골똘히 바라볼 뿐이다
수많은 이유로 아침을 사랑하고 그보다 더 사소한 이유로 여름을 증오하는 것처럼
숲이 거기 있다는 이유로 숲을 불태우러 오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것은 조용히 타오른다
까맣게 탄 몸으로 그것은 걷는다 빗방울의 언어가 얼룩으로만 쓰여지듯 흰 종이가 흰 종이인 채로 남아 있더라도 말해진 것이 있다고
발도 없이 문턱을 넘는다 귓바퀴에 고이는 이름이 된다 익숙한 침묵이 낯선 침묵이 되어 걸어나오는 동안
- 시집 『당근밭 걷기』 (문학동네, 2024.06) ----------------------
* 안희연 시인 1986년 경기 성남 출생. 서울여대 중문학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2012년 《창작과비평》 등단.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당근밭 걷기』 산문집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2016년 신동엽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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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시인이 네 번째 시집을 발간했습니다. 시인은 2012년 창비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15년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을 시작으로 두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가장 최근의 시집은 2020년 발간한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창비)입니다. 시인은 현재 <한예종> 서사창작과 교수로서 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시는 안희연 시인의 시 「갈망」입니다. 갈망은 우리에게 익숙한 감정으로 사전적인 의미는 ‘간절히 바람’입니다. 이 의로만 접근할 때 특별할 것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갈망은 다양한 감정을 그 내부에 내포합니다. 영어 단어로 열거하면, longing, yearning, desire, craving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단어로 쓰일 수 있다는 말또한 갈망이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우리에겐 갈망하는 것은 많지만, 갈망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갈망하여 얻을 수 있는 소수조차도 특별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욕심내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는 우리의 환경, 그러므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러하기에 용기란 ‘선택의 용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또 다른 하나가 아닌 나머지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 갈망과 함께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삶 속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갈망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시인이기에 ‘시’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시만큼이나 특별한 것입니다. 바로 ‘훈남으로서의 면모’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을 빼고 있습니다. 지난 2월부터 시작한 다이어트는 4월을 지나면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5월부터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달라졌다는 얘기를 합니다. 이전에는 몰랐으나 변화된 모습이 그들의 눈에도 보이는 것일 겁니다. 갈망이 효과를 보이는 것일까요?
다이어트에 대한 나의 갈망은 간식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게 했습니다. 또한, 쉼을 포기하게 했죠. 또한, 이전에 먹지 않았던 채소를 열심히 먹게 만들고요, 아침저녁으로 걷고 또 걷게 만듭니다. 이전에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하루에 한 시간가량을 걷습니다. 나의 갈망은 나에게 다이어트를 하도록 동기부여 할 뿐만이 아니라, 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갈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것입니다. 갈망의 또 다른 이름은 ‘목표의식’으로 긍정적인 갈망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갈망을 나쁜 것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시에서 화자는 말하죠. ‘그것은 오인될 때가 많다’라고요. 많은 문장에서 갈망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갈망이 사람들 가슴에 어두운 의식으로 자리 잡을 때, 한 사람을 완전히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어두운 갈망은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백설 공주 계모가 만든 독성이 있는 사과’이며, ‘심장을 옭아매는 밧줄’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타오르다가 자신을 방화하여 몸과 마음을 새까맣게 태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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