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내 참내 / 김 난 석
명절을 맞아 느지막이 고향 어귀에 이르노라면 지붕 위로 저녁연기 하얗게 피어오르는 모습에 가슴 설레었었다. 밭이랑 사이 고개 들며 맞아주는 고향아낙도 반가웠다. 서둘러 인사 나누고 발걸음 옮기노라면 어디선가 들내 참내 풍겨오며 어머니의 손길이 코에 먼저 와닿기도 했으니, 이렇듯 들기름 참기름은 뭐니 뭐니 해도 고향의 맛과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려주는 식품 중 제일이 아닐까 싶다.
들기름 참기름 모두 깨를 짜서 받아낸 기름인데 왜 하나는 들이고 다른 하나는 참일까? 말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라 할 때 참말이라 하며 허름하지 않고 썩 좋은 먹을 참먹이라 하는데, 이런 이치로 '참사랑'이나 '참살이'란 말도 하는 것일 테다. 봄 판에 따먹을 수 있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하지만 독성이 있어 먹지 못한다는 철쭉꽃은 이와 달리 개꽃 이라고도 한다.
소박하거나 야생적인 분위기를 풍길 땐 머리에 ‘들’을 붙이기도 한다. 들국화가 그렇고 들개가 그러한데, 들깨 꽃은 참깨 꽃에 비해 조금 더 작고 향이 약하며 모습 또한 소박하다. 하지만 쓰임새에 있어선 참깨보다 들깨가 더 다양하기도 하다. 어머니들이 무쇠솥뚜껑을 뒤집어놓고 기름칠을 해대며 전을 부칠 땐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많이 썼고 가죽이나 종이에 기름을 먹여 윤이 나고 오래 쓸 수 있도록 할 때도 들기름을 많이 썼다. 광물성 기름이 없거나 귀했을 땐 기계가 잘 돌아가도록 들기름을 쳤고 등잔불을 켤 때도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많이 썼던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낼 땐 오히려 들기름보다 참기름을 빌리기도 한다. 속담에 ‘기름 엎지르고 깨를 줍는다.’는 건 큰 것을 잃어버리고 보잘것없는 이(利)를 구한다는 것인데, 이때의 깨는 들깨가 아니라 참깨일 테니 그런 것이다. 뇌물을 써서 통해놓으면 일이 순조롭다는 뜻으로 ‘기름을 친다.’ 고 할 때에도 그 기름은 들기름이 아닌 참기름을 이름일 테다.
추석을 앞두고 고향 선산에 내려가 벌초하고 돌아오니 소포 하나가 들여져 있다. 한참이나 뜸한 옛 직장 동료가 보내온 건데 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짐도 풀기 전 서둘러 열어보니 폭신폭신한 속포장 안에 들기름 한 병과 참기름 한 병이 나란히 들어앉아있다. 현직에 있는 사람이, 그것도 한 가닥 한다는(?) 공직자가 이게 어인 일인가? 하지만 오래전 물러나있는 과(過) 성년자(?)에게 기름 칠 일도 없을 테니 고맙게 받아들일 뿐이다.
속담에 ‘참깨 들깨 다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까.’ 란 말이 있다.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한몫 끼자는 것이니 아무리 감성이 무뎌졌기로 명절을 마다 할 이유가 있으랴. 그러하기로 추석 연휴가 길기도 하니 참기름 들기름 둘러 냄새를 풍겨대고 가까운 이들의 안부도 물어봐야겠다. 생각은 이렇게 해보지만 주변에 내 안부 메시지를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동안 주고받은 카톡 리스트나 들여다볼 뿐아겠다.
첫댓글
옛날엔, 참기름은 비싼 가격이었고,
들깨보다는 귀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영양가와 용도에 따라,
요즘은 들깨도 귀하게 대우 받는 것 같네요.
아들집에서 차례를 지낸다 해도
약밥과 시원한 색색으로 넣은 물김치 담그다
쫓아 왔네요.
중간에 부산 작은 사위가 전화가 와서 답하고
사돈 내외분 건강하시라고 안부도 전했습니다.
석촌님, 過 성년자란 말씀에 웃어 봅니다.
몸과 마음이 풍성하고 넉넉한 한가위 되셔요.^^
언젠가 국립극장에서 뵈었던 기상좋으신 부군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역시 아내의 내조가 있어야 약밥도 색색의 물김치도 맛볼수있다고 흐뭇해하시는 밝은표정의 얼굴이요.
잘차려드시고 많이 웃으시기바랍니다.
콩꽃님 명절 잘 쇠셔요.
저희도 오후에 아들네가 와서 횟집에서
저녁먹고.지네들은 커피 마시고 온다해서
먼저 왔어요.
@해솔정.
우연히, 아주 우연히 들어 왔는데...
해솔정님 고마워요.
해솔정님의 가정에도
둥근 보름달이 떠겠습니다.^^
한가위 잘 보네셔요.
저도 참기름 들기름 선물로 받았는데 시골에서
국산깨로 짠거라 해서 아주 흐뭇합니다.ㅎ
석촌님 자녀분들 효도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명절 되세요.^^
한동안 집안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겠네요.
그것도 냉장고에 들어가거나 오래되면 고유한 맛이 떨어지데요.
맛있게 차려 드세요.
저는 어제 한탄강변 꽃축제 들렀다가 지역 장터에서 들기름 좋은 것 한 병 사왔습니다.
참기름은 마트에서 사먹곤 해도 들기름은 비싸고 좋은 것을 사게 되더군요.
참기름보다 산패도 잘되고 하니 고르기가 조심스러워요.
석촌님께서 받으신 기름 두 병, 현직에 계실 때 덕을 쌓으신 결과겠지요.
참기름 내음 들기름 내음이 가득한 글 잘 읽고 갑니다. ^^
들기름의 맛과 성질을 잘 아시는군요.
쉬 산패하기에 들깨 자체를 먹는 사람도 있데요.
그건 산패와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렇기도 하지요.
거기는 연휴는 아니겠지요?
평안하시길~
들내,참내가 솔솔 풍기는 글향입니다.
고마워요.
예전에 방앗간처럼 들깨나 참깨를 가지고 가면 기름을 짜주던 기름집들이 있었는데...
어머니 따라서 같이 가본 기억과
기름 짜는 냄새가 되살아납니다.
그 찌꺼기를 깨묵이라하지 않았던가요...?
추석이니 고향생각 많이 나겠어요..
이번 추석에 시댁가서 들기름. 참기름 한병씩 주셔서 가져왔어요..
한동안 들내. 참내 풍기면서 맛난 음식 해서 먹을것 같아요..
그게 제일의 양념이니까요.
입맛 많이 즐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