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술자리에서 건배사 대신 오가는 '지부지쳐' 라는 비속어 비슷한 말이 있었다. 즉 술잔이 비면 '지가 부어서 지가 쳐먹는다'는 좀 저속한 표현이다. 이것을 가수와 음악에 대입하면 '싱어송 라이터'이다. 말하자면 자기가 곡을 쓰고 자기가 부르는 가수인 셈이다.
카리 브렘네스 (Kari Bremnes)는 속된 말로 '지부지쳐' 가수이다. 카리는 애당초 가수는 아니었다. 노르웨이의 명문 대학인 오슬로 대학교에서 언어학, 문학, 역사학, 영화를 연구해서 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그리고 전업 가수가 되려고 결심하기 전까지 저널리스트로 수 년 간 일했다고 한다. 따라서 지적인 면은 표면상 고루 갖춘 셈이다. 물론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뭐 실제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여자는 '보여 지는 것'과 '실제'가 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남자들은 다 알고는 있다.
가수가 된 후 발매한 음반은 몇 차례 스펠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Mitt ville hjerte(My wild heart), 1991년에는 Spor(Trace)라는 음반, 그리고 2001년에는 음악을 하는 남자 형제 두 명과 Soløye(Sun eye)라는 음반으로 스펠만 상을 수상했다.
스펠만 상이란 이른바 노르웨이의 그래미상 쯤 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연말 가요 대상'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카리는 현재 노르웨이 작곡작사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노래 부르는 실력도 괜찮지만 사람 관계의 이른바 '꽌씨 (关系)'도 원만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이도 많이 먹어서 고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카리의 음악은 다이나믹하지는 않다. 그저 흘러내리는 빙하의 눈물처럼 조용하고 서정적이다. 필자가 권하고 싶은 노래들은 Fantastik Allerede (Fantastic Already, 2010)라는 음반에 들어 있다.
열 장 가까이 되는 카리의 음반을 다 구할 수는 없고 그저 한 장 들어보고 분위기 느끼면 족한 것이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비싸기로는 '칼만 안 들었을 뿐 거의 강도' 급에 속한다. 때문에 음반 가격도 엄청 비싸다. 그런데 이 음반은 인터넷에서 사면 가격도 착하고, 또 더 착하게도 한 장 가격에 두 장이 들어 있는 더블판이다. 이런 때 웃음이 나는 걸 보면 필자도 참 근검한 편(?)이거나 공짜를 좋아하는 속물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쪼잔한 거다. ('그도 저도 아니면'이란 말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이 있는데 이 대목에서는 안 쓸 수가 없다.)
이 음반의 좋은 점은 그간에 발매된 음반 가운데 히트곡만 골라서 내는 베스트 음반 비슷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꽤 좋은 곡들이 상당수 들어있고, 또 세계적으로 카리를 유명하게 만든 영어 버전음반 'Norwegian mood'의 히트곡을 노르웨이어로 똑같이 불러서 수록해놓기도 했다. 카리의 음악 장르는 재즈도 있고 발라드도 있고 팝송도 있다. 그래서 굳이 장르를 나눈다면 '컨템포러리 팝'이라고 구분하면 대강 맞을 듯싶다. '컨템포러리 팝'이라고 해서 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의미는 별 것도 아니다. 그저 '시류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김선호 / 시사오늘 음악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