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 안숭범
십수 년만의 두근거림을 십수 년 전으로 돌려보내며 아빠는 퇴근한다, 사소한 것들은 그렇게 살아가지 옛집 장독대 옆에서 해종일 웅크린 검둥이처럼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들은 늘 내년에 살지 감정 없는 구름이 어제의 입장을 보채는 계절이고 일단 몸을 출근시키면 마음은 뒤따라가는 습관으로 오늘도 표정 없는 친절이 발명되는 의자에 앉지 뭐든지 오래 연습한 사람이 이기는 거야 아이에게 해줄 날이 사는 나라를 찾다가 벽시계는 늘 다음 순간으로 망명을 가는구나 이제는 누구에게도 연필 하나 다 닳아지는 시간을 견디지 않지, 그것은 구멍을 견디는 마음 빠져나갈 것들은 다 빠져나갔다고 말하면 라흐마니노프의 큰 손, 포지타노의 레몬 캔디 독수리성운의 기둥, 앤디 워홀의 수프 캔 그러나 내 발바닥에 들러붙은 안개와 밤 어쩔 수 없이 밤의 안개, 네가 있는 여름에서 식지 않은 것들이 있어도 두근거림 없이 십수 년을 살 수 있는 쪽으로, 내일이면 정말이지 기계적인 걸음걸이가 완성될 거야 늙은 자동차는 바꿀 수 없거나 바꾸지 않고 화창한 날씨가 세 들지 않는 빈방은 안전하여라 잠시라도 내 것이었던 이의 혈관 속 음악은 내 뼈를 그리워할 일이 없고, 이것은 신앙생활, 사소한 건 알 턱이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십수 년 전부터 오래 연습한 마음은 그렇게
― 『시현실』, 2024. 여름
* 안숭범 시인 1979년 광주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박사 졸업 2005년 《문학수첩》 등단. 2009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의 신인 평론 등단. 시집 『티티카카의 석양』 , 『무한으로 가는 순간들』 『소문과 빌런의 밤』 경희대학교 학술연구교수. EBS <시네마천국>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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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
서정적 자아의 퇴근(퇴근길)에 대한 감정을 그려낸 시이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아빠이다. 몇 번인가 나타나는 ‘십수 년’이라는 시간이 그의 근무경력 기간일 듯하다. 그 십수 년간의 직장생활이 ‘기계적인 걸음걸이’로서의 그를 만들어 왔다는 것.
누구도 ‘연필 하나 다 닳아지는 시간을 견디지 않’는 시대에 십수 년간 그는 무엇을 위해 견디어 온 것일까. ‘사소한 것들’의 신분이 되어 ‘두근거림을 돌려보내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들은 늘 내년’으로 미루면서, ‘오늘도 표정 없는 친절이 발명되는 의자에 앉’아 하루하루를 보내는 스테레오 타입의 현대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구멍을 견디는 마음’이다. ‘구멍’은 빈틈이 생긴 자리이다. 무엇이 빠져나간 자리일까. 그건 아마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일 것이다. 그 욕망의 그물에 걸렸던 몇 개의 환유가 보인다. 라흐마니노프의 큰 손, 포지타노의 레몬 캔디, 독수리성운의 기둥, 앤디 워홀의 수프 캔 등이다. 감동과 호기심과 아름다움의 예술이 키워주는 주는 현실적 명예와 보람 같은 것이겠지.
그러나 퇴근길은 ‘발바닥에 들러붙은 안개와 밤’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실현되지 못할 숙명의 이상이 빠져나간 ‘현실’에서 그 구멍을 견디며 걷는 퇴근길 이미지이다. ‘네’가 생각나는 여름이지만 십수년 간 오래 연습한 내공으로 ‘두근거림 없이’ ‘견디는 기계’가 되어 ‘신앙생활’처럼 이어가고 있다. 그건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 불안한 실존이기에 ‘밤’이거나 ‘안개’ 같은 것이어야 할 것이다. 현대 도시인들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 아닐까.
이와 같은 의미 구조를 살펴보면 그렇게 낯설거나 특이한 시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구조를 물고 있는 언어의 발화 형식은 참으로 낯설게 다가온다. 이 시처럼 내게 익숙하지 않은 발화들이 흥미진진하게 나를 끌고 가는 일은 드물었다고 하겠다. 좀 더 세밀한 천착이 필요하겠지만, 작가 언어의 풍성함과 날카로움에 속절없이 빠지면서 그 선택과 바꿈과 연결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 서범석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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